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35화
우르르!
정부 대표를 필두로 한 미국 방문단의 규모는 100여 명에 이르렀다.
미 정부 초청에 의한 방문이었던 탓에 VIP 전용 게이트를 통해 공항을 빠져나온 우린 곧장 워싱턴으로 향했고, 이후 반나절 동안은 미 정부 주최 회의를 위한 시간이 주어졌다.
[진현승 회장님?]
나를 비롯한 경제인단의 경우는 정부 관료들과는 별개로 따로 리암이 주최하는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장소는 숙소로 지정된 호텔의 국제 학술 센터.
예정된 만찬까지는 아직 3시간 정도가 남아 있기에 여유는 있는 편이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리암 회장님께서 사전 면담을 좀 요청하셨습니다.]
막 짐을 풀고 있던 차에 리암이 나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지간히도 급한 용무가 있는 모양새.
결국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다시 방을 나섰다.
[어서 오시오.]
텅 빈 홀에 자리하고 있던 리암은 내가 등장하자 유독 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뭔가 좋은 소식을 품고 있기라도 한 느낌이었는데, 이후 한동안 그의 입을 통해서 들려온 이야기들은 확실히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로써 한반도에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 미국은 전적으로 한국의 조치를 따르게 될 겁니다. 아! 물론 지휘 권한 역시 한국군에게 주어질 것이고요.]
[흠…….]
난 잠시 의도가 뭔지에 대해 고민해봤다.
저 말은, 우리 정부가 당장 북진을 결정한다 해도 그걸 따르겠다는 의미.
솔깃하다 못해 파격적인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논점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 문제거든.
즉, 이라크 전후처리를 논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지.
그때, 생각의 편린들이 스쳐 가며 무언가가 떠올랐다.
[회장님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항상 사탕이 먼저 제시되고는 했죠.]
[…….]
[뭡니까? 그 사탕을 얻으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하하!]
리암은 호쾌한 웃음을 내뱉었다.
이후 한참을 나를 쳐다보던 그는 더는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이라크 재건이야 우리나 한국이나 이미 5:5의 비율로 사업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일 겁니다. 문제는 재건 과정에서의 사회 안정화 작업을 누가 감당하느냐는 건데, 미국 정부는 그걸 한국에서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쉽게 말해서 잔불 정리와 교통정리는 너희들이 해라.
우린 하루라도 빨리 발을 뺄 테니까. 뭐 이런 의미 정도?
[흠, 그건 저와 나누실 이야기가 아닌 듯싶습니다만.]
[아! 물론 지금쯤 한국 정부 대표단과 미 대표단 사이에서도 이 대화가 오가고 있을 겁니다.]
[…….]
난 그 말에 이번 방문에 대한 무게감을 다시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단순히 재건사업에 대한 논의가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문제로 확장된 느낌이랄까.
막상 생각이 그에 미치자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미국이 이라크의 잔불 정리와 전후복구문제를 우리에게 떠넘기는 대신, 그동안의 보여 왔던 태도를 바꿔서 이젠 한반도의 통일에 적극 협조를 하겠다. 뭐 이런 거군요.]
[정확합니다.]
[한데 이 시점에 왜 갑자기 통일 문제가…….]
이어진 의문을 뱉어내려는 차에 불현듯 생각이 하나 스쳐 갔다.
2011년.
딱 이 시기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설마, 김정일이 죽기라도 했습니까?]
리암의 눈은 순간 동그래졌다.
아차 싶은 마음이 들려는 차, 그가 허탈한 미소와 함께 말한다.
[아직 죽은 것은 아닙니다만, 조만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진 회장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북한 내부에서도 현재 김정일의 신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고 있는 자가 없는 상황인 마당에.]
[북한에 관한 정보는 우리가 더 빠르다는 걸 모르시는군요.]
잠시 들었던 당황스러움을 뒤로 하고 재빨리 변명을 뱉어냈다.
그 어쭙잖은 대꾸가 먹혀든 걸까, 딱히 의심스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하긴, 한국의 휴민트가 북한 내부에 꽤 깊숙이 박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죠. 아무튼, 김정일이 정말로 사망하는 경우 현 한국 정부의 성향을 보면 북진을 염두에 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
[솔직히 지금 한국의 능력을 본다면 통일이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소.]
[흠…….]
[물론 전쟁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죠. 하지만 정작 결심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가 발목을 잡아 왔었던 것은 사실 아닙니까? 해서 이젠 그 장애물 중 하나를 제거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
[더군다나 지금 한반도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격변의 가능성이 큽니다. 하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책 정도는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서 우린 그걸 한국이 안정군으로 남아주는 것에 대한 대가로 내세우고 있는 겁니다.]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역사적으로야 김정일의 사망으로 인한 큰 격변은 없었지만, 지금은 또 모르니까.
게다가 리암의 말처럼 현재 우리 정부의 성향은 강성도 이런 강성이 없다.
그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역사는 이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가 없어지게 되는 거고,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건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흠…….]
난 한참을 더 생각의 늪에 빠졌다.
김정일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대처는 뭘까.
최악의 경우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면 과연 중국의 개입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까.
‘가만.’
그런데 그때, 불현듯 생각의 틈을 파고드는 가시 하나가 생겨났고, 난 즉시 그걸 입 밖으로 뱉어냈다.
[단지 통일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개입이 끝입니까?]
[…….]
[솔직히 미국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협정에 따르면 동맹의 영토 내에서 전쟁이 발발할시 자동개입 조항이 있는데, 미국의 개입이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
[단적인 말로 우리로선 미국의 뒤처리는 다 해주고도 실질적인 이익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죠.]
순간 리암의 얼굴에선 역시나 싶은 표정이 지어졌다.
확실히 뭔가 또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려는 차, 그가 꽤 호기심 당기는 말을 뱉어냈다.
[물론 그걸로 끝일 수는 없죠. 해서 현 정부는 총 세 가지의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우선은…….]
한참 말을 내뱉던 리암의 시선이 힐끗 입구를 향했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편에서 마이클이 걸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도착했군요.]
[…….]
[지금부터 할 이야기들에 대해서 미군과 정부가 동조한 사실임을 증명해 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불렀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마이클과의 짧은 악수가 이어졌고, 리암은 다시 하려던 말을 이었다.
[우선, 이라크에 파견되었던 미군의 장비 중 절반은 한국군에게 귀속될 겁니다.]
[…….]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격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되지 않을까 싶은…….]
힐끗 시선이 나를 향한다 싶던 리암이 말끝을 흐렸다.
표정이 좀처럼 펴지지 않는 것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거지.
예상처럼 헛기침을 한번 내뱉은 그는 슬며시 되묻는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미군이 투입한 장비의 규모를 보면 확실히 큰 소득이기는 하죠. 그런데 지금 제 머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정작 재우에게 돌아오는 것은 뭐냐는 겁니다.]
[재우야 어차피 재건 과정에서 건설을 비롯하여…….]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
[이라크에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설업체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이라크 정부에서야 재우에 대한 호감으로 밀어줄 가능성은 큽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제 양껏 가져갔다가는 아마 다른 업체들의 등쌀에 꽤 피곤해 질 겁니다.]
[하면 뭘…….]
리암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 타이밍에 마이클을 향해 시선을 준 난 대뜸 질문 하나를 뱉어냈다.
[미군은 앞으로 F-15의 운용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현재로서는 솔직히 별다른 계획은 없습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제 계산이 맞는다면 미군이 1차로 도입하는 4.5세대 고스트 이글의 수는 500여 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면 당장 도입비용은 둘째 치고 운용비용도 만만치가 않죠.]
[…….]
[그 와중에 노후한 F-15마저도 운용을 계속하는 것은 아무리 미국이라도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미 해군이 톰켓을 퇴역시켰듯, 공군도 F-15의 퇴역을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마이클과 리암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이제야 내 의도를 눈치챈 거지.
난 슬쩍 입매를 뒤틀며 말을 이었다.
[만약 그럴 계획이 있다면 굳이 전투기들의 무덤으로 보내기보다는 제게 주십시오. 하면 잘 고쳐서 우리 군에 납품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무슨…….]
리암은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정작 마이클의 표정은 딱히 변화가 없던 상태.
아니나 다를까, 그가 불쑥 끼어든다.
[아니요, 딱히 일리 없는 말도 아닙니다.]
[…….]
놀란 리암이 재빨리 마이클을 쳐다봤다.
슬며시 잔을 드는 사이 마이클이 다시 말을 잇는다.
[사실 미 공군의 F-15의 유지비용은 천문학적입니다. 더군다나 보잉이 현재로서는 정비에 힘을 쏟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건 더하겠죠.]
[…….]
[최악의 경우 창정비 비용이 생산단가의 삼분의 일에 달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거기에 차후 고스트 이글의 운용비용까지 더해진다면 공군으로서도 그건 못 버팁니다. 그럴 바에야 퇴역이 답일 수도 있죠.]
[…….]
[더군다나 재우가 퇴역기체들을 매입한다 해도 결국엔 보잉을 통해서 개량을 진행하게 될 겁니다. 하면 보잉으로서도…….]
[하지만 보잉에게 당장 그럴만한 인력과 장소확보가 가능하겠습니까? 당장 고스트 이글의 생산만으로도 바쁜 마당에.]
리암은 꽤 핵심적인 부분을 짚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력과 장소는 우리에게도 존재한다는 거다.
[개량이야 KAI와 공동으로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
리암과 마이클이 그 말에 눈을 끔뻑였다.
다시 찻잔을 내려 노곤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현재 KAI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하니 개량 권한만 준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리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던 그는 불쑥 말을 뱉어낸다.
[하나만 묻죠. 대체 F-15는 가져가서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우리 공군의 전력 확대를 위한 거죠. 솔직히 북한은 몰라도 중국을 상대로 하는 경우엔 우리 공군의 전투기가 수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
***
똑똑!
늦은 밤, 미 정부 대표단과의 회의를 끝낸 우리 측 정부 대표들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목적이야 이미 예상이 가능한 상태.
난 서둘러 그들을 맞이하며 술잔을 꺼내왔다.
“오늘은 한잔하지 않으면 도저히 잠이 안 올 것 같군요.”
국방장관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말없이 술잔이 돌기를 몇 번.
대략 30분쯤 시간이 지났을 때 국방장관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김정일이 아무래도 얼마 못 갈 것 같습니다.”
“네, 그렇다더군요. 그런데 그 정보는 언제 들으신 겁니까?”
딱히 질책하는 투로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게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장관이 머쓱한 얼굴로 변명한다.
“사실 쓰러졌다는 정보를 들은 것은 일주일쯤 전이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서 의사를 불렀다는 소식과 의외로 상태가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미국에선 또 부정적으로 보고 있더군요.”
“모사드의 정보라면 신뢰성이 크다고 봅니다.”
말을 받은 것은 외교장관이었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 듯 내내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그는 한껏 굳어진 얼굴로 국방장관을 향해 묻는다.
“대통령님께선 뭐라고 하셨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일단 변고가 실질적으로 발생한 이후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입장입니다.”
“그 양반답지 않은 반응이군요. 한데 왜 갑자기 조심스러워지신 겁니까?”
“솔직히 상황이 애매하지 않습니까. 두 아들 중 누가 권력을 이어갈지도 알 수 없고. 자칫 쿠데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고. 하니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그에 맞는 대처를 하겠다는 의도일 겁니다.”
“하긴, 북진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겠죠. 예상했던 혼란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을 찾아 버리면 우리만 침략군이 되고, 중국은 얼씨구나 싶어 관여할 테니까요.”
외교장관은 말끝에 나를 쳐다봤다.
마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눈빛.
이미 답을 알고 있기는 하다만, 그걸 뱉어낼 수는 없는 노릇.
더군다나 이제 역사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기에 섣불리 역사를 입에 올리기는 힘들다.
“제 생각을 물으시는 거라면 아직은 저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쪽입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주목했다.
또 한 잔의 술을 잔에 따르곤 그들을 향해 선포하듯 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언제 발발할지 모를 전쟁에 대한 대비를 최대한 갖추는 것이 옳기는 하겠죠.”
“그럼 결과적으로는 진 회장님도 전쟁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더 무게를 두신다는 말씀 아닙니까.”
글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만약 역사와 달리 친중 성향인 장성택 파가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엔 자칫 통일은 영원히 물 건너갈 수도 있으니까.
그땐 북진은 현실화 되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