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81화
“오셨습니까.”
다급히 복귀한 회사엔 이미 주요 간부들이 모여 있던 상태였다.
내가 가장 먼저 시선을 준 것은 역시나 대외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전략실의 임효식 상무.
눈이 마주친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을 이었다.
“현재 시간으로부터 대략 1시간 40분 전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지진파가 감지되었습니다.”
“그게 핵실험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나온 겁니까?”
“국정원의 소식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정확한 것은 이틀 후쯤 방사성 핵종이 검출되면 최종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당장도 파형도 특성 및 음파탐지 상으로는 핵실험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답니다.”
“국정원에서 그리 판단했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한데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요?”
되묻는 나를 향해 중역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내 차분한 태도가 의외라는 표정들.
하지만 내게 있어 북한의 핵실험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던 만큼 태연하게 팔짱을 껴 보였고 마침 질문을 받은 임 상무의 대답이 이어졌다.
“네, 역시나 지진파의 모양과 크기로 봐선 성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첫 실험에서의 성공이라…….”
난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
역사와는 달리 늦어진 첫 핵실험.
그런데 처음부터 성공을 했다는 것은 뭔가 좀 구린내가 나거든.
게다가 이번엔 사전 징후조차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도 궁금하다.
“우린 그렇다 치고, 정말로 미국에서도 몰랐답니까?”
“그런 듯합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지금 백악관도 비상 회의에 돌입했다더군요.”
대답한 이는 안 대표였다.
한때 국정원의 수장이었던 면모가 여기서 드러나는 거지.
이미 사방으로 뻗어 있는 안테나를 통해 수집한 자료가 꽤 많았던 듯 그의 손엔 수십 장에 달하는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풍계리를 감시하는 미군 정찰자산이 몇 개인데.”
“저도 그 점에 놀랐습니다만, 분명 사전 징후는 없었다고 합니다. 저 그런데…… 한 가지 제가 세운 가설이 있기는 합니다만.”
“말씀해 보세요.”
눈치를 보며 말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들고 있던 서류 한 장을 꺼내든 그는 나를 향해 그걸 건네며 말을 잇는다.
“일전에 북한이 풍계리에서 핵실험 징후를 보였다가 그냥 갱도봉쇄를 해 버렸던 것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납니다.”
“아마도 그때, 사전 준비를 끝내 놨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그때의 움직임은 이 날을 위한 쇼였다?”
“그것보다는 당시엔 모종의 이유로 실험을 중지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그러다 정작 본격적인 실험 시기가 다가오자 그 시설을 은밀히 다시 이용한 거죠.”
“하지만 핵물질 반입은 어쩌고요.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설사 갱도준비가 이미 갖춰졌다곤 해도 이동하는 인력들의 움직임이나 여타 추가 장비의 반입 움직임은 감시를 벗어나기 힘들었을 텐데요.”
“저도 그게 의문이기는 한데, 아마 갱도 내부에서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안 대표는 대꾸와 동시에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위성에서 찍은 사진인 듯 보이는.
한참을 쳐다보던 난 갱도에서 대략 1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에 표시되어있는 둥근 원을 발견하곤 다시 질문했다.
“이 표식은 뭡니까?”
“거긴 풍계리에 있는 벌목꾼들의 숙소 및 야적장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에 왜 표식을 해 둔 거죠?”
“바로 그곳을 통해서 핵물질과 추가 장비들을 갱도로 반입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럼 여기서 갱도까지 굴을 팠다는 겁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는 거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여긴 지반 전체가 화강암지대입니다. 그런 곳을 10킬로미터나 땅굴을 팠다고요? 그것도 정찰자산들의 눈을 속여가면서?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한 일이기는 합니까?”
그 말에 안 대표의 입매가 뒤틀렸다.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려는 순간 그가 다시 말한다.
“죄송하지만 북한을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려 해선 곤란합니다.”
“…….”
차마 대꾸를 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저들이 상식 밖의 일을 벌인 것이 한두 번일까.
남쪽 지역으로 뻗어 있는, 밝혀지지 않는 땅굴의 수만 봐도 그건 이해가 될 정도지.
뭐 그 문제야 그렇다 치고, 지금껏 청와대와 군이 조용한 이유는 또 뭐지?
평소 같았다면 벌써 내 전화기가 울려도 몇 번은 울렸어야 정상이었을 상황에서.
“청와대에선 미국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쪽에서 대처방안이 나와야 우리도 뭔가 제스쳐를 취할 테니까요.”
때마침 들려온 김영기 대표의 말은 의문을 해소해 줬다.
내내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던 듯.
난 그 말에 잠시 시계를 쳐다보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면 이렇게 모여 있는 것 자체가 별반 의미 없는 일 아닙니까. 오늘은 그냥 퇴근들 하시죠.”
“이런 상황에서요?”
중역 중 한 명이 넌지시 반발했다.
마치 이런 상황에서 자리를 뜨는 것이 영 마음이 편치 않다는 듯.
하지만 정작 미국도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마 백악관의 반응은 빨라야 내일쯤에나 나올 겁니다. 그들도 대책을 세우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하니 괜한 에너지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다려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중역은 끝까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막상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치는 생각은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는 것.
매번 북한으로부터의 소식이 들려오는 날이면 잔뜩 긴장을 해야만 하는, 이 나라 국민들의 멍에 말이다.
“말했듯 미국의 반응은 오늘 안에는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거야 모르죠. 미국에서 북한을 폭격하겠다는 긴급한 성명이라도…….”
그 말을 듣고서야 중역이 긴장한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았다.
전쟁발발의 가능성.
그게 두려웠던 거지.
하긴, 자칫 전쟁이라도 나는 날이면 지금껏 쌓아왔던 기반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두려운 마음이 들 법도 하다.
“글쎄요, 전 폭격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만.”
“…….”
“전쟁에 주저함이 없는 전 미국 정권에서도 안 한 것을 이번 정권이 시행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게다가 지금은 미국이나 우리나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폭격을 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죠.”
“…….”
“자칫 상황이 악화되어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면 아시아에 또 하나의 전장이 생기는 건데, 과연 미국에서 이 시기에 그런 위험 부담을 끌어안고 갈지가 의문이라는 말입니다.”
“…….”
중역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는 듯.
헛웃음을 뱉어내곤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김 비서가 다급하게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회장님! 미국에서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빨라진 미국의 반응에 순간 긴장감이 파고들었다.
혹여 내 호언장담과는 달리 정말로 폭격이라도 실시하려나 싶은 마음에.
하지만 곧 김 비서에 의해 화면을 밝힌 TV에서는 역사를 재현하는 담화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금 전 백악관에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비판과 함께 국제적인 공조를 통한 강력한 제재안을 실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흠…….”
조금은 허탈함이 뒤따랐다.
어차피 바뀌어 가는 역사.
하면 이 부분에서도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던 것이 사실이거든.
“퇴근들 합시다.”
그렇다고 전쟁을 바란 것은 아니다.
솔직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전쟁은 무슨.
안 그래도 중국 놈들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북한을 점령할 욕심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늘 청천강 이북 지역을 제 땅이라고 우겨 대는 중국 놈들을 생각하면 사실상 지금 전쟁을 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 사실이지 않던가.
‘전쟁이 난다면야 북한을 수복하는 것은 시간 문제겠지만, 정작 그게 문제라는 거지.’
그 기회에 중국 놈들이 북한을 먹어 버리려 달려들 가능성.
물론 러시아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어차피 미국과 전쟁이 일어난 판국에 러시아의 눈치를 볼까?
‘게다가 일단 점령부터 하고 나서 협상을 하겠다는 전략으로 나서면 그야말로 골치가 아픈 거지.’
그 경우 미국도 세계대전을 우려하여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크고.
솔직히 당장 이라크에서조차도 발을 빼지 못하는 미국으로서는 적당한 선에서 땅을 나눠 먹자는 중국의 제안을 쉽게 거부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쯧.”
지나친 상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중국 놈들은 미국을 상대로 그런 제안을 했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통일은 인정하되 청천강 이북 지역을 제 놈들이 관리함으로써 완충지대를 만들자고.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었다.
대체 누구 마음대로 지들이 남의 나라 땅을 또 멋대로 재단해버린다는 말인가.
‘중국은 천년의 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지.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상승 단계요격체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데,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사실 내가 믿고 있는 구석은 바로 그 점이었다.
설사 북한이 완벽한 핵과 투발 수단을 보유했다 해도 우리는 이미 그걸 무력화 할 수단을 개발한 상태라는 것.
아직은 전력화가 진행된 것은 아니기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거야 문제 될 것이 있을까.
어차피 북한도 핵을 소형화하여 미사일에 탑재하는 것까지는 최소 6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마당에.
‘그러고 보면 아직 북한을 정리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셈인 건가?’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늘 오전 중국 총리와의 통화를 통해 두 나라의 대북 제재에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 내 기업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동안 눈치를 살피던 중국도 결국엔 제재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게 실효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 혼자 뿐.
특히나 파급력이 큰 석유제품과 식량에 대한 제재안에 대해선 중국이 어떻게든 꼼수를 부릴 것을 알기에 더더욱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하여 군 정찰자산의 확보를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또한 상승 단계 요격체계의 조기 확보 역시…….]
우리 정부의 반응 역시 예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뭐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야 한계가 있었으니까.
물론 전작권의 전환이 이루어지고는 있다지만 아직은 완전한 이양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
아니, 설사 전작권이 있다 해도 독단적인 전쟁의 수행은 역시나 중국으로 인해 무리인 것이 사실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대처일지도 모른다.
[정부는 오늘 오전 통합 군수지원함의 건조를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총 도입 수량은 4척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며 사업비는 최대 수조 원 대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정부는 재차 국민들을 안심시킨다는 명목으로 새로 설립된 중기 국방계획안의 조기 집행을 시사했다.
최대 6척에 달하는 이순신급 구축함의 추가 건조를 비롯하여 기존 이순신 급의 개량사업추진.
그리고 무려 4척에 달하는 통합 군수지원함의 건조까지.
아마도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기회로 미뤄뒀던 해군의 전력증강사업을 한 번에 통과시킬 의중인 모양이었다.
[이런 경제위기 상황에서 과도한 군비 지출이 말이 됩니까?]
[그럼 북한은 핵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린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까?]
TV에선 연일 정부의 대책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우스운 것은 반대여론이 여, 야를 막론하고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
특히나 여당의 핵심 계파였던, 하지만 지금은 거의 퇴물 취급을 받고 있는 이용재가 유독 심했는데, 그는 이 기회를 부활의 첨병으로 삼으려는 듯 연일 언론을 동원하여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여당이라도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선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재우 그룹의 진현승 회장이 이 나라의 진정한 실세라고까지 하는데, 그게 마냥 헛소리만은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계시죠?]
“이용재. 대표적인 사학 재벌 집안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더불어 이 나라 대표 신문사들 중 몇몇도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함께 뉴스를 보던 김영기 실장이 넌지시 이용재의 집안에 대한 정보를 알려왔다.
사학 집안 출신이라는 것은 그렇다 치고, 신문사마저.
어쩐지 믿는 구석이 많아 보인다 싶더니, 그게 이유였나 보다.
“어느 신문사가 그의 뒷배랍니까?”
“한서일보를 비롯하여 대일일보가 대표적입니다.”
“꽤 전통 있는 곳들이군요.”
“악착 같이 살아남은 곳들이죠. 뭐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차피 그 신문사들도 이용재처럼 일본계 자금원이 막대한 후원을 하고 있으니까요.”
“쯧, 그렇게 밟아도…….”
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 나라를 향한 일본의 뿌리 깊은 관여는 언제까지 가려나 싶은 마음에.
전쟁이 나면 가능하려나?
해서 그들도 나라가 완전히 짓밟히는 꼴을 겪고 나서야 인정하려나?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정치는 마약과도 같다는 말. 이용재를 보면 그게 절로 느껴집니다.”
김영기 실장은 연신 탄식을 내뱉었다.
정치판이 마약과도 같다.
오늘따라 그 말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그나저나 이쯤에선 우리도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나도 그 말엔 동의 했다.
이젠 저들이 거짓 뉴스마저 생산을 해내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이 정권의 실세라는.
뭐 어떤 면에서 본다면 딱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건 꼭 내가 대통령을 손에 쥐고 흔들어 대는 인물로 비춰지지 않던가.
“그래야죠.”
만약 이대로 침묵만 한다면 그 거짓은 조만간 사실로 둔갑 될 터.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면 차후 정부는 물론 나마저도 곤란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니까.
“생각해 두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일단 홍보실 연락하셔서 각 언론사의 논설주간들과 접촉 좀 하라고 하세요.”
내가 택한 방법은 저들의 수법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저들이 언론을 이용한다면 나 역시 그걸 이용해 주겠다는 거지.
어차피 언론도 결국엔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단체.
저들의 실수는 그 돈의 논리에 있어서 내가 더 유리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 차라리 이 기회에 정리할 인간은 정리를 해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