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36화
“남은 일정 잘 소화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이튿날, 나를 제외한 우리 대표단은 모두 귀국길에 올랐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나 역시 저들과 함께 귀국을 해야 옳았겠지만, 생각지 못한 전쟁 가능성이라는 커다란 변수.
그리고 그게 현실화 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얻을 것은 얻고 단속해야 할 것은 단속하겠다는 의지에 따른 결과였다.
빠바바밤!
이후 한동안 내 일과는 리암을 앞세워 미국의 정, 재계 인사들을 만나는 것이 주가 되었다.
벌써 일주일째 이어지는 미국식 파티문화 탓에 이젠 속에서 신물이 넘어올 지경이다.
[이 친구가 바로 메릴린 금융 그룹의 토니 회장이외다.]
내가 리암에게 만남을 요구한 인물들은 대부분 미국의 금융자본가들 위주였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차후 정말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밑 작업쯤이라는 것이 가장 적절할 거다.
사실상 미국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들.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행여 있을 전쟁 발발로 인한 한반도의 경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정확히는 재우의 손해를 최소화할 의도라고 봐야겠지.
[반갑습니다, 진현승입니다.]
물론 전쟁이 발발하면 어차피 경제추락은 막을 수 없다.
막말로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안정이건만, 그게 보장되지 않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현재 우리의 군사력 수준이라면. 그리고 중국의 개입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사실상 남북 간의 전쟁은 그리 오랜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공포심으로 인한 자본유출만 막을 수 있다면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는 건데, 난 지금 그 기반을 확보하려는 중인 거다.
[오오! 그 유명한 JW 투자사의 실질적인 대표를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토니는 이미 내가 JW의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긴, 저들이 여태 천문학적인 규모의 운용자금을 자랑하는 JW 투자사 같은 곳을 뒷조사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렇다면 대화는 더 편해진다.
최근 내가 투자한 아마존이나 애플. 여타 굵직굵직한 기업들의 상장과 기업가치 상승으로 인해 내 자산 가치는 셈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그런 대자본가로서의 위치는 저들의 협력을 끌어내기에 훨씬 용이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토니와는 특별히 연을 쌓는 것이 현명한 거요. 그와 손을 잡는다면 미국 정가는 물론 월가의 절반을 진 회장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리암도 전에 없이 적극적인 태도였다.
예상컨대, 그건 다가올 한반도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처사일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쉽게 말해, 나를 통로로 미리 확고한 통일 한국에서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거지.
뭐 사실 상관은 없다.
어차피 격변의 때가 오면 나 역시도 리암을 비롯한 미 금융자본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결국엔 상부상조하는 편이 내게도 이익이니까.
‘예를 들면 전쟁 발발과 동시에 빠져나갈 막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자금들.’
물론 무제한 달러 스와핑이 체결되어 있다고 해도, 전쟁이 나면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이탈하며 시장에는 반드시 충격을 준다.
그걸 저들을 통해 막을 수만 있다면 금융 부분에서 오는 혼란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면 나 역시도 환율의 과도한 움직임으로 인한 불필요한 손해를 보지 않을 테고.
[후우…… 이거 오랜만에 강행군을 했더니 지치는구려.]
길었던 일주일간의 일정이 끝나고 리암과 나는 내일 있을 마지막 일정 조율을 위해 호텔로 함께 돌아왔다.
노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꺼낸 위스키로 한차례 목을 축이는 사이 리암은 방을 시가 연기로 가득 채우는 민폐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슬쩍 물으며 그의 앞에 잔을 내려놨다.
순식간에 잔을 비워 버린 그는 그제야 속이 좀 트인다는 표정과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 호텔방은 흡연이 허용된 공간이니까.]
난 그 말에 옅은 미소를 짓고는 손을 내밀었다.
의도를 이해한 듯 그는 즉시 시가 하나를 내게 건네며 농담을 걸어온다.
[그거 하나에 오백 달러요.]
[지난번 것보다는 싸군요.]
리암은 그 말에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뱉어진 내 농담에 우리의 첫 만남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 걸까, 그의 눈빛이 회한에 젖은 듯 몽롱해진다.
[부탁드릴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난 그 타이밍에 넌지시 운을 떼었다.
퍼뜩 초점이 다시 돌아온 그는 고개를 갸웃해 보였고, 난 독한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오바마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
***
[이쪽으로 오시죠.]
이틀 후, 리암은 정말로 오바마와의 면담을 성사시켰다.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단 이틀 만에 성사시키는 능력은 새삼 경탄스러울 정도.
내가 누구와 손을 잡고 있는지 새삼 현실감이 더해진다.
[이제야 얼굴을 보게 되는군요.]
오바마의 첫인상은 화면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웃음이 꽤 매력적인.
하지만 내 표정 관리는 그리 자연스럽지 못했다.
매번 친일 행보를 보이는 그의 태도가 곱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니까.
[재우 그룹의 진현승입니다.]
[진 회장님에 대해서야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뭐 그거야 진 회장님께서도 마찬가지일 테니 이 자리만큼은 보다 솔직한 대화의 장으로 만드는 것으로 하죠.]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대화법이었던 터라 웃음으로 대꾸했다.
이후 호쾌하던 첫 시작과는 달리 연신 침묵을 유지하던 그는 찻잔이 거의 비워졌을 때쯤에나 다시 입을 열었다.
[나와의 독대를 원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주제넘지만, 향후 한반도의 급변 사태를 걱정하는 기업가로서 확실히 해둘 것이 좀 있어서 말이죠.]
[흠…….]
딱히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오바마 역시도 내 존재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을 테니까.
손가락 하나로 수조 달러를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큰 손이라는 걸.
하지만 그는 명색이 세계를 움직이는 존재.
그 당당함만은 여전하다.
[말씀해 보세요.]
[여기 계신 리암 회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한반도의 급변 사태가 발발할 시. 우리가 통일을 원하면 그걸 지지하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라크 안정화를 한국이 맡아주는 대가로써.]
[하면 정말로 중요한 부분을 좀 짚고 넘어가죠. 만약 우리 정부가 정말로 북진을 결정했을 경우. 혹시라도 일본을 병참기지로 활용하실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
순간 오바마의 얼굴이 꿈틀했다.
마치 정곡을 찔리기라도 한 듯.
실은 이래서 내가 이 자리를 마련한 거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의뭉을 떨며 대꾸한 오바마는 슬쩍 리암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 역시 ‘나는 모르는 주제였다.’는 표정.
오바마의 시선은 다시 내게로 향했고, 난 즉시 대답을 뱉어냈다.
[내가 대통령님이라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한반도에서의 전쟁이라면 현재의 일본을 되살릴 절호의 기회 아닙니까.]
[…….]
오바마의 얼굴에선 숱한 표정의 변화가 엿보였다.
대놓고 치고 들어오는 내 태도에 당황한 거지.
표정을 굳힌 채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일본이라고 북한의 격변 가능성을 감지하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그럼 당연히 백악관에 불이 나도록 전화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마지막 말은 내가 생각해도 꽤 도전적이었다.
빌어먹을, 그래도 당장 따질 것은 따져야 하지 않겠어?
다행인 것은 오바마의 표정이 대놓고 불쾌함을 내비치지는 않았다는 건데, 아마도 그건 리암의 존재. 그리고 역시나 미국 내에서의 내 영향력 때문이었을 거다.
[그게 문제라도 되는 겁니까? 전략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물자를 조달하는 것은 상식이지 않소.]
이어진 오바마의 말은 내 추측이 정확했음을 의미하는 거였다.
끝내 일본의 부활을 손들어 주는.
하긴, 무려 수십 년을 일본계 자금에 물들어 있는 저들이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울까.
하지만 난 오늘 그 판을 깨버릴 생각이다.
[당연히 문제죠.]
[…….]
[대통령님께선 한국이 북한을 점령하는 데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십니까? 아! 물론 미국이 중국의 개입을 철저하게 막아낸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말입니다.]
[…….]
[제 생각엔 길어야 열흘. 아니 일주일이면 백두산까지 밀고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군은 무려 100일을 버틸 수 있는 비축 탄약들을 보유 중이죠.]
[…….]
[게다가 우린 늘 전시를 대비하는 나라인 터라 최소 50일 이상은 비축 식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마당에 일본을 굳이 병참기지로 삼는다? 혹시라도…… 장기전을 염두에 두신 것은 아니겠죠?]
[…….]
오바마는 속내를 들키기라도 한 듯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상관하지 않은 채 쐐기를 박았다.
[뭐 좋습니다. 설사 중국의 개입을 끝내 막지 못한다 해도. 그래서 장기전이 발발한다 해도 우린 일본이 병참기지가 되는 것은 반대합니다.]
[…….]
[솔직히 물자야 미국에서 조달하여 보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이 2차 대전 때도 아니고, 미국의 보급선을 건드릴 만한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요. 그럼에도 끝내 일본을 고집하는 것은 자칫 미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건데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시려는 건지 모르겠군요.]
마지막 말은 슬쩍 리암을 쳐다보며 뱉어냈다.
내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내내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암은 대뜸 오바마를 향해 직설적으로 말을 뱉어냈다.
[정말 장기전으로 끌고 갈 생각이었습니까? 고작 일본 하나 살리자고?]
[무슨 그런 말씀을…….]
오바마는 단호하게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걸 누가 믿을까.
여전히 리암의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고, 이내 그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경고의 소리가 뱉어졌다.
[이거 실망이 크군요. 난 지난번 대화에서 우리가 꽤 합리적인 의견통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오. 내 누누이 말했을 텐데요. 이젠 시대를 똑바로 봐야 할 때라고.]
[…….]
오바마는 진땀이 흐르는 듯 머리를 쓸어냈다.
하지만 자존심은 지키려는 듯 끝내 인정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아직 일본을 병참기지로 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인지를 확인하고자 되물었을 뿐이죠. 아무튼, 두 분의 의견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죠.]
웃으며 뱉어진 그의 말은 축객령을 의미하는 거였다.
이렇게까지 미리 약을 쳐놓은 상태라면 행여 그런 무모한 생각은 하지 못할 거다.
중국의 개입을 막는 것을 일부러 지지부진하게 하여 사태를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거나.
그로 인해 일본의 부활을 획책한다거나.
게다가 내가 예정에도 없이 쳐들어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경고의 의미나 다름없는데.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 정도는 알아들었을 것 아닌가.
[제 생각이 우려였다면 천만다행이군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내 의지를 에둘러 강조하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색한 미소를 내비치던 오바마는 돌아서는 나를 향해 툭 하고 말을 던진다.
[그나저나 이 대화가 의미가 있기는 한 겁니까?]
[…….]
[진 회장께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냐는 말입니다. 솔직히 난 벌어지지도 않을 일 때문에 괜한 논쟁만 한 것이 아닐까 싶군요.]
[글쎄요…….]
어찌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김정일이 죽었다 해서 전쟁이 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이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역사의 길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상태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그때, 오바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솔직히 가능하다면 전쟁은 피하고 싶다는 것이 내 심정입니다. 다른 걸 떠나서 기껏 골머리 아팠던 전쟁을 끝내 놓은 마당에 다시 우리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거든요.]
저 말만큼은 진심이었을 거라 판단된다.
지금 같이 복잡한 미국의 상황에서는 전쟁특수보다는 안정이 우선일 테니까.
당장 자국 내의 반전 여론이 다시 들끓기 시작하면 사실상 그가 곤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거든.
[그럴 수도 있죠. 정작 북한에서는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북진 계획도 사실상 확고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미리 준비를 해둬야 피해가 적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당신이 여태 일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3인 것을 확인한 지금은 더더욱.
[…….]
오바마는 그 말에 묘한 눈초리를 보이곤 다시 돌아섰다.
왠지 그에게서 영원히 일본의 뿌리 깊은 올가미를 끊어내지 못할 느낌,
이로써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해졌다.
현 미국 정권은 절대로 쉽게 그 성향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
‘흠…… 아무래도 당신의 재선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