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58화
쿵쿵!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것도 벌써 3개월째.
최근 드러난 북한을 드나드는 것이 거의 일과가 되다시피 했다.
뭐 그도 그럴 것이 각 지역에 설립되고 있는 군수 공장들의 수만도 벌써 15개.
그 하나하나를 다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북측에 있는 시간이 남쪽에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어서 오시라요, 회장 동지.”
덕분에 이젠 북한 주민들의 말투에도 제법 익숙해진 상태다.
처음엔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는 저 호칭에 얼마나 적응하기가 힘들었던지.
가끔 꿈을 꿀 때면 내가 저 말투를 쓰며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을 볼 때도 있다.
“수고가 많습니다.”
“일 없습니다. 우리야 일 거리 많아서 나쁠 것은 없디요.”
인부들을 책임지는 현장 관리자의 말에선 진심이 느껴졌다.
하긴, 아무리 저임금이라곤 하나 통일 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개벽에 가까운 수준.
물론 기존에 비해 생활유지에 소모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게 올라갔겠지만, 그래도 통일 전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여유로운 삶은 저들에게는 꽤 희망이 되었을 거다.
“부지 규모가 생각보다 크군요.”
웃으며 대꾸하는 관리원을 뒤로 하고 눈 앞에 펼쳐진 대지를 바라봤다.
총 규모 이십만 평.
건축물의 수만도 20개 동에 이를, 생산과 수리공장이 들어설 곳.
아마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할 2년 후쯤부터는 이곳이 재우 탈레스의 제2 생산 거점으로 거듭나게 될 거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십니까?”
한창 속으로 감상평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곁에서 수행 중이던 김영기 총괄 실장이 말을 건넸다.
찡그린 내 표정을 보고 뭔가 오해라도 한 듯.
뭐 그렇다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골머리가 아프기는 하죠. 무려 반세기 이상을 전혀 다른 체계로 성장해온 무장을 통합해야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으니까요.”
“제 말이 그겁니다. 대체 무슨 일복이 있어서 말년에 이런 엄청난 일에 발을 담그게 된 건지 원.”
이어진 그의 말에는 왠지 뼈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60대 중후반에 이른 그로서는 사실 최근과 같은 타이트한 일정들은 힘에 부치는 것이 당연한 상황.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가 쉴 여유를 내어줄 상황이 아니다.
“총괄실장님께선 오후에 함경남도로 넘어가시죠. 전 평양공항을 통해 곧바로 재우 연구소로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예상과는 다른 흔쾌한 대답에 잠시 당황스러움이 몰려들었다.
뭣 때문일까, 힐끗 쳐다본 그의 얼굴은 회한에 젓은 듯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고, 이후 그의 입에선 예상치 못했던 말이 뱉어졌다.
“이 공장이 다 지어지면 이젠 저도 은퇴를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거 이제 늙은 몸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고되군요.”
“…….”
“왜 그런 표정이세요. 그럼 저라고 언제까지고 강철 같이 팔팔할 줄 아셨습니까.”
그는 놀라 쳐다보는 나를 향해 푸념 섞인 말을 던졌다.
하필 그때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작고하신 명승은 교수님.
행여 눈앞의 김 실장마저도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있는 걸까 싶은 마음에 겁이 덜컥 나려는 차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제 건강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어제 받은 종합검진 결과상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갑자기…….”
“아시다시피 제 나이가 이제 예순 다섯입니다. 은퇴를 했어도 진즉에 했어야 할 나이건만, 회장님 덕분에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죠.”
“그거야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고, 김 실장님 같이 건강하신 분은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난 끝내 그를 만류했다.
물론 당장 은퇴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기에 급할 것은 없지만, 여태 그의 존재가 내 곁을 떠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때, 김 실장의 입에서 생각을 확 깨우치는 말이 툭 하니 뱉어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통일 한국의 재우는 그 전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전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죠. 하니 이젠 구시대의 인물은 물러나고 변화에 적응할 인재가 그룹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차마 반박할 말이 없는 핑계지 싶었다.
어느새 세월이 그렇듯 흐른 걸까.
당황스러운 것은 저들과는 달리 난 그다지 정상적으로 늙어가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건데, 이젠 그게 살짝 겁이 난다.
“그나저나 재우 연구소에는 왜 가시는 겁니까.”
생각이 깊어지던 무렵 김 실장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이미 던져진 주제가 지나치게 무거웠던 탓인지, 아니면 그가 없는 상황에서 다가올 외로움이 벌써부터 몰려드는 탓인지.
대꾸가 그리 성의 있게 나가지 않는다.
“희원이 놈이 제법 큰 사고를 하나 쳤거든요.”
***
끼익.
도착한 재우 연구소는 오늘따라 철저한 보안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한 중국 측의 스파이 활동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한 결과.
그 때문인지 뒤늦게 도착한 국방장관 역시도 단지 혀만 내두를 뿐 이렇다 할 불평은 뱉어내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아직 거쳐야 할 보안단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난 잔뜩 지쳐 보이는 장관을 향해 웃어 보이곤 길잡이에 나섰다.
나로도 연구소 내에서도 가장 후미지고 완벽하게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
주변에 염탐할 만한 공간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천연의 조건을 가진 무기시험장이었다.
“저게 바로 전열화학포입니까?”
장관이 가리킨 것은 드넓은 평지 위에 서 있는 K9자주포였다.
아니 K9이라고 지칭하기엔 어딘가 외형이 조금 다른.
그걸 느낀 듯 장관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봤다.
“분명 외형만 보면 K9인데, 포탑의 모양이 기존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포탑 내부에 장착되어야 하는 부수적인 장치들이 좀 많은 편이라서요.”
그 말에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흥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때를 기다렸던 걸까, 이미 한창 전부터 대기 중이던 희원이 헛기침과 함께 마이크를 잡는다.
“브리핑에 앞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프로젝트 네임 포트리스. 즉 전열화학포의 개발은 1990년대 초반부터 탈레스가 개념연구를 진행해왔던 겁니다. 하지만 기술적 난제로 폐기 되었다가 2000년 초반 우리 현명하신 진현승 회장님의 제안에 따라 연구가 시작되었죠.”
“…….”
장관은 희원이 놈의 너스레를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경청했다.
듣고 있는 나로서는 낯이 뜨거운 상황.
한차례 눈을 흘기자 놈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진중한 설명을 잇는다.
“주지하실 점은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이 단순히 개발 중인 물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려 1천여 회에 걸친 테스트에서 약실 내 불완전 연소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고, 최대 사거리 또한 400킬로미터를 달성한 상태입니다. 그 말인 즉, 당장에라도 양산이 가능한 체계라는 겁니다.”
“사거리가 400킬로미터라고요?”
순간 장관의 턱이 한자나 떨어져 내렸다.
하긴, 사거리 400킬로미터 급이면 초기 현무미사일 급의 사거리와 맞먹는 것이니만큼 놀라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전열화학포의 장점은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차후 추가 개량을 통해 탄체에 랩탄을 장착하는 경우, 최대 사거리는 600킬로미터까지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 포탄의 유도시스템을 장착하는 경우엔 정밀타격까지 가능해지죠.”
덧붙인 내 설명에 장관의 눈은 더욱 커졌다.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 곧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쏟아낸다.
“그럼 만약에 저게 서해상에서 불을 뿜는 경우엔…….”
“맞습니다. 거리가 가까운 중국 서해상의 도시들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는 거죠. 게다가 저걸 구축함에 탑재하여 대량 투발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 효과는 더 극대화 됩니다. 한 척의 구축함에 수백 수천 발에 달하는 정밀 유도 미사일을 탑재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고 할까요.”
“설마요. 정밀 유도기능과 장거리 투사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렇다 쳐도…… 직경이 고작 155밀리에 불과한 포탄이 미사일의 화력에 비하겠습니까.”
장관은 내심 의심스럽다는 듯 말을 뱉어냈다.
사실 미사일에 비해 화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내 말에 과장이 섞였다고 해도 딱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일반적인 포탄이라면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그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던 우리의 화약 개발능력은 이젠 극에 이른 상태다.
더군다나 포구 속도의 비약적인 증가로 탄체의 속도 또한 기존에 비해 몇 배나 상승한 상태기에 충돌에너지 역시도 미사일에 비견될 정도고.
때문에 저 전열화학포탄의 위력을 기존의 포탄들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다.
“그런…….”
내내 설명을 들은 장관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함께 동석 중이던 육군의 다른 장성들도 마찬가지.
결국 이해도가 떨어지는 몇몇 장성들을 위해 희원이 다시 나섰다.
“이해를 높이기 위해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전열화학포는 뇌관의 역할을 프라즈마가 대신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요?”
“이유는 당연히 사거리 증대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추진제 시스템으로는 연소한계로 인해 사거리 증대 역시 한계가 있는데, 사실 그건 아무리 추진제의 양을 증가시켜도 해결이 불가능하죠.”
“…….”
“해서 그걸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린 전기에너지를 이용하여 발생하는 프라즈마의 아크를 통해 완전 연소를 이루어냈고 그 결과 기존에 비해 몇 배에 달하는 포구 속도를 달성했습니다.”
“…….”
“사실 이 개념은 이미 서방에서도 연구가 진행 중에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핵심인 고전압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압축하여 공급하는 체계계발의 어려움으로 인해 대부분은 함포에서조차도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말에 장성들의 시선은 저편에 서 있던 자주포를 향했다.
의미를 이해한 듯 희원이 즉시 말을 잇는다.
“맞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고출력의 엔진을 가진 함정에서도 전열화학포를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데, 우린 고작 자주포 따위가 탑재한 상황이니 당황스러우시겠죠. 하지만 그게 바로 기술력의 차이입니다.”
“…….”
“고작 자주포와 전차에서도 충분히 출력을 내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캐피시터는 물론 스위치. 그리고 고압 프라즈마 충전기의 성능을 끌어올린 것. 조금 죄송하지만 이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은 불가합니다. 이미 우리의 전열화학포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정부에서 1급 기밀로 지정해 버렸거든요.”
장성들은 그 말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설명을 해 줘봐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의식한 듯 굳이 그럴 의지도 없어 보였던 눈치들.
한데 그때, 유독 강렬한 인상을 가진 장성 한 명이 다시 손을 들더니 제법 의미 있는 질문을 뱉었다.
“자주포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면…… 전차에도 도입이 가능한 것 아닙니까?”
“…….”
그 말에 장성들의 눈빛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마침 나 역시도 그 부분을 언급하고 싶었던 상태.
즉시 자리에서 일어서선 장성들을 향해 말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단지 아직은 김희원 소장이 언급했던 전력계통의 소형화를 더 진행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그것도 대략 1년 안에는 해결이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만약 그게 완성되는 경우 재우는 새로운 개념의 전차를 자체적으로 세상에 선보일 생각입니다. 뭐 굳이 이름을 짓는다면 K3 전차쯤 되겠죠.”
“…….”
“아! 또 하나. 이미 전열화학포가 실용화 단계에 와 있는 이상 전투함에 탑재하는 것도 고려는 해봐야 할 겁니다. 앞서 말했듯 이건 해상 전술의 개념까지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플랫폼이니까요.”
마지막 말은 사실상 건조가 예정 되어 있는 호위함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걸 시작으로 해서 점차 모든 구축함으로 확대하자는 것이 내 생각.
이미 그에 따른 해군력의 증가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에 대해선 사전 설명이 있었던 덕분에 장관의 표정도 그리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아…… 나 한 일주일 정도 휴가 낼 테니 찾지 마.”
설명회를 끝내고 연구소를 빠져나오는 길.
희원이 작정한 듯 내게 휴가를 선포했다.
안 그래도 최근 작고하신 명승은 교수님으로 인해서 친구 놈들의 건강이 걱정 되던 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놈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웬일이냐? 이번에도 돈으로 때울 줄 알았더니.”
“그러기엔 우리도 이젠 나이가 있잖아. 또다시 과로로 지인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명승은 교수님은 과로 때문이 아니라 지병인 부정맥에 의한 심실빈맥이 원인이었어. 그러니 그걸 가지고 네가 자책 할 필요는 없어.”
놈은 자조 섞인 내 말에 반박했다.
혹여 내가 죄책감을 가질까 싶었던 듯.
하지만 뭐가 됐건 그의 죽음은 나로선 크나큰 충격이었기에 그다지 위로는 되지 않았고, 놈은 결국 아예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참, 그나저나 너 조만간 미국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갑자기 거긴 또 왜 가는 거야?”
“글쎄, 밀린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할까?”
난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희원이 놈인 상황에서야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지만, 원래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지 않던가.
다행인 것은 놈도 그걸 의식한 듯 더는 캐묻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데 말이야.”
막 차에 오르려는 순간 놈이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또 뭔가 싶은 마음에 쳐다보자 갑자기 놈이 잔뜩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너 나타샤와 뭔가 있지?”
“…….”
“이 새끼 봐라? 대답 못하는 거 보니 정말인 모양이네.”
난 애써 무시한 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젠 아예 확신을 한 듯 놈은 재빨리 달려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크크, 드디어 너도 지옥에 합류를 하는구나.”
“…….”
“아, 젠장…… 이제야 좀 속이 시원하네. 난 혹시라도 나 혼자만 이 지옥을 경험하고 가는 건가 싶었는데. 으헤헤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