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55화
[나 임동직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서…….]
2013년 1월.
결국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임동직 의원이 통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젠 남과 북을 모두 아울러야 하는 부담감은 말로 다 하지 못할 터.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애초 자신이 계획했었던 정책들을 거침없이 밀어붙였고, 그로 인해 언론에서는 마치 전임대통령이 직을 계속 유지하는 느낌이라는 농담까지 나돌 정도였다.
[정부는 조선중앙TV를 KBC와 통폐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이번 달 말부터는 북한 전역에 남측 방송을 송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임동직 대통령이 제일 처음 취한 조치는 방송을 통한 문화적 괴리감 없애기였다.
물론 북한 주민들도 전부터 남한의 드라마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
또한 아예 TV가 없는 주민들의 경우엔 그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고.
그나마 정부도 그 점은 염두에 둔 듯 북측의 각급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방송 시청 수단 공급에 나섰다는데, 그 부분은 옳은 대처라고 해야 할 거다.
[미국 정가는 이번에 일어난 대 이변을 사실상 예정된 수순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토록 재선을 바랐던 오바마는 결국 쓴잔을 마셨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룬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선거에 나섰지만, 오히려 그간 이어진 아시아 정책의 실패가 더 부각되어 발목을 잡았고, 행정부 요인들이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받아온 불법적인 로비들이 들추어진 것이 결정타가 됐다.
‘리암이 결국 해냈군.’
사건의 이면에는 늘 그렇듯 리암이 있었다.
비록 간접적이라고는 해도 오바마는 한반도 통일에 기여한 인물.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그를 끌어내리기가 힘들었고, 리암이 택한 방법은 바로 불법 로비자금 수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거였다.
‘이제 그는 진정한 그림자로 우뚝 서 버린 건가?’
사실 이 사건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전과는 달리 리암이 이젠 적극적으로 미국의 정책에 관여를 시작했다는 것.
전에는 그래도 그에 대한 소문을 음모론쯤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 음모론이 현실이 되었다고나 할까.
쉽게 말해서 그의 허락이 아니라면 이제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는 오를 수 없다는.
하긴, 단지 시간의 문제였을 뿐, 어쩌면 그건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힘이 없다면 모를까, 힘을 가진 존재가 끝내 그걸 드러내지 않는 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테니까.
[톰 행어 대통령은 오늘 백악관 입성 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자리는 이제 45세에 불과한 공화당의 톰 행어가 자리를 차지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에겐 전혀 존재감이 없었던 인물.
하지만 미국인들 사이에선 제법 인지도가 있었던 그는 리암이 주도하는 언론의 적극적인 푸시를 받아 기어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톰 행어. 당선인은 오늘 통일 한국의 대통령과 제일 먼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대략 39분간 이어진 환담에서 두 정상은…….]
우습게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첫 행보는 통일 한국과의 협력을 다짐하는 거였다.
매번 미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제일 먼저 달려가던 일본 총리는 한동안 일정 조율이 힘들다는 이유로 방문을 거절당했고, 덕분에 일본에서는 자국 정부의 외교력 부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내각은 오늘 중의원 해산을 발표했습니다.]
일본의 정치권에 부는 태풍도 만만치가 않았다.
연속되는 민주당 정부의 실책들을 꼬투리 잡은 자민당의 거센 정권재탈환 도전.
덕분에 극우들은 다시 설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예상컨대 조만간에는 다시 정권을 잡지 않을까 싶다.
끼익!
아침부터 출발한 탓에 인천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 곳.
이제 이곳에선 수백만 리터 급의 생산 캐파를 지닌 거대 제약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어서 오십시오.”
미리 도착해 있던 제약사 대표들의 얼굴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이번에 설립된 제약 컨소시엄의 경우 자본금의 규모만 무려 20조 원.
물론 신약 하나 개발하는 것에 수조 원씩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재우가 뒷배라는 사실 탓에 저들 중 누구도 실패를 생각하는 이는 없을 거다.
“연구 인력들은 어떻게 조달하기로 하셨습니까.”
난 그들과 함께 기공식장을 향해 걸으며 물었다.
개중 가장 나이가 지긋했던 대표가 그 말을 받아 곧장 대답한다.
“우선은 각 연구소에 있는 인력들 중에서 차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연구 인력들은 해외에서라도 끌어와야겠죠.”
사업을 하다 보면 사실 인력문제가 제일 큰 난제다.
세일즈가 아닌, 이공계 계열의 경우는 특히나 더.
실은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연구 인력 확충에 그렇듯 힘을 쏟았던 것이건만, 하필 제약 쪽에서 문제가 터질 줄이야 누가 알았나.
근본적인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선 아마 차후엔 해외 제약사를 인수하는 것도 고려를 해야 할 거다.
“이건 제 생각인데, 북한 쪽 인력들도 이 방면에선 나름 쓸 만한 인재들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그 바이러스를 연구해왔던 연구소 직원들의 경우는…….”
그때, 예의 그 나이 지긋한 대표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 말도 나름 일리는 있다는 생각에 즉시 정부에 건의를 해달라는 지시를 김 비서에게 내리려는 차.
불현듯 대표들 중 다른 한 명이 나를 향해 다가오며 슬며시 귓속말을 한다.
“진 회장님. 혹시 이따가 저와 따로 이야기 좀 나누실 시간이 되시겠습니까?”
“…….”
슬쩍 고개를 끄덕이곤 쳐다봤다.
우리나라 3대 제약사 중 하나인 진화 제약의 대표.
진화 제약에 대해선 나 역시 유독 관심이 갔었던 터였는데, 그건 회사가 안정보다는 모험을 추구하는 쪽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잠시 정 대표님과 이야기 좀 나누겠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굳이 대화를 미루지 않았다.
표정만 봐선 꽤 심각한 주제인 것 같았거든.
내가 서두르는 것에 당황한 걸까, 이후 차 안에서 이루어진 둘만의 대화에서 그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니 전…… 굳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미리 내주실 문제는 아닙니다만.”
“제 성격이 많이 급합니다. 하니 상관하지 마시고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시죠.”
“그럼……. 다름이 아니라 연구 인력 수급에 있어서 추천하고 싶은 인물이 한 명 있어서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그런 문제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더군다나 이 나라 3대 제약사 중 하나의 대표가 추천하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내 눈빛에서 안도감이 든 걸까, 그가 본격적으로 말을 잇는다.
“실은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제 대학 동기가 추천한 친구인데, 생화학 분야에서는 가히 놀라울 정도로 학문적인 깊이가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일례로 미국 대부분의 메이저 제약사들에서도 그 친구를 끌어가기 위해서 책임 연구원 자리까지 제안을 했을 정도랍니다.”
“그래요? 하면 당장에라도 접촉을 해 보시죠. 메이저 제약사에서 욕심을 낼 정도면 더 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기쁜 마음에 재촉하자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새.
아니나 다를까, 곧 당황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실은 그 친구 국적이 하필이면 중국이거든요. 해서 미국 정부도 스파이 활동을 염려하여 자국의 제약사에 취업을 못 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
그게 문제라면 나 역시 헛물만 켠 거다.
아무리 급해도 언제 스파이로 돌변할지 모를 중국인을 핵심 연구 인력 중 하나로 둘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 대표의 얼굴에 잠시 웃음기가 머금어지는가 싶더니 의외의 말이 툭 던져진다.
“중요한 점은 비록 국적이 중국이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중국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
“위구르 출신이거든요. 그 친구.”
순간 내 머릿속에선 두 생각 간에 치열한 싸움이 일어났다.
아무리 위구르 인이라고 해도 중국에 친화적인 인물일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
반대로 위구르 인이기에 중국에 대한 감정은 더 좋지 못할 것이고, 그렇기에 딱히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
빌어먹을…….
이거 진짜 난해한 문제다.
“고민되시죠? 저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꽤 고민을 해봤습니다.”
고민의 이유를 눈치챈 듯 대표가 넌지시 운을 띄웠다.
슬쩍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긴 한숨과 함께 다시 말한다.
“그럼에도 전 욕심이 나더군요. 특히나 노벨상 후보에도 몇 번을 이름이 거론되었던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말입니다.”
“노벨상이요?”
“네, 매번 최종 심사에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벌써 두 번이나 후보군에 올랐던 인물이랍니다.”
그 말을 듣자 갈등은 더해졌다.
애꿎은 입술만 짓씹고 있는 와중 대표가 제법 희망적인 말을 하나 던졌다.
“더 욕심이 나는 이유는 중국에서 그 친구를 데려가기 위해 꽤 노력했지만 그 친구가 끝내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스파이로 돌변할까 싶어 염려할 필요는 없는 인물이라는 거죠.”
“중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왜요?”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 민족을 그렇듯 짓밟아 놓은 중국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게 내킬 리가 없죠.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테러 위협까지 당했다는 데, 솔직히 전 지금 괜한 인재 하나 그냥 사라져 버리는 일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
그 말에 나 역시 마음이 동했다.
그러자 슬슬 조급증이 치솟기 시작했고, 곧바로 대책을 강구해봤다.
‘미국 업체들과 이미 이직문제를 두고 논의를 했었다면 그 부분에 대한 거부감은 없을 것 같고…… 문제는 우리가 접촉하면 중국에서 과연 그걸 두고만 보고 있을 것이냐는 점인데…….’
스윽.
생각의 끝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후 대표에게 그의 정확한 이름과 근무처를 받아 적곤 재빨리 강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당분간 팀을 좀 움직여 주셔야겠습니다. 임무는 특정 인물에 대한 뒷조사와 신변 보호. 기간은 차후 내가 미국으로 갈 때까지입니다.”
***
“오오! 시바르. 이게 대체 돈이 얼마야?”
인천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도착한 곳은 나로도에 있는 연구소였다.
이젠 익숙해진 헬기 덕분에 채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도착한 상황.
반응을 보면 한우 세트를 트럭째 마련해간 것이 옳은 선택이었던 듯싶다.
“몸 보신들 좀 해야지.”
웃으며 대꾸하는 나를 향해 희원이 눈을 흘겼다.
아직도 전쟁 기간 내내 연락이 없었던 것에 삐쳐 있는 듯.
어차피 그것도 정 표현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기에 상관하지 않고 위성 연구센터로 곧장 발을 들여놨다.
“진척은 좀 어때?”
“어차피 네가 제공했던 양자통신기술을 기초로 한 건데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어.”
희원은 눈앞에서 한창 조립 중인 위성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위성항법 시스템. 즉, KPS의 운용과 정찰 임무. 그리고 군의 통신까지 한 번에 감당할 복합위성들.
때문에 예정과는 달리 체급 자체가 대형으로 뛰어올랐고, 위성 단가를 제외하고도 한 기당 발사금액이 무려 수천억 원 수준에 달할 예정이다.
“저거 정말 본전은 뽑아낼 수 있겠냐?”
희원의 우려는 여전했다.
하긴, 아무리 군과 민간에 임대를 해준다 해도 총 소요비용을 뽑아내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운용비 또한 연간 조 단위의 돈이 들어갈 텐데, 놈의 입장에선 평소와 달리 가성비를 무시하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할 거다.
“그래, 네 말대로 이건 본전이나 뽑아내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손해 볼일도 없어. 다른 걸 떠나서 양자통신이 가능하다는 이점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메리트가 있으니까.”
내가 믿고 있는 것은 그 점이었다.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방식.
군은 물론 민간 분야에서도 그건 엄청난 메리트일 테고, 결국 그 이점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은 어마어마할 거라는 점.
“그나저나 저게 발사되면 우리가 최초인 건가? 양자위성 통신 시스템을 갖추는 나라말이야.”
“그렇지.”
막상 대꾸를 하고 보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역사에 따르면 사실 양자위성 통신에 성공한 최초의 국가는 중국.
이젠 그 역사도 곧 지워질 것이 아니던가.
물론 역사가 그랬기에 언젠가는 중국도 양자통신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개발에 성공을 하겠지만, 아마 그게 내가 알던 역사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거다.
이미 저들은 그 기반이 될 만한 경제발전도. 그리고 기술의 발전도 역사와는 달리 꽤 뒤처져 버리게 되었으니까.
“응?”
한창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김해웅 재건위원장.
의아한 마음에 재빨리 통화버튼을 누르자 분노에 찬 그의 음성이 들려온다.
-진 회장님. 방금 스위스와 영국에서 김정일 일가의 자금을 못 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무슨 이유로요?”
-스위스는 그게 은행의 철칙이고, 영국은 한때 북한에 투자했었다가 못 받아낸 석유화학 공장 대금 800만 달러를 핑계로 대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그 부분에 대한 지불을 하겠다는 상황에서도 요지부동입니다. 이거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래요?”
얼핏 예상은 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하긴, 스위스와 영국이 어떤 존재들인데. 제 품 안에 있는 눈먼 돈을 그리 호락호락 내줄 리가 없지.
하지만 우리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다른 걸 떠나서 이건 국가의 힘을 시험하는 문제일 수도 있거든.
“글쎄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