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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05화 (20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05화

“배럴당 20달러에 유가를 고정한다고요?”

쉽게 떨쳐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향후 등락폭이 심해질 국제유가를 감안하면 더더욱.

물론 먼 미래에. 그리고 몇 개월 정도 산유국들의 이해득실 문제로 인해 유가가 마이너스로 간 적이 있다곤 하지만, 그거야 아주 특수했었던 경우고.

대부분의 경우 유가가 40달러 선을 오르내렸던 것이 평균이며 심한 경우엔 100달러를 넘어갈 때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거저나 마찬가지다.

“흠…….”

더군다나 더 중요한 핵심은 거의 반 세기간 가격변동 폭이 제로라는 점이다.

그 말인 즉, 유가의 흔들림으로 오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음을 뜻하며 경우에 따라선 우리가 산유국에 준하는 에너지 안정성을 누릴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그랬습니다. 한데 그 경우 정부가 중간에 끼어들어야만 한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그야 당연하죠. 만약 원유가를 그대로 기업에게 공급해 버리면 관련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이 지나치게 강해집니다. 그 경우 수입국들로부터 각종 보복 조치는 물론 고율의 관세를 두드려 맞을 가능성이 크죠.”

“역시 진 회장님은 판단이 빠르시군요.”

대통령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어색한 마음에 마주 웃어 보이곤 다시 말을 이었다.

“하면 역시나 세금으로 공급가를 조절하시겠다는 생각이신 겁니까?”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싶습니다. 정부로서도 세수 확보에 막대한 도움이 될 테니까요.”

사실 핵심은 그것이지 싶었다.

세수 확보.

당장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으로서는 그게 제일 매력적이었겠지.

그렇다고 해도 기업들 역시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

막말로 유가의 큰 변동만 없어도 재무 관리를 비롯하여 여러 부분에서 관리가 수월하니까.

결국 어느 부분을 봐도 그 제안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

“세수 확보 면에선 확실히 엄청난 도움이 되겠죠. 그나저나 사우디와 UAE는 왜 그렇게까지 무게추가 기우는 제안을 한 것인지 영…….”

난 무심히 중얼거렸다.

정말로 이유를 몰라서라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저들의 대범함이 당황스러워서.

대통령도 의미를 이해한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들이기는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경우, 우리의 해상전력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진 회장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죠? 즉, 호위함을 비롯해서…… 어쩌면 함대 하나가 통째로 신설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야 당연한 대처일 겁니다. 원유수송로의 안전 확보는 한 국가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난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순간 뇌리를 스친 생각 하나.

어쩌면 대통령의 세수 확보 욕심에는 그것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은 것이었다.

아니, 단순히 해상전력 확대만이 아니라 군 전력의 전체적인 확대.

즉, 이 기회에 국방비의 증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

“혹시 그렇게 되면 국방비를 인상하실 생각이십니까?”

생각은 곧바로 질문으로 이어졌다.

역시나 심상치 않은 표정.

이내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수긍의 의미가 가득 묻어나왔다.

“그 정도 세수 확보 수준이라면 솔직히 국방비의 증액도 고려를 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흠, 그럼 문제는 역시나 미국이군요.”

무심코 말을 뱉어내곤 즉시 헛웃음을 지었다.

정작 고스트 이글의 수출을 논하는 것이 제정신이냐는 듯 따지고 들었던 마당에 어느새 나 역시 이미 수출을 동조하는 태도로 말을 뱉어내고 있으니까.

역시나 그게 우스웠던 듯 대통령도 힐끗 나를 쳐다본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 회장께서도 마음이 동하시기는 한 모양이군요. 이쯤에서 우리 솔직해집시다. 가능하다면 시도할 용의가 있습니까?”

“무장을 비롯한 전투시스템의 다운그레이드 형이라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겠죠. 더군다나 기술이전도 아니고 그야말로 순수한 수출인 상황이면 더더욱. 게다가 이건 재우로서도 천문학적인 이익을 볼 사업인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곤 해도 전신 방탄 수트의 경우는 진 회장께서 수출을 꽤나 꺼리던 물건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상대가 우리와는 이제 거의 피를 나누는 것과 다름없는 우방 아닙니까. 게다가 KF-02건 외골격이건 우리 측 관리 및 감시 인원이 상주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기술 및 장비들이 유출은 불가능하고요.”

“아! 마침 나도 그 점이 궁금하긴 했습니다만, 기술 유출의 가능성은 정말로 없는 겁니까?”

“없습니다. 설사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서 기체나 외골격이 유출된다 해도 소재 및 여타 기본적인 기술이 없으면 온전한 기술습득은 불가능합니다.”

“…….”

“물론 흉내는 낼 수 있겠죠. 특히 구조적인 부분이나 여타 설계상에 있어서.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흉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으로 결론 지어지죠. 제가 그렇듯 초 내열 기술을 비롯하여 여타 기술들을 얻기 위해서 미국과 러시아를 찾아다니며 난리를 친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그것도 그렇군요.”

대통령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전 두 나라가 이번에 투입했던 중장갑형 외골격에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조건을 두고 딜을 걸어오는 상황이면 그것도 욕심을 낼 만은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것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한 거겠죠. 아니면 그것까지 욕심을 냈다간 진 회장이 단숨에 거절을 할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고.”

대통령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대꾸했다.

이내 다시 침묵에 빠진 그는 한 참 후에야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이건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 있을 미 국무장관과의 회의에 참석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요?”

“아무래도 이번 미 국무장관의 방한이 진 회장님 말처럼 심상치가 않는데, 안타깝게도 정부 내에는 진 회장님만큼 협상을 주도할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이럴 때면 사실 곤란하기가 그지없었다.

엄연히 정부 대 정부의 회의에 민간인에 불과한 내가 나서는 것이 미국 정부 관료의 눈에 좋게 비쳐질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때, 대통령이 넌지시 웃으며 말한다.

“자격을 따지고 싶으신 거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리암 회장이 참석할 예정이니까요.”

“…….”

***

똑똑!

“일찍 출근하셨습니다.”

며칠 후, 회사에 들어서자 김영기 실장이 재빨리 보고서를 들고 올라왔다.

본사 이전의 책임을 맡은 탓일까, 부쩍 수척해진 얼굴인 그의 손에는 오늘도 여전히 한 무더기의 서류들이 들려 있었다.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네, 정부에서도 적극 협조를 해주고 있으니까요.”

“듣자 하니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은 아니라고 하던데, 우리 본사가 전부 입주할 만한 곳이 있기는 한 겁니까?”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삼정그룹 이 회장님께서 내곡동에 있는 삼정그룹 교육센터를 매각해 주시기로 했거든요. 마침 부지 규모도 적당하고 건물의 크기와 구조도 알맞은 형태라서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안에도 이전은 가능합니다.”

그 점은 꽤나 다행인 일이었다.

막말로 본사 이전이 애들 이름도 아니고.

건물까지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또 한세월을 보내야 할 테니까.

조만간 이 회장에게는 따로 거하게 밥이라도 사야 할 모양새다.

“저 그리고 이것…….”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김 실장이 다시 서류 하나를 들이밀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은 PMC 라는 단어.

이후 확인한 것은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벌써요?”

“마침 임시국회 시즌이지 않습니까. 전에 회장님께서 미래를 약속하셨던 김동호 의원이 당내 의원들을 중심으로 적극 나서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언론을 움직여야죠.”

김 실장은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뭣 때문인지 이내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는 그의 태도.

또 뭔가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어 쳐다보자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아, 다른 게 아니라 PMC 말입니다. 만약 설립되면 꽤 많은 인재들을 필요로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해서 특전사와 UDT. 그리고 여타 특수부대 출신 전역자들을 대거 영입할 생각입니다만.”

김 실장은 순간 눈을 빛냈다.

이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싶더니 웬 이력서 한 장을 들이민다.

“이게 누굽니까?”

“이번에 이라크 보복작전을 책임졌던 강채훈 소령입니다.”

“…….”

“물론 지금은 현역이지만 곧 전역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탁!

난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은 채 김 실장을 쳐다봤다.

눈빛의 의미를 이해 한 걸까, 그가 다급히 설명을 잇는다.

“물론 군에 꼭 필요한 인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성향이 워낙 극단적이라서 군 내부에서는 사실상 그가 향후 장성으로까지 진급할 가능성에는 무게를 두고 있지 않죠. 때문에 정작 그를 위해선 우리가 끌고 오는 편이 낫지 싶습니다.”

“성향이 어떤데요.”

“글쎄요,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

“일단 직접 만나보시죠.”

잠시 고민하는 사이 김 실장이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순간, 그가 재빨리 문을 향해 다가갔고, 곧 이력서에 있던 사진 속 인물을 실제로 이끌고 들어왔다.

“어떻게 이 시간에…….”

“합참에서 이번 작전 성공을 이유로 휴가를 준 상태입니다. 해서 제가 미리 연락을 했죠.”

난 김 실장의 말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시에 나를 향해 다가온 강채훈 소령은 슥 하고 손을 내밀며 절도 있는 말을 던진다.

“강채훈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야말로 영광이군요. 그런 어려운 작전을 아무런 피해 없이 성공시킨 영웅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강 소령은 그 말에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꽤나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또 웃는 모습을 보면 딱히 까다로운 스타일 같지는 않은 느낌이다.

“한데 의외군요.”

“네?”

강채훈은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급히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김 비서가 커피잔을 내어왔고, 난 그걸 강채훈에게 권하며 다시 말했다.

“강 소령 같은 인물이 이렇듯 쉽게 군을 떠날 생각을 했다는 점 말입니다.”

순간 강 소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뭔가 여운이 남는 듯한 표정.

이후 재빨리 초점을 되찾은 그는 넌지시 말한다.

“솔직히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재우가 설립하는 PMC라면 미래를 걸어도 좋을 거라 생각했고…….”

“했고?”

왠지 여운이 남는 뒷말이었던 터라 뒷말을 재촉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가 옅은 미소를 내비친다.

“또한, 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 소령 자신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

왠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던 터라 지그시 쳐다봤다.

조금도 시선을 피하지 않던 그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며 말한다.

“전 사실 군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군에 남아 있다간 언젠가 큰일을 치르지 싶어서 말입니다.”

나도 몰래 눈썹이 올라갔다.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낀 걸까, 곁에 있던 김 실장이 다급히 입을 열었지만 난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아 지금 강 소령의 말은…….”

“무슨 말인지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

“현재 우리 군의 성향을 보면 계급이 올라가면 갈수록 타협해야 할 것들이 꽤나 많죠. 그게 강 소령과는 맞지 않는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강채훈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군인을 보는 것이 얼마 만이던가.

불현듯 생겨나는 욕심에 난 즉시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재우가 강채훈 소령을 채용하는 것으로 하죠. 휴가가 끝나는 대로 즉시 전역계를 제출하도록 하세요.”

“…….”

워낙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던 듯 강 소령은 물론 김 실장까지 눈이 동그래졌다.

솔직히 기왕 결정을 내린 마당이면 빠른 행동이 낫지 않을까.

표정에서 의미를 읽은 듯 강 소령은 내 손을 굳게 붙잡으며 말한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굳이 그런 다짐이 아니라도 실망할 일은 없을 것 같군요.”

난 짧은 대꾸와 함께 일어섰다.

이내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문을 연 순간 하필 저 편에서 대기 중이던 나타샤와 눈이 마주쳤다.

[…….]

나를 지나친 나타샤의 눈은 곧장 강 소령에게 꽂혔다.

저 강렬한 눈빛.

분명 언젠가 본 적이 있었건만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힐끗.

그때, 이번에는 나타샤를 쳐다보는 강 소령의 눈에서 갑자기 불꽃이 튄다.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그제야 난 나타샤가 보내고 있는 저 눈빛의 정체를 깨달았다.

호승심.

알렉산더 카렐린을 마주했을 때 보였었던 바로 그 표정.

“흠…….”

이거 왠지 앞으로가 흥미진진해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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