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41화
[김정일 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동지께선 현지지도 강행군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과 육체의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순직하시었다.]
이튿날 우리 방송국들은 일제히 북한의 발표문을 송출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조선중앙TV의 여성 앵커는 처음부터 끝까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멘트를 이었고, 이후 뒤바뀐 화면에선 오열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비쳐졌다.
“저 눈물이 진짜라면 그야말로 소름 돋는군요.”
함께 뉴스를 지켜보던 김영기 총괄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이건 뭐 제 부모가 죽었어도 저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들이었기에.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하곤 채널을 돌리려는 차에 김 실장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그나저나, 정부에선 워치콘과 데프콘은 격상하지 않기도 했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실제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과도한 대응은 내보이지 않았다.
국방장관의 전언에 따르면 지나친 공포심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데, 아마도 그건 김일성 사망 당시 겪었던 극도의 혼란을 다시 겪을까 싶어 나온 대처임이 분명하다.
“저로서는 좀 의외라 생각 되는군요. 정부로서는 차라리 전쟁이 실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국민들에게 각인 시킬 수 있을 기회일 텐데 말입니다.”
김 실장은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쳤다.
언제든 북진의 기회만 생긴다면 밀고 올라가겠다는 입장을 가진 정부로서는 대비 차원에서라도 조금씩이나마 위기감을 끌어올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하지만 난 그 생각에 반대한다.
정말로 북진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을 저질러야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판단이니까.
“글쎄요…….”
게다가 난 이 나라의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다.
북과의 트러블이 일어날 때마다 말로는 전쟁이라도 불사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일이 터지면 제일 먼저 도망갈 것들.
그들이 정부의 의중이 북진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 과연 가만히 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 마당에 미리 괜한 혼란을 줄 필요는 없지.
“뭐, 정부에서도 생각이 있겠죠. 그렇다곤 해도 한, 미 양국의 정찰자산의 운용은 대폭 증가한 상태니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을 겁니다.”
“그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미국에선 U2와 KH-11이 첩보 활동을 시작했다는군요. 우리 군 역시 혹시 있을지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무인기에 상승단계 요격을 위한 무장을 상시 장착한 상태로 운용 중이라고요.”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김 실장이 대꾸했다.
그럼에도 내심 안심은 되지 않는 표정.
난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김 실장님은 지금 정작 불안해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
“이 정권의 성향을 북한이 모르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하면 응당 불안에 떨지 않겠냐는 말이죠.”
“…….”
“게다가 현재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간신히 빠져나오고 있는 시기입니다. 또한 극도의 체제 불안기인데, 그들이 무슨 수로 우리를 도발하겠습니까. 잠시 잊으신 모양인데, 전쟁도 돈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선빵을 날리는 것도 뒷감당이 가능할 때나 하는 겁니다. 즉, 전쟁이 날 때 나더라도 그건 우리의 결정에 의해서 시작될지언정 저들이 먼저 시작하지는 못한다는 거죠.”
김 실장은 그 말에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한 말은 과거 그가 나에게 뱉어냈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막상 돈 문제를 거론하고 보니 그건 우리에게도 해당된다는 생각이 뒤 따른다.
정말로 북진을 할 경우, 그 막대한 전비는 대체 어떻게 충당을 할 것인지.
“이런!”
생각이 깊어지려는 순간 김 실장이 갑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탄식을 토했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머쓱한 표정이 되어 말한다.
“하루 종일 북한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제가 정말 중요한 소식을 전달해 드린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무슨…….”
“오전에 보잉-시콜스키. 그리고 KAI 연합체로 구성되었던 육군의 차세대 고속기동헬기 사업 말입니다. 어제 1차 운용검증을 성공리에 끝마쳤다고 합니다.”
순간 절로 눈이 번뜩여졌다.
북한의 격변 사태. 그리고 때를 맞추어 등장한 고속 기동헬기.
이건 마치 짜 맞춘 듯한 타이밍이 아니던가.
“시제기는 몇 대나 생산이 된 겁니까.”
“총 6기의 시제기가 생산 되었다고 합니다. 한데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그 6기. 당장 한국으로 보내라고 하세요. 2차 운용검증은 우리가 맡겠다고. 아! 그리고 언제든 양산이 가능한 체계를 갖추라고도 전해주시고요. 6개월 안에 최소 60기 이상은 생산 완료가 될 수 있을 수준 정도로는.”
“…….”
김 실장은 뜨억 하고 턱을 떨어트렸다.
이내 고개를 부르르 털어낸 그는 기가 차다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2차 운용검증을 우리가 한다고요?”
“못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그 사업이야 KAI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 게다가, 한국군의 도입도 예정되어 있는 물건이니만큼 우리 땅에서도 운용검증쯤은 해봐야죠.”
“그렇다고는 해도…… 미국에서 그걸 허용할까요? 이제 막 생산된 시제기를 한국에서 가져간다는 마당에.”
“그 부분은 제가 맡을 테니 김 실장님께서는 얼라이언스에 통보조치만 하시면 됩니다.”
난 말을 끝냄과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내 리암의 번호를 눌러가고 있던 차, 김 실장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그런데 대체 ‘디파이언트’는 왜 그렇게 서둘러 가져오시려는 겁니까.”
멈칫.
순간 액정을 누르던 손을 멈추곤 그를 쳐다봤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
짧은 의문을 뒤로 하고 대답했다.
“북진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북한 핵 기지의 점령…… 그럼 설마 우리 특전사 요원들에게 그걸…….”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김 실장은 다시 ‘대체 우리 정부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걸 60기나 한꺼번에 보급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날아들었고, 난 다시 리암과의 통화를 시도하며 대꾸했다.
“평시라면 불가능하죠. 하지만 전시가 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조금 편법을 동원해야겠지만, 그 역시 당장 전쟁이 터진 판국이면 그리 문제 될 것이 없죠.”
“…….”
***
덜컹!
그로부터 20여 일 후, 보잉에서 생산된 4기의 디파이언트가 광양항을 통해 입항했다.
애초 내 계획은 6기 전부를 들여오는 것이었지만, 지속적인 개선사업을 위해 2기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 보잉의 입장.
결국 추가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 길어진다는 것을 감안하여 그건 흔쾌히 양보했다.
“다행히 생산라인 구축에는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시콜스키사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업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왔던 상황이었다더군요.”
김영기 실장은 희소식이라는 듯 내게 사실을 알려왔다.
한데 그걸 알까.
애초 나 역시 그걸 염두에 둔 요구였었다는 걸.
보잉과 여타 업체들에게 밀려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시콜스키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차기 고속기동 헬기 사업에 목을 걸었던 상태고, 그로 인해 60기 정도를 양산하는 것은 일도 아닐 정도의 라인 구축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겐 힌트가 되었다는 걸.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를 두고 쓰는 말일 거다.
“그런데 시험비행은 당장 이틀 후부터 시작하실 생각이시라고요?”
“네, 어차피 1차 운용평가에서 큰 문제가 없었던 만큼 시간을 미룰 이유가 없죠.”
되묻는 김 실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뭣 때문일까. 그는 한참 동안이나 나를 쳐다보더니 비로소 말을 잇는다.
“무척이나 쫓기시는 느낌이군요.”
“그렇게 보입니까?”
“솔직히 최근 회장님의 행보가 평소와는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웃어 보였다.
딱히 아니라고는 부정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준비 없는 격변은 재앙이다.
그리고 기왕 시간이 주어졌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날씨가 많이 춥군요.”
슬쩍 말을 돌리곤 항구의 사무실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때마침 몰아친 동장군에 그 역시도 견디기 힘들었던 듯, 두 말 안고 따라 들어온다.
[김정은 동지께서는 친히 운구 차량을 이끄시었으며…….]
잠시 추위를 피하려 들어선 항만 관리 사무처의 TV에선 북한 소식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예상처럼. 아니 역사대로 후계자는 김정은이 낙점된 상태.
그 비대한 몸으로 운구 차량을 뒤따르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워 보이던지.
다른 건 몰라도 저것만큼은 역사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응?”
무심히 운구행렬을 지켜보다 절로 눈이 번뜩였다.
정상적이라면. 아니 역사대로라면 당연히 김정은의 뒤에서 운구 차량을 보필해야 할 장성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걸 이상하게 여긴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듯 김영기 실장 역시도 한참을 멍한 얼굴로 TV를 향해 다가섰고, 이내 휙 하고 나를 돌아본 그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장성택이…… 없습니다.”
***
[오늘 김정은 동지께서는 향후 조국을 이끌어갈…….]
그로부터 한 달 후, 북한 정권은 대대적인 군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당황스러운 것은 김정일의 곁에 다시 장성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국정원의 정보에 의하면 운구 당시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하필 그때 다리가 부러졌었기 때문이라는데, 그게 사실이기는 한 건지 화면에서도 한쪽 발을 심하게 절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거 뭔가 수상쩍은데요?”
아침나절 걸려온 전화로 참석한 청와대 비공식 회의에선 그 문제가 주요 토론 주제였다.
장성택은 정말로 다리 문제로 운구행렬에 참석을 못했던 걸까, 에 대한.
아직은 확실한 정보를 얻기 전인 터라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고, 덕분에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몇 번이고 짓눌러야만 했다.
“식사들은 하셨습니까.”
소란이 가라앉은 것은 대통령이 들어서고 나서였다.
곁에 국정원장을 대동한 것을 보면 보통 일은 아닌 느낌.
하긴, 내 참석을 요구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오늘 오고 갈 대화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짐작이 가능하다.
“김정은이 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 같습니다.”
자리에 착석한 대통령은 앞뒤를 확 잘라먹은 말을 뱉어냈다.
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회의장 분위기를 가라앉히기는 충분했던 상황.
순식간에 침묵이 감도는 좌중을 훑으며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국정원의 보고에 의하면 김경희가 김정은에게서 돌아선 모양입니다.”
“김경희가 뭣 때문에 말입니까?”
되물은 이는 통일부장관이었다.
나 역시 의아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자 대통령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김경희는 장성택과는 달리 김정일의 유훈을 따르는 입장이었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김정남의 후견인을 자처하던 장성택과는 달리 김경희는 제 오라비의 유훈을 받들어 김정은을 적극적으로 밀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한데 그런 김경희가 김정은과 척을 지었다?
대체 저쪽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영 짐작이 가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김경희가 돌아섰다면 김정은의 미래도 이제 장담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그 역시 틀린 말은 아닐 듯했다.
현 북한 정권에서 김경희의 힘은 그야말로 절대적인데, 그녀가 돌아선 마당이면 아직 체제구축을 못한 김정은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 알이 되는 거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러니하다.
회귀 전엔 제 남편을 제거하는 것조차도 묵인했었던 김경희였건만.
“정보에 의하면 김경희가 최근 신변에 위협을 당했답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대통령이 툭 하고 답이 될 만한 말을 던졌다.
일제히 시선이 몰리고, 대통령은 잠시 자신의 앞에 있던 물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잇는다.
“누가 그녀를 위협했는지는 다들 짐작하시는 바대로 김정은일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해선 아직 우리도 확실하게 밝혀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최근 김정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
“최근 김정은은 암살 미수사건을 무려 열 번이나 겪었답니다. 하니, 코너에 몰린 그로서는 누구라도 의심스러운 상황인데, 그중 우선인 것은 당연히 장성택 아니겠습니까.”
“암살 미수요?”
사람들은 그 말에 기함을 토했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대통령은 그 참에 다시 말을 잇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처음엔 단지 장성택에게만 향했던 의심이 김경희에게까지 미쳤다는 겁니다. 해서 최근 김경희의 핵심 측근들이 공개 사살됐다는군요.”
“……맙소사!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왜 제 발등을…….”
“그야 우리가 알겠습니까만, 뭐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위기를 겪었다면 그 나름대로 또 이해는 갑니다. 아무튼, 상황이 그러면 김경희로서도 당연히 생각이 바뀔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당장 제 목이 날아가게 생긴 마당이니 유훈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거죠.”
“그래도 김경희와 장성택은 추구하는 노선이 완전히 달랐지 않습니까.”
통일부장관은 재빨리 되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내내 침묵을 지키던 국정원장이 슬그머니 나서서 말한다.
“그렇다 해도 제 목에 칼이 들어오는 걸 두고 보는 것보다야 낫죠.”
“…….”
“게다가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김정은을 몰아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요. 현 북한 군부에서 그녀의 입지는 그만큼 대단합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침묵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나저나 이거 참 상황이 우습다.
김경희가 트리거가 될 줄은 나조차도 예측을 못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