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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59화 (25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59화

스윽.

다섯 평 남짓한 거실에 카펫을 깐 메르칸은 오늘도 창문이 난 방향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이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한참을 기도문을 읊는 그의 얼굴엔 초탈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이후 그의 입에선 누군가를 애도하는 말이 뱉어졌다.

실수였던가.

더는 기도를 이어갈 자신이 없던 그는 결국 몸을 일으켰고, 이미 마음을 차지해 버린 분노의 감정을 허공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기어이 참아왔던 눈물이 터짐과 동시에 그의 입에선 신을 향한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사정을 모르는, 같은 종파의 인물들이 그걸 봤다면 대번에 질책했을 행동.

하지만 그는 끝내 상관하지 않았을 거다.

당장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어버린 입장.

누가 자신을 나무랄 수 있다는 말인가.

“크흑!”

처자식들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말로는 버스가 추락하여 모두가 숨을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누가 믿을까.

필시 그건 복귀요구를 거부한 자신을 향해 본보기를 보이곤 대외에는 거짓으로 둘러댔던 것이었을 터.

이후 들려온 친우의 증언에 의해서도 그건 사실로 증명됐다.

-사고가 아닌 수용소로 끌려갔던 것이었더군. 그곳에서 한족 관리자들에게 차마 여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후문일세.

그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아내의 근본적인 사인이었다.

집단 성폭행의 충격에 의한 자살.

그것도 그 빌어먹을 한족들에 의해 벌어진.

예전에도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들을 길들이기 위해 한족 관리원들을 통해 여자들을 겁탈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차마 자신의 가족이 그 소문의 일부가 될 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으득!

아무리 지우려 해도 당시의 상황이 자꾸만 머리에서 그려졌다.

그 때문일까, 어느덧 신을 의지한다는 마음은 사라졌고, 스스로가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파고들었다.

스윽.

그는 결국 책상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 들었다.

아내를 그렇게 만든 직접적인 당사자들을 향한 복수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에 동조한 자들에게만큼은 피를 보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운이 따라주려는지, 마침 그들과 했었던 약속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띠링!

잠시 꺼두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켜자 부재중 알림이 날아왔다.

그와 가장 가까운 연구소의 동료에게 걸려왔던 전화.

평소 기도시간만큼은 절대 방해하지 않았던 친구였던 만큼 의아한 마음이 들 수밖에는 없었다.

“이 친구가 웬일이지?”

메르칸은 즉시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과 몇 번의 신호 끝에 전화를 받은 동료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다급한 투였다.

-메르칸! 자네 혹시 별일 없나?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약 1시간 전에 몇몇 한국인들이 학교로 자네를 찾아왔었는데, 왠지 보통 사람들 같아 보이지가 않아서 말이야.

“…….”

영문을 알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

그와는 일체의 인연조차도 없는 나라에서 자신을 왜 찾아왔다는 말인가.

“그래서, 뭐라고 했나.”

-하도 수상쩍어서 일단은 대충 둘러대고 말았지.

“…….”

-모래 LA에서 있을 학회 준비를 위한 모임에 갔다고 말이야.

“잘했어.”

메르칸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창밖을 쳐다봤지만 거리엔 길고양이들만 서성이고 있던 상태였다.

철컥!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 메르칸은 기어이 총을 품에 숨긴 채 방을 나섰다.

이후가 도착한 곳은 집에서 열 블록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형마트.

그건 혹시 있을지 모를 저들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그가 저들에게 제안했었던 장소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변하고 보니 그건 실수였던 듯싶다.

이젠 오히려 그가 저들에게 총을 쏴 버려야 할 입장이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가…… 놈들과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생각과는 달리 마음은 무거웠다.

사실 오늘의 이 만남도 결국엔 신장에 남아 있는 다른 가족들을 담보로 저들이 그에게 요구했었던 것.

하지만 이제 그가 할 행동으로 인해 남아 있는 다른 가족들까지도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하지 않던가.

“후우…….”

하지만 상관없다.

아니, 그의 부모님이라면 분명 자신의 행동을 나무라기는커녕 자랑스러워하실 거다.

최소한의 복수나마 하고 가겠다는 그의 의지를.

끼익!

주차장에 차를 세운 메르칸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약속했었던 중국인들은 아직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태.

그는 최대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한 위치를 찾기 위해 다시 차를 몰았고, 곧 마음을 정한 곳은 마트의 뒤편에 있는 전기 차량 전용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던 위치였다.

탁!

차에서 내린 메르칸은 즉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후 입력한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차.

퍽!

갑자기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더니 몸이 힘없이 기울어져 버렸다.

“쯧쯧, 어설퍼…….”

쓰러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만남을 약속했었던 예의 그 중국인들이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던 걸까.

곳곳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 중국인들은 곧바로 그의 품을 뒤졌고, 이내 그가 숨겨두었던 총을 찾아냈다.

“이걸로 우릴 쏘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지?”

“…….”

메르칸은 와락 미간을 찌푸린 채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기회를 잃어버렸으니 남은 것은 죽음뿐.

한데 그때, 놈들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뱉어졌다.

“네 부모는 대체 어디로 빼돌린 거지?”

“…….”

“모르는 척하자는 건가? 신장에 있던 네 부모가 밤새 감쪽같이 사라졌어. 네가 아니고선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겠어.”

“내 부모님이 사라지셨다고?”

메르칸은 화색을 밝히며 되물었다.

표정에서 진심을 읽은 듯, 중국인들은 와락 인상을 찌푸리곤 서로를 쳐다봤고, 곧 심각한 표정이 되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이자의 소행이 아닌 모양입니다. 네, 그럼 일단 예정대로 강제소환 조치하겠습니다.”

통화를 듣고 있던 메르칸은 사내의 마지막 말에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강제소환.

그 말인 즉 납치를 하겠다는 건데, 그건 자신이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으니까.

“누가 좀…….”

결국 그는 사방을 향해 소리쳤지만 눈치 빠른 중국인들에 의해 즉시 입이 틀어 막혔고, 그의 몸은 곧바로 놈들이 준비 해 둔 밴에 내동댕이쳐졌다.

찍!

애초부터 납치를 계획한 놈들답게 후속 조치는 재빨랐다.

입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 버리는 것에 이어 손, 발을 케이블 타이로 결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수초.

하지만 메르칸은 끝까지 발버둥을 쳤고, 그 탓에 놈들은 문을 닫는 것에 꽤 애를 먹었다.

“좀 얌전히…….”

퍽!

그때, 메르칸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던 사내가 갑자기 땅에 주저앉았다.

퍽!

이후 연속해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의아한 마음에 그는 즉시 몸을 일으켰고, 이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옷의 사내들로 인해 예의 그 중국인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가는 장면이었다.

퍼벅!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았다.

휘둘러지는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내지르는 반격은 싸움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가 보더라도 예술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

당황스러운 것은 그 파괴력이었는데, 그저 무심히 내지른 한방에 그토록 건장한 중국인들이 속절없이 주저앉고 있었다는 거다.

쉬익!

개중 몸이 빠른 중국인 몇몇은 재빨리 칼을 빼 들었다.

하지만 정작 위협을 당한 검은 옷의 사내는 헛웃음을 지은 채 제 동료를 쳐다봤고, 이후 갑자기 주머니에서 소음기가 달린 총을 꺼내 들어 칼 든 중국인들의 다리를 차례로 쏴 버렸다.

피슉! 피슉!

[쯧, 무기를 들고 다니려면 좀 더 그럴듯한 것을 가지고 다녀야지. 여기가 전장이었으면 총알이 박힌 것은 다리가 아니라 네놈들 머리였을 거다.]

“…….”

사내의 주절거림을 들은 메르칸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대체 저들은 누구일까.

한참을 그 같은 생각에 눈만 끔뻑였고, 그 순간 총 든 사내의 시선이 그에게로 꽂혔다.

저벅저벅.

눈이 마주친 사내는 곧장 메르칸을 향해 걸어왔다.

툭!

이후 사내가 한 행동은 결박된 메르칸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

여전히 상황을 이해 못한 메르칸은 마른침을 삼키며 사내의 얼굴만을 쳐다봤다.

[난 재우 PMC 소속의 강채훈이라고 합니다.]

[…….]

[미안하지만, 우리 회장님께서 좀 만나보고 싶어 하시는데, 혹시 시간 좀 되시겠습니까?]

[…….]

***

“네, 전열화학포의 해상 플랫폼 구축은 사실상 당장에라도 가능한 상태입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으로부터 걸려온 국제 전화는 꼬박 30분가량 이어졌다.

이번 중기계획 안에 포함된 KDD-4 건조 계획안에 전열화학포의 탑재를 고려해 보겠다는 소식.

들려오는 잡음 속에 여러 다른 인물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봐선 군의 수뇌부들과 회동 중인 모양인데,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상황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당장에라도 전력화해야 한다는 육군과 해군의 엄청난 성화와 그걸 감당해야 하는 대통령의 표정이.

끼익!

웃으며 쳐다보던 창밖에선 익숙한 차량들이 정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곧 내려서는 이들은 내가 메르칸에게 보냈던 PMC 대원들.

한껏 정중한 태도로 뒷문을 여는 것으로 봐선 임무에 성공을 한 듯한 모양새다.

똑똑!

조금 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는 짧은 대꾸를 뱉어내자 강채훈이 먼저 모습을 내비쳤고, 이후 그의 뒤를 따라선 중국 국적과는 거리가 먼. 아랍계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사내가 사방을 둘러보며 들어선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난, 재우 그룹의 진현승이라고 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선 손을 내밀었다.

재우라는 이름에 놀란 듯한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만 보던 그는 갑자기 아! 하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화색이 밝아진 것으로 봐선 의심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렇다 해도 상황판단은 쉽지 않을 터.

목을 축일 만한 음료와 함께 자리를 권하곤 그가 조금 더 안심을 할 만한 말을 던졌다.

[메르칸 씨의 부모님은 현재 인도에서 안정을 취하고 계십니다.]

[…….]

순간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후 돌아온 질문은 왜…… 라는 짧은 단어.

난 슬쩍 들고 잇던 잔에 술을 채우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린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해서 당신의 환심을 살만한 것을 선물했다고 생각하시죠.]

[그러니까 한국에서, 아니 재우에서 저를 왜 필요로 하느냐는 말입니다.]

난 그 말에 즉시 가방에서 서류들을 꺼내어 그에게 들이밀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문제의 바이러스에 대한 부분은 제외한 상태.

그가 보기엔 그저 고위험 전염성 질병의 백신 개발안에 대한 계획서로만 비춰질 거다.

[흠…….]

한참을 페이지를 넘기던 그는 시시각각 표정의 변화를 보였다.

이후 사안을 완전히 짐작한 듯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든 그는 툭 하고 핵심적인 부분을 거론한다.

[백신 개발은 누구 하나의 능력만으로는 성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최소 수천에 달하는 연구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수천은 잡아준 길을 넓히는 역할을 할 뿐, 정작 길을 제시하는 것은 한 명의 우두머리면 족하죠. 난, 그 우두머리의 자리에 메르칸 씨를 초청하고 싶은 겁니다.]

[…….]

그 말에 메르칸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얼 고민하는지 한창 미간을 찌푸린 그는 다시 아! 하는 표정이 되어 다시 나를 쳐다본다.

[혹시 한완상 연구원이 나를 추천한 겁니까? 전에 그가 얼핏 한국 제약사에 책임 연구원 자리를 맡을 생각이 없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비로소 사태를 완전히 파악 한 듯한결 안도하는 표정을 지은 그는 불현듯 내가 건넸던 서류에 다시 한참을 눈길을 준다.

[보아하니 중증 호흡기 질환에 대한 백신 연구를 진행하실 모양인데, 그게 이유라면 전 당연히 참여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왠지 의미심장한 말투였던 터라 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잔뜩 일그러진 메르칸의 표정 역시도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

그때, 다시 눈을 든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을 툭 하니 던졌다.

[이 자료에서 예상되는 바이러스가 하나 있는데, 그게 아마도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겁니다.]

[…….]

[그리고 그건 내 손에 의해 만들어졌고요. 하니, 나도 일말의 책임은 져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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