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48화 (248/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48화

쿠구구궁!

평양 시민들은 밤새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포탄 소리와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불길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후방으로의 피난길에 올랐지만, 이미 군이 도로를 전부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아니, 왜 길을 막는 거이가?”

시민들은 피난길을 틀어막는 군의 조치에 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군은 위협 사격까지 가하며 시민들의 탈출을 끝내 저지했고, 그 탓에 곳곳에선 고성이 오고 갔다.

“우린 그저 단 한 명의 인민들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오. 하니, 동무가 당 중앙위 위원이건 뭐건 그건 알 바 아니오.”

“대체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린 거이야? 그럼 우리보고 이곳에서 적군의 포탄에 다 뒈지라는 거이가?”

사내의 항의는 별반 소용없었다.

중앙당 소속의 위원이라는 직함이 이렇게까지 무색했던 경우는 처음.

“저, 그러지 말고 저쪽에서 좀 봅시다.”

“일 없소.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벌집을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 차를 돌리시오.”

결국 사내는 은밀한 거래를 시도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매몰찬 거절만 돌아올 뿐이었다.

“소좌 동지!”

그때,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병사 중 하나가 다급히 논쟁 중이던 장교를 향해 다가왔다.

사내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던 걸까,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핀 병사는 넌지시 장교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게 뭔 얼치기 같은 소리야?”

장교는 버럭 소리쳤다.

기세가 워낙 험악하다 보니 방금 전까지 그와 실랑이를 벌이던 사내마저도 찔끔 몸을 움츠렸고, 장교는 사내의 존재 따위는 무시한 채 부하를 향해 되물었다.

“그럼 지금 남조선 괴뢰군이 어디까지 왔다는 거이가?”

“최후 방어선인 멸악산이 벌써 2시간 전에 뚫렸으니 곧 평양에 도달할 예정이랍니다.”

“그런데도 평방사 사령부에선 아무런 명령이 없는 거가?”

“그거이…….”

병사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뭔가 알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표정.

장교는 즉시 대답을 재촉했고, 병사는 다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였다.

“이건 사령관 동지 실에 있는 제 동기 놈이 해준 뜬소문인데, 평방사에선 지금 남조선 괴뢰군 쪽으로 돌아선 전열군단들의 수좌들과 은밀히 접촉 중이라는 짬수가 있답니다.”

그 말에 장교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변절자들과의 대화.

그게 뭘 의미하는지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기에.

끝내 버틸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쯤은 그도 예상은 했지만 결국 평양은 이대로 함락되는 것이 운명인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운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쐐애액!

장교의 낙담이 이어지던 차에 하늘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쿠궁!

뒤이어 들려오는 엄청난 폭발음과 진동.

더 당황스러운 것은 불길들이 치솟은 위치가 하필 당 중앙위의 핵심 인원들이 있는 벙커가 위치한 지점이라는 건데, 폭발의 규모가 왠지 단순한 지대지 미사일에 의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현무…….’

순간 장교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그 빌어먹을 괴물이었다.

탄두 중량만 무려 4톤에 음속의 10배에 달하는 속도로 떨어지는 물건.

한데 예상이 들어맞았다면 중앙위 지부의 전멸은 사실상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남조선이 핵을 떨어트린 겁니까?”

이후 솟아오르는 버섯구름의 모습에 병사의 음성이 떨려왔다.

비록 폭발의 규모가 크긴 해도 핵폭발이라고 보기엔 규모가 지나치게 작은 상태.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은 장교는 그를 타박했다.

“남조선에 핵이 어디 있다고 뻘소리가? 그리고 핵이 떨어졌으면 여긴 무사할 것 같네?”

병사는 그 말에 질끔 몸을 움츠러트렸다.

상관하지 않은 채 장교의 넋두리가 이어진다.

“그나저나 항복 협상 중이라더니, 협상이 깨지기라도 한 거이가?”

그로서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평방사가 항복까지 한 상황이면 굳이 현무를 날려댈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때, 불현듯 다시 생각 하나가 스쳐 가며 그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저 벙커엔 분명 백두혈통들이…… 설마 그들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거이가?’

생각과 동시에 장교의 턱이 떨어져 내렸다.

이제야 남조선 정부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것 같았기에.

저들은 지금 단순히 통일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차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완전하게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을.

그리고 현재 평양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군의 지휘부 역시도 그에 동조했다는 것을.

“하긴, 어차피 남조선에게 흡수될 오량이면 저들도 백두혈통을 남겨두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같디. 철수하라우!”

생각이 그에 미치자 마음이 바빠졌다.

이대로 끝까지 저항세력으로 남아 버리면 그에게 주어질 운명은 하나뿐이니까.

지금 그의 머리를 꽉 채운 것은 생존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설픈 항복을 통해 패잔병으로 남아 버리는 것이 아닌.

이후 합당한 대우를 받기 위한 조치.

스윽.

막 차량에 오르려던 장교는 문득 뒤를 돌아봤다.

아까부터 길을 터주길 바라며 머뭇거리고 있던 사내와 그 뒤편에 길게 이어진 피난 행렬들.

잠시 허무한 웃음을 내뱉은 장교는 바리케이드를 지키고 있던 부하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뭐하니. 날래 길 트지 않고!”

***

부르르르르!

“이기 무슨 일이가?”

평양 고층아파트 입주민들은 도로를 가득 메운 채 다가오고 있는 낯선 모양의 전차들과 차량들의 행렬에 기함을 토했다.

상황으로 봐선 남조선 군대가 결국 평양진입에 성공한 모양새.

마음이 급해진 주민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피난을 서두르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아파트 입구는 온통 밀려 나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평양 시민들에게 알립니다. 우린 대한민국 육군 제7기동군단 소속의 병력들입니다. 현 시간 이후로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할 예정이니 추후 안내방송이 있기 전까지 각자 자택에서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

주민들은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에 서로를 멍하니 쳐다봤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

대부분이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 하는 차에 다시 확성기 소리가 들려온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지금부터 대한민국 군대를 향한 그 어떤 도발도 금지합니다. 시위는 물론 화염병의 투척. 또는 총기를 사용한 공격 등. 만약 지시를 무시한 채 도발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여러분들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말이 쐐기를 박은 듯 주민들의 발걸음은 다시 우르르 제집으로 향했다.

뒤이어 그들이 한 행동은 재빨리 TV를 트는 것.

마침 조선중앙TV에서 시작한 긴급 뉴스에서는 남조선 군대의 평양 점령 사실과 방금 그들이 들었던 수칙들에 대해서 안내 중이었다.

“현 시간부로 평양은…….”

뉴스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평양에 거주 중인 시민들 대부분이 당과 중앙 위원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존재들. 아니, 어떤 식으로든 현 북한 정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차후를 생각하면 그들에겐 저들은 단순히 점령군일 뿐인 것은 아닌 건데,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스윽.

하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이제 와서 피난을 가려 해도 길을 열어줄 리도 없거니와 괜히 시비라도 붙었다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털썩!

이후 평양 시내 고층아파트 곳곳에선 투신 자살자들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은 그동안 철저하게 백두혈통의 편에 서서 인민들의 피를 빨아대던 자들.

마지막 순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는 아마 하늘만이 알 거다.

***

우르르!

평양 창천 거리.

늦은 밤 들이닥친 남조선 군인들은 순식간에 아파트 2개 동을 점령했다.

이후 방송을 통해 호명된 이름들은 북한의 핵 개발 컨트롤 타워인 216 연구소 연구원들.

애초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불려 나온 수백 명의 연구원들의 얼굴엔 죄다 초연함이 엿보였다.

“호명된 이름은 차례대로 승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외인 것은 남조선 군인들의 태도였다.

말투는 비록 딱딱했지만 그다지 위압적인 느낌은 아닌.

게다가 가족들과의 작별시간을 충분히 허용하는 것만 봐도 그들을 향한 이후의 조치들이 그리 부정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여러분은 현 시간부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로 이송될 겁니다.”

달리는 차량 안에서 남조선 장교가 목적지를 밝혔다.

순간 연구원들의 뇌리를 공통적으로 스친 것은 이 이동의 목적이 그들을 숙청하기 위함은 아닐지도 모른 다는 것.

비로소 표정이 풀린 연구원들 사이에선 조용히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 혹시 남조선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듯 보이는구만 기래. 한데 상관 있갔어? 어차피 우리야 하던 일을 하면 그만인 마당에. 그나저나 가족들은 어쩌려는지 모르갔구만.”

이어지는 대화에 장교의 시선이 힐끗 그들에게 꽂혔다.

안심을 시키려는 걸까, 곧 그가 차량 안에 있던 연구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말한다.

“여러분들의 가족들은 조만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연구원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그때, 제법 나이가 지긋한 연구원 중 하나가 불쑥 손을 들며 장교를 향해 말한다,

“한상철 동무는 혹시 다른 차에 타고 있는 겁니까?”

“…….”

장교는 질문에 이러다 할 대꾸를 하지 않았다.

눈치 빠른 노 연구원의 눈빛은 즉시 흔들렸고, 이후 이러다 할 말없이 조용히 손을 내렸다.

“왜 그러십니까?”

곁에 앉아 있던 젊은 연구원 중 하나가 그런 노 연구원을 향해 의문을 표했다.

슬쩍 장교의 눈치를 살핀 노 연구원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한상철 소장께선 아무래도 제외된 모양이구만 기래.”

“…….”

“하긴, 그 양반이야 연구원이라기보다는 당에 충성을 바친 정치꾼이었으니까니 뭐.”

“…….”

***

오늘로써 개전 4일째.

평양을 점령한 이후 이북지역을 향한 진군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평방사와는 달리 끝내 저항을 다짐한 일부 훈련소 세력들과의 교전은 끊임없이 지속 되었지만 그것도 불과 이틀 사이엔 정리가 될 분위기.

이제 양강도에서 저항을 다짐하고 있는 10군단과 강원도에서 고립된 채 저항 중인 1군단만 처리한다면 통일은 사실상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벌컥!

잠시 외교부의 보고를 받기 위해 방을 나섰던 대통령은 웬일인지 굳은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

“쯧쯧…….”

곧 혀를 차며 털썩 자신의 자리에 주저앉은 그는 이유를 묻는 나와 국방장관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방금 청와대로 중국 대사가 찾아왔습니다.”

“…….”

“김경희 일파의 망명 요구를 받아들일 테니 그들의 신변을 보장하라더군요.”

“중국에서 그들이 이미 우리의 폭격에 의해 사망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국방장관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하긴, 백두혈통의 죽음이야 평양에서도 이미 방송을 통해 알려진 사실인 마당에 중국이 그걸 모를 리가 있나.

난 단숨에 저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미 죽어 버린 자들이 무슨 망명이냐고 소리쳤죠. 그랬더니 얼굴이 벌게져서는 이후의 일은 장담 할 수 없다고 합디다.”

“그걸 핑계로 개입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절로 황당하다는 투로 말이 뱉어졌다.

뭐 곧 우리와 국경을 직접 마주하게 될 입장인 저들로서는 뭐라도 시빗거리를 찾고 싶을 거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건 지나치게 억지가 아니던가.

그때, 대통령이 다시 말했다.

“여태 조용히 있었던 것이 오히려 신기하죠. 보아하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비를 틀 모양인데…….”

대통령은 말끝을 흐린 채 나를 빤히 쳐다봤다.

눈빛의 의미쯤은 이미 알아챈 상황.

난 즉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습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죠. 아직 중국과의 전쟁은 이르니까요.”

“하면…… 어쩌면 좋겠습니까.”

“어쩌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들의 개입을 막아야죠.”

“…….”

대통령은 그 말에 다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용케 생각을 읽은 듯 곧 그의 눈이 동그래진다.

“설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