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18화
휘이이잉!
2010년 12월.
난 그동안 미뤄두었던 UAE행 비행기에 올랐다.
애초 계획대로였다면 왕위 계승 식에 참여해야 했지만, 하필 때를 맞춰 중국과의 분쟁이 터져 버린 탓에 이제야 UAE로 향하게 되었다.
다행히 모하메드와 하사드는 처지를 이해해주었고, 한동안 수출 협상을 미루는 것에도 합의를 했었다.
[환영합니다. 형제여!]
공항에서 재회한 모하메드는 전보다 한층 위세가 돋보였다.
이젠 왕세제가 아니라 왕의 자격임이 온몸에서 드러난다고나 할까.
그 때문인지 나와 총리를 환영하는 행사 역시도 전과는 그 수준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이건 뭐…… 국가 원수 급을 대하는 의전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
그 바람에 총리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K2전차를 비롯한 지상무기들의 구매 수량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면 그 부분에 있어선 돌아가는 즉시 생산을 시작하도록 하죠.]
환영 연회 후 시작된 협상은 별문제 없이 진행됐다.
뭐 어차피 무기박람회 당시 이미 대부분의 구매 결정은 내려졌었던 상황이니까.
그로 인해 K2전차는 물론 아직 개발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레드백을 비롯하여 비호2까지 구매가 확정.
당황스러운 것은 UAE가 전술 지대지미사일. 즉, KTSSM까지도 추가로 도입을 검토 중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이란을 염두에 둔 조치였을 거다.
[이란과의 관계가 요즘도 심각한 수준인 겁니까?]
난 KTSSM의 수출 요구를 조금은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전술 지대지 미사일은 사실상 방어가 아닌 공격무기에 가까운 것.
UAE 같은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가 그걸 원한다는 것이 왠지 생소한 느낌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중동에도 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었던 모양이다.
[그거야 갈수록 더한 상황이죠. 미국이 제재수위를 갈수록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사실 다른 부분이야 감내할 만은 한데, 이란에서 최근 들어 부쩍 미사일 전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면 KTSSM을 수입하시려는 이유가…….]
[만약의 경우 해협 건너편에서 쏘아댈 장 사정 로켓들과 미사일 기지들을 선제 타격할 수단쯤은 갖춰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재우가 개발한 열압력탄은 꽤 효과적인 수단이 될 거라더군요.]
그의 기세는 왠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뭐랄까, 전에는 전쟁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면 이젠 그 가능성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느낌.
왕이라는 위치가 아무래도 그를 꽤 많은 부분에서 바꾸어 놓았나 보다.
[참, 진 회장께서 오시기 전에 하사드 왕세제와 한동안 대화를 좀 나눴습니다.]
[…….]
[현우 에너지와 포스코 지분 문제 말입니다. 진 회장님의 제안을 따르도록 하죠.]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으로 봐선 고스트 이글이 본격적으로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모양이었다.
슬쩍 총리를 쳐다보자 그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긴, 두 기업의 지분이 다시 우리에게 넘어오는 것은 총리로서는 환영을 할 입장일 테니까.
더군다나 포스코의 경우는 국가 기간산업이나 다름없는데, 언제까지고 운영에 있어 외부의 참견을 당할 수는 없지 않던가.
[대신, 우리가 제일 먼저 공급 받기를 원합니다. 쉽게 말해서 도입 수량이 다 채워질 때까지 다른 국가들에 중간 납품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난 그 말에 다시 총리를 쳐다봤다.
물론 물건이야 내가 만들어서 팔지만, 공급순위를 결정하는 문제는 정부에서 국가 간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거든.
안 그래도 미국의 도입 확정 소식으로 인해서 나토 국가들마저도 도입을 검토 중인 상황.
더군다나 주문 수량이 얼마나 될지도 모를 마당에 그건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다.
[몇 기나 도입을 고려하고 계시는지…….]
총리는 넌지시 질문을 뱉어냈다.
그걸 알아야 KAI의 생산능력과 대입해서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지.
딱히 나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침묵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봤다.
[우리 UAE는 120대의 고스트 이글을 수입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하사드 왕세제가 없어서 정확한 숫자는 내 입으로 언급하기가 좀 그렇지만, 사우디 역시 그 정도 수준의 물량을 도입할 것을 고려 중이고요.]
[이런…….]
총리는 난처하다는 듯 한숨을 뱉어냈다.
무리도 아닌 것이 240대의 수량을 맞추려면 KAI의 생산능력으로는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태.
더군다나 현재 우리 군에 납품할 물량을 고려하면 더더욱 난감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지만 난 즉시 대답을 뱉어냈다.
당황한 총리가 순간적으로 나를 쳐다봤고, 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보잉의 라인을 활용하면 됩니다.]
[아! 하지만 그 경우…….]
끝맺어지지 못한 총리의 말은 아마도 물량을 빼앗긴다는 것에서 오는 반발심을 표하려는 것이었을 거다.
무리도 아닌 것이 그걸 우리가 다 수용하는 경우 창출될 일자리의 수가 만만치 않으니까.
한 국가의 총리로서는 당연히 아쉬움이 남았을 거다.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240대 전부를 보잉에서 생산하겠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최대한 라인은 확장을 하되, 그래도 수용 불가능한 물량을 넘기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난 사업가다.
어차피 나야 보잉에서 만들건 KAI에서 만들건 내 이익은 보장 되었고, 그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면 감당할 것은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이군요.”
총리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꾸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소된 탓에 분위기가 한결 유해진 상태.
덕분에 이후의 가격협상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똑똑!
[전하!]
한참 무장 부분을 두고 협상이 이어지던 와중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군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선 군의 지휘관인 듯.
뒤이어 사내는 모하메드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고, 뭣 때문인지 모하메드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나를 향한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난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
이내 그의 입이 다시 열린다.
[방금 이라크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는군요.]
[교전이라면, 우리 병력들 말입니까?]
사실이라면 낭패였다.
줄곧 철수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라서 병력의 수가 얼마 남아 있지 않으니까.
아니 미군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아니요, 일본 자위대 말입니다.]
온갖 생각이 스치는 사이 모하메드가 다시 말했다.
아……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어차피 한국군의 섹터엔 이미 자위대가 들어가 있는 상태였지.
그나저나 자위대가 교전을 하고 있다고?
남아 있는 우리 병력들은 뭘 하고?
***
부우웅!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소속 아키오 일등육위는 맡은 임무에 따라 대원들과 함께 모술 지역의 정찰에 나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술은 한국군이 주둔했던 요지 중 하나.
물론 지금도 일부 병력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아마 며칠 후면 그들 역시 전원 철수를 할 예정이고, 이제부터는 자위대가 그 역할을 대신할 거다.
“불쾌하군.”
무슨 생각을 하던 중인지 그의 입에선 대뜸 투정이 뱉어졌다.
뜬금없는 그의 말에 운전 중이던 하라가 재빨리 되묻는다.
“낮에 한국군 지휘관과 대화를 하시는 것 같더니 혹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일은 무슨. 모술 지역에 잔존하고 있는 반군 세력들에 대한 정보를 받은 것뿐이야.”
“그럼 뭐가 불쾌하시다는 건지…….”
하라는 슬쩍 눈치를 보며 다시 물었다.
들려오는 말은 그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다.
“그 한국군 지휘관 말이야. 우릴 쳐다보는 눈빛이 꽤 불쾌했어.”
“…….”
“뭐랄까, 마치 깔보는 듯한…….”
“텃세라도 부리고 싶었나 보죠. 뭐 이해하시고 넘어가시는 것이 속 편하실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올린 전과를 보면 자부심을 가질 만은 하지 않습니까.”
“누가 그걸 몰라?”
아키오는 슬쩍 언성을 높였다.
그 역시 한국군의 활약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만, 그렇다 해도 그 눈빛만큼은 참아내기 힘들었기에.
더군다나 그는 미 델타부대의 정식 교관훈련마저 6개월간이나 받은, 나름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모욕감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 특수군도 그 정도 무장 수준을 갖춘 상황이면 밀릴 이유가 없지. 건방진 XXX이 어디서 감히 알량한…….”
이어지는 그의 욕설은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인 듯 보였다.
고작 눈빛 하나 때문에 저렇게까지 과한 반응을 보여야 할까.
사실 당사자가 아니고선 그 눈빛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오해는 바로잡자는 생각에 하라가 다시 말을 뱉어냈다.
“무시를 한 것은 아닐 겁니다.”
“…….”
아키오는 휙 하고 그를 쳐다봤다.
마치 그걸 너 따위가 어떻게 아느냐는 듯한 눈빛.
그와 생활하는 동안 몇 번이고 겪었던 일이었던 터라 하라는 이번에도 별스럽지 않게 넘기며 말한다.
“무시를 하려는 의도였다면 그들이 애써 우릴 찾아와서 그렇듯 충고를 해줄 이유가 없었겠죠. 게다가 제가 듣기로는 다른 대원들도 임무인수인계를 받는 과정에서 한국군이 꽤나 친절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래서, 자넨 지금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거야? 내가 무슨 이유로.”
하라는 그 질문에 기가 찼다.
그 이유를 정말로 모르나 싶은 마음에서.
따지고 보면 일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극우 성향이 강한 집안의 후손이 바로 아키오 본인.
그로 인해 대원들의 사상에도 영향을 주던 것이 바로 그였지 않던가.
“조장님은 한국이 대체 왜 싫으십니까?”
“뜬금없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불현듯 뱉어진 하라의 말에 아키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하라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최근 2년간 조장님 휘하에서 생활하는 동안 몇 번이고 그런 느낌을 받아서 말입니다.”
순간 아키오의 얼굴이 와락 찌그러졌다.
그 역시도 오늘 만큼은 매번 상관인 자신에게 쓴 소리를 하는 하라의 태도를 고쳐주겠다는 듯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 자네는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라고 생각하나? 이미 지난 일에 집착해서 미래를 가로막는 저들의 태도를 보고도? 아니 거지새끼들처럼 때만 되면 보상을 부르짖는 것은 또 어떻고.”
“…….”
하라는 그 말에 침묵했다.
하지만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던 탓일까, 아키오는 다시 따지고 든다.
“한데 그게 자네와 무슨 상관이지? 아! 설마, 자네가 절반은 한국계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자네 부인이 순수한 한국계라서?”
“…….”
하라의 얼굴이 그 말에 와락 일그러졌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어도 하필 자신의 부인을 거론하는 것만큼은 참아내기 힘들었기에.
하지만 단지 거기까지였다.
다른 곳보다 위계질서가 강한 특수군에서 상관과의 싸움은 자칫 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고, 그게 하필 타국에서라면 더더욱 문책의 수위가 높을 테니까.
그걸 알기 때문인 듯 아키오는 더더욱 그를 몰아붙였다.
“자네가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상관 안 하겠어. 그렇다고 그걸 나에게까지…….”
한참 말을 뱉어내던 아키오는 뭣 때문인지 갑자기 끝을 흐렸다.
“멈춰!”
이내 휘저어지는 그의 손.
끼익!
눈치 빠른 하라는 즉시 브레이크를 밟았고, 이후 줄줄이 그를 뒤따라오던 차량들도 동시에 멈춰 섰다.
“왜 그러십니까?”
잔뜩 긴장한 하라는 이유를 물었다.
연신 주변을 둘러보던 아키오는 슥 하고 손을 들어 마침 그들이 지나치던 거리를 가리킨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
“거리가 너무 조용하잖아.”
“그거야 시간이…….”
하라는 어둑해지는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쐐애애애액!
한데 그때, 어디선가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뒤편에 있던 작전 차량 중 한대가 엄청난 폭음을 일으키며 저편으로 나동그라진다.
“습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