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63화
[우리 정부는 오늘 양국 모두의 도움을 정중히 거절함에 이어 사고 수역을 향해 해경 함정을 공식 파견했습니다. 우리의 입장 전달에 두 나라는 흔쾌히 응했으며 덕분에 어민들의 구출은 신속히 이루어졌습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선…….]
[일본은 침몰한 자국의 해경선 문제를 두고 중국 측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또한, 조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자위대 함정의 파견도 검토 중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중, 일간 해경선 충돌 문제는 사태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고 갔다.
대치 중이었던 어느 한쪽의 선박이 침몰해버린 터라 이젠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비화된 형국.
때문에 두 나라는 가진 외교력을 총동원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며 그 자존심 싸움은 점점 서로를 향한 제재로까지 발전해갔다.
[중국은 오늘 일본을 향한 희토류 수출을 전면 중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중국이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뼈를 때려 버리는 수단을 동원해서.
당황한 일본은 중국을 향한 제재수단을 찾기 바빴으나 사실상 저들이 중국에게 타격을 줄만 한 것이 있을 리가 있나.
이후 전 세계 언론들의 시선은 일제히 일본의 입을 향해 집중됐지만, 역시나 그들은 뚜렷한 대책을 내세우지 못했다.
“미국으로 달려갔겠군.”
그건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솔직히 지금 저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미국밖에는 없으니까.
게다가 정작 편을 들어주어야 할 미국은 이렇다 할 확실한 제스쳐를 보이고 있지 않은 상태.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라도 미국행은 필수였을 거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회장님.”
오늘따라 날은 유난히도 화창했다.
비록 출장길이지만, 마치 모든 걸 훌훌 털어놓고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이랄까.
그건 아마도 이제 곧 만날 푸틴과의 회담 내용. 그리고 코너에 몰린 일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서 오는 희열과 만족감의 여파였을 거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나타샤는 비행 중에 몇 번이고 내 건강 상태를 챙겼다.
어제 갑자기 몰려왔던 피로감을 호소한 것이 원인.
우스운 것은 그때 이후로 부쩍 더 내 건강을 챙기고 나선다는 건데, 그게 영 부담스럽지만도 않은 것이 나로선 꽤 고무적인 변화다.
[처가에 온 것을 환영하오.]
늘 그렇듯 알렉세이의 짓궂음은 오늘도 여전했다.
덕분에 그의 머리로 날아간 땅콩 조각이 벌써 수십 개.
저런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보면 둘 사이도 확실히 단순한 상사와 부하였다기보다는 가족과도 같은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솔직히 난 저 아이가 유독 안타까웠습니다. 특히나 몸을 사리지 않는 그 대범함은 처절하기까지 했다고나 할까요. 고아로서 딱히 세상에 미련 따위는 없다는 듯한 그 태도 말입니다.]
차량이 한창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와중 알렉세이가 대뜸 나타샤의 과거를 거론했다.
마침 그 부분에 대해선 나 역시 궁금했던 탓에 즉시 그를 쳐다봤고,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이젠 관심이 좀 생깁니까?]
[…….]
[하긴, 장래 안 사람이 될지도 모를 존재의 과거 궁금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한데 아쉽지만 그건 차후로 미뤄야 할 것 같소.]
그는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대통령궁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쯧, 그런 중요한 정보를 말 할 거였으면 좀 진즉에 시작을 하던지.
안타까운 마음에 흘겨보자 그가 다시 너털웃음을 내뱉는다.
[진 회장님 그사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려.]
뒤에서 연신 들려오는 그의 너스레를 무시한 채 궁으로 들어섰다.
오늘따라 입구까지 마중을 나온 푸틴은 나와 나타샤를 쳐다보는 눈빛이 평소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그사이 별일 없었소?]
[무슨…….]
[흠흠. 거, 내 앞에서까지 의뭉을 떨 필요가 뭐가 있소. 저 여자가 내꺼다 하고 말을 뱉어냈으면 그사이 뭔가 일이 벌어졌어도 몇 번은…….]
푸틴은 평소 그답지 않은 농담을 연신 뱉어냈다.
뭔가 관계가 보다 가까워진 것 같아서 싫지는 않다만 영 적응하기가 어려운 상황.
옅은 웃음으로 넘기곤 곧바로 본론을 끄집어냈다.
[유라시아 철도 연결을 곧바로 시작하자고요?]
[그렇습니다, 어차피 양국 모두 시행에 이견이 없는 마당에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죠.]
[흠…… 그렇다 해도 우린 아직 예산책정 문제가 남아 있소. 그 긴 구간을 연결하는 것에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 부분은 한국 정부가 차관 형태로 제공하는 것으로 하죠. 어차피 우리 정부는 올해 러시아를 향한 대정부 투자를 국회에 상정하고 일정 부분의 액수를 통과시킨 상태니까요.]
푸틴은 그 말에 눈을 빛냈다.
이제야 통일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교류가 실질적으로 체감되기라도 한 듯.
하긴, 그간 MOU 같은, 그저 돌아서면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타국과의 약속들에 지친 것이 어디 한두 번일까.
그들과는 달리 약속을 조기에 집행하려는 내 태도가 새롭기는 했을 거다.
[이거 오늘 연어낚시라도 가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푸틴은 흔쾌히 대꾸하곤 웃어 보였다.
지금이야말로 아쉬운 말을 내뱉을 시점.
난 찻잔을 들어 올리며 넌지시 준비해왔던 문제를 거론했다.
[현재 러시아에 잉여 지상무기들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걸 좀 푸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푸틴은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뭐 우리가 무기가 부족한 상황이 아님은 그가 더 잘 알고 있는 마당에 대뜸 잉여 무기를 내어놓으라는 말이 별스럽게 들리기도 했겠지.
난 즉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우리와 러시아의 미래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하십시오.]
[…….]
순간 푸틴의 표정이 더없이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난 그의 앞에서 어떤 주제를 두고도 지금처럼 뜸을 들인 적은 없으니까.
눈치 빠른 그는 즉시 주변을 물렸고, 이후 자리엔 나와 푸틴, 그리고 나타샤만이 남게 되었다.
[러시아와 한국의 미래를 위한 조치라…… 어디 속 시원하게 말해보시오.]
그 말에 옷깃을 여몄다.
이후 들고 잇던 찻잔을 내로 놓곤 선포하듯 말을 던졌다.
[위구르를 비롯한 중국의 소수민족들의 저항 운동을 촉발시킬 생각입니다. 목적은 중국의 분열. 한데 문제는 우리가 생산한 무기들을 저들에게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그 탓에 러시아의 무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
푸틴은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대목에서 저토록 당황한 걸까.
중국의 분열을 주장하는 나?
아니면 정작 우리 무기는 제공 못 한다면서 러시아에게 요구하는 내 뻔뻔함?
그때, 넌지시 그의 입이 열렸다.
[솔직히 중국의 분열이 러시아의 미래에 이익이라는 것에는 동감하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무기를 제공하자는 건지는 좀처럼 이해가 안 가는군요.]
[그거야…… 어차피 러시아 무기들은 전 세계 곳곳에 넘치도록 풀려 있지 않습니까. 하니 그게 위구르와 여타 저항 세력들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으니까요.]
[…….]
푸틴의 얼굴에선 연신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
어찌 보면 불쾌한 말이었음에도 딱히 반박할 근거가 없는 것에서 오는.
이후 한참을 고민에 빠진 듯했던 그는 결국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젠장, 뭐라 대꾸할 말이 없군, 하면 어느 수준까지 제공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위구르 같은 훈련도 안 된 세력에게 전차 같은 것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 아니오.]
[그야 물론입니다. 때문에 제공되는 것은 소총과 RPG. 그리고 여타 중기관총을 비롯한 기동차량들 정도면 족할 듯싶습니다.]
말을 뱉어낸 순간 그의 얼굴에선 안도의 빛이 어렸다.
무리도 아닌 것이 그 정도면 그 정도 수준이라면 암시장에서도 거래가 가능한 품목들이 아닌가.
즉, 최악의 순간에도 발을 빼기에 용이하다는 거지.
난 그 시점에 사탕을 하나 던졌다.
[만약 허락하신다면 Mi-28N을 대량 구매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걸 어디에 쓰려고요.]
푸틴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그야 당연히 무장헬기로 써먹기 위함이죠. 아시다시피 현재 우리 군은 후방을 책임져줄 대량의 무장헬기가 필요한데, 그렇다고 그 비싼 포사나 아파치 같은 공격헬기로 필요 수량을 맞출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뭐 예산도 예산이고.]
[…….]
[하지만 Mi-28N의 경우는 우리 조건을 여러 면에서 충족하죠. 꽤 괜찮은 무장과 방호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가격은 불과 130억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 아! 물론 무장 체계야 우리에게 맞추어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그거야 어차피 포사도 그랬으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히는 모습이 모였다.
하지만 그의 입은 이미 귀까지 걸려 있는 상황.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그의 고개는 흔쾌히 끄덕여졌고, 이후 난 준비해왔던 또 하나의 주제를 던졌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푸틴은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이번엔 굳이 말을 돌리기보다는 직설적으로 뱉어내는 쪽을 택했다.
[아시다시피 현재 중국과 일본은 영토 분쟁중입니다. 하니 이 기회에 러시아도 쿠릴 열도에 대해 확실하게 못을 박으시죠.]
[……이 복잡한 상황에서 우리까지 일본과 영토 분쟁에 뛰어들라고요?]
[복잡하죠. 하지만 그래서 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어차피 러시아 역시도 조만간에는 일본과 4개 섬 문제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텐데, 난 외려 지금이 확실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
푸틴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미국이 부담되는 것일 터.
역사와 달리 이제 미국과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은 러시아로서는 사실 그게 부담되는 것은 당연할 거다.
[미국의 반응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난 즉시 운을 띄웠다.
워낙 확신에 찬 말이었기 때문일까, 순간 푸틴의 눈빛이 더 없이 빛을 발했고, 이후 그는 넌지시 질문을 뱉어냈다.
[혹시 미국과 암중에 말이 오가기라도 한 거요?]
[이번 사태에 대한 대화가 오가기는 했지만 러시아가 거론된 적은 없습니다. 즉, 이 제안은 전적으로 내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죠.]
[…….]
[하지만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미 미국은 나름대로의 이익을 챙기기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우린 저들이 마지노선으로 택한 선만 지켜주면 되니까. 여기서 주지하실 점은 현재 일본이 얽힌 영토문제 중에서 미국에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은 센카쿠가 유일하다는 겁니다.]
[…….]
[쿠릴 열도야 어차피 반세기 이상을 러시아가 실효 지배했었고, 그 지역을 통한 군사적인 움직임 역시도 그간 미국이 충분히 감당해 왔었던 부분 아닙니까. 게다가 이제 러시아는 미국과의 관계가 더없이 좋은 상태이기도 하죠. 그 마당에 굳이 저물어가는 일본의 편을 들 이유는 없습니다. 아! 참고로, 현재 미 정가에서도 이젠 일본의 영토 야욕에 대해 더는 손을 들어줄 인물은 없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독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내 경청하던 푸틴은 순간 핵심을 치고 들어왔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비로소 내 의도를 다 이해했다는 듯 잔뜩 입매를 뒤틀며 말했다.
[이제 보니 진 회장의 진정한 목적은 그거였구려. 우리와 동시에 독도 문제를 끄집어내서 저들을 사면초가로 몰고 가자는.]
난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웃음기가 잔뜩 맺혀 있는 얼굴이던 푸틴은 어느 순간 급격히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한데 목적이 뭡니까.]
[목적이야 당연히 독도를 포기시키기 위함이죠.]
[……가능하겠소? 독도 문제는 일본도 그리 쉽게 포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 않소.]
[그거야 쿠릴 열도도 마찬가지죠.]
[…….]
[하지만 가능성이 전보다는 훨씬 큰 것이 사실입니다. 이젠 힘의 균형이 완전히 기울어진 상황이니까. 그리고…….]
미국이 관여를 하지 않는 상황 하에선 더더욱.
[…….]
푸틴은 말끝을 흐린 나를 갸웃하며 쳐다봤다.
끝내 웃음만 보일 뿐, 이렇다 할 말을 잇지 않자 그가 실없다는 눈빛을 내비쳤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진 회장은 말을 지나치게 생각에서 거르고 내뱉는 습성이 있어요.]
[그편이 후회할 일은 덜하게 만드니까요.]
피식.
[그거야 그렇다 치고. 혹시 내가 이야기 했었던가요? 난 처음에 진 회장과의 이런 관계는 상상조차도 안 했었다는 것. 아니 오히려 제거하려고 했었다는 것.]
[…….]
[그게 아마 진 회장이 처음으로 HVP를 만들어냈을 때였을 거요. 정확히는 그 기술이 미국에게 넘어갔을 때. 솔직히 미국에게 그게 주어지면 그나마 미사일 전력만이 유일한 우위를 보이던 우리로서는 여간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었거든.]
[…….]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신을 제거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했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천만다행이지 싶소.]
[…….]
[혹시라도 실패했다면 그 후폭풍은……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섬뜩한 말이었음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갑자기 곁에 앉아 있던 나타샤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기세는 곧장 푸틴에게로 향했다.
[쯧쯧. 이래서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니까. 그러다 뭐 하나 날라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