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56화 (256/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56화

“진현승 재건위원께서 오셨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은 청와대의 경비 수준은 전보다 한층 강화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 한국이라고 해서 테러 위협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니까.

특히나 아직 북한 내에 남아 있는 친중파들. 즉, 김경희와 장성택 파의 잔존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조치다.

“수고가 많습니다.”

입구를 지나쳐 다다른 곳은 별관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대통령은 내가 방 안에 들어설 때까지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산적한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손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도 마중을 나가지 못했네요.”

“별말씀을요.”

웃으며 일어서는 대통령과 잠시 눈을 맞춘 후 집무실의 정경을 살폈다.

이게 과연 대통령의 집무실이 맞기는 한 걸까.

아무리 공식적인 집무실은 아니라곤 해도, 지나치게 어수선한 분위기.

특히나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온갖 사진들과 지도. 그리고 보고서들을 보고 있노라면 꼭 예전 전시 때의 벙커를 다시 찾은 느낌이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무리는요. 이제부터가 시작인 마당에······ 일단 앉으시죠.”

대통령은 우려를 표하는 내 말에 넌지시 웃어 보이곤 자리를 권했다.

시간을 아끼려는 듯, 곧 그의 입에선 본론이 끄집어졌다.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스위스는 그렇다 치고, 영국에서도 은근슬쩍 발뺌을 하고 있더군요.”

“당연한 반응 아니겠습니까. 무려 수십조 원에 달하는 눈먼 돈이 생긴 마당에. 하지만 받아내야죠.”

“······.”

대통령은 그 말에 웃어 보였다.

특이한 것은 방법 따위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갑갑한 마음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일단 두 국가 모두 상대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렵지가 않다고요?”

“네, 적어도 저한테는. 사실 두 나라 모두 금융이 국가 경제의 핵심인 곳들인데, 그 부분에 있어선 리암 회장을 비롯한 유대계의 자금과 제가 운용하는 금융자본을 통해 흔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타격이 꽤 크거든요.”

“······.”

“하지만 그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겨둘 생각입니다.”

대통령은 이유가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리암 회장의 도움을 받는 경우 차후 날아들 청구서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게다가 저 역시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출혈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고.”

“흠······.”

“해서 이번엔 우리 정부가 영국 정부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전달하는 편이 옳을 겁니다. 단, 여기서 주지하셔야 할 점은 아주 엄중한 경고가 뒤따라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 해도 그들이 우리 항의를 듣기나 할지가 걱정이군요.”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대통령이 우려를 표했다.

하긴, 둘 다 자존심이라면 수위를 다투는 국가들인 마당에야.

하지만 우리 역시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끝내 거부하면 우리도 경고를 해야죠.”

“······.”

“특히나 영국 같은 경우는 차후 우리와의 경제협력 부분에 있어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효과는 있을 겁니다.”

“구체적이라면 어떤······.”

대통령은 의문을 표하며 나를 쳐다봤다.

슬쩍 앞에 있던 찻잔을 들곤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처음엔 산업 분야를 건드릴까 싶었지만 그것 역시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그 경우, 자칫 우방끼리 괜한 감정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으니까요. 해서 우선은 저들 스스로가 우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으로 해결을 볼까 합니다.”

“······.”

“마침 시기적으로도 그게 딱 먹혀들 만한 때이기도 하거든요.”

“구체적으로 좀······.”

“아시다시피 현재 영국은 유럽 연합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입니다. 기여하고 있는 것들에 비해 자국의 입지가 그리 확고하게 서지 못했거든요.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엔 반드시 연합을 탈퇴하게 될 겁니다.”

“······.”

대통령은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무리도 아닌 것이 난 방금 단순히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확신하듯 말했으니까.

상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한데 그 경우, 저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경제 부분에 있어서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꽤 심각해 질 테고, 결국엔 탈출구가 필요할 겁니다.”

“······.”

“그 마당에 아시아의 거대 시장으로 발돋움할 우리와 척을 지어서 얻어질 것은 별로 없죠.”

“······.”

“아! 물론 지금은 그게 현실로 다가오지는 않았기에 우리 주장을 무시할 가능성은 큽니다. 아니, 분명 당장은 콧방귀도 안 끼겠죠. 하지만 이 자료가 있다면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자료요?”

대통령은 동그래진 눈으로 되물었다.

웃으며 준비해왔던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들곤 넌지시 그걸 건넸고, 대통령이 잠시 그걸 살피는 사이 설명을 이었다.

“영국의 현재 경제 상황. 그리고 유럽 연합을 탈퇴 했을 시 각 분야에 걸쳐 돌아올 파급력을 조목조목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에 있는 재우 인베스트먼트와 재우 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내린 결론이니 아마 저들도 무시하지는 못할 겁니다.”

무시하기는커녕 아마 눈이 번쩍 뜨일 거다.

미래 경제의 흐름을 알고 있는 내 덕분에 재우 인베스트먼트는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투자에 실패를 해본 적이 없는 집단.

게다가 영국 정부에서도 벌써 몇 번이고 자국의 미래경제예측 분석을 재우 인베스트먼트에 의뢰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 영국 경제의 미래를 철저하게 분석한 보고서를 마련했다는데, 그걸 과연 무시할까.

오죽했으면 서구 금융가들 사이에서는 ‘예언가들’이라는 칭호를 받은 곳에서 써놓은 보고서를?

“한 가지만 묻죠.”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서류를 살피던 대통령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슬쩍 고개를 들자 그가 진중한 눈빛으로 다시 말한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믿어도 되는 겁니까? 2020년경이면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할 거라는. 그리고 전 산업 분야의 고리들이 엄청난 혼란을 맞을 거라는 예측 말입니다.”

“두 연구소가 그간 쌓아온 신뢰성을 보면 그렇다고 봐야겠죠.”

난 슬쩍 의뭉을 떨며 대꾸했다.

몇 차례 눈빛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대통령이 툭 하고 서류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쉰다.

“재우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곳이군요.”

“······.”

“나도 한때는 경제를 공부했지만 이건······ 솔직히 이건 단순히 보고서라기보다는 꼭 이미 경험한 미래를 기술한 것 같습니다.”

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덕분에 이어진 침묵.

어색한 마음에 마침 끝맺지 못했던 말을 다시 이었다.

“물론 그 보고서를 믿고 안 믿고는 영국의 판단일 겁니다. 하지만 영국 같은 나라의 경제부처들이 그렇듯 구체적인 데이터들을 근거로 한 것을 끝내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니 일단은 흔들리겠죠.”

“······.”

“문제는 앞서 말했듯 탈출구인데, 유럽 연합을 독일이 주도하는 상황에선 다시 유럽에 기대는 것은 무리고, 그렇다고 미국이 날을 세우고 있는 중국을 의지하기는 더더욱 힘들 겁니다. 하면 유일한 길은 통일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것뿐. 아니 통일 한국이라는 시장 자체가 저들에게는 엄청난 메리트가 되죠.”

“······.”

“하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고작 그 돈 집어삼키자고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불현듯 그가 웃음을 내비친다.

“왜 그러십니까.”

“아! 그게······ 솔직히 난 진 회장께서 미국의 힘을 빌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리암 회장의 압력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피식.

그건 당연히 가질 수 있을 생각이었다.

특히나 나와 리암과의 관계를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제 우리 힘으로도 가능한 일은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 나라의 힘이 얼마만큼이나 커졌는지 저들도 본격적으로 인식하게 될 테니까.

“앞서 말했지만 리암은 자선사업가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굳이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그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는 부분이라는 거죠.”

“그도 그렇군요. 하면 스위스는 어떻게 대응하면 되겠습니까.”

“스위스는······ 일단 다녀와서 보고를 드리죠.”

굳이 대답을 미룬 이유는 스위스만큼은 따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끝까지 대답을 얻어내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던 듯 고개만 끄덕여 보인 대통령은 갑자기 책상 위에 있던 보고서들을 한편으로 밀어냈다.

“기왕 오신 김이니 몇 가지만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

갑작스러운 그의 눈빛 변화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뭐랄까, 저건 꼭 면접을 앞둔 감독관의 그것과도 같은 느낌이었거든.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뭘 말씀이십니까.”

“이 나라의 미래. 아니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진 회장님의 생각을 묻고 있는 겁니다.”

“······.”

“그런 표정 지으실 것 없습니다. 솔직히 이젠 진 회장님의 생각이 곧 동아시아의 미래가 될 것 아닙니까.”

무슨 의도인가 싶어 빤히 쳐다봤다.

행여 있을 오해를 방지하려는 듯 그가 다시 입을 연다.

“대답하기 곤란하시다면 내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죠. 난 사실 중국과 우리는 절대로 발전적인 관계로 나가지 못할 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현 중국의 지도부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에는.”

“······.”

“솔직히 저들이 동북공정을 그저 우스갯소리로 내세우겠습니까?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애초 우리를 자국의 일부로 편입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 하죠.”

“······.”

“아!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켜 저들의 사상을 뜯어 고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대비는 하자는 거죠.”

순간 그의 진면목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면과는 달리 어쩌면 그는 전임 대통령보다 더한 강골일 지도 모른다는.

문제는 현재 그가 펼치고 있는. 야당에서마저 적극 협조를 하는 그의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또 그렇게까지 강골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건데······.

이거 영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그 부분은 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굳이 상관할 필요는 없다.

아니, 나로서야 오히려 마음이 편한 상황이지.

막말로 어느 한쪽으로만 극도로 치우친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또 없거든.

“해서 말인데, 향후 국방비는 4%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또한 조만간 새로운 중기 국방계획안을 다시 세우도록 하죠.”

“······.”

“왜요, 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그 정도는 되어야 향후 중국과 발생할지 모를 충돌에 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가뜩이나 적자 재정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어차피 적자 재정인 마당이면 꼭 필요한 곳에 더 써야죠. 뭐 남들이 들으면 위험한 발언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대통령은 웃으며 대꾸했다.

똑똑!

때마침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실장이 들어섰고, 다른 약속이라도 있는 듯 대통령이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그럼 스위스 문제는 전적으로 진 회장님께 일임하는 걸로 하죠.”

난 그를 따라 무심코 몸을 일으켰다.

이내 돌아선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려는 찰나, 뭣 때문인지 그가 휙 돌아서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생각해 보니 그걸 말 안 했군요.”

“······.”

“중기국방계획안 말입니다. 어차피 전임 대통령의 국방계획안도 마무리 된 상태니 새로운 계획안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해서 말인데, 통일 한국군에 뭐가 제일 필요한지는 진 회장님께서 제일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니, 그 부분에도 참여를 해 주시죠.”

“······.”

***

휘이이잉!

모스크바 곳곳엔 칼바람이 불었다.

그럼에도 답답함을 느낀 난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내내 창문을 연 상태였고, 그 탓에 몇 번이고 알렉세이의 타박이 날아들었다.

[혹시 갱년기라도 온 겁니까?]

[······.]

[그게 아니고선 이 추운 날씨에 웬 더위를 그렇게······.]

말을 뱉어내던 알렉세이는 순간 움찔했다.

앞자리에서 휙 하고 몸을 틀고 노려보는 나타샤의 행동으로 인해서.

그럼에도 여전히 불평을 멈추지 않던 그는 갑자기 내게 바짝 몸을 기대며 속삭인다.

[그래서, 대체 언제 삐로그를 먹여주는 거요?]

[······.]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쳐다봤다.

순간 앞자리에서 무언가 날아오더니 알렉세이의 머리를 정통을 강타했고, 이후 그는 도착하는 내내 단 한마디의 말도 내뱉지 않았다.

[그거 참 희한하군.]

대통령궁에 도착하여 마주한 푸틴의 첫마디는 그거였다.

여전히 늙지 않는 내 얼굴에 대한 논평.

처음엔 동양인들은 원래 그렇다, 라는 말로 얼버무렸지만 사실상 이젠 그것도 힘들다.

[실은 얼마 전에 젊어지는 묘약을 개발했습니다.]

대놓고 뱉어낸 농담에 푸틴이 웃어 보였다.

하지만 떨어지는 눈빛에선 끝내 의문을 삭힐 수 없다는 듯한 의미가 감돌았다.

[스위스에 묶인 김정은 일가의 자금 문제에 내 도움을 받고 싶다고요?]

환영 만찬에서 베풀어진 식사 도중 푸틴이 툭 하고 본론을 끄집어냈다.

예정보다 일찍 대화가 시작되려나, 싶은 생각에 나이프를 내려놓으려는 차.

무슨 변덕에선지 그가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화두를 바꿔 버린다.

[아! 그 문제는 좀 이따가 합시다. 그런 문제를 식탁에서 했다간 괜히 식욕만 떨어지니까. 그건 그렇고, 혹시 나타샤가 진 회장에게 뭔가 말한 것 없습니까?]

흠칫!

순간 곁에 있던 나타샤가 부쩍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푸틴이 혀를 차며 말한다.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긴 저 아이 성격에 그걸 떠들고 다녔을 리는 없었을 거요.]

[······.]

난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슬쩍 나이프를 내려놓은 푸틴은 이후 꿈에도 예상치 못했었던 말을 뱉어냈다.

[나타샤는 이제 법적으로 내 딸이오.]

[······.]

[지난번에 나타샤가 러시아에 왔을 때 정식으로 입양절차를 밟았소이다.]

딸그락.

딱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손에 힘이 풀렸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 듯 푸틴이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말한다.

[내가 말했지 않았던가요? 저 아이는 나에게는 딸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

[해서 말인데, 난 내 딸이 언제까지고 혼자서만 속을 썩는 것을 지켜보고 싶지는 않소.]

[······.]

[쯧쯧, 이런 쪽으로는 영 둔하다더니······ 대체 삐로그는 언제 먹여줄 거냐는 말이오. 솔직히 이젠 사내 된 도리로서 최소한 책임은 져야지.]

그제야 삐로그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았다.

뭐 한마디로 그런 거지. 우리나라의 결혼식 대접 음식인 잔치국수 같은 것.

힐끗.

혹시나 그녀가 푸틴의 머리에도 무언가를 내던질까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고, 단지 잔뜩 불거진 얼굴로 나를 향해 중얼대고 있는 중이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각하께서 짓궂은 점이 있으시다는 건 회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 이번만큼은 진심이야.]

소리를 들은 푸틴이 정색하며 말했다.

왠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

난 슬며시 와인 잔을 들며 저들의 기 싸움에 끼어들었다.

[죄송하지만, 여태 제가 나타샤를 책임질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푸틴의 얼굴에는 분노가.

그리고 나타샤의 얼굴에는 실망의 표정이 지어져 있는 상태.

그런데 난 아직 말을 끝맺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책임질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가 동의한다면.]

[······.]

딸그락!

나타샤는 그 말에 쥐고 있던 나이프를 떨어트렸다.

미처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대자 갑자기 저편에서 푸틴이 전에 없던 호탕한 웃음을 뱉어낸다.

[하하하!]

그 타이밍을 이용하여 슬쩍 나타샤를 쳐다봤다.

넋을 놔버린 듯한 표정.

그때, 뚝 하고 웃음을 멈춘 푸틴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뭐가 좋겠소?]

[······.]

[앞으로 이어질 두 사람의 인연을 축하할 선물 말이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