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19화
두두두두!
아키오의 외침과 동시에 그들을 향해서 무차별적인 총탄세례가 쏟아졌다.
“조장님!”
당황한 하라는 즉시 대응을 요구했지만 눈앞에서 차량 한 대가 순식간에 완파되는 것을 본 아키오는 넋이 나간 얼굴로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아키오 조장님! 빨리 대처를…….”
“각자 건물이 있는 곳으로 산개해!”
거듭된 하라의 외침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아키오는 그제야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부우우웅!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가들 사이로 파고드는 전투차량들.
이후 매뉴얼 대로 기관총 사수가 응사를 시작했지만, 그들이 쏘아대는 총탄으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은 애꿎은 민간인들뿐이었다.
“빌어먹을, 지금 어디에 사격을 하는 거야!”
사태가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 것을 본 아키오는 다시 무전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쐐애애액!
그 순간 날아오는 또 한발의 RPG와 그로 인해 폭발에 휩싸이는 또 한 대의 전투차량.
“크악!”
문제는 하필 아군차량이 숨어든 위치가 상가 인근이었던 터라 단순히 차량과 대원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런…….”
민간인들마저 휩쓸리는 것을 본 아키오는 뒤늦게 자신의 명령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적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하필 민간인들이 숨어드는 곳을 피신처로 삼았다는 사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고, 그는 어차피 벌어진 일에 매달리지는 않겠다는 듯 다시 부하들을 향해 명령한다.
“2시 방향 시계탑에 RPG 사수가 숨어 있다. 집중 사격한다.”
“안 됩니다! 거긴 아직 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하라는 다급히 조장의 결정을 만류했다.
두두두두!
하지만 패닉에 빠진 사수들은 명령을 받자 비처럼 총탄을 쏟아냈고, 그 무수한 총탄들은 비단 RPG 사수는 물론 피신하던 민간인들마저 덮쳤다.
“뭐 하는 겁니까!”
하라의 다급한 외침에 아키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곧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시민들.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향해 하라가 질책을 쏟아낸다.
“이 사태를 대체 어떻게 해결하려는 겁니까!”
“난…… 그럼 당하고만 있으란 거야?”
잠시 주눅이 드나 싶었던 아키오는 즉시 반박했다.
그럼에도 후환이 두렵기는 했던 듯, 한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상황이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차후를 장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하라가 다시 나선다.
“하지만 이대로 대책 없는 응사를 했다간 문제가 더 커집니다. 차라리 작전 지휘권을 저에게…….”
쾅!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 어디선가 또 한발의 RPG가 날아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벽을 때린 탓에 피해는 없던 상황.
잔뜩 굽혔던 허리를 편 하라가 즉시 아키오를 다시 쳐다보자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댄다.
“난…… 왜 하필 이런 일이…….”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하라는 이미 패닉에 빠진 아키오가 더 이상 지휘를 계속할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
재빨리 그의 손에 있던 무전기를 빼앗아 들자 아키오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그걸 가져가려면 처음부터 부조장 자네가 지휘를 맡았던 것으로 해야 할 거야.”
“…….”
하라는 그 말에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조금 전 벌어졌던 민간인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병력들을 재정비하여 적을 퇴치하는 것이 우선.
하라는 이를 악물고 무전을 날렸다.
“전 차량, 최대한 빨리 시가지를 벗어난다. 8호와 7호 차량은 후방지원에…….”
연신 명령을 내리던 하라는 갑자기 말끝을 끝을 흐렸다.
그 모습이 의아했던 듯 즉시 창밖을 쳐다보는 아키오.
이내 툭 하고 턱을 떨어트린 그는 다시 없이 낙담한 표정으로 욕설을 뱉어낸다.
“시발…….”
부우우웅!
그들의 주변엔 어느새 무장 차량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대응이라도 하련만, 이건 그야말로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 정도의 숫자.
철컥!
그것도 당황스러운 마당에, 눈앞에선 수십에 달하는 RPG가 그들을 향해 겨눠진다.
“…….”
***
“이건 교전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한 것 아닙니까?”
아부다비 호텔에서 TV를 지켜보던 총리가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나 역시도 전해지는 뉴스를 보며 기가 차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선 김영기 실장이 또 하나의 소식을 알려온다.
“사로잡힌 자위대 병력만도 40여 명에 달한답니다.”
“아니, 뭘 어쨌기에 40명씩이나 되는 특수군 병력이 저항도 못하고 포로가 된 겁니까?”
난 황당함에 되물었다.
같은 심정이었던 듯, 김 실장도 연신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는다.
“테러범들의 숫자도 숫자지만, 계획된 매복에 당한 모양입니다.”
“매복이라면, 애초부터 자위대를 노리고 있었다고요?”
“정황으로 보면 그렇다고 봐야겠죠. 의도야 당연히 기를 꺾어놓겠다는 것일 테고요.”
“…….”
“저들 입장에서는 자위대의 본격적인 파병을 막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문제는 이후 테러범들. 아니 반군들이 어찌 나올 것이냐 하는 점인데, 아무래도 사로잡은 자위대원들을 볼모로 일본 정부와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거야 당연한 수순일 터였다.
일이 점점 복잡하게 돌아가는 양상.
절로 한숨이 나오려는 차에 이번엔 또 UAE 측 장성 한 명이 문을 두드리며 방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지금 142번 채널의 뉴스를 좀 보시겠습니까?]
그 말에 우리 일행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동선이 꼬이는가 싶더니 결국 김 실장이 TV 채널을 돌렸고, 이내 사막을 비추는 화면과 함께 기자의 멘트가 들려왔다.
[조금 전 스스로를 유일신과 성전의 후신들이라고 밝힌 단체에서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성명과 함께 영상을 전해왔습니다. 영상 속에선 일본을 향한 성토가 이어졌으며, 이후 그들은 자신들이 사로잡은 자위대 지휘관 중 한 명을 참수하는 장면을 직접 연출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상의 내용이 워낙 잔인하다 보니 방송을 통해서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휙!
순간 우리 일행은 곁에서 멀뚱히 서 있던 UAE 측 장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의미를 이해한 걸까, 그는 즉시 주머니에서 메모리 하나를 꺼냈고, 이후 그걸 호텔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에 꽂았다.
[이게 원본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책상으로 몰려든 우리 일행들은 동시에 모니터를 주목했다.
재생된 영상 속에선 머리 짧은 자위대 장교 하나가 울먹이며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고, 그의 목에는 거의 팔뚝만 한 단검이 들이밀어져 있던 상태였다.
[저는 자위대 특수군 소속 아키오 일등육위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총리님.]
사내는 연신 자국 총리를 향해 구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 옆에 함께 꿇어앉아 있던 사내였는데, 역시 겁에 질려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어도 왠지 다부지다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제 동료와는 달리, 마치 죽음을 이미 각오하고 있기라도 한 듯.
[우린 일본 정부를 향한 단호한 경고의 의미로 오늘 한 명의 자위대원을 참수할 예정이다. 이후 일주일간의 시간을 줄 것이며, 그때까지 우리가 납득할 만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차례로 참수를 거행하겠다.]
이후 재생되는 영상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의 목을 저렇듯 웃으며 참수할 수 있는 저 테러범들의 기질에 치가 떨린 달까.
대상이 누구냐를 떠나서 인간적인 분노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거 참…….”
영상을 지켜보던 김 실장은 도리질을 하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힐끗 쳐다본 총리는 넋을 반쯤 놔 버린 듯한 표정.
하긴, 영화도 아니고, 실제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을 거다.
“이제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총리는 대뜸 나를 향해 물었다.
글쎄, 어찌 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
이건 내가 겪었던 역사와는 전혀 다르기에 나 또한 답을 내릴 수가 없는 문제거든.
***
휘이이잉!
며칠간의 일정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인천 공항엔 정부와 그룹의 주요 요인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번 중동 방문으로 거둔 성과를 생각하면 축제 분위기가 되어 있어야 옳았을 것이건만, 하필 터져 버린 자위대 사건으로 인해 표정들이 영 엉망이었다.
“진 회장님께선 제 차로 가시죠.”
막 차에 오르려는 순간 총리가 동행을 요구했다.
아까부터 연신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뭔가 또 할 말이 있는 모양새다.
탁!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자위대가 이번 사건과는 상관없이 본대 파견을 서두를 모양이더군요.”
차에 오른 총리는 즉시 본론을 꺼냈다.
예상했던 범주의 대응이었던 터라 난 주저하지 않고 대꾸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현 일본 정부로서는 이대로 파병을 취소하는 건 부담이 더 크니까요.”
“그러다가 만약 희생이 더 커지면 그것 나름대로 부담이 심화될 텐데요?”
“그걸 두려워했다면 애초 보내지도 않았겠죠.”
총리는 그 말에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쉽게 말해서 일본 정부는 이번 파병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이 왜요?”
“그야 당연히 군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죠. 우린 이미 중국과 충돌을 겁내지 않을 정도로 커가고 있고, 중국은 또 중국 나름대로 세를 확장하고 있는 상황이 그들에게 편하겠습니까.”
“…….”
“하니 고작 자위대원 몇몇이 희생 됐다고 해서 아차 싶어 철수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 기회에 국민들을 길들이려 하겠죠. 수십 년간 평화에 젖은 국민들을 각성시키려 할 거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탈자들은 어쩌고요? 현재 자위대는 언제든 사표를 내던질 수 있는 공무원들이나 마찬가지의 존재들인데, 끝까지 위험을 감수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마 이 기회에 그 부분도 손을 볼 겁니다. 해서, 어쩌면 저들은 지금 차라리 잘 됐다는 식으로 생각 할 지도 모르죠.”
총리는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평상시라면 일본 사회에서 그런 강제성 있는 법률의 개정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상태에서는 다르죠. 그러니 이 기회에 자위대의 법률안 수정마저도 시도할 거라는 말입니다.”
“설마요.”
“아니요, 필시 그럴 겁니다. 일본 내각은 능력은 없어도 자존심과 질투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단이니까. 그 마당에 자위대원 몇 명 희생됐다고 해서 병력파병을 취소하지는 않을 겁니다.”
“…….”
“게다가 저들은 자국 국민들보다 미국의 눈치를 더 보는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미국과의 관계악화를 일으킬 짓을 하겠습니까.”
총리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딱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 이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사실이라면 정말 상종도 못할…… 한데 저들이 의도한 것처럼 흘러가게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죠.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충수가 될 겁니다.”
“…….”
“그 경우, 가뜩이나 자위대를 기피하는 사회적 현상은 더 심화될 테고, 결국엔 그 후폭풍으로 병력 부족을 겪을 테니까요. 즉, 이후 자위대는 절대로 추가 병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겁니다.”
“…….”
“아마 그렇게 되면 일본 정부는 결국 징병제라는 카드를 꺼내야 하는데, 그 경우 자민당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하니 자충수라는 말이죠.”
“흠…….”
“그리고 중동은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뭐 당장은 으샤으샤 해보겠다고 나서긴 하지만, 착각은 곧 깨질 겁니다. 그걸 염두에 둔다면 사실 우리가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손해는커녕 이후 벌어질 사태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망조가 드는 거지.
“…….”
총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생각을 정리하려는 걸까, 곧 창밖을 향해 시선을 주던 그는 미미한 진동 소리와 함께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전화를 꺼내 든다.
“네, 아직 관저로 향하는 중입니다만…… 네?”
한참 전화를 건 상대와 대화를 잇던 총리가 나를 쳐다봤다.
곧 전화를 끊은 그는 기가 차다는 표정과 함께 말을 뱉어낸다.
“이거 일본 정부가 상당히 곤혹스러워 할 만한 소식인데요?”
“…….”
“이라크 신 정부에서 지금 일본을 향한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교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위대가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했다는군요. 해서 지금 이라크에서는 자위대원들을 향한 동정여론은커녕 자위대 파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답니다.”
“…….”
***
[일본 사회는 현재 참수된 자위대원으로 인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며칠 후, 인터넷을 통해 퍼진 자위대원 참수 영상은 일본 사회를 발칵 뒤흔들어 놓았다.
당연히 파병 중지 여론이 들끓었지만, 자위대원들의 희생은 그 시각에도 계속되고 있는 상태.
기회를 노린 듯 극우들이 장악해 버린 미디어들이 그걸 빌미로 복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세뇌에 가까운 보복여론은 점점 힘을 얻어갔다.
그 탓에 고작 보름 사이 제대로 된 목소리들은 사라져버렸고, 다시 승기를 잡은 정부는 끝내 본대 파병을 실행에 옮겼다.
[일본 내각은 오늘, 자위대법 수정안을 통과시킴과 동시에 법률안의 즉시 적용을 공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제 자위대원들의 경우 정부가 정한 기한 동안은 직위를 이탈할 수 없으며…….]
이후 내 예상대로 일본 정부의 얄팍한 수가 드러났다.
이미 현직에 있는 자위대원들의 경우 이제 정해진 복무 기간 동안은 싫다고 해서 사표를 던질 수가 없게 된 것,
그 탓에 무려 1만에 달하는 병력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송기에 오르게 됐다.
[오늘 오전 1만 2천 명에 달하는 육상 자위대의 파병이 거행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서슴없이 벌어지는군요.”
“어차피 일본이야 말만 민주주의 국가 아닙니까.”
뉴스를 들으며 혀를 내두르는 김 실장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동의하듯 그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려는 차.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요란한 진동을 한다.
“흠…….”
발신자는 국방장관이었다.
느낌이 왠지 이상하여 주저하자 재촉하는 김 실장의 말이 날아든다.
“전화 안 받으십니까?”
“네, 진현승입니다.”
결국 손사래를 치곤 통화버튼을 눌렀다.
저편에서 들려오는 장관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아 있다.
-미군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자위대원 구출 작전을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그게 문제가 좀 생겼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