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82화 (18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82화

[대한민국은 현재 북한의 핵 보유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 와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 된 것들뿐. 정부의 정찰자산과 대응전력 확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삼영호 납치 사건은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더군다나 삼영호가 싣고 오던 물자들은 국가 전략 물자로 밝혀진 상태이다. 현재 이 같은 위협에 직면한 우리 해군은 소말리아 해협으로 구축함 한 척을 파견하여 수입선 안정화 작전을 전개 중인 상황이다. 우린 무역으로 국가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제조업 강국이자 무역 강국. 때문에 수출과 수입선의 안정화는 우리에게 생명과도 같으며, 그로 인한 군 전력상승 필요성은 당연하다.]

며칠 후, 우리 측의 지원을 받은 언론사들이 포문을 열었다.

신문은 물론 TV와 포털사이트.

하다못해 각종 토론에 참석하는 인물들까지.

당연하게도 이용재 측을 두둔하는 언론의 반격시도가 있었지만 소수가 다수를 이길 방법은 없는 것이 현실.

결국 반대여론의 주장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자주국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저들에게 있어 예상치 못했던 복병은 또 있었다.

국방력의 강화가 나라의 근간이라는 사상을 가진 민간단체들의 시위.

오랜만에 좌우 이념을 떠난 단체들의 협력은 정치권을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저건 미처 생각 못했군요.”

난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각종 단체들의 시위를 보며 헛웃음을 뱉어 냈다.

무엇 때문일까, 힐끗 나를 쳐다보는 김영기 실장의 태도가 왠지 수상쩍다.

“가만, 혹시 저 단체들도 지원한 겁니까?”

“그게…….”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선 그런 모양이었다.

뭐 어차피 언론도 돈으로 사 버린 마당에 저들을 지원했다고 해서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

다만 걱정인 것은 자칫 그게 꼬투리를 잡힐 가능성에 대한 염려.

하지만 막상 들려오는 대답을 듣고 있노라면 그럴 일은 없을 듯했다.

“지원은 했지만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닙니다. 그리고 어차피 재우에선 저 단체들에게 그동안 꾸준히 지원을 해 왔었던 상황이라서 꼬투리를 잡힐 이유도 없죠.”

“저들을 꾸준히 지원했었다고요? 언제부터요.”

“전에 제주도 군 기지 건설 문제로 어용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부터입니다. 이대로 중국 자본에 길들여진 단체들이 난립하다 보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그룹 차원에서 제법 정통성 있는 단체들을 추려 지원을 시작했었습니다.”

난 그의 대처에 탄복했다.

이이제이.

아니, 엄밀히 따지면 이건 이이제이라고 할 수는 없지.

지금 우리를 편들어 주는 저 단체들을 어용 단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뭐가 됐건 제법 전략적인 생각에서 나온 대처임은 확실한데, 이래서 내가 김영기 실장을 신뢰하는 거다.

똑똑!

“회장님!”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김 비서가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평소 그녀답지 않은 호들갑스러운 태도.

불길한 예감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려는 차, 그녀가 대뜸 TV를 켜며 말한다.

“지금 이용재 의원 측에서 재우 그룹을 상대로 한 정식 청문회 요청을 의회에 상정했다고 합니다.”

“청문회?”

김영기 실장은 그 말에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다.

청문회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그만큼 저들이 코너에 몰렸음을 방증하는 것.

그렇다 해도 나를 직접적으로 노릴 생각까지 한 것은 좀 어리석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무얼 근거로 청문회를 하겠다는 겁니까?”

“정부의 주요 사업들이 지나치게 재우에게만 편중되었다는 것과 최근 조선업계 통합에 대해 특혜시비를 걸 모양입니다.”

절로 헛웃음이 뱉어졌다.

제대로 까면 불리한 것은 내가 아닐 것이기에.

막말로 부실화된 기업들을 떠맡아 준 것도 모자라서 고용 승계까지.

그런 우리에게 특혜라는 말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아! 물론 채무 조정을 시빗거리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이야 기업의 합병과정에서 당연히 수반되는 것.

그나마 우린 채권단을 향해 우선주 배당까지 해준 상태인 마당에 뭐가 그리 특혜라는 말인가.

“어쩌실 겁니까?”

김영기 실장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이 상황에서 어쩌긴 뭘 어쩌겠어.

그렇다고 칼을 들고 덤벼드는 놈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

“어쩌긴요. 의원 나리들께서 굳이 나를 부르겠다면 응해 줘야죠.”

“…….”

***

[재우그룹 진현승 회장은 청문회 출석 요구에 응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며칠 후, 뉴스에선 내 청문회 출석에 대해 대대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단 한 번도 비리와 특혜시비에 휩싸인 적이 없었던 것이 재우그룹이었으니까.

다행스러운 것은 기사들의 논조였는데, 암암리에 활약 중인 우리 측 세력으로 인해 기사의 내용이 그나마 소설로 가지는 않았다는 거다.

-제가 도울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청문회 소식을 들은 이영훈 회장은 몇 번이고 내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자청했다.

하긴,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그 역시 곤란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그 때문인지 그는 최근 삼정 장학생 출신들의 힘을 본격적으로 동원했고, 덕분에 법조계를 비롯하여 언론과 정치권 인사들의 움직임이 한껏 분주해졌다.

‘우습군. 내가 삼정 장학생들의 지원을 받게 될 줄이야…….’

그 부분은 왠지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회귀 전, 난 누구보다 삼정 장학생들 출신들로 인해 발생했던 사회적 부조리들을 욕했었거든.

그런 내가 삼정 장학생 출신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꽤나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니던가.

‘뭐…… 지금은 현실이 달라졌으니까.’

그럼에도 이영훈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이젠 삼정이라는 그룹 자체가 회귀 전과는 그 성향 자체가 다르고, 그로 인해 삼정 장학생들 역시 딱히 부정부패에 일조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하면 저들을 이용하는 것에 굳이 주저할 필요가 있을까.

쉽게 말해서 이젠 벌어지지도 않을 일들로 인해서 저들을 향한 편견을 가질 필요가 있겠느냐는 거다.

‘뭐 꼭 저들의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애써 힘을 보태겠다는 것을 거부할 이유도 없지.’

***

“이용재 의원의 특혜의혹에 대해 전면 부정하셨다는데, 구체적인 반박 근거는 있습니까?”

“군의 전력증강 사업에서 재우의 비중이 컸던 것은 사실 아닙니까?”

며칠 후, 의회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질문을 퍼부었다.

마음 같아선 무시하고 지나치고 싶었지만 그건 자칫 오해를 더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태도.

당당하게 그들을 마주한 채 한마디를 뱉어 냈다.

“그 점에 대해선 제가 여러분들께 묻겠습니다.”

“…….”

떠들썩하던 기자들은 그 말에 일제히 침묵했다.

힐끗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뭔가 할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자들까지.

아주 잠시간의 텀을 두고 다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 역시 재우가 정말로 특혜를 받은 것인지, 그리고 내가 이 정권의 실세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실에 근거한 기사를 쓴다면 저도 최선을 다해서 인정하도록 노력하죠.”

난 ‘사실에 근거한’이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었다.

그건 어설픈 추측성 기사에 대해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강조한 것.

뒤늦게 의미를 이해한 기자들은 난색을 표하며 서로를 쳐다보기 바빴고, 난 미련 없이 목적지인 청문회장으로 향했다.

“그럼 지금부터 재우그룹의…….”

국회 국방위원회의 주관으로 시작된 청문회에는 대략 열 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상태였다.

첫 번째 질의 응답자로 나선 이는 국방장관 김태익.

이런 자리가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듯 그의 표정은 내내 굳어져 있었다.

“장관께선 최근 불거진 특혜시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첫 질문자로 나선 이는 역시나 이용재 의원이었다.

이날만을 기다렸던 듯, 눈빛은 물론 질문하는 태도에서도 어마어마한 결의가 느껴질 정도.

하지만 김태익이 누구던가.

이 나라에서 청렴하기로 따진다면 김영기 전 장관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

그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질문 하나하나에 응했고, 결국 이렇다 할 꼬투리를 잡지 못한 이용재는 이번엔 나를 지목했다.

“진현승 회장께 질의 하겠습니다.”

스윽.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내게로 향했다.

어디 시선뿐일까, 중계를 위해 들어왔던 카메라까지도.

이후 잠시 뜸을 들인 이용재는 애써 상황이 심각함을 강조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앞에 있던 서류들을 집어 든다.

“현재 진행 중인 정찰자산 확보사업을 보면 중복되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찰 위성 확보사업만 해도 금액적으로는 대략 수조 원에 달하는데, 정찰기가 없다면 모를까, 이렇듯 중복된 투자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난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시선이 고까웠던 걸까, 그의 눈매가 와락 일그러졌고, 그 타이밍에 마이크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건 중복이 아니라 중첩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이 옳은 겁니다.”

“…….”

“정찰의 기본은 확인 한 곳을 재차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거죠. 그걸 위해선 다양한 방식의 정찰자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걸 중복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거죠.”

“그…….”

“참고로 의원님께선 우리가 보유하거나 보유 예정인 정찰자산들이 과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결과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국도 지금 그 많은 정찰자산을 가지고도 북한을 완벽하게 감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에도 우리 군은 북한을 24시간 감시한다고 자신했었지 않습니까.”

이용재는 책상을 탕 하고 치며 반발했다.

힐끗 국방장관을 한번 쳐다본 난 그와 무언의 대화를 잠시 나누다간 다시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거야 미군 자산을 근거로 했었던 말이겠죠. 아쉽게도 현재 우리 자체전력으로는 북한을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마당에 자체 정찰 위성 확보가 과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이제 북한은 핵 보유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그럼 군이 거짓말을 했다는 말입니까?”

이용재는 내 발언을 왜곡하려 했다.

오로지 공격만을 위한 포지션을 취하는 전형적인 의원들의 특기.

난 즉시 사실을 적시하는 것과 동시에 놈을 향해 또 다른 일침을 가했다.

“전 분명 미군 자산을 근거로 했었던 말이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더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만.”

“…….”

“명색이 국방위원께서 미군 자산과 우리 자산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서 과거 군의 발언에 대한 명확한 판단조차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

순간 카메라가 이용재를 향해 돌았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표정에서 이미 당황한 것이 잔뜩 드러난 상태.

결국 이렇다 할 말을 뱉어내지 못한 그는 다시 서류를 뒤적거리다간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그럼 이 무인정찰기 사업은 또 어떻게 된 겁니까? 이미 고고도 무인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중고도 무인기까지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도 중첩이라고 할 겁니까?”

“그야 물론이죠. 두 기종은 임무 영역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뭔가 착각하시고 계신 것 같은데, 중고도 정찰기의 경우는 정부가 발주한 사업이 아니라 재우가 자력으로 개발 중인 겁니다. 더군다나 그건 군에 납품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하니 이 청문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명제일 텐데요?”

“…….”

이용재는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곧 당황한 얼굴로 다시 서류를 뒤적이던 그는 재차 질문을 이었지만 그 질문 역시 결국엔 제 한계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걸 왜 자력개발 한다는 거죠?”

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꼬투리를 잡은 듯 순간 이용재가 버럭 소리를 친다.

“웃음이 나옵니까?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은 알고 있습니까?”

“여기가 엄숙한 의회인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하신 질문은 이런 엄숙한 자리에 속한 분께서 하신 질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이라서…….”

“뭐요?”

“군수산업체들은 판매처의 다변화를 위해 일부 품목들을 선도개발에 나서기도 합니다. 역시나 국방위원이라는 분께서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이 좀 당황스럽다는 거죠.”

그 말에 장내 곳곳에선 티 나지 않는 웃음이 터졌다.

얼핏 나를 비추는 카메라마저 조금씩 흔들리는 것으로 봐선 촬영감독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

덕분에 이용재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졌고, 난 그 시점에 쐐기를 박는 말을 더 뱉어 냈다.

“죄송하지만 하나만 묻겠습니다. 의원님께선 군수업체가 자력으로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청문회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용재는 차마 대꾸를 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낀 걸까, 때마침 위원장이 휴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잠시 휴회하겠습니다.”

벌떡!

이용재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힐끗 나를 쳐다보는 시선 속에는 독기가 잔뜩 오른 상태.

아마 이후 이어질 조선업계의 합병 문제를 다룰 자리에서 기회를 노리려는 모양인데, 그게 쉽지는 않을 거다.

막말로 조선업계의 현황을 제대로 까봐야 유리한 것은 나니까.

“너무 세게 나가시는 것 아니에요?”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는 오랜 친분이 있던 한지연 기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자 그녀가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아무리 세력이 줄었다 해도 명색이 여당 핵심 계파 의원인데, 너무 막 대하시는 것 같아서요. 듣자 하니 이용재 의원은 오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2차 청문회까지 계획 중이라고 하던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좀 살살 달래시라는 거죠.”

난 그 말에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뭐 나를 위해서 하는 말임은 알겠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그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거든.

“글쎄요, 저 양반을 2차 청문회 때도 볼 수 있을지는 좀 의문이군요.”

한지연은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마침 커피가 당기는 터라 그녀를 앞세우며 다시 말했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겁니다. 일종의 근거 없는 예감이라고 해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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