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94화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이유가 뭘까, 하는 거였다.
막말로 전 세계 민간 항공기 시장을 에어버스와 양분하고 있는 보잉의 입장에서 뭐가 아쉬워서.
물론 에어버스의 도약으로. 그리고 이 시기쯤 숙련된 엔지니어들의 퇴사로 인해 경쟁에서 밀리고는 있지만서도.
그때, 막 커피잔을 내려놓던 아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보잉은 현재 군수 분야에서 막대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차기 제공 전투기 사업에 이어 차기 통합 전투기 사업까지 죄다 노키드가 가져가 버린 상태니까요. 물론 미 국방부의 도움으로 그나마 F-15는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국방부에서 정말로 그런 결정을 내려버리면 자칫…….]
그는 말을 뱉어내는 내내 힐끗힐끗 나를 쳐다봤다.
뭔가 말을 속 시원하게 뱉어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눈빛.
더 이상한 것은 곁에 앉아 있던 리암의 반응이었는데, 갑자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아담을 향해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현재 보잉으로서는 그나마 민항기 시장에서 얻는 수익으로 군수 분야의 적자를 충당 중입니다. 그런데 만약 재우까지 그 시장에 뛰어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담은 자신을 쏘아보는 리암의 눈빛에 경기를 일으키곤 재빨리 말을 바꿨다.
아무래도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느낌.
하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만큼 상관하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건 지나친 기우 아닙니까? 민항기 시장 역시도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분야입니다. 한데 이제 막 시장에 진출할 재우가 무슨 힘이 있다고 보잉을 어렵게 하겠습니까.]
[그 말씀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건 경쟁자가 하나 더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협은 위협인 거죠. 그리고 현 보잉의 군수 부문 적자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이대로 5년만 지난다면 회사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을 정도로.]
듣고 있자니 아무래도 보잉의 상태는 내 생각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회귀 전에도. 누적된 적자로 인해 무려 60조에 달하는 자금 지원을 정부에 요구했었던 적이 있었지.
그게 어디 하루 이틀 쌓인 어려움의 결과일까?
‘흠…….’
게다가 역사와는 달리 미 정부는 이번 통합 전투기 사업은 물론 제공 전투기 사업에서 보잉이 투자한 개발비를 거의 보존해 주지 않았다고 들었다.
물론 일본에 100여 대의 F-15를 강매하며 숨통이 조금 트이기는 했겠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KAI에 비한다면 거의 몇 배나 되는 인력과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 저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마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었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합작 회사를 설립한다 해서 그게 보잉의 군수 부문을 살릴 방법은 될 수 없을 텐데요? 엄연히 법인이 분리되어있는 상황에선.]
의문인 것은 그 점이었다.
재우와 보잉이 민항기 제작의 합작사를 설립할 경우 그건 엄연히 기존 보잉과는 별개의 회사.
하면 정작 군수를 살릴 방법은 될 수 없지 않던가.
그렇다고 나와 공동 설립한 회사에서 나올 잉여금을 자기들 마음대로 지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 당연하죠.]
아담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더더욱 쌓이는 의문에 눈이 가늘어질 때쯤 뭔가 뇌리에 번뜩였다.
[설마 민항기 시장만 살리겠다는 의도인 겁니까?]
넌지시 뱉어낸 말에 아담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딱히 정확한 이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틀린 것도 아니라는 의미.
곧 긴 한숨을 뱉어낸 그는 구체적인 설명을 잇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릴 자식은 살리겠다는 의도는 맞습니다. 그렇다고 군수 분야를 이대로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만약 현 보잉에서 민항기 분야가 재우와의 합작 회사가 되어 분리되면 지원이 끊어진 군수 분야는 불과 2년을 못 넘길 겁니다. 그 경우 미국 전투기 시장은 노키드의 독점 체제로 굳어지게 되는데, 그걸 정부가 용인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독과점이니까.]
[맞습니다. 하면 정부로선 지금껏 민항기 시장에서의 수익을 이유로 밍기적거리던 지원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을 겁니다.]
난 그제야 아담의 의도를 이해했다.
뭐 한마디로 그런 거지.
제 목에 아예 칼을 대고 정부를 협상에 끌어들이겠다는.
사실이라면 이거야말로 영악하기 그지없는 수단.
하지만 나 역시 사업체를 이끌어가는 입장이다 보니 그걸 비난할 수는 없다.
[한데 미국 정부가 그걸 허락하겠습니까? 재우와의 합작 회사 설립 말입니다.]
[정부는 염려 안 해도 됩니다.]
대답은 리암에게서 들려왔다.
둘 사이엔 사전교감이 있었던 걸까,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민항기 시장은 정부가 과하게 관여할 입장은 아니니까. 게다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국가나 사업체라면 모를까 합작 당사자가 재우라면 더더욱 문제 될 것이 없죠. 아니, 미 정부에 막대한 도움을 주고 있는 재우라면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흠…….]
[또 하나, 지금 진 회장이 미국 내에서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과 직접 설립한 기업들의 경우를 봐서도 정부는 더더욱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테슬라 말이오. 거기만 해도 설립자가 진 회장일 뿐이지 미국 기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니 보잉이라고 다를 것은 없지 않겠소.]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흠…….”
하면 이제 결정은 내가 내릴 차례.
한해 수십조에 달하는 시장규모.
그리고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기술적 이익.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려 봐도 손해를 볼일은 없었기에, 아니 오히려 내겐 이익만 주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대답은 곧장 튀어나왔다.
[좋습니다. 조만간 라이언 대표를 통해서 미국 내 투자사의 자금을 유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죠.]
아담은 그 말에 표정이 환해졌다.
마치 숨이 깔딱 넘어가는 차에 떨어지는 동아줄을 보기라도 한 듯.
한데 막상 그 표정을 보자 조금 전 그가 머뭇거리며 삼켰던 말이 무엇이었을 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데 아까 하셨던 말은 뭡니까? 국방부를 운운하셨던…….]
[네?]
불현듯 뱉어낸 질문에 아담이 부쩍 당황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번에도 리암이 나선다.
[그 문제는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니 거론하지 맙시다.]
[…….]
표정만 보면 나와 연관된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워낙 단호한 표정이었던 터라 더는 되물을 엄두가 나지 않는 상태.
화제를 돌리려는 듯 리암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테슬라의 충전 부지 확보 말이오. 소문에 의하면 재우 투자사가 막대한 부동산을 수집 중이라고 하던데, 그 마당에 굳이 정부와 대화할 이유가 있습니까?]
[일반 충전 부지의 경우는 문제 될 것은 없죠. 다만 도로나 공원 같은 정부와 지자체 소유의 부지들에 인프라를 갖추는 것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문제라면야 뭐…… 내 선에서도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외다.]
리암은 별스럽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상황이 이러면 굳이 시간을 들여 미 정부 관료들을 만나는 수고는 더는 셈.
덕분인지 잠시간 머릿속을 휘저었던 찜찜함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뭐 저들이 뭘 숨기고 있건, 그게 정말로 나와 연관된 거라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두 분께선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으니 전 이만 퇴장하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눈치챈 아담은 시간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굳이 만류하지 않는 리암.
[조만간 실무진들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 역시 리암과 단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터라 서둘러 그를 배웅했고, 이제 드넓은 스카이라운지에 남은 것은 리암과 나의 일행들뿐이었다.
[자, 그럼 이제 속 깊은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리암은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는 나를 웃으며 쳐다봤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스윽.
이젠 그도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눌 준비를 하려는 듯 손을 들어 주변을 물린다.
[나를 향한 테러 소식이 궁금하다면 들으신바 그대로요. 보름 전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죠.]
[퇴근길이었소이다. 3번 국도를 달리고 있던 와중 2대의 트럭들이 내 차량을 덮치더군.]
[이런,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데 좀 의외군요.]
[뭐가 말이오.]
[총기가 난무하는 미국에서 굳이 트럭을 동원한 테러를 시도했다는 것 말입니다.]
[말 그대로 사고를 가장하고 싶었던 거겠죠. 나 정도 되는 인물이 총기에 의한 테러를 당했다면 생각보다 일이 커질 테니까. 참, 그렇고 보니 진 회장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소이다. 전에 내게 보내주었던 방탄 차량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멀쩡하지 못했을 테니까.]
[…….]
[그 점은 우리 경호원들도 인정하더이다. 기존에 내가 타고 다니던 방탄차였다면 그 큰 트럭들이 3대나 들이 받아 대는 상황에선 차마 못 버텼을 거라고.]
듣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그 방탄 차량을 보낸 것은 내가 아니라 김영기 실장이 보낸 거였거든.
리암과 나 사이에 협력 관계가 이루어졌을 당시.
일종의 성의 표시로.
그때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건만, 이제 보니 그게 신의 한 수였었던 듯싶다.
[그건 그렇고, 범인은 누굽니까.]
[그건 나도 모릅니다.]
그 대목에서 황당함이 몰려들었다.
아니 리암 같은 존재가 범인의 배후를 확인하지 못한 다는 것이 말이 되나?
표정을 이해한 듯 리암이 다시 말을 잇는다.
[나를 노리는 자가 어디 한둘이겠소? 네오콘들을 비롯하여 민주당 내 가짜 유대 세력들까지.]
[가짜 유대세력이요?]
[유대인을 가장하긴 했지만 혈통적으로 문제가 있는 존재들 말이오. 오로지 제 욕심 챙기기만 바쁜 자들. 난 그들을 가짜 유대인들이라 칭하고 있소.]
[저로선 통…… 아무튼 그들이야 그렇다 치고, 공화당의 네오콘들이 왜 회장님을 노린다는 겁니까. 어차피 회장님도 엄밀히 따진다면 공화당과 더 가까운 인물인 마당에.]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내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리암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진다.
[일정 부분 통하는 면이 있기는 해도 난 결국 저들과는 섞일 수 없는 존재요. 아니, 겉으로야 나를 두려워 하긴 해도 결국 이 나라 정치 세력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지. 아쉽지만 그게 이 나라 그림자의 현주소요.]
[…….]
순간 든 생각은 나 역시 그와 처지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거였다.
정치적으로는 어느 쪽에 속한 것도 아닌, 회색에 가까운 존재.
그게 말이 좋아 중립이지, 사실상 양쪽 모두에게 공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고, 그 탓에 포지션을 유지하기가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젠장, 막상 그 말을 하고 나니 왠지 나 스스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
생각이 지속될 무렵 그가 난데없이 자괴감을 드러냈다.
지금껏 알고 있던 그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
스스로도 그걸 느낀 걸까, 곧 고개를 털어내며 잠시 드러냈던 연약함을 털어냈다.
[뭐 그렇다 해도 상관없소. 그래 봐야 결정적인 순간엔 고개를 숙이는 것이 저들의 습성이니까.]
[그게 힘의 논리죠.]
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의도로 눈을 찡끗하며 대꾸했다.
잠시나마 미소를 내비친 리암은 다시 진중한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범인의 배후는 아직 추궁 중이오. 그 와중에 진 회장이 미국으로 날아오니 나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해서 남들의 시선은 좀 부담스러웠겠지만 과도한 경호는 어쩔 수 없었소이다.]
[저를 생각해서 하신 조치였으니 외려 감사해야 할 일이죠.]
난 미안함을 표하는 그를 향해 손사래 쳤다.
순간 자리에서 일어선 리암은 곧장 바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고, 이내 꺼내온 술병을 내게 내밀었다.
[진 회장의 앞이니 조금은 솔직해지겠소이다. 사실 나도 아주 두려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외다.]
[…….]
[살면서 여태 내게 해를 가하려 했던 존재의 배후를 밝혀내지 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왠지 그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평생을 절대자로 군림해온 존재가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하고도 그 배후를 모르는 것만큼 뒤가 서늘한 일이 또 있을까.
그때, 리암이 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한데 짐작이 가는 자들은 있소.]
[누굽니까?]
[중국.]
[…….]
[아니 어쩌면 중국과 손을 잡은 미국 내의 일부 무리들.]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할 이유가 없지. 미국만큼 돈이면 뭐든 다 되는 나라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중국의 입장에선 난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은 존재거든. 막말로 나만큼 그들을 향해 대놓고 칼을 빼든 사람이 누가 또 있었소이까.]
아마도 그건 러시아의 가스전 개발사업에서 중국을 배제해 버린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일 듯했다.
아니, 꼭 그게 아니라도 사실 이 시기에 리암만큼 중국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고 또 경계하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면 이제 어쩌시려고요.]
[그렇다고 뜻을 굽힐 거라면 시작도 안 했지. 난 죽어도 중국 같은 성숙하지 못한 나라가 패권을 잡는 꼴은 못 봅니다.]
그 점은 나도 동감이었다.
미개한 중화사상에 절어 있는 자들이 패권을 가지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는.
뭐 그렇다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옹호해줄 생각은 없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저들의 패권주의 역시도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 문제는 이 나라의 대통령인데, 그는 생각이 다른 것 같더군요.]
[…….]
[전에 말했듯 중국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한 느낌? 아니, 정작 염려는 하면서도 제 손으로는 피를 묻히기 싫어한다고 봐야겠지.]
마음 같아선 그의 앞에서 한바탕 역사라도 읊고 싶었다.
그의 긴 재임기간 동안 중국이 얼마나 마음 놓고 내실을 다져왔는지.
그게 실책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 국제 관계가 얼마나 복잡해졌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달까.
하지만 역시나 그건 무리.
그저 술잔만 만지작대는 사이 그가 의미심장한 투로 말을 뱉어냈다.
[한데 그거 아시오? 만약 이대로 중국을 그대로 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은 정말로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
말투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왠지 이상했다.
뭐랄까, 단순히 중국의 성장으로 인해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닌 느낌.
가만히 쳐다보자 그가 다시 입을 연다.
[그 와중에 중국이 에너지 자립까지 완성하면 그게 더 가속화 될 텐데, 문제는 자칫 그 에너지 자립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