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20화
“문제가 생기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자위대원들의 구출 작전을 미군이 계획 중이었다는 말입니까?”
나로선 좀 뜬금없다는 생각에서 한 질문이었다.
끝내 파병을 고집하고 본대까지 보내는 마당에 구출 작전을 미군이 맡는다?
아니 그토록 ‘군’을 열망하며 키워온, 그리고 주제넘게 델타부대와도 견줄만하다고 자찬했던 일본의 특수작전군들은 어쩌고?
-나도 처음 미군이 구출 작전에 나섰다는 소식에 진 회장님과 같은 반응을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뭐 이해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을.
“…….”
-진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현재 포로로 잡혀 있는 병력들이 자위대 최고의 작전군 아닙니까. 그들이 포로가 된 마당이니 그들을 구출할 인력이 없다고 판단한 거겠죠.
장관은 긴 한숨과 함께 대꾸했다.
이내 시간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다시 본론을 끄집어낸다.
-아무튼, 결국 일본 정부가 미 델타부대를 동원해 달라고 미군에 요청했는데, 미군도 당장은 그걸 들어줄 입장이 아닙니다. 하필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터져 버렸거든요.
“다른 곳이라니요?”
장관은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또 벌어진 느낌.
아니나 다를까, 곧 그가 당황스러운 말을 뱉어낸다.
-실은, 어제 늦은 저녁 이라크의 주요 유전지대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해서 지금 잔류 중인 미군은 물론 우리 병력들까지도 도저히 발을 빼지 못할 상황이죠. 게다가 하필 현지에서 정보 수집 중이던 미군 정보부 요원들까지 대거 억류되어 버린 터라 그들을 구출하는 것도 힘에 부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공격한 자들이 누군데요?”
-발표에 의하면 그들 역시도 스스로를 유일신과 성전의 후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상황이 이 정도면 IS 발호가 역사보다 훨씬 빨리 본격화 된 느낌.
뭐 우리로 인해서 이라크의 안정화도 빨라진 마당이니 그 역사가 시간을 앞선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설마 우리에게 구출 작전을 지원해 달라는 겁니까?”
그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었다.
현시점에서 미군이 투입되기 힘들다면 이후 바라볼 곳은 우리뿐이니까.
예상처럼 장관이 다시 한숨을 뱉어내며 말한다.
-실은 그게 문제입니다. 이미 우리도 대부분의 병력들이 철수한 상태고, 그나마 남아 있는 병력들은 죄다 유전지대를 방어하는 것에 매달려 있다는 것. 그렇다고 병력을 재 파병하자니 그건 또 의회의 재승인은 물론 국민 정서에도…….
비록 끝이 얼버무려졌지만 의미만큼은 충분히 이해했다.
하긴, 미군도 아니고 자위대를 구출하기 위해 우리 병력들이 희생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찬성할 국민들은 없지.
아마 지금쯤 장관의 머릿속이 지옥일 거다.
“흠…….”
난 그 시점에 잠시 고민해봤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절로 입매가 뒤틀린다.
“우리가 구출해 주는 조건으로 일본은 뭘 내놓을 수 있답니까?
-네?
장관은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대꾸했다.
잠시 죄어 오는 타이를 풀어내곤 다시 말을 이었다.
“막말로 일본과 우리가 동맹도 아니고, 굳이 나설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하면 당연히 대가가 따라야죠.”
-……지금까지 제가 했던 말을 이해 못하신 겁니까. 아니 그건 둘째 치고, 대가를 받고 우리 병력을 보냈다간 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우리 병력을 보내겠다고 했습니까?”
-…….
수화기 너머에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뒤늦게 의도를 깨달은 듯 앗!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PMC(Private Military Company)! 설마 진 회장님이 미국에 설립한 민간 군사기업을 이용하겠다는…….
“맞습니다. 그게 지금으로서는 딱 적당한 방법 아니겠습니까? 우리 정규군이 투입되는 것도 아닌 마당이니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렇기는 한데, 그럴 바에야 미국 정부가 자국의 PMC에 의뢰를 하는 편이…….
“물론 그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죠. 하지만 미군도 계산상 자국의 PMC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
“일단 우리와 그들은 가용장비의 규모부터가 다르니까요. 솔직히 우리처럼 중장갑 외골격까지 동원이 가능한 단체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건…….”
“게다가 모술은 소규모 구조대로 치고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민간인이 많이 거주하는 그곳을 정규군으로 밀어 버렸다간 문제가 더 심각해지죠. 하니, 방법은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도 핀셋 같이 구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집단이 필요한데, 그 조건에 맞는 것은 우리 PMC뿐입니다.”
-…….
그 말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느낌상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의 침묵.
이내 말을 뱉어내는 장관의 목소리에선 한껏 희망에 부푼 기세가 넘쳐흘렀다.
-제, 제가 조금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전화는 끊어졌다.
어지간히도 다급했던 모양새.
난 한동안 화면이 아웃된 액정을 쳐다보며 하나의 생각에만 집중했다.
‘일본에게 얻어내는 것도 얻어내는 거지만, 이게 성공했을 경우 우리 PMC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홍보 효과를 얻게 되는 거지.’
***
“강채훈 부장님. 본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미 캘리포니아주.
오늘도 소속 대원들의 훈련 감독에 여념이 없던 강채훈은 본사에서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사무실로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전화를 건 이는 하필 그룹 회장인 진현승.
저편에서 무어라 지시를 내린 건지 그는 이후 네, 하는 짧은 대꾸와 함께 자신을 뒤따라온 대원을 향해 손짓한다.
탁!
의미를 이해한 대원은 재빨리 문을 닫곤 통신 장비와 연결된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린다.
보안을 위한 절차를 시행하는 것.
이후 대원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나서야 강 소령이 다시 말문을 연다.
“네, 이제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대원은 긴장된 표정으로 강 소령의 입술을 주목했다.
다른 걸 떠나서, 그룹 회장으로부터 직접 걸려온 전화는 회사가 설립된 이후 처음이니까.
예상을 증명하듯 곧 강 소령의 입에선 심상치 않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네, 물론 문제없습니다. 어차피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도 제법 한 가닥 한다던 친구들을 모아둔 집단 아닙니까. 그런데 무장은 어떻게…… 그러면야 내일이라도 당장 투입이 가능합니다.”
딸칵!
이후 전화가 끊어지고 돌아선 강 소령. 아니 한 부장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덩달아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던 대원은 어서 말을 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재촉했고, 강 소령은 툭 하고 그의 어깨를 건드린다.
“축하한다. 자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임무가 배정됐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어떤 종류의 임무입니까?”
대원은 여전히 흥분에 젖은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비에 목이 말라있는 나무처럼.
누구보다 그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강 소령이었기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얼마 전 이라크에서 포로가 된 자위대 특수작전군 소속 병력들의 구출 작전.”
“네?”
순간 대원의 눈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필 구해야 할 대상이 자위대원 들이라는 사실 때문인 듯.
이후 뭐라 반발하려는 그를 향해 강 소령의 날카로운 충고가 날아든다.
“이봐, 이종기. 우린 이제 군인이 아니라 용병 집단이야.”
“…….”
“명령이 뭐건 사적인 감정을 떠나서 받은 만큼은 일을 해야 하는 처지라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야.”
“넵!”
이종기는 즉시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꾸했다.
그럼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 표정.
마음만큼은 이해를 하고 있었던 걸까, 방을 나서던 강채훈 부장이 다시 돌아서선 말을 보탠다.
“솔직히 나도 썩 내키는 임무는 아니야. 해서 말인데, 차라리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좀 해보면 어떨까 싶어.”
“무슨…….”
“겁에 잔뜩 질려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자위대 애들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겁다…… 라고.”
“…….”
***
위이이잉!
사우디 북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도착한 강채훈 부장과 그의 대원들은 잠시간의 재정비 시간만을 가진 채 다시 미군이 제공하는 수송기에 올랐다.
오랜 비행 이후 또다시 항공기에 올라야 하는 부담감이 컸던 듯 대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구겨져 있는 상태.
하지만 작전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덕분에 푸념 따위를 뱉어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오가는 대화들도 대부분은 작전과 연관된 것들뿐이었다.
“도착하면 꽤 어두워지겠군.”
“차라리 그편이 낫지. 우리야 어차피 어둠 속에서 작전하는 것에 이골이 났으니까.”
[이봐들, 우리 영어로 좀 대화하면 안 될까?]
대원들 중 유일하게 미국인이었던 톰은 알아들을 수 없는 저들의 대화에 두 손을 들며 항의했다.
힐끗 그 모습을 본 대원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그냥 네가 한국어를 배워 새끼야. 여기 절대다수가 한국인인데 우리가 너한테 맞추는 것은 좀 그렇지 않냐?]
[빌어먹을…….]
톰은 딱히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이내 휙 하고 문제를 제기한 대원들을 다시 쳐다본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말한다.
[뭐야, 너희들 영어 졸라 잘하네?]
[어머! 시발 들켰네?]
[하하하.]
톰은 웃으며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대원들을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대원들 중 가장 선임이던 이종기가 웃으며 그를 향해 다가와 말한다.
[표정 풀어.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네와 조금이나마 가까워지자는 의미로 장난 좀 쳐 본 거야.]
톰은 그제야 헛웃음을 뱉어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후 돌아서는 이종기를 향해 그가 갑자기 흐느끼며 말한다.
[그러지 마. 나 보기보다는 감성이 풍부한 존재라서 상처를 쉽게 받는다고.]
[…….]
대원들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의 태도를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톰은 여전히 계집아이 같은 태도를 버리지 않은 채 울먹였고, 그걸 내내 지켜보고 있던 강 소령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뱉어냈다.
“다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어. 감성이 풍부하다 해서 우리 동료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
“이 대목에서 내가 한마디만 하지. 폴은 비록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지만 최악의 순간엔 우리 중 누구보다 냉정해질 수 있는 존재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작전에 굳이 그를 끌고 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
“……최악의 상황에 냉정해질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대원들 중 하나, 이종기가 그 말에 재빨리 되물었다.
잠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인 강채훈 부장은 잔뜩 입매를 뒤틀며 말한다.
“우리에게 최악의 순간이 뭐가 있겠나.”
“그거야 적에게 사로잡히는 거죠.”
“하면 그 순간에 자넨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나. 고문은 둘째 치고, 전우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그 더러운 상황에서 말이야.”
“그야 당연히…… 아니 그럼, 우리에게 총알 박으라는…….”
이종기는 뱉어내던 말을 삼킨 채 다시 톰을 쳐다봤다.
용케 대화를 알아들은 걸까, 톰은 비릿한 미소로 이종기를 향해 한쪽 눈을 감아 보였고, 곧 태연하게 말을 뱉어냈다.
[걱정하지 마. 난 그 최악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동료를 버리지 않아.]
[…….]
***
[인질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나에겐 너희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물론 이 말을 본사에서 듣는다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만,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지. 하니, 무조건 살아라.]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른 수송기에선 강 소령의 연설이 이어졌다.
그 말에 대원들은 다짐을 하듯 표정을 굳혔고, 이후 수송기의 뒷문이 활짝 열렸다.
[목표지점 확인! 하강!]
처음으로 뛰어내린 자는 이종기였다.
비록 중장갑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지만 특수 제작한 낙하산은 다행히도 그 성능을 충분히 발휘했고, 이후 20여 명에 달하는 대원들이 차례로 뛰어내린다.
[보급물자 낙하 완료!]
마지막으로 탄약과 추가 장비들을 싫은 상자를 밀어낸 강 소령은 수송기 파일럿을 향해 무전을 날렸다.
곧 저편에서 무운을 빈다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다급한 말이 이어진다.
-참, 한 부장님. 지금 무전을 통해서 우리 사령부로부터 소식이 들어오는 중인데, 그사이 또 유일신과 성전의 후신이라는 집단에서 대규모로 참수를 집행했다는군요. 그 탓에 이제 생존해 있는 자위대원들의 수가 겨우 열다섯 명에 불과하답니다.
“열다섯 명?”
강 소령은 그 말에 주춤했다.
하면 그들이 도착했을 때쯤엔 죄다 주검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큰 상황.
자칫 작전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지 않던가.
“낙하준비.”
하지만 결국 강 소령은 다시 낙하를 위한 재점검에 나섰다.
어차피 본사에선 이미 톡톡한 대가를 받아내기로 한 상황이고 아직 작전취소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으니까.
그들로서는 임무에만 충실하면 그만일 뿐, 생존자의 수가 몇이냐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