#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68화
[조만간 한국을 꼭 방문하겠습니다.]
아세안 정상회의를 마무리하고 전용기에 오르는 대통령을 향해 각국 정상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특히나 태국과 필리핀 같은 경우는 이젠 거의 형제를 대하듯 하는 느낌.
뭐 그거야 이번에 저들에게 공여되는 무기들의 종류와 수량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나온 결과인데.
사실 K1E1까지 공여되는 마당이면 뭐 말 다했지.
아무튼, 이래서 국가 간의 교류에는 돈의 논리가 개입되어야만 하는 거다.
“인도네시아 수반과 군 장성의 얼굴이 꽤 볼만 하더군요”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대통령과 나의 담소는 계속됐다.
여전히 인도네시아를 경계하는 내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연신 힐끗거리며 쏟아지는 그의 눈빛.
그렇다고 ‘난 이미 회귀 전 인도네시아의 통수를 경험했다.’라는 말은 뱉어내지 못하는 터라 짧은 변명으로만 일관했다.
“전 인도네시아를 믿지 않습니다. 특히나 여전히 수하르토의 그늘에 있는 저들의 군부를요.”
“프라보워를 말하는 거군요.”
대통령은 용케 그를 콕 집으며 말했다.
하긴, 아세안 정세에 대해서야 이미 올라오는 보고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나마 끝내 내 의중을 반대할 생각은 없었던 듯 이후 대통령은 차분히 내가 올린 보고서만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뭐 그거야 어차피 진 회장님께 일임했던 부분이니 그렇다 치고, 필리핀에서 곧장 성의를 보인 건 꽤 의외군요.”
그건 필리핀이 KF-01의 도입 의향을 밝힌 것을 뜻하는 거였다.
우리의 대량 무기 공여의 대가로 저들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제시한.
최초 구매 수량은 10기.
하지만 역사와는 달리 워낙 성능이 높여진 물건인 터라 추가구매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상으로는 1차 도입 수량이 10기로 되어 있지만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필리핀의 낙후된 공군력을 대폭 끌어 올리겠다는 것이 현 필리핀 정부의 의중이니까요.”
“그러면야 좋지만, 저들의 예산이 받쳐줄지가 의문이군요.”
나름 일리는 있는 문제 제기였다.
저들의 국방 예산으로는 사실상 10기의 전투기 도입도 허덕이는 상황.
마침 문제가 거론 된 김에 넌지시 제안을 던졌다.
“그래서 말인데, 추가발주가 시도 되는 경우 우리 정부가 일부 차관을 제공하는 형태로 가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차관이라…….”
대통령은 고민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당장 우리 역시도 적자 재정을 감당하고 있는 와중 타국에 차관을 제공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불과 수억 달러에 불과한 차관으로 필리핀이라는 확실한 아군을 손에 넣는다면 그게 더 이익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어차피 우리야 아직 채권발행을 통해 가진 여유가 충분한 상태고.
“일단 염두에 두죠.”
긍정적인 대꾸에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차, 집무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청와대 비서실장이 노크를 하며 들어선다.
“대통령님, 방금 국정원에서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대만 정부가 일본에 특사를 파견했답니다.”
“…….”
대통령은 그 말에 즉시 나를 쳐다봤다.
나로선 이미 예상했던 반응.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과 함께 대꾸했다.
“일본을 설득하려는 의도겠죠.”
“괜찮겠습니까? 행여 일본이 다시…….”
“아니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랬다간 미국이 움직일 테니까요.”
“…….”
“앞서 말했듯 이 문제는 이미 중국을 향해 칼을 빼든 미국으로서도 간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마당에 일본이 초를 치는 꼴을 두고 보겠습니까.”
대통령은 그럼에도 끝내 안심이 안 되는 눈치였다.
쐐기를 박기 위해 난 마침 어제저녁 리암과 있었던 통화 내용을 거론했다.
“현 미국 대통령인 톰의 아버지는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참전용사라고 하더군요.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고, 그들의 음흉한 성향을 누구보다 경계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
“해서 만약 일본이 이번에 우리와 미국의 조치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상상도 못할 불이익이 가해질 겁니다. 그러니 그 점은 걱정을 내려놓으시죠.”
“…….”
***
아세안 회의에서 돌아온 지 이틀 후, 내 귀에는 끊임없이 대만의 행보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예상처럼 일본은 대만의 간곡한 부탁에도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후문.
상황이 그러면 대만으로서는 더 이상 답은 없는 형국이다.
“마잉주라…….”
사실 마잉주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곧 자국 국민들로부터 정체성에 대한 비난이라는 치명적인 문제 제기를 당할 처지.
그로 인해 일어나게 될 해바라기 운동과 점차 하락할 지지율로 인해 물러나는 운명을 맞을 테니까.
“그래, 그 상황에서 경제위기까지 겹치면 역사보다 빨리 물러나게 될 수도…….”
그럼에도 내가 대만에 칼을 빼든 것은 결국 저들의 뿌리 깊은 일본 편향적인 태도 때문이다.
어느 당이 정권을 잡으나 변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맹목적인 저들의 사랑과 그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대우를 끊어내려는 거지.
쉽게 말해서, 이젠 저들에게도 확실하게 인식을 시켜주겠다는 의미다.
과연 누가…… 자신들에게 진짜 이익이 될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니, 누구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지를.
“대통령님께서 곧 출입국사무소로 출발하신다는 전언입니다.”
김 비서의 다급한 보고에 퍼뜩 정신을 차리곤 수트를 챙겼다.
곧 사무실을 나서자 마침 김 비서와 연신 수다를 떨고 있던 나타샤가 정색을 하고 나를 따라붙는다.
[무슨 대화를 그리 즐겁게 합니까?]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슬그머니 물었다.
따지고 보면 누구보다도 어색해졌어야 할 두 여인의 관계.
하지만 그건 단지 내 착각이었을 뿐, 저들은 여전히 친 자매인 것처럼 서로를 대하고 있는 중이었고, 난 그 점이 내심 불가사의 했다.
[그게 회장님의 눈에는 즐거운 대화로 보이셨군요. 실은 기 싸움을 하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
난 그 말에 재빨리 시선을 돌려 버렸다.
어차피 두 여인의 관계가 거론되었기 때문일까, 이후 나타샤의 불평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무튼, 전 김 비서 언니가 마음에 안 듭니다.]
[…….]
[막말로 저 같으면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사람을 낚아채 간 인간이 앞에 있으면 그냥 확…… 그런데 김 비서 언니는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거든요.]
꿀꺽!
이런 쪽으로는 차마 끼어들 용기가 없었다.
그 탓에 침묵으로 일관하곤 다시 문이 열기만을 기다리던 차, 그녀가 피식 하는 헛웃음과 함께 의외의 말을 던졌다.
[실은 웨딩드레스 업체를 소개 받았습니다.]
[…….]
[더불어 호칭 정리도요.]
[호칭?]
[우리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묻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단칼에 잘라서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제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
***
“충성!”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 그리고 재건위원들의 차량은 헌병들의 안내에 따라 출입국사무소를 통과했다.
당선 이후 처음으로 북을 정식 방문하는 대통령은 내내 감회가 새롭다는 눈빛이었고, 지나가며 보이는 북한 거리의 변화들에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님.”
재건위원장은 대통령의 방문 소식에 버선발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하지만 오늘 모임의 진정한 목적지는 따로 있는 상태.
그는 짧은 해후 끝에 곧장 자신의 차량에 올라 길을 잡았고, 이후 막대한 경호세력들의 비호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평안남도 숙천군 인근이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재우에서 개발한 스마트 원자로의 시범 발전단지가 들어설 곳이라는 말이죠?”
목적지에 도착한 대통령은 다시 한번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쪽에서는 온갖 반대와 시위로 인해 몇 번이고 무산 되었던 스마트 원자로 시범단지 건설이 이곳에서는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이루어 졌으니까.
어디 그것뿐일까, 차세대 에너지원 확보의 핵심이라는 핵융합발전의 연구단지까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북은 더할 나위가 없는 선택지였고, 우리로선 그야말로 통일의 단물을 제대로 빨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북한의 현 상황이 특수해서 별문제 없이 이런 위험 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고는 해도 안전 문제만큼은 확실히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내심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 듯 몇 번이고 안전을 강조했다.
나로서도 그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실무진들에게 강조했었던 부분.
그래도 혹시 싶은 마음에 희원을 쳐다보자 그가 대신 설명을 잇는다.
“안전 문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개발한 스마트 원자로의 경우 특히나 폭발의 위험성을 억제하는 것에 중점을 맞추어 개발이 진행되어 왔으니까요. 그리고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 해도 원자로 자체를 그냥 매몰해 버리면 되는 구조입니다.”
“흠, 그건 들어서 알고 있기는 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이유가 뭡니까.”
난 그 질문에 힐끗 희원을 향해 눈치를 줬다.
내가 대신 나서겠다는 의미.
의도를 파악한 그는 재빨리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서두를 수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곧 제작이 시작될 한국형 원잠을 위해서는.”
“…….”
“그렇다고 시험 운용도 거치지 않은 원자로를 대뜸 잠수함에 탑재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니, 하루라도 빨리 지상 테스트를 끝마쳐야죠.”
대통령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왕 원잠이 언급된 상황인 터라 난 그 타이밍을 이용하여 내심 고민 중이었던 문제 하나를 더 끄집어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원잠을 전력화 하는 것엔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겁니다.”
“그렇겠죠. 재래식 잠수함도 군에 인계하기까지는 족히 6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마당에. 아! 물론 재우야 그 시간을 대폭 단축하기는 했죠.”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자력 잠수함의 경우는 저희도 처음 시도하는 것인 터라 전력화까지는 최하 10년 이상이 소요될 겁니다.”
“흠…….”
대통령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내가 이 화두를 꺼낸 근본적인 이유를 눈치채지 못한 느낌.
결국 직설적인 말로 설명을 잇는 쪽을 택했다.
“문제는 역시나 중국입니다. 그사이 저들과의 충돌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거죠.”
“…….”
순간 대통령의 눈빛이 달라졌다.
“해서 전 우리가 보다 빨리 원잠을 운용할 수 있을 방법을 하나 찾았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의 대꾸가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꽂혔다.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였던 듯.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과거 경제위기로 제작이 중단된 핵잠수함들이 3척 가까이 있습니다. 오스카 급이 2척, 그리고 아쿨라급이 2척이죠. 중요한 점은 정작 러시아가 경제발전을 했어도 그걸 재개할 가능성은 없다는 겁니다.”
“왜요?”
“이미 러시아 역시 보다 발전된 모델을 계획 중이거든요.”
“…….”
“해서 제 생각엔 그걸 저희가 인수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러시아가 건조 중단한 핵잠수함을 가져오자고요?”
“그렇습니다. 어차피 저들은 그걸 재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얼마든지 고철 수준의 가격으로 끌고 오는 것이 가능하죠. 대신, 원자로만큼은 우리가 설계한 것을 탑재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맙소사! 지금 전략 원잠을 가져오자는 겁니까?”
대꾸는 군 장성들로부터 들려왔다.
하긴, 단순히 공격 원잠도 아니고 전략 원잠을 들여오겠다는 건 문제가 또 다르지.
다른 걸 떠나서 그건 자칫 러시아에게도 들이밀어질 수 있을 칼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현재 우리와 러시아의 관계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흠…….”
대통령의 눈빛이 일순 강렬한 빛을 발했다.
무려 3척의 원자력 잠수함을 일거에 획득할 방법이 생겼으니 흥분이 되는 거지.
옅은 미소를 내비치곤 다시 말했다.
“참고로, 원활한 운용을 위해서는 한동안 우리 측 운용 병력들을 러시아로 보내야 할 겁니다. 물론 그 부분 역시 러시아와의 협의가 우선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래야겠죠. 나 역시 안 그래도 운용에 대한 준비상황을 묻고 싶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그걸 받아들이겠습니까?”
“얻는 것이 많은 이상 저들도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넌지시 수첩을 꺼내어 빼곡히 적힌 내 일정 중 하나를 그에게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전 인도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인도가 아세안에 이어 무기 공여가 이어질 대표적인 국가들 중 하나임은 대통령님께서도 잘 아시겠죠?”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정보에 따르면 인도는 단순히 공여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쉽게 말해서 재우의 무기들을 대량 사들일 의도가 있다는 건데, 문제는 공격헬기 분야만큼은 우리가 저들의 요구 수량을 따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요.”
“그야 물론 예산 때문이죠. 인도는 현재 수백 대의 공격헬기를 도입하길 원하는데, 포사의 가격으로는 그 수량을 못 맞춥니다.”
“흠…….”
“해서 전 일부 핵심 전력에 대해선 포사를. 그리고 수적 열세를 채워주는 방편으로는 MI28N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러시아의 것을 말입니까?”
“러시아의 것이라고는 해도 무장과 전투체계는 우리가 손봐야죠. 하면 우린 우리대로. 또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이득일 챙길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인도는 고작 대당 160억 수준에 헬기 전력을 확보할 수 있고요.”
“하지만 그 헬기의 가격은 원래…… 아! 대량 생산 체계면 가격이 낮아지겠군요.”
말하는 와중 사실을 깨달은 듯 돌연 그가 말을 바꿨다.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하려는 차, 그가 또다시 질문을 던진다.
“하면 대체 인도는 어느 정도 수량을 원하는 겁니까.”
“총 800대 규모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800대나요?”
“뭐 그들도 워낙 적대 국가들과 인접한 국경 구간이 넓으니까요. 한데 그게 우리의 도입 수량과 합쳐지는 경우 거의 1300대에 육박하는데, 러시아로서는 노가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러시아로서는 중단된 핵잠수함쯤은 넘겨줘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건 지나치게 러시아만 좋은 일 아닌지 걱정이군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무기 시스템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만약 재우의 전투체계가 탑재되면 이익은 우리가 더 본다는 것을.
게다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그대로 수출할까.
온갖 핑계를 대서 뽑아먹을 부분은 넘치고도 남는다.
“그 부분에 대해선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웃으며 대답하자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원론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겠지.
정말로 러시아의 잠수함을 가져와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순간 참다못한 군 관계자들의 성화가 이어졌다.
“대통령님! 진 회장께서 말씀하신 원잠들은 선체가 티타늄으로 제작되어 어지간한 경 어뢰로는 침몰도 못 시키는 괴물입니다. 또한 무려 600미터 급 잠항 능력까지 가졌죠. 다시 말해서 이건 가능만 하다면 고민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좋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즉시 합참 회의에 안건을 상정하라고 해보죠.”
대통령은 결국 긍정적인 의사를 표하곤 돌아섰다.
주먹을 불끈 쥔 채 돌아서는 대통령을 따라가려는 차, 내내 곁에 서 있던 희원이 뭣 때문인지 불쑥 내 팔을 붙잡는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다른 게 아니고, 어째 돌아가는 낌새가 지금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
“실은 어제 우리 연구원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은 것이 있는데, 그게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난 고개를 갸웃해 보이곤 놈을 한적한 곳으로 이끌었다.
일행들과는 제법 떨어진 위치.
다시 시선을 주자 그가 슬그머니 입을 연다.
“1년 전 우리 연구소에 참여한 연구원 중 하나가 제안한 건데, 그가 최근 우리 스마트 원자로 연구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소재를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어.”
“…….”
“그런데 그게 하필 MSR원자로 개발에 단초가 되는 거지 뭐야.”
“해양 용융원자로를?”
순간 절로 눈이 부릅떠졌다.
이제 막 스마트 원자로를 개발 완료한 상황에서 또 다른 미래 원자로 기술의 단초가 생겼다?
그것도 안전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보다 획기적인 물건을?
“흠…….”
난 잠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 됐다.
기껏 개발한 스마트 원자로를 사장 시킬 수는 없고.
그렇다고 기왕 제공된 단초를 포기하자니 그건 또 아깝고.
“아!”
순간 제법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스쳤다.
MSR원자로의 특징 중 하나는 방사능에 대한 걱정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
하면 대형 상선의 추진기관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던가.
‘그래, 어차피 MSR도 지금 개발을 시작하면 또 최하 10년은 걸릴 터. 당장 전력 운용을 위해선 시간이 촉박하니 일단은 이미 개발된 스마트 원자로를 활용하는 것이 낫지.
그리고 MSR의 경우는 개발을 지속하여 앞으로 조선 업계에 불 저탄소 열풍에 대한 대체재로 활용하면 되고.
‘아! 그러고 보니 그때쯤이면 우리의 원잠도 배치2가 계획 될 때인가?’
그럼 그때 가서 보다 확실한 안전과 효율을 강조하여 그걸 도입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 부분은 일단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내가 연구소로 직접 찾아갈 테니까.”
“그래, 대신에 올 때는 손은 무겁게. 알지?”
***
늦은 밤.
집에 도착한 난 이후로 한참 동안 데이터 칩에서 해양용융원자로에 대한 자료들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MSR의 경우는 회귀 전까지 개념단계에 그쳤었던 명제.
때문에 어느 곳에도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거 웃기는 군. 2025년도에도 개념 연구에 불과했었던 분야를 이 시기에 단서를 찾았다니.’
그 부분은 확실히 의외였다.
원인을 찾자면 시대를 앞선 연구 분야의 다양성과 지속성으로 인해 발생한 부수적인 효과 정도?
그렇다 해도 이건 지나치게 대박이 얻어걸린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핵 관련 국제규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론 안전성 또한 극도로 담보된 핵 추진 분야.
그거야말로 신의 선물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딩동!
한참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누군가 벨을 눌렀다.
얼핏 본 모니터에 비친 것은 나타샤.
의아한 마음에 재빨리 문을 열려다간 마침 목욕가운만 걸치고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순간 떠오른 것은 예전에 꾸었던 꿈이었다.
40줄의 나이에서 꾼 꿈이라기엔 꽤 망측했었던.
그때 다시 벨이 울렸고, 난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웬일입니까.”
“김희원 박사님께서 내일 연구소 방문 전에 참고하실 자료를 회장님께 가져다주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래요?”
무심코 받아들곤 살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왠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드는 순간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녀와 딱 눈이 마주쳤다.
‘아니겠지? 에이 설마…….’
“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