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83화 (183/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83화

-이용재 개망신. 야! 나 같으면 쪽팔려서 의원 때려치운다.

↳권위의식 쩌는 그 태도에 나도 마음속으로는 한 방 먹이고 싶었음.

↳절대동감.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솔직히 진현승이 대단한 거지. 상대가 명색이 여당 핵심 의원인데 대놓고 조인트를 까 버렸으니까.

↳후환이 두렵지 않은 걸까?

↳진현승이니까 가능한 거임. 솔직히 진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국회의원 하나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제 주제를 모르고 깝치는 국회의원이라는 작자가 한심한 거지.

-진현승이 만약 빡쳐서 회사 미국으로 옮긴다고 하면 우리 어떻게 되는 거임?

↳바보냐? 과자나 만드는 회사도 아니고, 군수산업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옮기냐.

↳내가 봤을 땐 그쪽이 바보 같은데? 안 그래도 재우는 미국에서 군침을 흘리는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지. 아마 미국은 진 회장이 살짝 눈치만 내비쳐도 얼씨구나 하고 우리 정부에 온갖 압력을 행사할걸?

첫 청문회를 마친 것도 어느새 이틀째, 여론에선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온갖 말들이 나돌았다.

내 태도가 지나치게 건방졌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오히려 이용재의 권위의식을 지적하는 것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이 내게 우호적인 말들이었다는 건데, 이러면 향후 여론의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어지게 될 거다.

“한서일보와 대일일보는 끝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인가 봅니다.”

김영기 실장은 들고 있던 신문 두 개를 내 책상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보다 더 격해진, 나를 까대는 기사들.

이건 뭐 거의 음해하는 수준이라고 할 정도인데, 이쯤이면 나 역시 더는 아량을 베풀기 힘들다.

“삼정을 비롯하여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모든 기업들에게 해당 신문사와의 광고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청해 보죠.”

“안 그래도 방금 이영훈 회장님과는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재우의 전 계열사는 물론 우리에게 소재를 납품받는 모든 기업들에게 슬쩍 언질을 해 둔 상태고요. 참! 현우 그룹의 정 회장님께서도 협조 의사를 피력하셨는데, 그건 좀 의외였습니다.”

“현우그룹 역시 그 두 언론사로부터 그동안 당한 것이 많은가 보죠. 아니 어디 현우뿐이겠습니까. 기사를 빌미로 삥 뜯어가는 것이 그들이 사는 방법이었던 마당에. 아무튼, 정 회장님께는 제가 따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드리죠.”

김영기 실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벌어질 일을 상상하기라도 한 걸까, 그의 입가엔 연신 미소가 걸쳐 있던 상태였다.

“아마 광고계약 파기가 본격화 되면 타격이 엄청날 겁니다. 연합전선을 구축한 기업들로부터 나오던 광고가 사라지면 광고매출의 90퍼센트쯤은 날아가는 상황이니까요.”

“그렇겠죠. 하지만 쉽게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 두 신문사들의 경우 막대한 일본계 자금의 후원을 받고 있으니까. 이 시점에 경계해야 할 것은 저들이 악에 받쳐서 써대는 날조 기사입니다.”

“그게 무슨…….”

김영기 실장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침 눈앞에 있는 신문들을 펼쳐 든 채 다시 설명을 이었다.

“쥐가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하니 저들도 자신들에게 등을 돌린 기업들을 상대로 음해성 기사를 써재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그럼 문제 아닙니까. 무턱대고 신문기사만 믿는 사람들이 꽤 많은 상황에서.”

“ 문제죠. 해서 이젠 그걸 막을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그는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피며 되물었다.

글쎄, 그걸 막을 방법이야 하나뿐이지 않을까.

“폐간. 그것만이 답이죠.”

“폐간이요? 신문사를요?”

김영기 실장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하긴, 이 나라에서 신문사의 폐간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그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끝내 돈줄이 막히고, 그에 더해서 법적인 제재가 가해질 근거가 충분히 마련되는 상황이면.

결정적으로 대가리가 날아가 버리는 상황이면 더더욱.

“뱀은 머리를 날려 버려야 끝장을 보기 쉽죠. 이번 기회에 그 머리들을 좀 짓밟아 볼 생각입니다.”

“…….”

***

“구두가 왜 이 모양이야?”

이른 아침, 출근길에 자신의 구두를 본 이용재는 버럭 안사람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평소와 딱히 별다를 것 없는 구두 상태.

괜한 트집임을 눈치챈 그의 부인은 대번에 안색이 차가워진다.

“밖에서 안 풀리는 문제를 집안으로까지 끌고 들어오지 좀 마세요.”

퉁명하게 말을 뱉어 낸 부인은 차갑게 돌아섰다.

가뜩이나 엉망이 되어 버린 상황으로 인해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그의 기분은 이젠 아예 지하를 파고드는 상태.

결국 그가 택한 화풀이 대상은 이제 막 차량과 함께 대기 중이던 그의 보좌관이었다.

“넌 일찍 좀 안 다닐 거야?”

“네? 평소보다 오히려 일찍 도착했습니다만…….”

“오늘은 선거구사무실에 들른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 했었잖아. 그러려면 더 서둘렀어야지. 쯧쯧, 저렇게 게을러서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그렇다 해도 시간은 충분한 것 같은데요.”

보좌관은 억울하다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시작 자체가 억지에서 비롯된 것인 마당에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있을까.

이용재는 버럭 소리를 높이며 다시 타박한다.

“일찍 다니라면 일찍 다니면 되는 거지 뭔 잔소리가 그리 많아. 시끄럽고, 일정 바뀌었으니 그냥 곧바로 여의도로 가.”

“…….”

보좌관은 황당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마치 그럴 거면 왜 시간을 따지며 타박을 했느냐는 듯.

하지만 이용재는 보좌관의 반응을 상관하지 않은 채 차에 올랐고, 곧 옆 좌석에 준비되어있던 신문들을 펼쳐 들었다.

“미친…….”

오늘도 그의 바람과는 달리 기사의 대부분은 현 정부와 진현승을 두둔하는 것들뿐이었다.

“과거의 망령에만 사로잡혀 사는 놈들 같으니. 대체 언제까지 반일 감정으로 시간을 낭비할 거야?”

아니, 그것뿐이라면 다행이련만, 오히려 이젠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기사들까지.

참다못한 그는 휙 하고 신문들을 내던졌다.

“한서일보와 대일일보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이럴수록 뒤를 받쳐줘야지. 고작 퇴역 장성들 상대로 한 인터뷰 내용 따위가 이 상황에서 내게 힘이 되겠어?”

그 말에 앞자리에 있던 보좌관의 머리가 절로 움찔 한다.

또다시 불똥이 튈까 염려스러웠던 듯한 태도.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이용재의 질문이 날아든다.

“자넨 어떻게 생각해.”

“네? 뭐가 말입니까?”

보좌관이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쯧 하고 혀를 찬 이용재는 다시 신문을 집어 흔들어 보인다.

“기사 못 봤어? 내가 또 일본의 사주를 받고 재우를 건드리려고 한다잖아. 자네가 보기에도 내가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

“…….”

보좌관은 차마 할 말이 없다는 듯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그게 사실인 상황.

그렇다고 저 서슬 퍼런 늙은이 앞에서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내비칠 수는 없으니까.

한데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꼴 보기 싫다는 듯 이용재가 한껏 눈을 흘기며 말을 잇는다.

“넌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이 없냐?”

“그게 아니라…….”

“됐고, 아니 이 나라는 대체 왜 일본이라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야? 솔직히 일본을 자극해서 좋을 것이 뭐가 있다고.”

“…….”

보좌관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다행히 대꾸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던 듯 이용재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요즘 것들 말이야. 우리 경제가 좀 성장했다고 해서 다들 착각에 빠져서 사는 모양인데, 그래 봐야 힘없는 소국에 불과하다는 걸 전혀 인식을 못해.”

“에이, 그건 좀. 솔직히 지금 경제와 군사력 수준이면 목소리를 낼 만한 정도는…….”

보좌관은 무심코 말을 뱉어 냈다간 재빨리 주워 삼켰다.

아니나 다를까, 잔뜩 찌푸려진 이용재의 얼굴.

이내 또 꼬투리라도 잡은 듯 그의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그래, 뭐 좀 발전했다고 치자. 군사적으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그렇고 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일본과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너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일본의 저력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부채증가? 저들이 전 세계에 뿌려 놓은 자본만으로도 40년 이상은 먹고 살 정도야. 그 마당에 부채는 무슨.”

“…….”

“그리고 우리가 소달구지 끌고 다닐 때 그들은 항공모함 만들어 전쟁하던 나라야. 뭘 알지도 못하는 주제들이…….”

“흠흠.”

보좌관은 멋쩍은 미소로 대꾸하곤 고개를 돌렸다.

스스로도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듯 이용재 역시 긴 한숨을 내뱉곤 휴대폰을 꺼내 든다.

“그나저나 한지율 의원에게 전화 아직 안 왔어?”

한지율은 이번에 그를 지지했던 당내 세력 중 하나였다.

비록 군소 계파의 인물인 터라 힘은 좀 약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싶은 마음에서 끌어들인.

아니, 따지고 보면 그가 끌어들였다기보다는 한지율이 먼저 그에게 접촉한 것이라고 봐야 옳을 상황.

문제는 웬일인지 어제저녁부터 그와의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거다.

“죄송하지만 뭣 때문인지 저도 어젯밤부터 통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보좌관은 연신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혹여 그사이 마음이 변하기라도 한 건가.

왠지 불길한 마음에 이용재는 결국 한지율의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었고, 이내 조금은 의심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의원님께선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무슨 소리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입원은 왜 해?”

-저 그게…… 어제저녁에 뭐를 잘 못 드셨는지 급성 식중독 증세를 보이셔서 응급실로 입원하신 상태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용재의 탁월한 촉이 발동했다.

식중독은 개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지.

혹시나 싶어 그는 이번엔 또 다른 지지 세력인 임창렬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과로로 입원 중이라고?”

통화가 안 되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무얼까, 이 불길한 예감은.

“우담 연구소로 가.”

그는 즉시 차의 진로를 바꿔 그의 오랜 후견세력이던 우담 정책 연구소로 향할 것을 지시했다.

말이 정책 연구소지. 실은 사사키 재단의 한국지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따르릉!

그런데 그때, 느닷없이 그의 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떠 있는 발신자명은 우담 정책 연구소.

마침 잘 됐다 싶은 마음에 즉시 통화버튼을 누르자 저편에서 연구소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의원. 혹시 지금 뉴스 안 봤습니까?

“뉴스라니, 무슨 뉴스요?”

-지금 대검 중수부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이 의원의 선거구 사무실을 압수수색 중이라는데, 아니 당사자가 모르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압수수색이라니요.”

이용재는 황당함에 절로 언성을 높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태니까.

다른 이도 아닌 여당의 핵심 계파 의원을 상대로 중수부가 수사를 한다는 것이 무슨 황당한…….

혹여 대통령의 압력일까.

왠지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대통령이 미친 모양이군요.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지지기반인 여당 의원을 상대로 칼을 들다니.”

-그게 대통령의 의중인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 연구소를 향한 검찰 조사가 예고되어있다는 소문도 있어서 여기도 지금 난리가 아니에요. 참! 검찰이 밝혀낸 이 의원의 불법자금 출처가 STS라던데, 혹시 그쪽에서 받은 것이 있는 거요?

“어디요?”

-STS 조선해양말입니다. 기자의 말에 의하면 재우와의 합병 전에 그곳 회장이 분식회계를 통해 주식시장을 교란했다던데. 거기서 얻은 이익 중 일부가 이 의원에게 갔다는 말이 지금 특종으로 나오고 있어요.

순간 이용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저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만일을 위해 완벽하게 세탁한 현금으로만 챙겨 받았던 것을.

받은 현금도 그와는 연관성 없는 존재들을 통해 추적의 꼬투리를 제거했음은 물론이고.

-어! 방금 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영상이라니, 무슨 영상 말입니까?”

왠지 심상치 않은 수화기 너머의 소식에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내 들려오는 소식은 그와 STS 조선 회장과 그의 은밀한 거래장면 영상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

넋을 반쯤 놔 버린 이용재는 툭 하고 휴대폰을 떨구고 말았다.

“그걸 대체 누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영상이 찍힐 만한 근거는 없었다.

만일을 위해 최대한 폐쇄적인 곳에서 이루어진 거래였으니까.

그럼 대체 누굴까.

그런 영상을 찍었을 만한 존재가.

스윽.

한참의 생각 끝에 이용재의 머리를 스친 것은 앞 좌석에 앉아 있는 보좌관이었다.

당시 유일하게 그를 보필했었으며 유일하게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는 조심스레 보좌관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 안상필.”

“네?”

보좌관은 불현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용재를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봤다.

표정만으로 봐선 도무지 범인이라고 의심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그때, 갑자기 보좌관의 입매가 불길하다 싶은 정도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씨익.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뭐 필요하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