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24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외신에 의하면 자위대의 피해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이어진 수십 차례의 교전에서 현재까지 총 천여 명에 이르는 자위대원들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어제 오전, 모술 지역에서는 또다시 자위대에 의한 민간 피해가 대량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번엔 오폭으로 인한 유적지의 피해도 발생했습니다.]
2011년 1월.
이라크에 파병된 자위대의 피해는 점점 그 심각성이 더해져 갔다.
아니, 그들의 피해도 문제지만, 교전 과정에서 벌어진 이라크 민간인들의 피해 정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
그 탓에 이라크에서는 자위대를 향한 성토가 극에 달했으며, 일부 이라크인 들의 경우 오히려 반군에 동조하게 되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맞았다.
[일부 자위대원들에 결여된 도덕성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위대원들의 일탈 또한 문제가 됐다.
몇몇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 자위대원들의 문란한 행동과 폭행 사건.
가뜩이나 들끓던 현지 여론은 폭발했고, 결국 일본 총리가 이라크를 향한 대국민 사과까지 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라크에선 최근 한국군의 재파병여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한국군에 대한 여론은 더더욱 우호적으로 변해갔다.
남부지역에서의 완전 철수가 있던 날엔 현지인들이 눈물을 보이며 환송을 할 정도.
외신들에 의해 전파를 탄 그 같은 장면들로 인해 서방에선 더더욱 한국군과 자위대를 비교 선상에 두었고, 일본의 자존심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끼익!
그로부터 보름 후, 나와 정부. 그리고 군의 요인들은 거제에 있는 재우조선을 방문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핵 추진 잠수함 건조사업의 첫 테이프를 끊는 날.
비록 사업의 시작은 대외에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내용만큼은 기밀에 속하는 터라 참가인원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짝짝짝!
단출하게 진행된 도크 지정식에서 대통령은 감격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군은 물론 정부의 오랜 꿈이었던 핵 추진 잠수함의 건조를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작할 수 있게 된 거니까.
사실 감격스러운 것은 내가 더 하다.
“진 회장님이 또 고생길이 열렸군요.”
설계부서로 향하는 길.
대통령은 넌지시 내 등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전해져 오는 느낌만으로 보면 뭔가 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허공을 한번 쳐다본 대통령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인다.
“며칠 전 필리핀에서 우리 정부에 특사를 보냈습니다.”
“…….”
좀 뜬금없는 말이었던 터라 즉시 쳐다봤다.
툭 하고 다시 내 등을 두드린 대통령은 다시 주변을 의식하며 말을 이었다.
“최근 들어 부쩍 중국과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중고 잠수함 판매를 제안하더군요.”
“중고 잠수함이라면…… 설마 209급을 넘겨달라는 겁니까?”
사실상 그게 아니고선 우리가 넘겨줄 만한 중고 잠수함 이란 없었다.
틀린 생각이 아니었던 듯 대통령이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해서 말인데, 이 기회에 기존 209급을 퇴역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 대신, 우린 3000톤급을 추가 건조하는 거죠.”
“…….”
나야 대환영이었다.
물론 209급도 나름대로는 전략적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가 운용하기에 열악한 것이 사실이니까.
특히나 좁아터진 함 내 환경으로 인한 운용인력들의 그 고충은 아마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를 못할 거다.
“예산이 되겠습니까?”
문제는 언제나 예산이었다.
3000톤 급이면 무장을 포함하여 척당 최소 8천억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
게다가 9척 모두를 대체하는 것일 테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아닌가.
“예산은 충분합니다. 진 회장님도 알다시피 올해 국방 예산이 꽤나 증가했지 않습니까. 뭐 꼭 그게 아니라도 사우디로부터 들어오는 원유에서 발생하는 잉여금도 만만치가 않고요. 아! 잉여금의 전용은 국회 승인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동아시아 분위기가 이런 상황인 터라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새.
나 역시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곧장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역시 진 회장님만큼은 찬성할 줄 알았습니다. 하면 조만간 의회에 안건을 상정할 테니 진 회장께서도 준비를 하시죠.”
“저야…… 그런데 설마 수의 계약을 염두에 두시고 계신 겁니까?”
무심코 대답하던 와중 그 점이 궁금해졌다.
지금 대통령의 저 말, 마치 사업을 재우가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거든.
그때, 대통령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럴 수야 있나요. 엄연히 법이 존재하는 마당에.”
“하면…….”
“그렇다 해도 난 재우에서 건조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죠. 즉,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찰에 성공하시라는 말입니다.”
난 그 말에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 말이 건투를 비는 거지, 결국엔 최저가에라도 우리보고 수주를 해달라는 은밀한 압박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현우가 담당했던 214급의 건조과정에서 발생했던 숱한 문제점들.
대통령으로선 그걸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대신,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우의 이익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은 찡끗 한쪽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나마 미안함은 들었던 거지.
마음 같아선 그 보장이 어떤 식으로 주어질 것인가를 묻고 싶었지만 그건 애써 참았다.
“어서 오십시오.”
도착한 설계부서에선 곧장 브리핑에 나섰다.
이번에 개발될 것은 핵 추진이라는 특수성을 갖춘 물건이기 때문일까, 브리핑을 하는 자는 물론 그걸 듣고 있는 대통령 이하 정부 요인들도 여느 때와는 달리 한껏 진지한 표정들이다.
“현재 저희가 개발 방향으로 삼고 있는 것은 납-비스무트 냉각방식의 4세대 원자로입니다. 이는 일반 경수로 방식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
대통령은 마치 계속하라는 식으로 연구원을 쳐다봤다.
긴장감이 심했던 듯 잠시 헛기침을 뱉어낸 연구원이 다시 말을 잇는다.
“우선 차이점을 말씀드리기 전에 핵 추진 잠수함에 쓰이는 원자로들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끄덕.
대통령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용기를 얻은 듯 연구원이 한결 풀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현재 국제 표준은 가압경수로방식입니다. 그리고 강대국들은 소듐을 냉각제로 이용하는 방식을 한때 개발했었는데, 이유는 일반 경수로방식보다 효율이 2배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소듐은 물과 접촉하면 폭발을 일으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배관 관리가 무척이나 까다롭고, 사실상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허다했죠. 때문에 돌고 돌아서, 결국은 강대국들도 경수로를 사용하는 것으로 회귀했습니다.”
“흠…….”
대통령은 그 부분에서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힐끗 나를 한번 쳐다본 연구원은 다시 긴장감이 파고드는 듯 마른 침을 삼키곤 설명을 이었다.
“그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사실상 우리도 경수로방식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었을 겁니다만, 그 역시 우리에게는 난제가 있었습니다.”
“…….”
“경수로의 경우는 고농축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거든요.”
“계속하세요.”
“그렇다고 문제가 많은 소듐 방식으로 가기는 힘들고, 해서 결국 택한 것이 4세대 고속증식로라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긴 설명이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가 4세대 고속증식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다행히 대통령도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뱉어냈다.
“하면 그 4세대 고속증식로라는 것이 일반 경수로방식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거죠?”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일반 경수로처럼 고농축 우라늄 235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해서 성공할 경우 사실상 원자력협정과는 상관없어지게 되죠.”
휙!
그 말에 대통령이 즉시 나를 쳐다봤다.
이건 미처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듯.
난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말을 뱉어냈다.
“사실입니다. 수석 연구원의 말처럼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우린 사실상 국제기구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지죠. 어차피 국제기구가 제약을 걸고 있는 것은 무기에 전용이 가능한 우라늄 235이고 우린 238을 기반으로 하니까요. 그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보다 다양한 함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항모라던가. 또는 대형 지원함 같은…….”
“하면 왜 굳이 미국과 실랑이를 벌인 겁니까?”
대통령의 질문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상 국제기구의 제재를 피할 방법이 있었음에도 난 끝내 우라늄 235를 이용한 핵연료를 확보하려 노력했었던 거니까.
하지만 그건 만약을 위해서다.
“만약을 위해서요?”
“4세대 고속증식로는 아직 어느 나라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도 실패를 염두에 둬야 하고, 그 경우 일반 경수로를 택해야 하는데, 그때를 위해선 다시 235 기반 연료가 필요할 것 아닙니까. 물론 저도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른 걸 떠나서 우리가 확보한 것은 저농축이기에 효율이 많이 떨어지니까요.”
“그 말인즉, 결국 차선책을 위해서였다? 허허, 진 회장님이 준비성이 철저한 것은 알았지만, 이거야 원…….”
대통령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며 다시 연구원의 설명을 재촉하려는 차, 그가 다시 질문 하나를 던진다.
“그나저나 4세대 고속증식로가 그렇게 개발하기 어려운 겁니까? 천하에 진 회장도 실패를 염두에 둘 정도로?”
“물론입니다. 다른 걸 떠나서 납 –비스무트 냉각방식은 상시 125도 이상을 유지하지 못하면 고체 경화가 일어나는데, 그 경우 부피증가로 냉각파이프가 파열됩니다. 해서 그걸 막을 소재기술이 필요하고, 철저한 가열제어 시스템의 개발이 필요하죠.”
“…….”
순간 대통령의 눈에 그늘이 졌다.
선진국들도 개발 못했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생각에 방해가 된 거겠지.
난 그 시점에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현재 재우 연구소에서는 이미 냉각파이프의 소재개발을 거의 끝마쳐 놓은 상태고, 시스템제어 개발 역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요?”
대통령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이후 연구원의 설명은 다시 이어졌지만 대부분은 내가 했던 말을 답습하는 것.
결국 브리핑은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끝을 맺었고, 우린 남은 시간을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것으로 합의 봤다.
“그나저나, 개발 기간은 총 몇 년이나 걸릴 것 같습니까.”
대통령은 연구소를 빠져나오는 길에 넌지시 질문을 뱉어냈다.
말은 안 했어도 꽤 마음이 촉박했던 듯.
하긴, 당장 북한이 SLBM의 전력화를 앞두고 있는 마당이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글쎄요, 대략 5년 정도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얼핏 실망한 투의 한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데이터가 어느 정도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
차마 그 점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대통령님!”
막 헬기를 향해 걸어가던 와중 청와대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이는 그의 표정에 우리는 일제히 걸음을 멈췄고, 지척까지 다가온 비서실장은 잠시 주변의 눈치를 한번 살피곤 대통령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쯧…….”
순간 대통령이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뭣 때문인지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가 갑자기 동행을 요구한다.
두두두두!
영문도 모른 채 대통령 전용 헬기에 오른 난 곧바로 이유를 물었다.
다른 이들의 귀가 신경 쓰였던 걸까, 비로소 대통령이 타이를 풀어내며 말한다.
“두 시간 전, 유일신과 성전의 후신을 자처하는 자들이 성명을 발표했답니다. 자신들을 이제부터 ISIS라고 지칭하겠다는.”
“…….”
“그런데 그 성명 발표가 하필 대규모 교전 후에 있었다는군요.”
“교전 후에 그런 성명을 발표했다면…… 혹시 자위대가 또 피해를 입은 겁니까?”
“피해를 입은 정도가 아니죠. 사상자만 해도 천에 달하는 상황이니까.”
순간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아무리 자위대의 전투력이 바닥을 친다지만 그 정도 대규모 인원이 당할 정도의 상황이란 상상이 가지 않았으니까.
그때, 대통령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아예 전차까지 동원하여 기지를 공격했다는군요. 공격해 온 자들의 수도 무려 1만이 넘었던 상태고요.”
“…….”
“아무튼, 백악관에서 그 ISIS라는 단체의 결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모술만이 아니라 중동지역 곳곳에서 난리가 아니니 원. 그래서인지 지금 한국군의 재파병을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대화를 해봐야겠지만…… 젠장, 나도 지금 판단이 영.”
순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쳐 갔다.
내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걸까, 대통령이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하게 하십니까.”
“아, 그게……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