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17화
[…….]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자세가 자연스레 고쳐졌다.
잔뜩 힘이 들어간 리암의 목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 느낌이었으니까.
한데 침묵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인 걸까, 그가 다급히 말을 잇는다.
-이런, 혹시 모르고 있었던 문제입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만, 우리 정부의 행동이 제 예상보다는 좀 빨랐다 싶어서요.]
-그럼 역시 진 회장께서는 알고 있었던 문제라는 거군요.
말투에선 서운함의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겠지.
정작 자신은 정보가 될 만한 것을 매번 가장 먼저 내게 알려주는 마당에 난 그 중요한 사실을 함구하고 있었으니.
사정 설명을 하려는 차에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진 회장 입장에서야 그런 소식을 내게 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죠.
[소식을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기보다는 그 결정이 실제로 내려질지를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한다는 겁니다. 사실 이쪽에서도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한국 정부가 정말로 철수를 결정할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리암은 이번 사태가 꽤나 의외였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긴, 최근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는 나조차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정도니까.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그 강경함이 오만과 아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인데, 덕분에 나로서도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보다 수월해지기는 했다.
솔직히 쓸데없는 고집만 강하고 정작 결정적일 때는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는 인물이 대통령인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거든.
-그나저나 우리 정부 반응은 그리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게 다행인 거죠.
[…….]
뒤이은 그의 말에 다시 침묵했다.
당장 병력을 빼겠다는 마당에 부정적인 반응이 아니다?
이건 뭔가 조금 이상하거든.
의아한 마음에 되묻자 그가 넌지시 말을 잇는다.
-한반도에 언제 전운이 감돌지 모른다는 것만큼 설득력 있는 이유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실은 그래서 백악관도 동아시아 전략을 다시 짤 모양새입니다.
[전략을 다시 짠다고요?]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예 한국을 중국의 최우선 방어선으로 삼겠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병력들의 송환은 필요할 테니 용인하겠다는 의지인 겁니다.
[…….]
우릴 중국에 대항할 카드로 쓰겠다는 말이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다른 걸 떠나서 최근 벌어졌던 우리와 중국 사이의 분쟁이 미국으로서는 꽤 많은 생각의 변화를 갖게 할 기회가 되었을 테니까.
쓴웃음이 지어지려는 차, 리암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번 한국의 조치에 따라 미국도 최소한의 치안유지 및 이라크 신정부의 군대를 교육할 병력들만 남겨두고 철수를 결정한 듯싶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지금처럼 급격히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주둔은 불필요한 비용만 초래하니까요.]
-맞습니다, 해서 말인데, 내가 정말로 전해주고 싶은 말은 이제부터입니다.
[…….]
-진 회장께선 미군이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들의 잉여 장비를 어떻게 처리하리라고 보십니까.
그 말에 눈이 절로 번뜩였다.
막상 생각해보니 미군의 경우의 경우는 해외주둔군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종종 잉여장비를 공여해 버리고는 하거든.
과도한 공급으로 인한 운용비용의 증가를 비롯하여 여타 이유들을 들어서.
그래도 혹시나 싶어 넌지시 되묻자 그가 웃으며 대답한다.
-맞습니다, 아마도 장비들의 대부분은 현지공여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난 혹시나 한국 정부에서도 관심이 있나 싶어서요.
[잉여장비라면…… 혹시 그중에 폴라베어도 포함되는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라크에 뿌려진 폴라베어의 수량만도 무려 5만 대입니다. 그걸 본국으로 송환하는 문제는 둘째 치고, 차후 관리비용을 생각하면 아마 꽤 많은 수량을 포기해 버릴 가능성이 크죠. 해서 아마도 3만 대 정도는……
[하면 그 3만 대의 폴라베어는 우리 군이 양도 받으면 좋겠군요.]
즉시 대꾸를 뱉어내자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제 보니 그는 애초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한 전화였던 듯싶었다.
-내가 이래서 전화를 한 거요. 진 회장이라면. 아니 한국 정부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그거야…….]
-한데, 그건 정부의 의지입니까. 아니면 진 회장 혼자만의 생각입니까. 나로서도 그걸 알아야 힘을 보탤 것 아닙니까.
불현듯 돌아온 그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공여 받는 것이야 뭐가 문제일까만은, 그 수량이 3만 대씩이나 되는 상황이면 우리 정부로서도 이후 개수 작업에 들어갈 예산이 문제가 될 수도 있거든.
결국 난 정부와의 통화를 핑계로 잠시간 시간을 달라는 양해를 구했고, 이후 재빨리 청와대를 비롯하여 군 관계자들과의 통화를 시도했다.
“네, 일단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그 정도 수량이면 우리 기동군단은 물론 기계화 부대에도 폴라베어를 한꺼번에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입장에선 꿈에서나 가능할 수 있을 이야기군요. 하지만 개수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텐데요?
역시나 대통령은 예산을 가장 먼저 걱정했다.
하긴, 국가를 운영하는 수장으로서는 당연한 반응.
그러나 얼마 후 다시 걸려온 전화에선 태도가 또 달라져 있었다.
-국방장관의 말에 따르면 이라크에 있는 폴라베어의 경우엔 개수비용이 그리 크게 들어가지는 않을 거라던데, 사실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죠. 미군의 다른 장비들과는 달리 폴라베어는 생산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니까요.”
-하면 우리가 가져오는 것으로 하죠.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가 공여 받을 수 있도록 진 회장께서 손을 좀 써 주세요.
딸칵!
난 주먹을 불끈 쥐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솔직히 그 3만 대를 재우가 생산하여 군에 납품하는 상황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어불성설.
차라리 우리가 들여와서 개수라도 하면 우린 우리대로. 또 정부는 정부대로 좋은 일이지 않던가.
“흠…….”
한데 그때, 의문이 하나 스쳤다.
말이야 이해한다 해도 미 정부로서는 병력을 철수를 하겠다는 우리가 곱게 보이지 않았을 텐데.
그 상황에서 왜 이런 호의를 베풀려는 것일까.
[리암 회장님?]
생각은 곧장 행동으로 이어졌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던 걸까, 리암의 말투가 한껏 조심스러워진다.
-그게 실은…… 뭐 좋습니다. 솔직히 말하죠. 백악관은 지금 한국군의 빈자리를 자위대로 채울 생각인 모양입니다. 해서, 폴리베어의 공여는 일종의 한국의 반발을 다독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진 회장도 알다시피 자위대의 파병 문제는 한국 정부에겐 꽤 민감한 부분 아닙니까.
[…….]
난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한데, 자위대의 파병이 미국만 원한다 해서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대체 일본이 무슨 생각에서 그걸 동조한 것인지가 새삼 궁금해진다.
‘아무리 극우들이 판을 쳤어도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끌어낸 걸까.’
씨익.
생각을 곱씹던 와중 갑자기 웃음이 뱉어졌다.
일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떠나서, 저들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벌써부터 상상이 갔거든.
아무리 안정화에 들어섰다고는 해도 이라크엔 아직까지 반군세력이 남아 있는 상황.
과연 자위대 따위가 그들을 버텨낼 수 있을까?
-사실 나로선 백악관의 의도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어차피 이라크는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자위대 정도로도 안정군의 역할은 가능할 것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그 말에 심드렁한 대꾸를 뱉어냈다.
의도를 오해한 듯 리암이 넌지시 말을 잇는다.
-혹시라도 전후 재건 사업이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비록 파병은 한다 해도 이라크 전후 처리에서 일본의 몫은 없을 테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막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왕 서방이 챙기게 둘 수는 없잖아.
상대가 눈앞에 없다는 사실도 잊은 채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는 데, 다시 그의 변명이 이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굳이 나서겠다며 제시한 조건이 지나치게 매력적이라서 이번엔 차마 정부를 만류할 수가 없었죠.
[…….]
-다른 걸 떠나서 당장 F35의 구매 수량을 최대 240대까지 대폭 늘리겠다는 마당에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더불어 차기 스텔스 전투기 개발 사업에서 노키드를 협력업체로 낙점까지 했다면 더더욱.
듣고 나니 대충 상황이 이해됐다.
하긴, 그 정도 규모의 반대급부라면 리암도 흔들릴 만은 하지.
한데 일본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미친 것 아닌가 싶다.
F35가 240대면 한해 들어가는 운용비용만 해도 얼마나 소모되는 지는 계산을 안 하는 건가?
가뜩이나 운용비용이 높아서 불과 십여 년만 지나도 도입비용에 맞먹는 돈을 쏟아부어야 할 텐데.
아니 그건 둘째 치고, 가동률의 하락은?
아무리 정비 권한을 얻는다 해도 주요 부품의 정비는 노키드가 감당할 터.
그에 따른 가동률 저하를 속 터져서 어떻게 보고 있을 거냐는 말이다.
‘당장 F-15조차도 뒷감당을 못할 처지인 주제에…….’
따지고 보면 그것도 문제다.
당분간 보잉은 F-15의 정비에는 신경을 써줄 여력이 없는 상태.
무려 200대가 넘는 F-15J 문제도 해결을 못할 상황에서…….
‘뭐, 그거야…….’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다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본에 닥친 문제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아니, 오히려 나로서는 대환영을 해야 할 일이지 않던가.
상황이 그러면 차후 육자대와 해자대는 그야말로 개털이 되는 거니까.
[다른 건 몰라도 자위대 파병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정부에 알려야 할 것 같군요. 아무튼 소식 감사합니다.]
난 애써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행여 우리 정부가 미국의 조치에 반대할까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났지만, 다행히 이후 이어진 대통령과의 통화에선 안도할 만한 대꾸가 들려왔다.
-자위대가 그런 삽질을 한다면 우리로서야 대환영이죠.
“그렇죠. 그거야말로 천하에 삽질이죠.”
***
[정부는 이라크에 주둔 중인 병력들 대부분을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철수일정은 올 연말까지로 결정 되었으며…….]
그로부터 얼마 후, 이라크에 파병 됐던 우리 군의 본격적인 철수가 시작됐다.
현재 사우디로 넘어가 있는 병력들과 일부 공병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력들.
그들과 더불어 미국이 공여한 물자들마저 싣고 와야 하는 터라 수송선단의 규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정부는 이번에 미군에서 공여한 전투차량들을 한동안의 개수 작업을 거쳐 일선 부대에 보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무려 3만여 대에 달하는 수량인 터라 개수비용은 만만치 않지만…….]
미국으로 인한, 아니 일본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건 생각지 못한 소득은 우리 전력의 엄청난 증강을 가져오게 될 거다.
무려 3만 대.
그 정도 규모면 사실 기동군단 전체를 커버하는 것을 넘어서 어지간한 기갑부대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테니까.
“상태가 좋은데요?”
김영기 실장은 속속 도착하는 폴라베어들의 상태를 보며 눈을 빛냈다.
현지 정비가 잘 이루어졌었던 걸듯, 주요 부품들과 엔진은 여전히 쌩쌩한 상태.
이대로라면 개수비용이 큰 부담은 되지 않을 분위기다.
“그렇다 해도 3만 대를 죄다 개수하려면 그 비용이 꽤 만만치 않을 겁니다.”
물론 압도적인 수량에서 오는 부담감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우리 사정에 맞도록 방탄 장갑을 개수하는 부분이라던가.
여타 추가 무장의 장착에 있어선.
하지만 무장추가가 이루어지는 수량은 일부분일 뿐.
또한 장갑의 개수 부분에 있어선 우리도 그사이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해결책이 될 거다.
지속적인 소재들의 재조합 연구를 통해 방탄 소재의 생산수율을 기존보다 60% 이상 끌어올린 상태거든.
[오늘 오전 자위대 일부 병력들이 우리 군을 대신하여 이라크 평화유지를 위해 파병 되었습니다.]
얼마 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자위대의 파병을 시작했다.
언제 개발한 것인지 나로서도 처음 보는 전투장비들과 차량들. 그리고 여타 무장들을 애써 부각하는 저들의 방송.
자신들의 무력을 과시해 보이기라도 하겠다는 의도임은 분명한데, 내가 보기엔 그저 한숨만 나온다.
무장은 고사하고. 특수 작전군까지 포함된 부대가 저렇듯 어설퍼 보이기가 어디 그리 쉬울까.
특히나 등 떠밀려 가는 것이 역력한 저 표정과 지나치게 높은 연령대.
정말로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 저 어설픈 병력들이 과연 그 험난한 사막에서의 전투를 버틸 수 있을까, 싶은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