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37화
휘이이잉!
열흘에 걸친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인천공항엔 찬바람이 잔뜩 불고 있었다.
어느덧 11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려는 모양새다.
“회사로 가시겠습니까?”
차에 오르자 양 비서가 대뜸 행선지를 물어봤다.
잠시간 들었던 고민 끝에 난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도 대통령의 스케쥴에 여유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와대로 갑시다.”
차량은 즉시 방향을 틀었다.
이후 도착한 청와대에선 대통령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상태.
느낌이 이상했던 듯 그는 오후 약속들을 모두 비운 채였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격변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요?”
그동안 겪은 일들을 보고받던 대통령은 그 부분에서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마뜩잖은 이야기였던 듯 몇 번이고 혀를 차기까지.
당장 머릿속에서 자신이 그리고 있던 그림에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이다.
“김정은에 대한 소식은 더 들어온 것이 없습니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었다.
다행히도 그사이 변고는 없었던 듯 대통령의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아직은…… 하지만 소문대로 급성심근경색에 의한 쇼크라면 다시 일어나기는 힘들 겁니다. 그나저나 진 회장께선 누가 권력을 승계할 것 같습니까?”
“…….”
난 잠시 대답을 주저했다.
무리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대통령은 툭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을 뱉었다.
“솔직히 김정남은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그동안의 행적은 물론 사실상 북한 인민들에게도 그는 존재 자체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까요. 하면 남은 것은 김정철과 김정은 두 아들 중 하나일 텐데…….”
“그 둘로 범위가 좁혀진다면 당연히 김정은이겠죠.”
넌지시 끼어들자 대통령이 나를 쳐다봤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점은 잠시 접어두고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해봤다.
“김정철은 지나치게 유약한 성격입니다. 김정일 역시 그 점으로 인해서 늘 자신의 후계자는 김정은이 될 거라고 했다죠.”
“하지만 김정은은 지나치게 어리지 않습니까.”
“어리다 해도 결국엔 백두혈통입니다. 저들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생각하면 딱히 무리는 아니죠.”
“흠…….”
한동안 대통령은 침묵을 유지했다.
손가락이 탁탁 하고 계속해서 책상을 두드리는 것으로 봐선 머릿속이 꽤 복잡한 모양이다.
“만약에 말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웬 뜬금없는 인물이 부각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장성택 같은…….”
사실 그 점이 내가 제일 우려하는 부분이었다.
역사와는 달리 친중파인 장성택이 권력을 잡아 버리는 경우.
하면 중국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고, 우리로선 북진을 결심할 충분한 근거가 되거든.
내가 미국을 그렇듯 설레발을 치고 돌아다녔던 이유도 실은 그 점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경우, 대통령님의 의중에 따라야 하겠죠.”
“…….”
대답과 동시에 대통령의 눈빛이 한껏 깊어졌다.
이내 탁 하는 소리를 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추는가 싶더니 그가 대뜸 내 의중을 묻는다.
“진 회장께선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괜찮으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보세요.”
잠시 주저하는 순간 재촉이 들려왔다.
허심탄회하게라…….
그래, 이 상황에서 가리고 자시고 할 것이 뭐가 있을까, 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채 말을 뱉어냈다.
“전 솔직히 통일이 필요하다고는 봅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우리 민족의 하나 됨, 또는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의 해방 같은 상투적인 것은 아닙니다.”
“…….”
“쉽게 말하자면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죠. 통일을 이루었을 시 이 나라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
“…….”
대통령은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마주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통일이 되었을 경우, 이 나라는 1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안정된 경제 시장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기초가 되며, 발전 속도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음을 뜻하죠. 물론 초기에 감당해야 할 부작용은 좀 심하겠지만, 그 반대급부를 생각하면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
“이대로는 미래에도 우리나라가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힘에 의해 휘둘리게 될 거라는 점입니다. 북한이라는 약점 하나 때문에.”
마지막 말이 뱉어짐과 동시에 대통령이 후우 하고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
이내 그는 결심이 굳어진 듯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한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군요. 해서 말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누가 권력을 차지하건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
“기회만 주어진다면 북진을 현실화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무슨…….”
황당한 마음에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해한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대통령이 다시 말을 잇는다.
“방금 진 회장도 말했다시피 미래를 생각하면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봅니다.”
“…….”
“물론 화해 무드가 안정적으로 조성되어 대화가 이루어진다면야 좋겠죠. 그렇게 되면 연방제 형식의 통일도 논의가 가능할 테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
“당장 북한은 둘째 치고, 그 지난한 과정에서 주변국들이 그걸 두고만 보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특히나 일본과 중국의 경우는 아마 우리가 대화라도 하려고 하면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나설 겁니다.”
“일본은 이제 그럴만한 힘이…….”
“아니요, 일본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통일을 하고 하나의 시장을 이루는 순간 저들의 미래는 장담할 수가 없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면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그걸 두고만 볼 리가 없죠.”
“…….”
“결정적인 문제는 북한 지휘부입니다. 자신들의 생존과 권력 유지 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 때문에 통일은 자칫 저들에게는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통일을 바라겠습니까?”
나름 일리 있는 말이기는 했다.
지금껏 호사를 누리던 북한 군부가 과연 급격한 상황변화를 지지할까?
자칫 자신들의 목에 칼이 들어올지도 모를 상황에서?
“흠…….”
그나저나 듣고 있자니 결국 대통령은 북진을 이미 결정한 것 같았다.
하면 이제 전쟁은 시간문제.
역사고 나발이고, 이젠 정말로 한 치 앞도 못 보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거다.
“해서 말인데…… 진 회장께서 도착하기 전에 오바마와 통화를 좀 했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대통령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하필 오바마라는 이름 탓에 난 즉시 시선을 마주했고, 대통령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일단 올해 안에 약속했던 치장물자들 일부를 먼저 좀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미군 장비들의 경우는 우리 병력들도 손에 익을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걸 순순히 수긍하던가요?”
“다행히 수긍하더군요. 해서 11월 말쯤부터 시작해서 한동안 비밀리에 미군 수송선이 계속해서 입항할 겁니다.”
“하면 입단속이 문제군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미군 수송선이 지속적으로 입항을 하면 아무래도 말이 밖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난 넌지시 핵심을 짚었다.
치장물자들이 입항하는 것이 소문나기라도 하는 경우 사회적 불안감이 가중 된다는 점을.
이미 그 점은 염두에 두었던 듯 대통령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죠. 해서 한동안은 야간에만 입항을 하는 것으로 계획 중이고, 주변은 철저하게 봉쇄할 생각입니다. 참, 청와대 내부에서도 그 사실은 일부 핵심 참모들만 알고 있는 상태죠.”
그 말에 불현듯 긴장감이 찾아왔다.
동시에 든 생각은 내가 지금껏 국방력을 발전시킨 이유는 결국 이것 때문이었을까 싶은 의구심.
그러고 보니 난 대체 왜 회귀를 한 것일까.
왠지 그 부분도 새삼 의문스럽다.
누가, 또 무엇 때문에 나를 회귀라는 사건으로 밀어 넣은 것인지.
***
“이봐, 김 기자. 내가 알아보라고 한 것 좀 알아봤어?”
대일일보 김영동 기자는 부장의 질문에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때마침 그 문제에 대한 보고를 올리려던 차.
슬쩍 주변의 눈치를 살핀 그는 재빨리 데스크실로 들어서며 문을 걸어 잠근다.
“부장님 말씀처럼 근 보름 만에 여덟 척에 가까운 미군 수송선이 광양항에 입항을 했답니다. 의심스러운 점은 하필 매번 밤에만 하역작업을 했다는 거죠.”
“흠…….”
부장은 그 말에 침음성을 삼켰다.
촉을 건드리는 정황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질문을 잇는다.
“주한미군의 발표에 따르면 노후장비 교체 작업을 위한 입항이라고 하던데,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물론 그것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벌써 반입된 전차들의 수만 400대. 그리고 브레들리 장갑차를 비롯한 전투차량도 수백 대에 달하는데, 주한 미군에 그토록 많은 전차들이 필요할 이유가 있을까 싶습니다.”
김영동은 꽤 핵심이다 싶은 점을 짚어냈다.
하긴, 그 정도 물량이면 과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긴 하지.
더군다나 소문에 따르면 아직도 밤마다 일부 항구에서는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그건 차후 입항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다.
즉, 이건 단순한 장비 교체와는 거리가 멀다는 거지.
“자네가 직접 부산에 좀 다녀와.”
부장은 생각의 끝에 본격적인 취재를 명령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김영동은 방을 빠져나갔고, 이후 침묵 속에서 부장은 계속 의구심의 끊을 붙잡았다.
따르릉!
그때, 책상 위에 있던 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뱉어냈다.
발신자가 확인되지 않는 번호.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는 대출 안내 전화를 의식하며 퉁명스럽게 수화기를 든 순간, 저편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상근 부장님? 저 국정원장입니다. 미안하지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
“후우…… 거 무슨 놈의 남쪽 지방이 이렇게 추운 거야.”
늦은 밤.
광양항을 찾은 김영동 기자는 동료와 함께 은밀히 통제구역을 향해 접근했다.
저편에서는 접안을 위해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수송선의 모습이 보이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것이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김 기자 대단한데? 자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 찾았어.”
동료는 제법 먼 거리에서도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을 찾아낸 김영동을 칭찬했다.
머쓱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인 김영동은 힐끗 동료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주었고, 곧 아차 싶은 표정을 지은 동료는 재빨리 자신의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장착한다.
“이것 봐라? 또 전차가 들어온 모양인데? 저게 대체 몇 대야?”
한창 하역작업을 관찰 중이던 동료가 흥분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점점 더 의심의 골이 깊어지는 순간.
재빨리 동료에게서 카메라를 건네받은 김영동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전차들의 수량을 세어봤다.
“전차만 최소 50대. 시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욕설을 뱉어낸 김영동은 다시 카메라에서 눈을 떼었다.
이내 동료를 향해 의견을 구하려는 차, 갑자기 동료의 얼굴색이 파리해지며 눈을 심하게 끔뻑이기 시작한다.
“왜 그래?”
“저, 저기…….”
동료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김영동은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움찔 했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그들의 뒤편에는 족히 20명쯤은 되어 보이는 무장한 사내들이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
“이름.”
어느 한적한 건물로 끌려온 김영동과 그의 동료는 각기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았다.
기자 생활만 오늘로써 8년째.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고 있던 그였지만 오늘만은 좀처럼 안정이 되지 않는다.
“이름!”
심문을 담당한 사내는 벌써 몇 번이고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우스운 것은 이미 기자증을 제출한 상태라는 것.
대체 무슨 의도인지 알 길이 없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름!”
“눈이 없습니까? 거기 기자증에 내 이름이 번듯이 써져 있는 마당에 왜 자꾸 같은 질문만 하는 겁니까.”
김영동은 이를 앙다물며 반발했다.
순간 날아오는 날 선 눈빛.
곧 스윽 하고 몸을 일으킨 사내가 그를 향해 다가와선 속삭이듯 말한다.
“이름.”
“김…… 영동입니다.”
사내의 기세에 눌린 김영동은 결국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치스러움에 절로 눈물이 나려는 차, 갑자기 사내가 김영동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웃어 보였고, 이후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불쑥 방으로 들어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