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51화
끼익!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리암은 자신이 직접 청와대를 방문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앞으로 나누어야 할 대화의 주제가 결국엔 대통령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문제라나?
덕분에 인천까지 가야 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왠지 마음은 더 짓눌린다.
대통령까지 필요한 상황이라면 사실상 보통 심각한 문제를 들고 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기에.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통령님.]
차에서 내린 리암은 한동안 대통령과 환담을 주고받았다.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통일을 이루어낸 것에 대한 축하 인사에서부터 시작해서, 향후 이 나라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까지.
이후 잠시 주변을 둘러본 그는 가만히 대통령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이후 대통령은 우릴 청와대의 벙커로 안내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지금부터 나눌 대화들은 절대로 새어나가서는 곤란한 것들이라서요.]
벙커 회의실에 도착한 리암은 비로소 긴장된 표정을 풀며 말했다.
리암 같은 자를 긴장시킬 만한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의문이 더해질 무렵 그가 우릴 향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죄송하지만,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한 가지만 먼저 묻겠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북한의 전략 핵탄두가 총 몇 개나 되는 겁니까?]
[…….]
대통령은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 저런 질문이 튀어 나오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터라 우물쭈물하자 대통령이 다시 리암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우리가 북에서 확보한 핵탄두의 수량은 이미 미국 정부에 통보한 상황입니다만. 모르고 계신 겁니까?]
[물론 알고 있죠. 다만 전, 그 수량이 확실한 건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설마 핵탄두의 숫자를 속이기라도 했다는 의심이라도 하고 계시다는 말입니까?]
불쾌한 심정에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가 전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는 해도 저런 식의 질문은 사실상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정작 우리가 생각했었던 의도와는 다른 이유였던 듯,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전 지금 의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바람을 말하고 있는 거니까.]
[…….]
[솔직한 심정으로 전 한국 정부가 핵탄두의 숫자를 속여서 통보했으면 싶었거든요.]
대통령과 내 시선은 허공에서 교차했다.
곧 둘 모두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려는 찰나, 리암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한데 아쉽게도 그건 아닌 모양이군요. 그럼 북한에서 확보한 전략 핵탄두의 숫자가 총 34개라는 건데…… 뭐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그 정도도 사실상 충분한 수량이긴 하니까.]
[뭘 말입니까?]
난 즉시 되물었다.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 리암은 목이 갑갑했던 듯 슬쩍 타이를 풀어헤치며 말한다.
[어느 정도는 빼돌려도 될 숫자라는 말입니다.]
[…….]
순간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실은 나 또한 그를 만나게 되면 핵 반출에 대해 좀 문제를 걸고 넘어갈 심산이었거든.
비록 핵 보유 문제가 국제사회를 설득하기가 힘든 명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나라는 그게 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이 현실.
그 마당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핵을 모두 수거해가 버리는 것은 미국이 지나치게 자국 편의주의로 일 처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그런데 상황이 이러면…….
[무슨 의도입니까?]
궁금한 것은 그거였다.
대체 미국 정부가 왜 갑자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의도라…….]
리암은 잠시 뜸을 들였다.
딱히 사정을 말하기가 껄끄러워서가 아니라, 어디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를 찾고 있는 표정.
하지만 곧 정리가 된 듯 표정을 밝히며 말을 이었다.
[굳이 의도를 따지자면 현재 미국 정부가 엄청나게 곤혹스러운 상황임을 먼저 강조해야겠군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봤다.
지나치게 앞뒤가 없는 말이었음을 인정하듯 그가 쓴웃음과 함께 말을 잇는다.
[중국이 핵 투발을 시사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물론 실제 핵을 발사했을 가능성이야 있었겠습니까만, 일단 핵 투발 가능성 자체를 언급했다는 것이 문제인 거죠.]
[동아시아 핵 도미도 현상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군요.]
난 즉시 말의 의미를 깨닫곤 대꾸했다.
막말로 핵을 가진 중국이 비핵국가인 우리를 상대로 핵 위협을 한 상황이면 우리에게 핵 개발. 또는 핵 보유에 대한 명분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한데 우리가 핵을 보유하게 되면 일본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아니 일본은 둘째 치고 대만은.
쉽게 말해서 지금 리암은 미국 정부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핵 개발 도미도 현상을 우려하는 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음을 말하는 중인 거다.
[맞습니다, 문제는 그게 정작 한국 정부가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시작했다는 겁니다.]
[…….]
[이번에 중국이 보인 태도를 핑계로 일본 정부가 민주당 내의 친일 세력들을 앞세워 거세게 동아시아의 핵무장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죠. 그걸 눈치챈 공화당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며 정부를 전면 공격 중이고.]
예상이 틀리지 않은 듯 리암이 웃음을 뱉어냈다.
[그래서요?]
틈을 주지 않고 되묻자 그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더군다나 한국도 아닌 일본의 핵무장이라니. 아무리 오바마 정권이 친일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하죠. 해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며 공화당의 공격을 히스테리로 몰아붙이고는 있는 중입니다.]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돈에 눈이 먼 자들이라곤 해도 한때 제 나라가 핵을 떨어트렸었던 국가에게 핵을 쥐여준다는 것이 말이 되나.
고개를 끄덕이려는 차에 리암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한국 정부인 거죠.]
그는 말끝에 슬며시 나와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다.
마치 우리가 핵 반출을 문제 삼으리라는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하긴, 이미 핑계까지 주어진 마당이면 우리의 핵 보유 주장은 당연한 것.
반발을 예상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터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결국엔 우리가 일부 전략핵을 빼돌리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한국도 이스라엘의 선례와 같이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를 주장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겁니다.]
얼핏 들으면 현명한 대처 같기는 했다.
저들의 입장에서야 정말로 아시아의 핵 도미노를 용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중국의 위협을 당한 우리의 호소를 끝내 무시하기도 힘들고.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또 하나의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이 사태를 봉인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거다.
“흠…….”
하지만 끝이 왠지 꺼림칙하다.
솔직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 주장을 뭉개 버리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
전 세계적인 핵확산 반대 여론을 등에 업고 나선다면 우리도 고집을 내세우기가 힘든 것이 현실인 마당에.
게다가 이 결정은 저들의 이익에도 반하는 결과다.
저들 입장에서는 핵을 모두 수거해 버리고 계속해서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이 한반도 내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길이거든.
힐끗!
생각의 끝에 리암을 쳐다봤다.
불현듯 스친 것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순간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며 헛웃음이 뱉어졌다.
[그동안 꽤 바쁜 행보를 하셨군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시려고.]
[무슨…… 소립니까.]
리암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의뭉을 떨려는 모양인데, 이미 드난 진실을 덮어 버리기엔 늦었다.
[하긴,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났다곤 해도 결국 뿌리가 당기는 것은 어쩔 수 없죠. 특히나 유대인들의 그 남다른 민족정신을 생각한다면.]
[…….]
그 말에 리암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져 간다.
얼핏 과한 말투였었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닌 터라 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해는 합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전략 핵탄두만큼은 보유하고 있지 못하죠. 그럴만한 실험 데이터를 쌓을 기회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기회는 없으니까. 한데 한반도에 눈먼 전략핵이 생겨났다면…… 나 같아도 욕심을 낼 겁니다.]
[…….]
[그 상황에서 운 좋게도…… 아니, 운이 좋기 보다는 그것 역시 회장님께서 조장하신 거겠지만. 아무튼 오바마 정권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해서 당장은 회장님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는 없었을 텐데, 그 대가로 회장님께서는 한반도의 핵탄두 일부를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것을 요구하셨겠죠.]
[…….]
리암은 시시각각 표정이 변했다.
상관하지 않은 채 끝까지 말을 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회장님께서 정말로 오바마 대통령을 도울 것이냐는 점인데…… 전 그럴 리가 없다고 봅니다. 사실상 그는 회장님과는 한 배를 탈 수 없는 존재니까. 해서,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모두 마무리 되면 회장님의 입장에선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것이 되죠. 미국의 정권교체. 그리고 이스라엘의 소원성취.]
그는 내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차마 대꾸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뱉어낸 말이 모두 사실일 것이기에.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곧 눈을 반짝이며 수긍한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
순간 대통령이 눈을 부릅뜨며 나와 리암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지만 끝내 입은 열지 않는 것으로 봐선 아직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새.
슬쩍 그런 대통령을 향해 미소 지어 보인 리암은 이제야 자신의 진짜 의중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내일 전 세계 언론들을 상대로 북한이 20개의 전략 핵탄두를 보유 중이었다고 발표할 겁니다. 그 말은 한국 정부가 총 14개의 핵탄두를 비밀리에 빼돌릴 수가 있다는 의미죠. 내가 바라는 것은 차후 그중 하나만 이스라엘에 제공을 해달라는 겁니다.]
스윽,
난 이어진 리암의 말에 즉시 대통령을 쳐다봤다.
이런 중대한 결정은 당연히 대통령의 몫이니까.
내내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대통령은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미국 정부가 정말로 그걸 용인했다고요? 이스라엘이 전략 핵탄두를 보유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대통령은 주저함 없는 리암의 대답에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미국과 이스라엘이 특수 관계에 있다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싶은.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이스라엘이 중동 땅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그런 안배 때문.
솔직히 전술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도 사실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 가능했던 것이 아니던가.
[만약 국제사회가 눈치를 채는 경우는 어쩔 생각입니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행여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그건 미국 정부가 알아서 수습할 겁니다.]
리암은 이어진 대통령의 질문에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하긴, 미국 정부가 맘먹고 뭉개 버린다면. 그리고 유대인들의 돈이 뿌려진다면 뒷수습이 딱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어차피 지금의 국제사회는 돈과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런데 왜 하필 하나뿐입니까. 기왕이면 한 4개쯤 달라고 하시죠.]
대통령은 표정을 수습하며 다시 물었다.
말투에서 뼈가 느껴졌던 걸까, 리암이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이스라엘의 전략핵 보유 욕망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걸 사용하겠다는 의도에서가 아닙니다.]
[…….]
대통령은 그 말에 한참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담감이 전해진 걸까, 리암이 넌지시 말한다.
[물론 당장 내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 향후 몇 년간은 그게 과연 실현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해서 약속만 해달라는 겁니다.]
대통령은 순간 나를 쳐다봤다.
꽤 난처한 듯한 표정.
사실 나라도 저런 부탁에 대한 대답을 선뜻 내뱉는다는 것은 힘들었을 거다.
“제 생각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난 대통령을 향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넌지시 그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난 다시 리암을 향해 시선을 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아니, 절대 불가능하다고 해야겠죠.]
[…….]
차마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 듯 리암의 얼굴이 굳어졌다.
뒤이어 연신 입을 우물거리는 폼이 이유를 물으려는 듯한 낌새.
그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먼저 대답을 뱉어냈다.
[전 이스라엘을 믿지 않거든요.]
[…….]
[솔직히 회장님께선 이스라엘을 믿으십니까? 그 전략핵이 정말로 사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차마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 타이밍에 조목조목 내 불신의 이유를 늘어놨다.
[전 만약 이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다면 그 시작은 반드시 중동 땅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의 종교적 갈등은 이곳 동아시아 국가들의 감정싸움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깊으니까요.]
[…….]
[그런 마당에 우리가 전략핵을 제공한다? 미안하지만 우린 세계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국가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리암은 여전히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였다.
막상 스스로도 자신할 수는 없었던 거지.
아니나 다를까 곧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뱉어졌고, 곧 초탈한 투의 말이 뱉어진다.
[하긴, 내 욕심이 과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군요. 정말로 최악의 순간이 오면 이스라엘은 주저 없이 발사 버튼을 누를 지도 모르니까. 솔직히 그건 적의 몰살만이 자신들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가진 과격파 회교도 연합체들도 마찬가지고. 진 회장의 말처럼 어쩌면 내가 세계멸망의 단초를 제공하려 했었던 건지도 모르겠소이다.]
말투로 봐선 스스로도 무리라는 것을 깨달은 듯한 모양새였다.
포기를 시킨 것은 좋았으나 이제 우리가 문제.
막말로 리암은 이제 생기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핵 빼돌리기를 용인할 이유가 없지 않던가.
[흠…….]
물론 이미 내려진 결정을 다시 주워 담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게다가 우리의 반발을 잠재운다는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하지만 상대는 리암이다.
그의 힘이라면 그걸 다시 뒤트는 것도 무리는 아니고, 저 지독한 장사꾼이 생기는 것도 없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됐군요.]
아니나 다를까, 리암이 슬쩍 눈치를 보며 운을 뗐다.
[복잡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계획했던 것은 그대로 실행하되, 이스라엘에는 전략핵을 대신하여 만족할 만한 것을 제공하면 되죠.]
재빨리 그의 말을 막아서곤 마침 떠오른 것을 슬그머니 내비쳤다.
고개를 갸웃한 리암이 나를 쳐다봤고, 난 옷깃을 여미며 다시 말했다.
[이스라엘이 기존에 보유한 전술핵과 더불어 보다 확실한 전략적 우위를 점할 만한 것을 제공해 드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