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16화
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특히나 오전에 나와 함께 핵 추진 잠수함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던 합참의장의 경우는 상황이 꽤나 공교롭다는 듯한 눈빛.
하긴, 불과 몇 시간 전 핵연료 문제를 화두로 토론을 나누었던 마당에 하필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그로서도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을 거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이미 핵을 소형화 하는 것에 성공하여 그걸 미사일에 장착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한데 그걸 넘어서 이젠 SLBM까지 발사에 성공했죠.”
잠시 합참의장을 향했던 시선을 되돌리며 말했다.
여전히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
하지만 무얼 강조하려는 것인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모양새다.
“쉽게 말해서 저들은 이미 핵 무력의 3대 요소를 다 갖추었다는 소린데, 그에 비해 우린 핵잠수함 건조조차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단지 핵연료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순간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꿈틀했다.
이제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
살짝 입술을 축이곤 다시 말을 이었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이미 재처리 시설을 갖추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정작 핵 추진 잠수함에 쓰일만한 핵연료의 생산은 허용되지 않고 있죠.”
“…….”
“물론 그게 우리에게 정해진 한계 때문임은 인정합니다. 재처리라고는 해도 핵융합이나 독성물질 반감을 위한 작업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조항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능력과 기반이 있는 마당에 못한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진 회장님 말씀은, 우리가 북한을 독자적으로 치는 걸 묵인하든지. 아니면 핵연료를 자체 생산할 수 있게 해주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라고 압박을 하라는 겁니까?”
대꾸를 한 이는 대통령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고민스러운 표정과 함께 되묻는다.
“글쎄요, 그걸 허용하려면 IAEA 설득은 둘째치고 조항까지 수정해야 할 겁니다. 문제는 그게 자칫 우리가 딴 마음을 품을 길을 열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과연 미국이 그걸 허용하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폭격을 해 버리라는 식으로 나오고 말겠죠.”
“물론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 폭격에 동의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 전체가 난장판이 되고, 그럼 중국으로서는 탈출구가 생기는 셈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기껏 꼬리를 잡아 둔 중국을 그렇게 허무하게 놔 버리겠습니까?”
“…….”
대통령은 그것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내가 근본적으로 주장하려는 바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질문을 뱉어낸다.
“결국 선택지는 우리의 핵잠수함 보유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데…… 하지만 그 경우, 우리가 핵연료를 자체 생산하는 것을 허용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들이 판매한다고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애초부터 노리는 바도 바로 그겁니다.”
순간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하긴, 지금껏 자체 생산을 주장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이 낯설기는 하겠지.
슬쩍 옷매무새를 가다듬곤 다시 말했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우리 목적이 핵연료의 확보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미국이 그동안 거부하던 판매 승인만 받아내도 목적은 이루게 되는 것 아닙니까?”
“아! 그러니까 애초부터 가이드라인을 높여 놓고 어쩔 수 없이 판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유도하겠다는…….”
대통령은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이제야 의미를 이해한 듯.
난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어차피 전시 작전권이 우리에게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끝내 폭격을 주장하면 막지 못한다는 거죠.”
“그렇겠죠…….”
”그 와중에 우리가 반대급부로 아예 자체 생산을 주장하면 저들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 건데, 대부분의 사람 심리가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우리의 자체 생산을 허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제공하겠다고 나설 거라는 거죠. 그럼 결과적으로 우리 문제는 끝…… 이해가 가십니까?”
“흠…….”
대통령은 그제야 미소를 내비쳤다.
한데 슬그머니 한쪽 눈매가 일그러지는 것으로 봐선 또 무슨 불만이라도 생긴 듯한 모양새다.
“쯧, 그나저나 난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군요.”
“뭐가 말입니까.”
“미국의 태도요. 정작 핵 추진 잠수함 건조는 묵인했으면서 끝까지 핵연료는 팔지 못하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원. 결국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가 이렇듯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불만의 원인은 뒤늦게 드러났다.
그와는 달리 나로선 대충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던 상태.
넌지시 내 생각을 읊었다.
“그건 아마도 일본의 훼방 때문이었을 겁니다.”
“일본이요?”
대통령과 군의 주요 요인들은 즉시 나를 쳐다봤다.
절로 지어지는 떨떠름한 표정을 굳이 억제하지 않은 채 다시 말했다.
“우리가 핵 추진 잠수함 보유를 묵인 받은 것은 현 미국의 정권이 아니라 전 정권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핵연료 판매에 대해서 완고하게 거부를 하지는 않은 상태였죠.”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현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 그럼 이거 또 미국의 친일 정책이 다시 시작된다는 겁니까?”
대통령은 쓴 웃음과 함께 내 말을 받았다.
이제야 내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깨달은 듯.
넌지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쯧, 여태 미국의 등을 긁어준 것은 우리건만, 왜 일본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지 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거죠.”
“…….”
“미국은 철저한 자국 중심주의 국가입니다. 해서 우리가 그들과 가까워졌다 해서 이미 일본에게 꼽아 놓은 빨대를 버릴 이유가 없죠. 아마 미국은 적당히 일본의 비위를 맞춰주며 그들로부터의 이익도 챙기려는 심산일 겁니다.”
그 말에 대통령의 인상이 다시 찌푸려졌다.
굳이 의미를 해석하자면 그 경우 우리 역시 미국을 그저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 이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럼 결국 우리도 이기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죠.”
예상처럼 이후 다짐에 가까운 말이 들려왔다.
뭐 대통령으로서 여태 그걸 몰랐겠냐만, 스스로의 의지를 다시 다져보겠다는 거겠지.
딱히 할 말이 없어 침묵하려는데, 이번엔 조금 생뚱맞은 말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이럴 때는 우리가 핵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쉽군요.”
그 점은 비단 그만이 가지고 있던 불만은 아닐 거다.
정작 지들은 핵을 가지고 지랄들을 하는 판국에 우린 기껏 연료 하나 확보하는 것도 참견을 해대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한 불만.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거든.
지금이야 비록 핵연료 하나를 확보하는 것에도 힘에 부치지만, 언젠가는 그걸 우리 손으로 생산하는 때가 올 것이고, 이후엔…….
“그나저나 이거 시기가 좀 공교로운 것 아닙니까?”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무렵 대통령이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또 뭔가 싶어 쳐다보자 그가 잔뜩 미간을 좁히며 말한다.
“하필 중국과의 분쟁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북한이 저렇듯 SLBM 사출시험에 나선 것 말입니다.”
“…….”
나 역시 그 부분이 좀 의심스럽기는 했다.
왜 하필 지금일까.
더군다나 이 시기에 북한에게 그럴만한 기술적 기반이 있다는 것도 왠지 수상쩍고.
혹시 또 중국인가?
그들이 몰래 북한에 기술과 자본을 지원하여…….
‘흠…….’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우리에게 흡수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터.
하지만 우리의 경제발전과 무력증강의 속도로 봐선 그게 현실화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회귀 전과는 달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밖에.
“중국이 의심스럽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라면 동의하죠.”
넌지시 말을 뱉어내자 대통령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던 그는 갑자기 입매를 뒤틀며 말한다.
“그게 사실이면 우리도 늦게 전에 확실한 대비 태세를 갖춰야죠. 그래서 말인데, 이젠 슬슬 이라크 파병 병력들도 철수시켜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네?”
“대통령님, 갑자기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에 놀란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은 일제히 대통령을 쳐다봤다.
하지만 꽤나 단호한 표정.
곧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나라가 언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일지 모르는 상황이 된 마당에 핵심 병력들을 해외에 둘 수는 없죠. 특히나 북한을 상대하려면 후방 타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걸 담당할 특전사 병력들은 당연히 소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미국이 그걸 인정하겠습니까?”
합참의장은 즉시 반발했다.
나 역시도 그 점을 입에 올리려던 차, 대통령이 다시 말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와 일본 사이를 재고 있는 마당에 우리라고 손해만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차피 이라크는 지금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덕에 미국도 병력들을 슬슬 철수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더군요. 하니, 우리가 빠진다고 해서 뭐라 할 입장은 아닐 겁니다.”
대통령은 말끝에 다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내 의견을 구하기라도 한다는 듯.
잠시 헛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그렇다 해도 완전한 철수는 곤란합니다. 말씀처럼 안정기에 접어든 이라크는 곧 재건을 시작할 텐데, 기껏 피를 흘려 놓고 그 열매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철수를 할 때 하더라도 막대한 전후 재건과정에서 우리의 기여도만큼은 챙겨 먹자는 것이었다.
추산된 재건 비용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억 달러.
미국도 양심이 있는 마당에 그걸 독식하려 할 수는 없을 테고, 결국 우리도 그 열매는 수확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건 나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해서 진 회장님의 말처럼 최소한의 주둔 병력은 유지할 생각입니다.”
다행히 대통령도 그 점은 인지하고 있었던 듯했다.
아니,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면 외려 바보인 거지.
그나저나 당장 그걸 미국에 통보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핵연료 확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까지 튀어나와 버리면 자칫 변수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거든.
쉽게 말해서 미국이 이라크 철수 용인을 조건 삼아 또 다시 핵연료를 포기 시킬 수도 있다는 거지.
“동의합니다. 해서 일단은 북한 SLBM 사출 실험 문제를 핑계로 핵연료 확보를 하고 난 후에야 철수문제를 거론해 볼 생각입니다.”
대통령은 이후 이어진 내 문제 재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반응인가?
아무래도 머지않은 시기에 리암과의 통화가 있어야 할 분위기다.
***
[미국은 오늘 북한의 SLBM 발사실험을 강력하게 성토했습니다. 이어 유엔을 통한 북한 제재의 수위를 한층 더 높이기로 결정했으며…….]
며칠 후 유엔에서는 북한을 향한 추가 제재안이 다시 가결됐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 러시아야 이젠 우리와의 끊어낼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상황이기에 반대표를 던질 이유는 없었고.
그나마 중국이 시간을 끌며 버티긴 했으나 결국 전 세계의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
[다음 달 이후, 중국은 북한에 지원하던 원유의 양을 기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삭감해야만 합니다. 안 그래도 원유 사정이 열악한 북한은 이로써 보다 심각한 에너지 난을 겪을 전망입니다.]
[북한은 오늘, 서방세계의 제재에 끝까지 맞설 것을 천명했습니다.]
북한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긴, 김씨 왕조가 살아남으려면 핵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로 인해 또 굶어 죽어 나갈 북한 주민들. 아니 정확히는 평양 밖의 거주민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어차피 평양 주민들이야 엘리트 그룹들인 마당이니 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고…….’
[미국 정부와 우리 정부는 오늘 오전 북한의 핵 위협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 우리의 핵 추진 잠수함 건조에 합의했습니다. 다만 국제사회의 반발을 염려하여 연료로 쓰이는 우라늄 농도를 20% 미만으로 확정했으며 연료 제공은 미국 측에서 판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며칠 후, 정부와의 줄다리기 끝에 미국은 결국 핵연료의 판매를 허용했다.
대신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만을 허용하는 선에서.
이로써 우린 본격적인 핵 추진 잠수함의 건조를 의결했고, 숱한 토론과 입찰과정을 통해 재우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회장님, 리암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리암 회장이 다급히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혹여 파병 철수 소식을 들은 건가.
마음을 가다듬고 수화기를 들자 예상대로 그가 파병문제를 거론한다.
-듣자 하니 곧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사안의 중요성 치고는 제법 차분한 말투였다.
아무래도 내게 그 문제를 따지자고 한 전화는 아닌 모양새.
아니나 다를까, 곧 예상을 증명하는 말이 들려온다.
-아! 혹시 오해할까 싶어 미리 말하는데, 난 그걸 따지자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백악관의 대처 소식을 좀 전해드릴까 싶어서 전화를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