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80화
[전부는 아니고, 부분적으로 티타늄을 사용하자는 거죠. 그 경우 대략 30퍼센트 정도의 단가하락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자체적으로 티타늄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것이 가능한 러시아로서는 그보다 더한 절감을 할 수가 있겠죠.]
푸틴은 그 말에 옅은 웃음을 내비쳤다.
마치 내 의도를 이해하겠다는 듯.
아니나 다를까, 곧 그의 입매가 잔뜩 뒤틀리더니 툭 하고 말을 뱉어 낸다.
[어디 그게 러시아만 좋은 일이겠습니까? 재우로서도 좋은 일이겠죠.]
[맞습니다. 단가가 하락하는 경우 우리 군의 도입물량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죠. 게다가 수율이 딸리는 복합소재로 전체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이익이 많이 나는 편이기도 합니다.]
[하면 차라리 러시아에 재우의 티타늄 제련과 복합제 공장을 설립하는 것은 어떻소. 어차피 그 부분이야 우리에게 제공되는 기술들이니 따로 기술유출 우려를 걱정할 문제도 아니고, 티타늄 부품의 경우는 단가를 확 낮추는 계기가 될 것 아닙니까. 아! 생각해보니 외골격만이 아니라 재우가 필요로 하는 티타늄 관련 부품은 죄다 단가하락을 유도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기야 하죠.]
제법 괜찮은 생각이다 싶어 동조했다.
무슨 의도인 거지?
푸틴이 입매를 잔뜩 뒤틀며 다시 말한다.
[해서 말인데, 만약 진 회장이 그럴 의도가 있다면 나도 적극 돕도록 하겠소. 예를 들면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해 준다던가.]
그렇게만 된다면야 나로선 대환영이었다.
안 그래도 원료상태로 들여와 국내에서 또 가공과정을 거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상태니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얼핏 푸틴이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러십니까?]
[아 그게…… 혹시 오해할까 싶어서 미리 말합니다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앞선 문제들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니 그리 알고 들으시오.]
[…….]
뜸을 들이는 폼이 아쉬운 말을 하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아니라고는 해도 역시나 부지제공은 이제 나올 말들에 대한 밑밥이었던 거겠지.
묵묵히 쳐다보자 평소 그답지 않은 자신감 없는 표정과 함께 말을 잇는다.
[혹시…… 우리에게도 전신 방탄 수트를 수출해 줄 수 있습니까? 물론 기술이전까지는 바라지도 않소. 뭐 그걸 원한다고 해 봐야 들어 줄 진 회장도 아니고.]
[…….]
[왜요, 곤란합니까? 내가 알기로는 그 부분에 대한 권한은 미국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진 회장에게 전권이 있다고 하던데…….]
전신 방탄 수트의 수출 문제가 미국과 상관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지상 전력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물건.
때문에 수출 자체에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설사 수출을 한다 해도 그에 합당한 반대급부의 제공이 필수인 품목이다.
[글쎄요, 아시다시피 그건 외부에 팔아먹기엔 좀 부담이 많이 가는 물건이라서…….]
[…….]
[뭐 하지만 반대급부가 확실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다른 곳도 아니고 러시아가 원한다면야.]
[아니 이 상황에서 또 뭘…… 티타늄 제련공장 부지를 제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까?]
[그건 이 문제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방금 전 대통령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
[더군다나 티타늄 공장 설립이 우리에게만 이익은 아닐 텐데요? 고용창출 및 지역경제발전. 그걸 생각하셔야죠]
[…….]
아마 지금쯤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얻어가야 할 것이 또 있는 마당에 대뜸 선심부터 쓴 것을.
이래서 협상을 할 때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는 거다.
[흠…….]
고민에 빠진 푸틴은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곧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오겠지.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우리 병력들로 인해 결과를 직접 목격한 그로서는 결국 욕심을 버릴 수 없을 테니까.
[뭘 원하시오.]
예상처럼 푸틴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 시점에 내가 러시아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딱 하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자 그의 눈이 다시 커다랗게 떠진다.
[액체연료 기반 우주 발사체 기술?]
[그렇습니다.]
[그걸 왜…….]
[그야 당연히 위성을 띄울 수단을 확보하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자체 정찰 위성을 띄울 계획이 없지 않소.]
[아직은 그렇죠. 하지만 언젠가는 확보를 시도할 겁니다. 뭐 꼭 그게 아니라도 재우가 자체적으로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고 싶다는 것이 정확한 변명일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쉽게 말해서 민간 주도로 우주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아니, 발사체는 물론 자체 정찰 위성 제작기술까지.]
[…….]
푸틴은 기가 찬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부정의 의미는 아니었던 듯 넌지시 그게 실행되었을 경우 발생할 수 있을 문제점들을 거론한다.
[하긴, 재우그룹 정도의 재력이면 그 정도야 뭐…… 하지만 그건 염두에 두고 있는 겁니까? 말이 우주 발사체지, 자칫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의혹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것 말이오. 특히나 이번에 당선된 미 대통령의 성향을 보면 더더욱 딴지를 걸어올 가능성이 클 것 같소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어차피 과거에 우린 우주 발사체 개발에 대한 권한을 획득한 상태니까요. 물론 민간에서의 개발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거야 포장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흠…….]
그는 비로소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화의 흐름으로만 보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않는 듯한 분위기.
결정을 돕기 위해 난 기어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사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액체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단지, 전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겠다는 생각에서 제안을 드린 거죠.]
단순한 허풍은 아니었다.
회귀 전, 우린 액체 우주 발사체 분야에 있어서 일정 부분 성과를 보이고 있었던 상태니까.
만약 그걸 기초로 한다면 향후 7년 안에는 소형 위성 정도는 띄워 올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흠…….]
그럼에도 굳이 러시아의 기술을 원하는 이유는 기술 수준의 차이 가 워낙 극명하기 때문이다.
무려 수십 톤에 달하는, 막대한 무게의 전략 정찰 위성을 띄워 올리는 기술.
난 지금 한시라도 빨리 그걸 확보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중이고, 그걸 위해선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다.
[일던 그 부분은 돌아가는 대로 우리 측 관련자들과 논의를 좀 해 보겠소.]
푸틴은 처음으로 독자적인 판단을 미뤘다.
그만큼 이 문제는 쉽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그게 꼭 부정적인 결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터.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습니다.]
***
2009년 1월.
짝짝짝!
푸틴과의 협상 이후 재우디펜스에서는 K21 개발과정이 공개 되었다.
아직은 차체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내년쯤이면 포탑을 비롯한 여타 무장체계와 전투제어시스템의 개발까지 어느 정도는 성과를 보일 거고, 이후엔 재우가 단독으로 개량을 시작할 예정이다.
레드백.
그 불세출의 전투장갑차량으로까지.
“정말로 파생제품까지 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내 계획을 알고 있던 김영기 실장은 연신 우려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재우가 선도개발 중인 품목의 수는 무려 20여 개의 품목 이상.
그 탓에 한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재정적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그게 왜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저 K21을 기반으로 한 전투장갑차량의 경우엔 시장성이 어마어마한 제품이니까. 게다가 재우의 재정 상태는 김 실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튼튼합니다.”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단지 선도개발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렇죠. 참, 그나저나 러시아에서 티타늄 제련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푸틴은 자신이 제안한 대로 재우의 현지부품공장 설립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릴 위해 무상 제공한 부지의 규모만 해도 거의 100만 평에 가까울 정도.
얼핏 과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자국의 고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현명한 처사인 거다.
“조만간 현지답사팀을 보낸다고 하세요.”
“네, 조치하겠습니다. 한데 벌써 평택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죠. 지금쯤 러시아 연구원들이 도착했을 테니까요.”
이후 난 차량에 올라 평택으로 향했다.
푸틴과의 협의로 이루어진 플라즈마 스텔스 공동 개발안.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난 협의가 끝나는 즉시 개발 센터를 개설해 버린 상태였고, 러시아 역시 서둘러 개발인력들을 보낸 상태였다.
[총 파견 인력들은 20명입니다. 그리고 우리 측 인력 감시를 위해 추가로 3명의 대외정보국 요원들이 파견된 상태고요.]
연구원 한 명 한 명을 내게 소개하던 나타샤의 입에선 조금 생뚱맞은 말이 들려왔다.
저들의 감시를 위해 이번엔 따로 요원들이 파견 되었다는.
그 말인 즉, 나타샤는 감시 역에서 빠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체 푸틴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타샤 같은 뛰어난 정보요원을 고작 내 경호원으로 붙여두려는 의도.
[이유가 뭡니까?]
[뭐가요?]
나타샤는 툭 하고 뱉어진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너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던 건가.
곧바로 다시 사족을 달려는 차에 그녀가 불쑥 말을 잇는다.
[아시잖아요. 각하께서 진 회장님의 안전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계시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좀 서운할 정도입니다.]
[서운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귀국 전에 저를 따로 불러낸 자리에서 그러셨거든요. 설사 제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진 회장님의 안전은 꼭 확보하라고. 그 말에 서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듣고 있자니 영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나를 향한 푸틴의 태도.
아무리 내가 효용 가치가 큰 인물이라고는 해도, 자국의 특급 정보원에게 그런 식으로까지 말을 한다는 것은 좀 과한 것이 사실이지 않던가.
뭐 그건 그렇고, 샐쭉 입을 내미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날의 꿈이 다시 떠올라 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어디 아프십니까?]
[아, 아니 신경 쓰지 마세요.]
재빨리 돌아서선 차에 올랐다.
이내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차량 속.
최근 수행을 재개한 김 비서가 곁에서 뜬금없는 질문을 뱉어 낸다.
“저 회장님. 혹시 나타샤가 회장님께 뭐 실수한 것이라도 있었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근 들어서 나타샤를 대하는 회장님 태도가 유독 차가워진 것 같아서요.”
“내가요?”
그 말에 내심 뜨끔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를 딱딱하게 대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고 있었거든.
“아무리 가까워 졌다곤 해도 그녀의 소속은 결국 러시아의 정보원입니다. 우리로선 적당히 거리를 둘 필요가 있죠.”
난 애매한 변명으로 수습했다.
하지만 왜일까, 김 비서의 눈은 오히려 더 가늘어졌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겁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방금 이상한 촉이 와서요.”
“촉?”
“네, 여자들만이 가진…… 그건 그렇고, 회장님께서 러시아 연구원들과 면담을 진행하는 사이 라이언 대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왠지 의미심장하다 싶어 눈이 가늘어진 순간 그녀가 재빨리 화제를 전향했다.
문제는 하필 그 전향된 화제가 제법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
즉시 생각을 떨쳐내곤 되물었다.
“뭐랍니까.”
“지시하신 공매도를 진행 중인데, 어느 선까지 밀어야 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건 일본 증시를 상대로 진행했던 공매도를 의미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시대.
미국은 몰라도 일본을 상대로 한 공매는 굳이 꺼릴 이유가 없기에 지시했었던.
그 때문인지 최근 일본 증시상황은 역사보다 더 큰 위기를 경험하고 있었는데, 이쯤에선 슬슬 커버링을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 슬슬 빠지라고 하세요. 어차피 일본은행이 나서고 있는 이상 더 이상의 하락을 유도하기는 힘들 테니까. 차후 기회는 다시 올 테니 너무 욕심 낼 필요는 없다고도 전하시고요.”
난 이쯤에서 빠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일본주식시장은 중앙은행이 시장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
아무리 내가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고는 해도 일본의 중앙은행과 끝내 맞서기는 부담스러우니까.
뭐 그렇다 해도 성과는 충분했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일본은행은 거액의 자금으로 지속적인 주식 및 ETF 매입을 시도했고, 그건 향후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테니까.
‘중앙은행의 과도한 주식시장 개입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 거다.’
그건 단순히 내 바람만은 아니었다.
이후 중앙은행이 주식을 조금이라도 매도하는 상황이 되면 의도와는 다른 신호전달로 주가는 다시 대폭락을 할 터.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속적인 매입뿐인데, 그 돈이 과연 어디에서 나겠는가.
또 막대한 돈을 찍어내는 수밖에.
하면 그건 MMT 이론에 근거하여 무한한 돈을 찍어낼 그들을 더더욱 부추길 테고, 붕괴의 발화점이 오는 순간이면 더 빨리 지옥의 문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될 거다.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김 비서는 짧은 대꾸를 끝으로 침묵했다.
왠지 평소답지 않게 착 가라앉아 있는 그녀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김 비서.”
“네?”
넌지시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나를 쳐다보는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발신자가 안 대표님이신데요. 급한 지시사항이 아니시면 먼저 전화부터 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흔쾌히 대답하곤 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몇 통의 부재중 통화 내역.
아무래도 나와의 통화가 여의치 않자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네?”
그때 김 비서의 언성이 확 올라갔다.
불길한 예감에 휙 하고 그녀를 쳐다보자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말한다.
“북한이 1시간 전에 핵실험을 했다는데, 아무래도 성공한 듯싶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