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09화
[우리 정부는 오늘 오전 서해 불법 조업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우리 해경의 사망사고에 대해 중국 측에 엄중한 항의를 전달했습니다.]
뉴스를 듣는 순간 싸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걸 떠나서 꽤 공교로운 시기에 저러듯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그저 우연일까.
그게 사실이길 바란다만 왠지 썩 마음이 편치가 못하다.
“아무튼 중국 어민들이 문제구먼. 그나저나 죽은 사람은 안타까워서 어쩌나.”
사태를 파악한 희원의 입에선 과격한 중국 어민들을 향한 성토가 뱉어졌다.
뭐 저런 상식 밖의 사상과 행동 양식을 가진 중국인들이 어디 어민들뿐일까.
맹목적인 애국심에 사로잡혀 뒤틀린 집단행동을 하는 중국인들도 문제인 것은 마찬가지지.
그나저나 희원의 말처럼 희생된 해경이 나로서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이 상황에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왠지 오늘도 식사를 같이 하기는 글러 먹은 것 같군.”
“뭔 소리야?”
뜬금없이 뱉어진 성호 놈의 말에 희원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긴 한숨을 뱉어낸 성호 놈은 즉시 내 손을 턱짓했고, 그 타이밍에 정확히 내가 쥐고 있던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거 봐. 이런 사건이 나면 희한하게 어디선가 현승이를 찾는 전화가 온다니까?”
난 헛웃음을 뱉어내곤 통화버튼을 눌렀다.
발신자는 김영기 실장.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즉시 회사로 복귀해 달라는 요구.
슬그머니 친구 놈들을 쳐다보자 놈들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이 가늘어진다.
“또 펑크냐? 내 이럴 줄 알았지. 저놈 저거 혹시 밥 사기 싫어서 매번 뺑끼 쓰는 거 아니야?”
“나도 지금 그게 의심스러워. 어떻게 매번 밥만 먹으려고 하면 누군가로부터 소환이 되냐고. 아니 지가 무슨 서먼 몬스터야?”
아직 복귀 의사도 밝히지 않은 상황이었건만, 놈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돌아서 버렸다.
오늘만큼은 친구들과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려는 차, 또 다시 휴대폰이 진동하며 이번엔 문자 하나가 날아온다.
-혹시나 싶어서 문자 드립니다. 다급한 복귀 요청은 서해 사건 문제 때문이 아니라 미 국방부로부터 걸려온 전화 때문입니다.
“응?”
***
[우리 정부는 조금 전 향후 중국의 불법 조업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습니다.]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선 서해에서 발생한 사고 뉴스가 여전히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마침 정부의 태도가 궁금하기도 하던 터라 난 몇 번의 갈등 끝에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은 뉴스를 통해서 들었습니다만, 청와대에선 어쩔 생각인지 혹시 들으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도 이제 막 청와대로 향하는 중이라서 아직은 들은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대통령님의 격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조만간 뭔 사달이 나기는 할 것 같습니다.
합참의장은 내심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지금은 중국과의 관계가 역대 최악이니까.
전 같았다면 외교적인 채널로 해결을 봤겠지만, 이젠 자칫 그게 군사적인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을 문제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거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난 잠시 온갖 수를 떠올려 봤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중국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해 우리가 강경한 자세로 나가고, 또 다른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연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물론 당장 전면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저들과의 국지적인 충돌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던가.
“흠…….”
그건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애초부터 워낙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이니까.
더군다나 자신들의 힘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있는 존재들인 것도 그렇고.
더군다나 현재 중국 내부의 권력 싸움이 미국과의 마찰로 인해 꽤나 복잡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외려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와의 충돌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 선택이 얼마나 오판인지를 알아야 할 텐데…….’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 부분이었다.
지금은 설사 일본과 맞붙는다 해도 밀리지 않는 것이 우리 해군의 전력 수준.
저들이 그걸 채 인식하지 못하고 덤벼드는 우를 범할까 싶은.
해서 왕창 깨지고 나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자존심을 세우려 더 덤벼들까 봐.
그 경우, 자칫 전면적인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현 상황에서 그건 또 짜증스러운 일이 아니던가.
‘결국 놈들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 방법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생각의 끝에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차량이 막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섰을 때쯤 제법 그럴듯한 생각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 상대가 물러서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약점을 쥐고 흔드는 거지. 그리고 놈들에게 그럴만한 약점은 꽤나 많기도 하고.’
***
“무슨 일입니까?”
도착한 사무실엔 이미 김영기 실장을 비롯한 회사의 주요 간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의외였던 것은 어지간한 하면 서울로는 잘 올라오지 않던 KAI의 안 대표까지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
고개를 갸웃하곤 소파에 자리하자 김 실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조금 전 마이클 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는데, 조만간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합니다.”
“마이클이 갑자기 왜요?”
“유선을 통한 대화였던 터라 확실한 용무는 말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고스트 이글과 연관된 문제가 아닐까 싶더군요.”
“정확한 용무를 말하지도 않았다면서요. 한데 김 실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의아함에 되물었다.
순간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안 대표가 대답을 대신한다.
“저에게도 전화가 왔었거든요.”
“마이클이 안 대표님에게 전화를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오늘 오전, 대뜸 제게 전화를 걸어선 고스트 이글의 생산라인 규모와 KAI의 전체적인 생산 여력에 대해서 물어왔습니다. 해서 그의 방문 목적이 아무래도 고스트 이글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짐작하고 있는 겁니다.”
“흠…….”
나로선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대략 짐작은 가지만 차마 수긍할 수가 없는.
괜한 고민보다는 차라리 당사자와 직접 통화를 하는 것이 낫지 싶어 전화를 들려는데, 돌연 김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선다.
“회장님, 리암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리암 회장이?”
왠지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이클에 이어 리암까지.
같은 생각을 한 듯 나를 향해 시선이 몰려들었고, 난 헛웃음을 내뱉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별일 없으십니까?]
-별일이 왜 없겠습니까. 가뜩이나 중국과의 줄다리기로 한창 머리가 아픈 판국에.
리암의 목소리는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마침 중국의 반응에 대해선 나 역시도 궁금했었던 터라 잠시 전화를 건 목적을 묻는 것은 미뤄둔 채 다시 물었다.
[중국 측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 이쪽은 지금 서해에서의 사고로 인해서 꽤 머리가 아픈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만.]
-아! 그 소식은 나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중국 어민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민폐를 끼치는군요. 그건 그렇고, 우리와 중국의 협상은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뻗대더니,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겁니까?]
-본격적인 제재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거죠. 대표적으로 철강의 경우, 그동안 질 좋은 제품은 거의 한국이나 일본을 통해서 조달했었는데, 그게 막히다 보니 내부사정이 꽤 난처해진 모양입니다.
[그 부분은 솔직히 중국만 아니라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으로의 수출 길이 막힌 덕분에 포스코가 지금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거든요.]
그건 사실 예고됐던 부작용이었다.
중국과의 교역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 그들만 어려움에 처할까.
하지만 기왕 넘어야 했을 산이라면 감내하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의중이었고, 미래를 위해선 차라리 지금 그 산을 넘어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포스코는 그래도 양반이죠. 일본 철강업체들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난리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비단 철강만이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 걸쳐서 말입니다. 참, 포스코의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러지 말고 이 기회에 진 회장께서 아예 포스코를 인수하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어차피 사우디나 UAE가 꽤 많은 지분을 보유 중인데, 그들과 협상을 해 보면…… 이후 정부 지분만 진 회장께서 흡수하게 되면 어려운 일은 아니지 싶은데요.]
[그거야…….]
사실 그 부분은 나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단지 우리 기업들의 위기상황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었을 뿐.
하지만 사업은 냉정해야 한다.
특히나 포스코의 경우는 이대로 가면 자칫 해외로 완전히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을 상황.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손을 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혹시 마이클로부터 전화 받았습니까?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리암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이제부터가 본론이 시작되는 시점.
잠시 목을 축이곤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아, 다른 것이 아니라. 실은 마이클 단장이 얼마 전 나를 찾아왔었습니다. 해서 고스트 이글을 미 공군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묻더군요.
[미 공군이 고스트 이글을 도입한다고요?]
말을 뱉어내자 순식간에 다시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하나같이 경악에 찬 얼굴들.
특히나 안 대표는 턱이 거의 바닥에까지 떨어질 판이다.
-이걸 어디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사실 미 국방부는 고스트 이글의 대외수출을 조건으로 일부 기술이전을 요구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요?]
-하지만 진 회장께서 그 조건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자체적인 결론을 내렸더군요.
[그야 당연하죠. 거래라는 것은 서로가 인정하는 합리적인 조건을 두고 오가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즉, 우리가 수출을 하든 안 하든 그건 우리 선에서 내려져야 할 결정이지 그걸 거래조건으로 둘 수는 없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뱉어낸 말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토해낸 거나 다름없었다.
막말로 전투기의 수출 문제는 엄밀히 따진다면 우리의 주권.
미국이 뭐기에 그걸 허용하고 안 하고 따지고 나설 것이며 왜 그게 협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던가.
10년 전이었다면 몰라도 이젠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는 거다.
-하아…… 진 회장께서 그렇게 나올 줄 알고 국방부도 포기를 해 버린 겁니다.
한데, 들려오는 말이 왠지 심상치가 않았다.
뭐랄까, 전과는 달리 눈치를 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
아마 저들도 이젠 옛 방식으로는 협상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래서 난 국방부에 한 가지 제안을 했었습니다. 어차피 공군은 통합 전투기의 확보와는 별개로 고스트 이글 급의 4.5세대 전투기를 원하고 있고. 그렇다고 F-15의 개량은 언제 진행될지. 아니 개량이 성공할지도 알 수 없고…….
그는 말은 점점 꼬리가 길어졌다.
더군다나 꽤 의미심장한 방향으로.
심호흡을 하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툭하고 본론이 치고 들어온다.
-하면 차라리 보잉에서 고스트 이글을 면허 생산하여 공군에 납품하는 것이 어떨까…… 그에 더해서, 미국뿐만 아닌 우방국들로의 수출 길을 열어주고 일정 물량을 보잉이 생산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하고 말이오.
[맙소사!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난 기가 차다는 투로 되물었다.
말이 좋아 면허생산이지.
이건 자칫 보잉이 재우의 하청으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건데, 그걸 미국에서 받아들일 이유가 없지 않던가.
한데 그때, 저편에서 리암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청이 될 운명이라면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
-내 이쯤에서 솔직하게 말하리다. 이틀 전 보잉에서 5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지원을 요구했다가 반려됐습니다.
[반려되었다면, 정부가 보잉을 포기했다고요?]
-그럴 리가요. 단지 지금은 중국과의 충돌로 인해서 지원할 만한 여력이 없으니 내후년으로 예산 지원을 미룬 거죠. 한데 문제는 보잉이 그때까지 버틸 여력이 없다는 거요.
[…….]
-하니, 이대로 파산으로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재우의 조립라인 역할을 하더라도 명맥을 잇는 것이 낫지 않겠소?
왠지 그럴듯한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만약 고스트 이글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우방국들을 상대로 팔려 나간다면 그 수량은 어마어마할 터.
하지만 당장 KAI의 조립라인 규모로는 그걸 감당할 수가 없다.
한데, 그 물량의 상당 부분을 보잉이 흡수하면 공급문제는 단숨에 해소가 되고, 보잉으로서도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는 충분하다는 거지.
[그렇다 해도…….]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다른 걸 떠나서 상황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 버리면 미국의 자존심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다는 것.
그리고 첨단 무기의 경우엔 반드시 자국 업체가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을 도입한다는 룰이 깨져 버린다는 거다.
과연 그걸 미 정부가 받아들일까?
아니, 그걸 떠나서 나는?
수출길이 완전히 열리는 것은 좋다지만, 결국 그건 내 이익을 보잉과 나눠야 하는 건데, 굳이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뭐가 있지?
-진 회장의 이익은 보장받을 방법이 있습니다.
이어진 반론에 리암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또 무슨 황당한 제안을 하려나 싶어 침묵하자 그의 넌지시 말을 잇는다.
-진 회장께서 보잉에 투자를 하는 거요. 단 경영권을 빼앗아가지 않는 선에서. 그렇게 되면 이익에 대한 회수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아 물론 염려하는 것이 무언지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미 정부가 핵심 군수산업 분야에 해외 업체가 끼어드는 것을 두고 볼 리가 없죠.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