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89화 (18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89화

상황이 이러면 내 예언은 적중한 거다.

우물은 아쉬운 놈이 파기 마련인 법이라는.

그리고 난 상대의 목마름을 부추기기만 하면 된다는.

뭐 보나 마나 우리가 추가로 연구를 진행한 극초음속 미사일의 데이터를 달라는 요구를 하려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추진체야 그렇다 쳐도, 날개제어 기술은 넘어가는 순간 발생할 다른 분야로의 파급력이 만만치가 않거든.

제어 날개의 티타늄과 텅스텐의 배합 비율부터 시작해서 모터의 정밀성. 그리고 실시간 상황 변화에 따른 제어프로그램의 핵심 알고리즘까지.

어찌 보면 그 하나하나가 미사일 기술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인데, 그걸 넘겨준다는 건 심장을 내준다는 것과도 같지 않던가.

[대신 요구하실 조건은 아마도 요격체의 추가 데이터겠죠?]

-역시 말이 통하는군요.

슬쩍 떠본 말에 푸틴의 목소리 톤이 확 올라갔다.

지금이야말로 얼마 전 그에게 들었던 말을 되돌려줄 시간이다.

[그게 정당한 교환비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푸틴은 그 말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속은 시원하다만 그렇다고 푸틴 같은, 내 절대적 지지자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피해야 할 일.

넌지시 당근을 하나 던졌다.

[정 원하신다면 추진체 기술 정도는 보완해 드릴 수 있습니다.]

-…….

푸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들려오는 것은 헛웃음뿐.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극초음속 추진체 기술의 원조는 러시아죠. 해서 그 기술을 다시 이전받는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드는 제안은 아닐 겁니다.]

-그걸 알고도 그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하지만 현시점에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마하 9를 돌파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가 않을 겁니다. 그건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아니면 성공하기가 힘들거든요.]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마하 9 이상의 속도를 내기 위해 램제트와 스크램제트의 엔진을 융합하는 것이 핵심.

문제는 설사 그 개념을 이해했다고 해도 구조설계 자체가 극악의 디테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내가 확인한, 현시점에서의 러시아의 정밀가공기술 수준으로는 단기간에 그걸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때, 예상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워낙 그답지 않았던 빠른 포기였던 터라 당황하는 사이, 불평의 말이 들려온다.

-뭐 어차피 진 회장이 그리 마음을 먹은 이상 그 고집을 꺾을 방법도 없지 않소. 대신 한 가지만 알아두시오.

[말씀하시죠.]

-차후 우리와 거래를 하게 될 일이 또 있을 때, 그땐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겁니다.

솔직히 그 말엔 조금 찔끔했다.

향후 내가 아쉬워할 일이 아주 없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당장 기술력의 판도 자체를 바꿀 것을 냅다 내줄 수는 없잖아?

뭐 그때 일은 그때 가서 걱정하는 수밖에는 없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

-이번에 미국이 알래스카에서 개최하는 레드플래그 훈련 말이오. 혹시 거기에 KF-02가 참가하기로 결정됐소?

조금은 껄끄러웠던 마음을 정리하던 와중 그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KF-02가 레드플래그에 참가를 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순간 쳐다본 것은 합참의장이었다.

눈이 마주친 그는 갑작스러운 내 시선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해 보인다.

-미국이 이번에 한국에서 참가하는 기체를 KF-02로 요구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까? 그럼 내가 잘못된 보고를 받은 모양이구려.

[죄송하지만, 그런 정보는 어디에서 받으시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우리 해외정보국밖에 더 있겠소? 마침 미 태평양 공군사령부는 늘 우리 감시 영역 안에 있기에 주 단위로 보고가 올라오는데, 오늘 아침 그 소식이 들려오더이다.

그렇다는 건 이 정보가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생짜’ 정보임을 의미했다.

즉, 미국도 결정만 했을 뿐, 아직까지 우리 군에 정식 통보를 해 온 것은 아닌 상황이라는 것.

아마 절차를 거치는 시간을 고려하면 빨라야 저녁쯤에나 우리 군에 정식 통보가 올 가능성이 크다.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정말로 KF-02를 참가시킬 요량이라면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겁니다.

[…….]

-미국에서 갑자기 ‘고스트 이글’의 참여를 원하는 이유는 분명 성능을 가늠해 보려는 의도가 분명한 거니까. 다시 말해서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리 꼭꼭 잘 숨기라는 말입니다.

[굳이 숨길만 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난 애써 의뭉을 떨었다.

하지만 그게 푸틴 같은 존재에게 먹혀들었을 리가 없지.

예상대로 저편에서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숨길 것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오? 더군다나 진 회장처럼 패를 아껴두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 아무튼, 기술 교환 문제는 조만간 실무단을 서로 파견하는 것으로 합시다. 뭐 진 회장이 직접 온다면 나로선 더 환영이고.

[되도록이면 직접 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죠.]

난 어물쩍 대꾸를 하곤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이후 합참의장을 향해 다가가선 사실을 알리자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고스트 이글을 레드플래그에 참여시키다니요. 우린 아직 미국으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곧 제안이 올 겁니다. 아니, 통보라고 해야겠죠.”

“…….”

***

“우리가 진해에 있는 사이 미 국방부가 우리 공군에 공문을 보내기는 했다는군요.”

몇 시간 후, 사실관계를 확인한 의장이 다급히 서류 하나를 들고 합참회의장으로 돌아왔다.

하필 고스트 이글이 엮인 문제였던 터라 나 역시 반강제적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상태.

당황스럽게도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린다.

“진 회장께선 미국의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넌지시 물은 이는 김태익 장관이었다.

그 역시도 이 일엔 뭔가 목적이 있다는 것쯤은 눈치를 채고 있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대꾸했다.

“그거야 당연히 성능을 가늠해 보겠다는 거겠죠.”

“나도 그건 알고 있소만, 갑작스레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가 궁금하다는 겁니다.”

“핑계가 적당하니까요. 그렇다고 미국에서 대놓고 우리에게 ‘고스트 이글의 성능이 궁금하니 가져와 봐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연합 공군의 공방훈련이라면 핑계로는 딱이죠.”

“하면 보내지 않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장관은 우려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나 역시 껄끄러운 것은 사실.

하지만 명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아니요. 그건 곤란합니다. 어차피 차후 연합작전을 위해서라도 미국이 우리 전투기의 성능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긴, 그게 문제군요.”

“그렇다고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른 걸 떠나서 이번 기회에 링크16과 링크 K의 연동 효과를 점검할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흠…….”

장관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여전히 편치 않아 보이는 표정.

아마도 그건 고스트 이글이 가진 비밀스러운 성능들이 드러날까 싶은 염려에서 나온 걸 거다.

스윽.

난 즉시 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의 면면을 살폈다.

다행히 고스트 이글의 핵심 기밀을 열람할 수 있는 존재들만 모여 있던 상태.

더군다나 이곳은 도청에 대한 완벽한 대응시설들이 갖추어진 터라 말을 꺼냄에 있어 주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 할 점은 고스트 이글이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게 하는 건데, 어차피 레이더야 KA밴드 증폭 장치에 락을 걸어 둔 상태라서 그게 알려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도 그렇군요. 더불어 미사일의 경우도 실사격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시커의 정확한 스펙이 알려질 가능성도 없고.”

“그렇죠.”

장관은 짧은 내 대꾸에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뭔가 또 불만스러운 부분이라도 생긴 걸까, 이내 표정이 다시 찌푸려진다.

“ 문제는 이번에 재우에서 개발한 전자전 포드를 기체 중 하나에 장착해서 보내달라는 요구도 있다는 건데, 그 부분도 상관없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고스트 이글이 전자전 수행이 가능한 기체로 설계된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미국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그걸 미국이 어떻게 압니까?”

“엔진의 추력 대비 전력생산량이나 전자전에 필요한 여타 조건들을 갖췄다는 것은 굳이 숨기지 않았으니까요. 뭐 그 부분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하니 조금만 분석하면 답은 나오지 않겠습니까?”

“흠…….”

“뭐 구체적인 것은 말씀 드려봐야 머리만 복잡해지실 테고. 그냥 이 기회에 고스트 이글의 정확한 성능 파악을 할 기회라고만 여기시면 됩니다.”

“저도 그 말엔 동의합니다. 어차피 수출도 못 하는 기체인 마당에 성능 점검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해야죠.”

듣고 있던 합참의장이 내 말에 수긍했다.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내내 미국으로부터 날아온 공문을 쳐다보던 장관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뱉어졌다.

“수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혹시 그런 의도는 아닐까요? 우리가 수출을 시도할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성능을 파악하자는.”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일종의 사전 정보수집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

“우리가 만약 KF-02 대외 판매를 하겠다고 나서면 미국도 곤란해지지 않습니까. F-15를 구매할 능력이 있는 나라들에게는 충분히 대안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하니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우리 기체의 성능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경쟁이 될 만한 기체를 만들어내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황당하지만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말로 고스트 이글이 시장에 나온다면 동급의 4.5세대 기체들은 그야말로 밥이 되는 거지.

한데 그게 사실이면…… 그들은 굳이 새로운 기체를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F-15를 개량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혹시 그건가?’

회귀 전 미 공군은 5세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KFX와 같은 진보된 4.5세대 전력으로 채울 계획을 세웠던 것.

빠르긴 하지만 만약 현시점에 그 같은 생각을 한 것이라면.

더군다나 F-15의 개량이나 또 다른 전투기의 개발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우리 기체를 자국의 부차 전력으로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이 지나쳤군.”

“뭐라고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 회장님도 어지간히 머리가 아프신 모양이군요. 그리 혼잣말을 해대시는 것을 보면.”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장관이 웃으며 말했다.

이내 슬그머니 들고 있던 공문을 내려놓은 그는 한껏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뭐가 됐건 결론은 났군요. 정확한 성능 파악을 위해서라도 참가를 허용하는 것.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진 회장님의 몫입니다. 숨길 것은 숨기는 걸로.”

그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회사로 돌아오는 내내 아까 들었던 생각이 계속해서 꼬리를 문다.

‘그래, 미국이 우리 것을 도입할 리가 없지. 정책상 타국이 개발한 전투기를 도입한 적은…….’

아니지, 해리어의 경우를 보면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건가?

뭐 물론 해리어 전투기야 개발 단계부터 미국이 관여를 했기에 가능했던 문제기는 하지만.

‘이것 참…… 통 속내를 모르겠네.’

***

쉬이익!

그로부터 보름 후, 레드플래그 훈련 참가가 결정된 6기의 고스트 이글들이 예천 공항에서 이륙했다.

목적지인 알래스카 아일슨 공군기지까지는 대략 7200킬로미터 정도.

총 7번의 공중급유가 예정되어 있으며 급유기는 미군의 지원 하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우리가 꼴찌인 모양이군.”

꼬박 9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도착한 아일슨 공군기지에는 이미 다수의 각국 전투기와 수송기들. 그리고 공중 조기 경보 관제기(AWACS)가 이미 도착해 있던 상태였다.

특이한 것은 F22도 역시 참가를 했다는 사실.

편대장 안혜진 소령은 활주로 저편에 주기 되어있는 F22의 모습에서 유독 눈을 떼지 못했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제 막 전투기에서 내려오는 안혜진 소령을 향해 미 태평양 공군사령부 소속 대령 한 명이 손을 내밀었다.

[대한민국 공군 16전투비행단 소속 안혜진 소령입니다.]

짧은 악수와 동시에 대령을 똑바로 쳐다본 안혜진 소령.

하지만 우습게도 대령의 시선이 향한 곳은 고스트 이글의 기체였다.

[실제로 보니 정말로 멋진 전투기군요.]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