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10화
[그 방법이라는 것이 혹시 현지자본을 이용한 우회 투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재우가 직접 지분을 인수하는 경우가 아닌, 미국 내의 진 회장 개인의 자본으로 투자가 이루어지는 거죠. 예를 들면 테슬라를 이용한다거나.
[미 정부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모르겠습니까?]
난 다시 헛웃음을 뱉어냈다.
한마디로 저건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건데, 왠지 이번엔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거든.
다른 곳도 아니고 보잉은 국가의 주요 전략기업에 속하는 곳.
그런 곳에 얄팍한 우회 투자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다고?
만약 그런 꼼수가 가능했다면 중국은 벌써 막대한 돈을 지원하여 손발을 묶어두었을 테고, 벌써 기술 탈취를 시도했을 텐데?
-뭘 염려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리암이 넌지시 말을 이었다.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는 듯.
또 무슨 말이 나올까 싶어 침묵하자 그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솔직히 보잉 같은 기업에 그런 식으로 우회적인 접근이 가능할 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오.
[…….]
-하지만 진 회장께서는 지금 핵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여태 그런 우회 투자 방식을 막아왔었던 것은 정부가 아니라 나를 비롯한 우리 그룹들이라는 것. 한마디로 우리가 허용하면 가능하다는 거요. 물론 의회가 들고 일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의회의 핵심 인물들 역시 나와 우리 그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
-게다가 결정적인 장애물은 일부 법 조항인데, 그거야 아주 약간만 개정을 하면 되지 않겠소?
[법을 개정하겠다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그게 가능하기에 나와 우리 그룹이 미국의 그림자라 불리는 겁니다.
[…….]
-아무튼, 그 부분은 우리에게 맡기고 진 회장께서는 자금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주지해야 할 점은 차후 이익금에 대한 이동을 감시받기는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재화의 이동만큼은 꽤 민감하게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런데 진 회장이야 어차피 그걸 한국으로 빼내 갈 생각도 없지 않소.
[그거야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재우가 아닌 현지 법인으로 인해 벌어들인 수익은 그곳에 재투자한다는 것이 내 원칙.
때문에 미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이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겁니까?]
하지만 의문은 남아 있다.
대체 왜 리암은 그렇게까지 해서 내 이익을 보장해 주려는 것인지.
말로는 보잉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단서가 붙었긴 했어도, 이건 나를 지나치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차후 내가 다른 마음이라도 먹고 보잉을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면…….
아니지. 그건 미국 정부가 그냥 둘 리가 없으니 패스.
그럼 혹시 그걸 염두에 둔 건가?
어차피 나야 투자자로서의 선을 지킬 것은 확실하니 이익 외에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거지.
더군다나 나 외엔 당장 보잉을 살릴 만한 조건을 확실하게 갖추고 있는 존재도 없고.
결정적으로는…….
-의아한 거요? 내가 왜 진 회장을 이렇게까지 밀고 있는 건지.
생각하는 와중 리암이 내 속을 읽은 듯한 질문을 해왔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소. 단지 진 회장 외엔 적임자가 없기에 제안하는 거니까. 결정적으로 재우는 보잉에 아쉬운 것이 없지 않습니까. 이미 재우의 기술력이 보잉을 훌쩍 앞서고 있는 마당이니.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생각이 리암의 입을 통해 뱉어졌다.
역시 보통은 아닌 존재랄까.
감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갑자기 나를 향하고 있던 사무실의 시선들이 움찔한다.
마치 일그러진 내 표정이 부정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는 듯.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설사 면허 생산을 허용한다 해도 핵심 부품은 우리가 봉인한 상태로 제공한다는 것. 또한 우리 정부를 주축으로 한 기술 유출 감시위원회를 설립한다는 것.]
“오오!”
그 말에 사무실 분위기는 다시 환해졌다.
즉시 저들을 향해 손사래를 치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말에 집중했다.
-아마 받아들여질 겁니다. 어차피 우리 정부도 타국에 전투기를 수출할 경우 반드시 그 조건을 요구해왔었으니까. 물론 미 정부가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적이 많기는 하지만 상대가 재우인 상황이면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겁니다.
리암은 결국 내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격세지감이라는 단어.
그동안 내내 미국 업체들의 눈치를 보며 전투기를 면허 생산하던 것은 우리였던 상황에선.
하지만 이제 그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는 이 시점에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다면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할 거다.
그동안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우리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향후엔 이 작은 나라가 미국 못지않은 국제적인 지위를 가지게 될 순간이 오는 것은.
“뭐랍니까?”
수화기를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질문이 쏟아졌다.
난 곧바로 대화 내용을 저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했고, 그제야 김 실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털썩 소파에 주저앉는다.
“미국이…… 우리 전투기를 면허 생산하는 날이 오다니…….”
유독 반응이 격한 것은 안 대표였다.
하긴, 한때 정보부의 수장이었던 그로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타국의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젠 그도 인식해야만 한다.
기술의 우위는 결국 기회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는 준비된 자가 붙잡는 법이라는 사실을.
‘흠……’
물론 고스트 이글이 채택된 것엔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는 있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2020년도에도 채 해소하지 못한, 무려 3000개가 넘는 통합전투기의 소프트웨어 오류문제가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것.
그로 인해서 여전히 F-15의 역할은 크지만, 가까운 우방이 가진 전투기가 그걸 이미 압도하는 수준이라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게다가 미국은 어느 국가를 상대로든 절대적 전력의 우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이미 완성형인 고스트 이글은 저들의 미들급 전투기로서 확실한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
‘뭐가 됐건, 결국 벽을 하나 깨버렸다는 것이 중요하지.’
***
[여러분, 2010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2010년의 새해가 밝았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의 줄다리기에 힘을 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의 수출업체들의 사정은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어 갔다.
[일본 내각은 오늘 결국 자국의 철강업체들의 통합을 승인했습니다. 또한 디스플레이를 비롯하여 자동차 업계의 통합도 가속화 될 전망이며…….]
일본의 사정은 우리보다 몇 배는 심각했다.
굳이 이번 사태가 아니라도 그동안 저들의 산업기반은 우리나라로 인해 무너져 가고 있었던 상태.
반도체를 비롯하여 가전과 배터리. 그리고 이젠 자동차 분야까지도.
해서 그나마 기계를 비롯한 소재와 부품들을 주력으로 밀고 있었던 차에 거대 시장인 중국을 잃어버렸으니 그 사정이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 관방장관을 비롯한 내각 요인들은 새해 들어서 첫 미국 방문을 시사했습니다.]
우스운 것은 저들의 태도였다.
센카쿠 열도에서의 충돌을 이유로 내내 중국을 향한 한국의 압박을 종용하던 저들이 막상 제재가 시작된 이후엔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
아니, 단순히 소극적인 수준을 넘어서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미국까지 방문하여 제재를 하루속히 해결해달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 정부는 다음 달까지 중국의 명확한 태도 변화가 없다면 제재 수준을 한 단계 격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미국 금융 자본가들에게 먹혀들 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금융시장이 전면 개방되는 순간이면 그들로서는 중국 자체를 손아귀에 쥐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그 엄청난 이익을 눈앞에 둔 저들 앞에 일본의 로비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있기나 할까.
결국 저들은 매번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고, 고육지책으로 내세운 저들의 대책은 관광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책을 시행하는 거였다.
“관광이라…… 아쉬워서 어쩌나. 그것도 곧 다가올 자연재해로 인해서 꿈이 무너지게 될 텐데.”
일본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경제적 타격을 가하게 될 대지진.
그리고 그때를 대비하여 이미 저들의 자본시장에 침투하고 있는 내 세력들로 인해서.
“회장님! 리암 회장님으로부터 방금 전화가 왔는데, 방금 미 행정부가 고스트 이글의 우방을 상대로 한 대외수출 문제에 있어서 관여하지 않겠다는 회의 결과가 통과되었답니다.”
한참 뉴스를 보며 이죽거리던 와중 김 실장이 희소식을 들고 들어섰다.
기대는 하고 있었다만 꽤 빠르게 현실이 되어 버린 명제.
한데 우습게도 그 순간 머리를 채운 것은 당장 미국시장이 열렸다는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오히려 사우디를 비롯한 여타 중동 국가들의 반응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뭐 어차피 미국시장이야 내가 얻을 것은 재화에 국한된 것일 뿐이고. 중동 국가들의 경우는 부수적으로 뒤따라오는 것들이 더 많은 상황이니까.’
정유사와 포스코의 지분인수 같은.
삐익!
그때, 느닷없이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모하메드 왕세제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뒤이어 들려온 것은 하필 모하메드가 나를 찾는다는 소식.
아마도 그 역시 내내 미국의 반응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만간 UAE에 방문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상처럼 그의 첫인사는 꽤 의미심장했다.
마치 이젠 거칠 것이 없어졌으니 서둘러야 하지 않겠냐는 듯한 태도.
내심 시치미를 떼려는데, 갑자기 그의 입에서 생뚱맞은 말이 뱉어졌다.
-제가 다음 달쯤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거든요.
[왕위를 계승한다고요?]
순간 자연스레 든 생각은 선왕의 승하 여부였다.
보통 한 나라의 왕위 계승은 선왕의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니까.
하지만 그건 아닌 듯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 오해하실까 봐 하는 말인데, 형님께선 건재하십니다. 단지 연세가 연세니만큼 국가의 운영에서 이제 물러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거죠.
[그렇군요.]
난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한 투로 대꾸를 뱉어냈다.
이내 책상 위에 있던 달력을 보며 일정을 확인하려는 차, 저편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들려온다.
-제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은 진 회장님께도 꽤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겁니다.
[…….]
무얼 뜻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왕세제와 왕은 엄연히 다른 권한을 가진 존재.
쉽게 말해서 나와 관계가 돈독한 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지.
단순히 무기분야를 떠나 사회간접망 개선과 도시개발 같은, 각 분야에 걸쳐 재우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그 탓에 우린 구체적인 대화의 장은 추후로 미루기로 했고, 내 중동방문은 기정사실화됐다.
‘왕위 계승이라…… 그러고 보니 사우디의 왕위 계승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 된 상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군.’
막 전화를 끊을 무렵, 애꿎게도 생각의 흐름이 사우디의 왕위 문제로 뻗어 갔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지금의 하사드는 사촌에 의해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역사.
문제는 지금껏 하사드와 내가 협력해 왔던 것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과 앞으로도 그의 존재가 내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나로서는 이제 역사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불리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는 거지.
“모하메드 왕세제가 벌써 왕위를 계승하는 겁니까?”
그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으로 짐작하고 있었던 걸까. 김 실장이 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다는군요.”
“한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모하메드 왕세제가 하루라도 빨리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더 이익이지 싶은데요.”
“전 지금 UAE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됐습니다. 그저 잠깐 딴 생각을 했을 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나저나 전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 할 것 같군요. 새해를 맞은 마당에 아직 본가에도 찾아뵙지 못했거든요.”
난 머리를 털어내곤 수트를 챙겨 들었다.
이내 비서진들을 향해 새해 덕담을 던지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려는 차, 갑자기 경호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나타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언제 복귀했습니까?]
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던 탓에 반가움이 앞섰다.
그런데 어째 얼굴에서 전에 없던 독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뭐지?
뭐랄까, 휴가가 아닌 어딘가에서 잔뜩 고생이라도 하고 온 사람의 눈빛이다.
[혹시 부모님이라도 뵙고 온 겁니까?]
재빨리 곁을 지키는 그녀를 향해 은근슬쩍 다시 말을 걸어봤다.
하지만 대답 대신 지어지는 어색한 미소.
결국 답은 듣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어낸다.
[정신수양 좀 하고 왔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강채훈 소령에게 제가 패배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
피식!
뭐라 할 말이 없어 웃음으로 대꾸하곤 엘리베이터 올랐다.
“회장님!”
그런데 이번엔 또 김 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고개를 돌리자 저편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그녀가 숨넘어갈 듯한 표정으로 말을 뱉어낸다.
“헉헉! 방금, 서해에서 우리 해경이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측 어선을 향해 실탄을 발포했답니다.”
“……경고사격을 했다고요?”
“아니요, 단순한 경고사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다섯이나 되는 사상자가 나올 리가 없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