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79화
<오늘 오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습니다. 재임 기간 중 한국을 찾은 것은 이것으로 총 3번째이며, 이번 방문 목적은 경제교류 확대 및 야말반도의 가스전 개발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진행 상황 논의가 목적이라고 합니다.>
2008년의 마지막 날.
예고했던 대로 푸틴이 한국을 다시 찾았다.
총 3일간의 일정 중 이틀은 정부와의 대화에 힘을 쏟은 그는 마지막 날 경제인들과의 오찬을 핑계로 나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나타샤의 전언에 따르면 진 회장은 요즘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혹시 요즘 뭐 따로 챙겨 먹는 영양제라도 있습니까? 그런 것이 있다면 혼자서만 먹지 말고 정보 좀 공유합시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재회의 자리에서 푸틴은 부쩍 내 외모에 대해 관심을 드러냈다.
하긴, 나조차도 요즘 거울을 보면 가끔 시간이 멈추었다 싶을 정도인 마당에야.
이게 회귀의 영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나로서도 알 방법이 없다.
[영양제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노벨상을 받아도 몇 번은 받았겠죠. 그저 꾸준한 운동이 결국엔 보약인 겁니다.]
[그런 교과서 같은 이야기 말고, 정말로 뭔가 비법이라도 있는 것 아니오?]
푸틴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우스갯소리인 줄만 알았건만, 진심으로 불로불사의 영약이 있다고 믿기라도 하는 걸까.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을 뱉어내자 그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신다.
[쯧, 정말로 타고난 체력인 모양이군.]
[진심이셨던 겁니까?]
[뭐 아주 조금은…… 하지만 그것도 다 진 회장 탓이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진 회장은 왠지 그런 약 같은 것도 만들어 낼 만한 인물이잖소.]
[설마요.]
난 다시 웃음을 뱉어내며 대꾸했다.
때마침 내리는 눈.
덕분에 시선을 잠시 창밖으로 향했던 푸틴은 한껏 감성적인 투의 말을 뱉어낸다.
[저 눈을 보니 야말반도의 그 백색 대지가 떠오르는군. 참, 야말반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건데, 그 소식 들었습니까?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부들 사이에서 최근 아주 독한 독감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
그 소식이라면 나도 듣고 있었던 상태였다.
느닷없이 인부들 사이에 확산된 독감으로 인해 사업에 지장이 생겼다는 사실.
현재 우리 측 사업 책임자로 가 있던 현철의 전언에 의하면 위세가 보통이 아니라는데, 워낙 감염력이 강력해서 현장 직원들 중 절반 이상이 출근을 못 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쯧, 첫 전파자가 중국을 다녀온 우리 러시아 인부라고 하더군요.]
잠시나마 나를 놀라게 했었던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중국과 바이러스.
덕분에 난 한때 그걸 회귀 전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갔었던 covid-19가 조기에 발생한 것은 아닐까 싶었거든.
뭐 다행히도 단순 계절성 독감이라는 결론이 난 상태긴 하지만 한때나마 가슴을 졸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더군요. 해서 말인데, 야말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원들을 상대로 한동안은 중국 방문을 자제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특히나 우한 지역은 더더욱.]
굳이 우한을 언급한 것은 그곳에 있는 바이러스 연구소 때문이었다.
회귀 전에도 covid-19의 진원지로 의심받는 곳.
뭐 이시기에야 그 사건이 벌써 벌어질 리는 없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은 또 모르는 것이 아니던가.
특히나 역사의 시간표가 이렇듯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는.
그때, 푸틴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튀어나왔다.
[우한? 혹시 진 회장도 그 소식을 들은 거요?]
[소식이라니, 뭘 말입니까?]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말입니다. 소식에 의하면 최근 그곳에 생물 안전 4등급 연구시설을 추가한다고 하더군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난 지금 covid-19가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는 첫 시작점을 목도하고 있는 지도 모르거든.
물론 중국은 우한 연구소가 진원지라는 사실에 대해 극구 부정하지만, 그거야 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지.
아무튼, 그게 사실이면 그 빌어먹을 흑역사의 기반이 갖춰지고 있다는 건데,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쯧, 그렇다고 거길 폭파시켜 버릴 수도 없고.’
최선의 방법은 사실 그것뿐일 거다.
차라리 연구소가 사라진다면 우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정복은커녕 풍토병처럼 되어버린 그것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래를 생각하면 그편이 확실히 낫다.
‘무슨 생각을…….’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테러. 또는 전쟁이 나는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설립 예정일은 언제랍니까?]
[목표는 2014년까지라고 하더군요.]
그게 역사와 일치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긴, 어차피 타임라인은 이미 뒤죽박죽이 된 상황에서 그걸 따져 뭣할까.
잠시 들었던 생각을 떨쳐내려는 순간, 푸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 문제는 중국의 경우 이미 사스를 유출시킨 경험이 있는 나라잖소.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그게 걱정이라는 말이오.]
그건 마치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 듯한 말이었다.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곧 그렇게 되는 것이 역사지.
웃으며 찻잔을 집어 들려는데, 문득 또 다른 엉뚱한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쳐 갔다.
‘가만, 그러고 보니 covid-19가 문제가 아니라 몇 년 후면 신종 플루가 대유행을 하게 되잖아.’
어차피 그것 역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왕 창궐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이면 오히려 그걸 이용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한 대처를 미리 해둔다던가.
그렇게 되면, 단순히 산술적 이익을 넘어서 또 하나의 권력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시오?]
[아, 아닙니다.]
막상 그 생각을 해보니 굳이 살상 무기가 아니라도 힘이 될 만한 것은 또 있었다.
종자산업.
이건 향후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힘의 균형추가 되는 품목이지.
미래를 생각하면 그걸 지키고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현재 내가 개발하고 있는 무기들도 중요하지만, 그 역시 또 다른 주요무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흠…….’
생각이 그에 미치자 갑자기 흥분감이 감돌았다.
뭐랄까, 내가 정복할 또 하나의 산을 찾아낸 느낌?
조만간 그 부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듯싶다.
[흠흠…….]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푸틴이 헛기침을 뱉어냈다.
경험상 저런 표정은 내게 뭔가 부탁할 것이 있다는 증거.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말을 뱉어낸다.
[플라즈마 스텔스 공동 개발 말입니다. 막상 생각을 해보니 함께 진행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더군요.]
[……물론 조건이 붙겠죠?]
난 넌지시 되물었다.
웃음기 어린 내 표정이 불만인 걸까,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전에 내게 말했던 무동력 외골격 공동생산 제안 말입니다. 혹시 그거 아직도 유효합니까?]
[그야 물론입니다. 우리로서야 사업 참여자가 많아지면 단가인하의 여지가 생기는 셈이니까요.]
[하면 그렇게 합시다. 단,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프린터의 경우 충분한 수량을 제공해줘야 합니다.]
푸틴은 이제야 프린터의 위력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게 산업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진 물건인지를.
하지만 그걸 마구잡이로 제공하는 것은 곤란하다.
[죄송하지만 프린터는 오로지 한 대만 제공 가능합니다.]
[……뭣 때문에요.]
[그야 당연히 기술유출을 우려해서죠. 해서 제공되는 그 한 대의 프린터의 경우도 봉인이 해제될 시 자동으로 기능이 멈추도록 제작될 것이며 관리 역시 우리가 합니다.]
[…….]
[뭐 그럴 리야 없겠지만, 괜히 프린터 기술을 얻어 보겠답시고 뜯어냈다간 그나마 외골격도 생산을 못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거죠. 참고로, 그건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선 절대로 기술습득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미리 알려드리죠.]
푸틴의 눈매는 잔뜩 좁아졌다.
속을 들킨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보다는 발생한 변수로 인한 수지타산을 다시 떠올리는 듯한 눈빛.
그럼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조치도 없이 그 핵심 장비를 넘겨줄까.
웃으며 쳐다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린다.
[기술유출을 염려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고작 한 대만 가지고 뭘 어쩌자는 겁니까.]
[실물을 보시면 고작이라는 표현은 못 하실 겁니다. 그 한 대만으로도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수량 정도는 충분히 생산 가능한 정도니까요.]
[…….]
[그리고 뭔가 판단을 잘못하고 계시는 듯한데,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의 공동 개발은 꼭 우리에게만 이익인 것은 아닙니다. 즉 대통령님께서 제가 내민 조건에 불만을 가지실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그건 또 무슨 말이오.]
푸틴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난 그 타이밍에 가지고 온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우리가 중점적으로 연구 중인 분야는 자기장 제어기술입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양날의 검을 해결하는 것. 즉, 기체를 둘러싼 플라즈마를 뚫고 외부의 신호를 탐지하는 기술이죠.]
순간 푸틴의 얼굴이 꿈틀했다.
무리도 아닌 것이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들에게는 충격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굳이 그걸 따지기보다는 우리의 연구 방향에 더 관심을 보였다.
[재우에서 자기장 제어기술을 연구 중이다?]
[그렇습니다. 러시아에게도 그건 꼭 필요한 기술이죠. 하니 두 연구 분야가 합쳐지면 개발시간 단축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건 러시아에게도 이익인데, 이 상황에서 제가 제시한 조건에 불만을 가지실 이유가 없다는 거죠.]
[흠…….]
순간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애써 피하지 않자 이내 표정을 바꾼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군. 좋소, 나도 더는 욕심 부리지 않으리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어차피 한국은 무장창에만 플라즈마 기술을 적용할 예정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럼 완벽한 자기장 제어기술만 확보하면 끝나는 상황인데, 굳이 우리와 협력을 할 필요는 없지 않소.]
그의 말은 제법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린 러시아처럼 플라즈마의 벽을 뚫고 외부를 탐색 가능하게 할 기술까지는 필요치 않지.
[글쎄요, 제가 워낙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서? 뭐 욕심이 많아서…… 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스텔스 기술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형상 설계와 RAM.
단지 그것만으로 레이더를 속이는 것은 곧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 역사거든.
결론적으로 보다 완벽한 스텔스 성능을 보장해줄 플라즈마 기술 역시도 기체에 도입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다.
아니, 욕심이라기보다는 결국엔 가야 할 길을 가겠다는 거지.
미국 역시도 결국엔 그 길을 추구했었기도 하고.
[지나치게 솔직한 대답이군. 좋습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개발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푸틴은 결국 전체적인 사안에 있어서 내 주장에 합의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내 이익을 챙길 차례.
사실 지금껏 오고 간 거래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이 국가의 이익이지 내 이익은 아니지 않던가.
[외골격 공동생산 문제에 있어서 한 가지 건의 드릴 것이 있습니다.]
[…….]
나지막하게 뱉어낸 말에 푸틴이 무심하게 나를 쳐다봤다.
또 한 번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들이밀자 그의 눈이 번쩍 떠진다.
[공동생산할 무동력 외골격에 우리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티타늄을 적용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