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44화
철원 지경리.
부우우웅!
“뭐지?”
모내기 준비를 위해 논을 갈고 있던 사내는 인근 부대에서 몰려나오는 병력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한은 이번 달엔 이렇다 할 큰 훈련이 없는 시기.
하지만 웬일인지 전 부대원이 완전무장을 한 채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고, 평소였다면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을 익숙한 인물들은 오늘따라 눈조차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이, 순형이. 대체 쟤들 어디 가는 거야?”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 씨가 의문을 표하며 사내에게 다가왔다.
모르기는 마찬가지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려는 차, 마침 폴라베어를 타고 그들을 지나치던 중사 한 명이 순형을 향해 소리쳤다.
“순형 형님. 살아서 봅시다.”
“…….”
순형은 눈을 끔뻑이며 멀어져 가는 차량들을 쳐다봤다.
애애애애앵!
그와 동시에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
이후 언덕 너머 저편에서는 연신 쿵쿵 하는, 포탄 터지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게 뭔 일이야? 설마 북한에서 포격이라도 하는 거야?”
순형은 조용히 해보라는 듯 사내를 향해 손사래를 치곤 다시 허공에 귀를 기울였다.
쿵! 쿠구궁!
여전히 들려오는 폭죽 터지는 소리.
처음과는 달리, 점차 폭발음이 잦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 군의 포사격 훈련 소리와는 거리가 먼데…… 이런 빌어먹을! 북한이 또 도발이라도 한 모양인데?”
“그렇다 해도 고작 포격 도발 정도면 크기 걱정할 건 없잖아. 그 방어시스템인지 뭔지가 어마어마하게 깔려 있는 마당에.”
당황하며 트랙터를 향해 달려가는 순형을 향해 강 씨가 소리쳤다.
그제야 멈칫 한 순형이 아! 하는 표정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차, 갑자기 가까운 하늘에서 엄청난 폭음소리가 들려온다.
쾅!
“억!”
순형과 강 씨는 재빨리 몸을 숙였다.
저게 과연 현실일까.
이후 무심코 쳐다본 하늘 곳곳에서 쉬지 않고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허어…….”
순형과 강 씨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탄성을 내뱉었다.
날아오는 포탄과 로켓들이 방어시스템에 의해 요격되는 장면.
그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영화. 아니, 불꽃놀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에.
“대체 몇 발이나 쏴대는 거야…….”
하지만 그도 잠시, 퍼뜩 정신을 차린 순형과 강 씨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들의 집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젠장, 정은이 놈이 뒈졌다더니, 기어이 전쟁이 난 모양이네. 결혼 한지 이제 6개월 밖에 안 된 상황에서 이게 무슨.”
연신 발을 놀리던 순형의 입에선 불평이 한가득 쏟아졌다.
왜일까, 그 말에 멈칫한 강 씨가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순형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팔, 행복에 겨운 소리하고 있네.”
“…….”
“자네는 장가라도 가 봤지. 난 50이 넘은 나이에 홀어머니 모시고 피난가게 생겼어, 이 사람아.”
***
인천 백령도.
쿵쿵쿵쿵쿵!
“응?”
봄 꽃게 철을 맞아 바삐 그물을 손보고 있던 뱃사람들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포 소리에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게 왜…….”
이내 쳐다본 곳은 몇 년 전, 군이 언덕에 설치했던 최신식 방어시스템.
무슨 사달이라도 난 듯, 여태 한 번도 실사격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던 해안포들이 꼭 미친년 널뛰기 하듯 쉬지 않고 불을 뿜어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랴?”
사내들은 쥐고 있던 그물을 툭 떨어트린 채 서로를 쳐다봤다.
애애애애앵!
곧이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이후 방송에선 모든 주민들을 향해 소개령이 떨어졌고, 지금 이게 실제 상황임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또 북한에서 도발이라도 하는 모양인데?”
누군가가 뱉어낸 말에 어부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집으로 내달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편에서 해병대원들이 자주포를 몰고 이동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전쟁이라도 난 거야?”
도발을 운운했었던 사내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어부들은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고, 개중 걸음이 느린 노인 한 명만이 멍하니 서서 해병대원들을 쳐다본다.
“또 전쟁이 났다고?”
노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본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 6.25의 상흔을 온몸으로 겪었던 세대.
그 마당에 다시 전쟁을 경험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니던가.
“…….”
한데 조금 후, 그는 분위기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가장 먼저 불바다가 될 곳이 바로 이곳 백령도를 비롯한 서북 도서들.
하지만 이곳은 물론 바다 저편 어느 섬에서도 난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훈련인 건가?”
노인은 넌지시 중얼대다 곧장 고개를 털었다.
만약 이게 훈련이었다면 방송에서 실제 상황임을 운운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쿠구구구궁!
그때, 해안가로 향했던 자주포들로부터 불을 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궁!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한 포격.
그럼에도 이쪽으로는 포 한발조차도 떨어지지 않는 상황.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마음에 노인의 눈살이 점점 더 찌푸려진다.
***
청와대 기자 간담회장.
찰칵찰칵!
1시간 전 발생한 철원과 백령도. 그리고 파주 일대의 포격 사건으로 인해서 청와대는 긴급 대국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각 언론사들은 물론 외신들마저도 몰려든 상황.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 때문인지 삼삼오오 몰려 있던 기자들 사이에선 종종 과격대응 가능성에 대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었고, 이후 등장한 고위급 장성들의 굳은 표정은 그 생각을 더더욱 확신하게 만들었다.
철컥!
문을 열고 등장한 대통령의 표정 역시도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그 탓에 순식간에 침묵으로 물든 기자회견장.
좌중을 한번 둘러본 대통령은 마치 내키지 않는 상황이라는 표정과 함께 본론을 끄집어냈다.
“오늘 오후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이 대량의 포격을 가했습니다. 또한 백령도를 비롯한 서북 도서 지역을 향해서도 로켓 공격을 가했지만 다행히 우리 군의 방어시스템으로 인해 인명 피해는 전무합니다.”
“…….”
기자들은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슬쩍 곁에 있던 국방장관을 한번 쳐다본 대통령은 목이 타는 듯 잠시 앞에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스마트 포탄을 활용한 대응 사격을 통해 도발 원점을 파괴했습니다. 덕분에 현재는 포격이 멈춘 상태지만, 아직까지 북에서 우리 정부의 항의에 대한 아무런 대응이 없는 것으로 봐선 사태가 진정됐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
“여러분들이 주지하셔야 할 점은 이번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를 절대로 전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지정된 시각까지 답변이 없을 경우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할 생각입니다.”
“선전포고라면…… 전쟁의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까?”
성질 급한 누군가가 재빨리 질문을 했다.
상황이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비록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긴 했지만 누구도 그걸 탓하지는 않았고, 대통령 역시도 오히려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장내는 순식간에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그건 지나친 대처가 아니냐는 말들이 돌기까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대통령은 다시 마이크를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전쟁은 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걸 외면하는 것은 정부로서의 의무를 방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저쪽에서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요?”
예의 그 성질 급한 기자가 그 말에 재빨리 반응했다.
힐끗 그를 향해 시선을 준 대통령은 굳은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현재 중부 전선을 비롯한 전 휴전선 일대에 북한 기갑 병력들이 집결 중이며, 예비사단들 역시도 전방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 됩니다.”
“허어…….”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기자들은 침음성을 삼켰다.
이내 여기저기서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대통령의 선포가 이어진다.
“해서, 우리 정부는 현 시간부로 전군에 데프콘2를 발령하는 바이며, 북한이 끝내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동을 멈추지 않을 경우 원칙에 따라 선제적 행동에 나설 것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
순간 사방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그토록 요란하던 키보드 두드리던 소리조차도 멈춰진 상태.
잠시 좌중을 다시 돌아본 대통령은 짧은 손짓을 끝으로 회견장을 빠져나갔고, 서로 눈치만 보던 기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은 뱉어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고? 이렇게 쉽게?”
***
띠링!
“이게 무슨 개소리야?”
자유로 휴게소에 발이 묶인 정남과 그의 친구들은 동시에 울리는 휴대폰 알림음에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날아온 문자는 동원 지정된 예비군들의 행동수칙을 알리는 것.
불과 1년 전 전역한 그들로서는 다시 군에 입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난 문자 아니야?”
현실 부정은 당연했다.
하지만 날아온 문자의 발신처는 분명 정부 기관.
게다가 이렇듯 동시에 문자가 날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짐작은 신빙성을 잃는다.
“어느 미친놈이 생기는 것도 없이 이런 장난질을 치냐. 보아하니 우리만 문자를 받은 것도 아닌 모양인데, 그 비용은 또 어떻게 감당하고.”
정남의 말에 친구들의 안색은 다시 파리해졌다.
아직도 재입대를 하는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건만, 그게 실제가 된 상황.
저주도 이런 저주는 없을 거다.
“튈까?”
일행 중 누군가가 뱉어낸 말에 청년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흔들렸다.
하지만 단지 그뿐.
이후 주어질 불이익과 양심의 가책.
여타 수 없이 많은 이해타산들을 따져본 그들은 결국 낙담한 듯 말한다.
“시발, 설마 북한을 상대로 해서 죽기야 하겠어? 지금 우리 군의 전력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마당에.”
“그것도 그거지만, 우린 현역이 아니라는 점도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지 않겠냐? 막말로 동원 예비군을 1선 진격부대로 편재하지는 않을 것 아니야.”
“그거야 모르지. 특히나 주특기가 전차 운전병인 재윤이 놈 같은 경우는 1선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크지 싶은데.”
누군가의 안타까워하는 소리에 당사자인 재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띠링!
그때 또 여기저기서 울리는 휴대폰의 알림 소리.
힐끗 문자를 확인한 청년들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고, 다시 재윤을 쳐다보는 표정엔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쯧, 불쌍한 것들.”
순간 재윤이 오히려 혀를 차며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이내 멍한 친구 놈들의 시선에 하나하나 눈을 맞춘 그는 잔뜩 입매를 뒤틀어 보인다.
“상식적으로 땅개가 총 맞아 뒈질 확률이 높겠냐, 아니면 전차 운전병이 죽을 확률이 높겠냐. 더군다나 난 K2를 몰던 몸이시다.”
“…….”
친구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뉴스를 방영하고 있던 휴게소의 TV에서 대통령의 긴급 담화문이 들려왔다.
[북한군은 끝내 우리와의 대화를 거부한 채 중부 전선 일대에서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은 각종 대응수단을 이용하여 적의 포격 진지 및 이동식 투발 수단들을 제거 중이며, 예정대로 현 시간부로 전군에 데프콘1을 발령합니다.]
“오, 이런 시발…….”
***
위이이이잉!
장성필 편대장은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즉시 주기장으로 달려갔다.
이미 1시간 전부터 내려온 명령에 따라 그의 5세대 고스트 이글 편대들은 출격 준비를 끝마친 상황.
어디 그들뿐일까, 이곳에서만 무려 8기에 달하는 전자전기들은 물론 40기에 달하는 4.5세대 기체들이 각자의 임무에 합당한 무장을 장착한 상태였고, 다른 비행장들에서도 그에 준하는 수준의 기체들이 1차 출격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뭐 결국, 북한과는 끝내 이렇다 할 타협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기체에 오르려는 순간 무장담당 부사관이 넌지시 말을 뱉어냈다.
힐끗 그를 쳐다본 장 소령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대꾸한다.
“글쎄, 어쩌면 우리 정부가 애초부터 타협할 생각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지.”
그 말에 무장담당 부사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관하지 않은 채 기체에 오른 장 소령은 한동안 기체 점검 및 무장 확인을 지속했고, 이내 활주로를 향해 서서히 진입했다.
척!
드디어 떨어진 출격 신호에 장 소령은 짧은 한숨을 뱉어냈다.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는 5세대 기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남북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쟁에서라는 것이 그를 더 흥분시키고 있었다.
“북한의 전투기들이라…… 부품수급도 못해서 쩔쩔매는 그 고물들로 대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