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96화
난 그 말에 들이켜던 잔을 다급히 내려놨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 경우 미국의 무기수출에 상당 부분 방해가 될 텐데요?]
[압니다. 해서 나 또한 ‘가정’이라는 말을 전재했던 거요.]
[…….]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당장 미 공군이 고스트 이글에 대한 욕심이 그만큼 크다는 점입니다.]
[그 욕심이 과연 손실을 감당할 정도일까요?]
[그거야 정부가 판단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혹시 또 모르죠. 수출 문제에 있어선 차라리 F35 같은 5세대 기종으로 시장 장악력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왠지 그럴듯한 가정이었다.
아무리 고스트 이글의 성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태생의 한계는 넘을 수 없다는.
즉, 비 스텔스기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
그렇다고 우리가 기체의 성능을 죄다 드러내면서까지 수출을 할 이유는 없으니 사실상 저들이 우위에 있는 것은 맞지 않던가.
“흠…….”
뭐 그 문제야 그렇다 치고.
어쨌건, 난 미국이 정말로 고스트 이글을 전면도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걸 떠나서 그건 저들이 군수 분야에서 안방을 내주는 것을 뜻하는데, 미 정부가 그걸 용인할 리가 없거든.
그럴 바에야 차라리 고스트 이글이 가진 장점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더 크지.
종말 단계까지 고도의 기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기술. 또는 마킹된 표적을 끝까지 추적하는 소프트웨어 기술 같은.
솔직히 그것들만 F-15에 이식해도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수준은 되지 않던가.
‘ 문제는 내가 그 기술들마저도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저들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점인데…….’
혹시 그걸 미끼로 삼으려는 건가?
자신들에게 몇몇 기술만 양보하면 다운그레이드 된 기체 정도는 수출을 인정하겠다는.
[자자, 뭐가 됐건 그건 그때 가서 풀기로 하고. 이쯤에서 난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소이다.]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무렵 리암이 넌지시 말했다.
무얼 확인하고 싶다는 걸까.
눈을 빛내며 쳐다보자 이제까지 술기운에 젖어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말을 뱉어낸다.
[진 회장도 이번에 깨닫는 바가 있었을 것 아니오. 나, 그러니까 리암이라는 존재도 결국엔 얼마든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그런데도 나와 끝까지 손을 잡을 생각이 있느냐는 거요.]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향후 나의 적이 진 회장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마당에?]
뒤늦게 그의 의도가 읽혔다.
언터처블.
이제껏 그런 존재로만 알려진 자신도 결국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그릇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상태.
하니 내 생각도 바뀔 수도 있음을 떠보고 있는 중이라는 걸.
이런 때는 뭐라 대답하는 것이 좋을까.
잠시 고민 끝에 말을 뱉어냈다.
[예전 7억이나 되는 빚을 지고 있던 한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중 하나가 후배들의 회식 자리에서 호기롭게 계산을 했답니다.]
[…….]
[그러자 후배들이 적극 만류했고, 그때 그 코미디언이 그랬다더군요. 빚이 7억이 있으나 7억 50만 원이 있으나 다를 것이 뭐가 있냐고.]
[그게 무슨…….]
[쉽게 말해서 적이 하나건 둘이건 그게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
***
미국에서 돌아온 지도 어느덧 열흘째.
고스트 이글의 미 공군 도입 문제에 대해선 아직 미 국방부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긴, 그렇듯 중대한 문제가 그 짧은 사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아마 확실한 결론이 도출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거다.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지 않을까 싶은데…….’
정말로 기체도입으로 분위기가 흘러간다면 진즉에 마이클에게 전화가 왔어야 정상이거든.
그나저나 내가 이도 저도 다 거부하면 어쩌려고 그렇지?
막말로 나야 이익은 없어도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잖아.
내가 고작 수출 허용에 목을 맬 거라 생각하면 그거야 말로 큰 오산.
그렇게 나를 겪고도 김칫국부터 마시는 저들의 행태가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똑똑!
“면담 시간 좀 되십니까?”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김영기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도 그의 손에는 한 무더기의 서류가 들려 있는 상태.
한데 뭐가 그리 급한지 반팔 셔츠 차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연신 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뛰어오신 겁니까?”
“네, 워낙 사안이 급해서.”
“또 무슨 일이 있기예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향했다.
그제야 들고 있던 서류를 내게 건넨 김 실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한다.
“전에 제게 넌지시 현우 로템 인수를 추진해 보라고 하셨던 것 기억 하십니까?”
“……그랬었죠.”
물론 기억한다.
K2전차의 파워팩이 완성되던 날.
기왕이면 사업 자체를 우리가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그런데 그게 왜요?”
“해서 그동안 제가 현우 측에 지속적인 인수 의사를 타진했었는데, 방금 전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습니다.”
“로템을 넘기겠다고요?”
“그렇습니다.”
“갑자기 왜요?”
“자세한 건 말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룹이 본격적으로 쪼개질 모양입니다.”
“…….”
“그쪽 집안이 워낙 복잡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그런데요?”
“해서 현 로템을 지배하고 있는 정태민 회장께서도 이번에 몇몇 사업을 정리하여 집중 경영을 선포한 모양입니다. 어차피 방산 분야는 재우로 인해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거죠.”
“경쟁력이 없다? 하지만 K2 전차의 메인 사업자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 업체가 말입니까?”
“물론 시장성을 고려하면 K2의 미래가 밝은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지금 생산 시스템으로는 아무리 팔아도 정작 로템에게 주어지는 수익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죠.”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예전 K9 자주포가 그랬듯 K2 전차 하나에도 매달린 개발업체의 수가 장난이 아니긴 하지.
그 많은 수의 업체들과 이익을 나누다 보면 어지간히 팔아서는 아마 수익을 챙기기가 어려울 거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에게 넘기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우린 경우가 다르다.
거의 대부분의 부품을 탈레스에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은 물론 통합 관리로 인해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한 상태.
아마도 정태민 회장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 아무래도 우리가 파워팩 개발업체인 것도 그렇고, 이후 군에서 사업자가 변경 되는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업체는 우리뿐이니까요.”
“하면 인수 금액은요?”
“그쪽에선 딱히 자신들이 손해 보지 않는 선만 챙겨주었으면 싶은 눈치였습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정태민 회장께서 따로 바라는 것이 좀 있는 눈치라는 거죠.”
“뭘 말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하이닉스를 다시 인수할 의향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에 대해 회장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요.”
“…….”
이때쯤 하이닉스는 해외 인수설이 재기 되고 있을 때였다.
역사에 따르면 2011년쯤엔 현우 가에서 다시 그룹 재건의 기치로 인수설이 나왔었지만 결국 포기했었고.
그런데 그 역사가 달라질 예정인 건가.
“인수과정에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닐 테고…….”
“그렇겠죠. 아마 인수 이후를 말하는 걸 겁니다. 삼정처럼 공정에 대한 도움을 받고 싶은 모양입니다.”
김 실장은 내 혼잣말에 재빨리 대꾸했다.
슬쩍 쳐다보자 그가 머쓱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일단 생각 좀 해보죠. 삼정과의 관계도 있는 마당에 무턱대고 그걸 허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삼정과의 관계가 문제라면 그건 어떨까요.”
복잡한 심정으로 서류철을 닫으려는 순간 김 실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무슨…….”
“삼정보다는 한 단계 낮은 기술을 제공하는 거죠.”
“미안하지만 그 생각은 나도 이미 해봤습니다.”
웃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안했던 듯 머리를 긁적인 김 실장은 내가 수트를 챙기자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어딜 가십니까?”
“디펜스에 가봐야죠. 오전에 K21의 차체 시제품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아! 저도 마침 그걸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김 실장은 뒤늦게 말을 전하며 따라붙었다.
동행이라도 할 모양새.
굳이 상관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놀리자 그가 넌지시 말을 쏟아낸다.
“그나저나, 이번 IDEX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IDEX는 UAE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대규모 방산 전시회를 뜻한다.
전 세계 무기 개발업체들로서는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의 장.
재우에게도 그건 마찬가지니 만큼 빠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연히 참가해야죠. 안 그래도 모하메드 왕세제가 몇 번이나 전화가 왔었습니다.”
“하지만 일정이 촉박한데, 괜찮을 까요?”
“어차피 기갑차량들의 경우는 목업으로 대체할 텐데, 굳이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긴, 거기서 화력시험을 하는 것도 아닌 바에야…… 그나저나 꽤 오랜만에 중동 나들이를 하시게 됐습니다.”
김 실장은 꽤 기대가 된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긴, 다른 곳도 아니고 나와는 가깝디가까운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잔뜩 포진해 있는 곳이니까.
게다가 최근 재우의 제품들이 곳곳에서 활약을 하는 상황이다 보니 아마 머릿속에선 벌써부터 셈을 하느라 바쁠 거다.
“차량 준비됐습니다.”
사무실을 나서자 김 비서가 재빨리 다가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순간 드는 허전함.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자 나타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타샤는 어디 갔습니까?”
“아! 유다희 씨는 잠시 마음을 다스린다고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연락했으니 곧 내려 올 겁니다.”
“아니요, 오늘은 나타샤가 함께 갈 곳은 아니라서……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유다희 씨요?”
“네, 나타샤가 이제부터 자신을 그렇게 불러달랍니다.”
“…….”
별일이다 싶어 헛웃음을 뱉어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마음을 다스린다는 거지?
“혹시 나타샤에게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요,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대꾸하는 김 비서의 얼굴엔 웃음기가 맺혀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눈이 가늘어지려는 차, 그녀가 픽 하고 실소를 뱉어낸다.
“실은 유다희 씨가 요즘 콘솔 게임에 빠져 있는데, 워낙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게임이라서 매번 보스를 깨지 못하고 죽는 모양입니다.”
“콘솔 게임?”
땡!
말을 뱉어내려는 차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황당하긴 했어도 딱히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에 안도하며 발을 옮기려는데, 무언가가 뇌리를 스쳐 간다.
‘유다희?’
설마 그 You died?
매번 캐릭터가 아웃 될 때마다 등장하는……그거?
***
2009년 7월.
나와 김영기 실장은 재우를 대표하여 UAE로 향했다.
도착한 공항엔 예상대로 모하메드 왕세제가 마중을 나와 있는 상황.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터라 우린 예의 따위는 내던져 버린 채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하사드 왕세제께서도 곧 도착하실 겁니다. 오늘 저녁은 왠지 대대적인 재회의 장이 될 것 같군요.]
모하메드는 정작 행사는 안중에도 없는 투였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가.
정작 행사장에 도착하고서부터.
정확히는 미리 세팅이 끝난 재우의 부스에 도착하고 나선 눈빛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이건 아직 개발 중인 장갑차인 모양이군요.]
그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레드백의 목업이었다.
K21의 개발과 동시에 재우가 자체적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물건.
대략 4년이라는 개발시간을 잡아놓고는 있었지만 난 1년 정도 후쯤으로 개발 완료 시기를 예정하고 있다.
어차피 차체는 완성된 상태고, 포탑을 비롯한 여타 운용 시스템과 전투보조 시스템이야 이미 기술은 내가 보유하고 있으니까.
[혹시 궤도를 고무로 만든 겁니까?]
레드백의 카탈로그와 목업을 번갈아 쳐다보던 모하메드가 불현듯 고무 궤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로선 낯선 상황이었을 터.
함지박만 한 눈을 하고 있던 그를 향해 슬며시 다가가며 말했다.
[그건 내열성이 뛰어난 강화 합성섬유와 고무로 제작된 복합소재 궤도입니다.]
[굳이 궤도를 고무로 만든 이유가 뭐죠? 내구성이 떨어질 텐데요?]
[내구성은 철제 궤도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또한 고무의 특성상 소음감소 효과는 물론 탑승 안정성, 그리고 무게 감소로 인한 연비증가 효과를 볼 수 있죠.]
[호오…….]
모하메드는 탄성을 뱉어내며 다시 레드백의 이런저런 시스템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미니 AESA 레이더는 물론 하드킬 능동방호 시스템. 그리고 40밀리 기관포의 성능까지.
설명이 이어질 수록 그의 눈엔 점점 욕심이 드러난다.
[사막지형에서의…….]
[전하!]
내친 김에 보다 디테일한 설명을 이으려는 와중 누군가 다급히 모하메드를 향해 달려왔다.
무언가 다급한 일이라도 벌어진 듯한 느낌.
불길한 예감에 인상을 찌푸린 순간 모하메드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친다.
[사우디 정유시설이 공격을 받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