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76화
“이쪽입니다.”
합참에 도착하자 대기 중이던 영관급 장교 한 명이 나를 상황실로 안내했다.
몇 번의 보안과정을 거친 후에 다다른 상황실에는 이미 여러 장성들은 물론 정부부처 관료들마저도 미리 자리하고 있던 상태.
무엇에 그리 집중하고 있는지 다들 어두컴컴한 화면에만 온 정신을 팔고 있었고, 합참의장 역시 나를 안내했던 장교의 귓속말이 있고 나서야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벌써 도착하신 겁니까?”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어색한 미소로 시선에 일일이 응수하곤 다시 합참의장을 쳐다보자 그가 자리를 권하며 말한다.
“방금 러시아가 구출 작전을 실행했다는군요. 미국 방송에서 그 부분을 분석하는 뉴스를 내보내고 있어서 보고 있던 차였습니다.”
“결과는요?”
되묻는 나를 향해 합참의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실패를 의미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눈이 커다래질 무렵, 그가 한숨을 내뱉는다.
“배를 다시 탈환하는 것에는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발생한 모양입니다.”
“…….”
난 그 말에 화면을 쳐다봤다.
얼핏 들려오는 기자의 말은 셋이나 되는 러시아 대테러부대원들이 해적들에 의해 희생 되었다는 소식.
피해는 단지 그것만은 아닌 듯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인질들의 상황도 언급 중이었다.
“아니 어쩌다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터라 되물었다.
러시아 대테러부대라면 서방에서도 인정해주는 정예들 중의 정예인데, 그들이 고작 해적들 따위에게 당했다는 것은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거든.
“저 여기…….”
그때, 나를 안내했던 예의 그 중령이 다가오더니 서류 하나를 내밀었고, 난 한참을 그 서류를 쳐다보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결국 부족한 방호력이 문제였다는 겁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해적들 중에서 눈치 빠른 자가 몇몇 있어서 교란 작전에 넘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러시아도 나름대로는 CIWS 까지 동원해서 시선을 끌기는 했지만, 결국 헬기의 접근 사실이 발각 된 거죠.”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헬기 로터 소리를 완전히 숨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네, 해서 러시아가 취한 방법은 상선 일부를 실질적으로 피격하여 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습니다만, 문제는 그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거죠,”
장교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내 질문에 대꾸했다.
사실이라면 이건 명백한 오판.
왠지 러시아답지 않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 하려는 차, 갑자기 상황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오오!”
누군가 짧은 탄성과 함께 화면을 손가락질했다.
이제껏 뉴스를 방영하던 화면이 갑자기 어둑해지나 싶더니 곧 구축함의 갑판으로 보이는 곳과 그 위에 도열해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위성을 통해 현지와 실시간 연결 되었습니다.”
뒤이어 저편에선 해군 장성 한 명이 소리쳤다.
사실이라면 저건 우리가 보낸 ᅟ문무대왕함의 선미 갑판일터.
난 즉시 합참의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거 UDT 대원들인 것 같은데, 벌써 구출 작전을 시작하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협상은요?”
“러시아가 구출 작전에 돌입한 순간 저쪽에서 갑자기 협상 채널을 닫아 버렸어요.”
“…….”
사실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돈이 목적인 자들이 협상 채널을 스스로 닫아 버린다는 것은.
대체 왜지?
의아한 마음이 드는 순간 합참의장이 넌지시 나를 향해 말한다.
“그나저나 이거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미 해적들도 러시아의 구출 작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인 터라 경계심이 잔뜩 올라갔을 거라는 말이죠.”
잠시 들었던 생각은 그 말에 날아가 버렸다.
어차피 무력을 통한 해결 외에 방법이 없다면 지금은 그 성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 중요하니까.
덕분에 나 역시 한참을 화면을 지켜보며 방법을 연구하던 차 불현듯 병력들이 장착하고 있는 외골격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방법은 있습니다.”
“…….”
***
“1조는 한율 대위의 지휘 아래 배의 좌측 후미 부분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2조는 정욱현 대위가 지휘를 맡아 반대편으로 접근. 2조가 명심할 점은 최우선적으로 기관실을 확보하여 항해를 멈추는 거다.”
문무대왕함 함의 갑판 위에선 작전 브리핑이 이어졌다.
투입되는 인원은 총 12명.
두 그룹으로 나누인 대원들은 2개의 고무보트를 타고 함에 접근할 예정이었다.
“부디 아무런 피해 없이 귀환하기 바란다.”
함장 김현수 대령은 보트에 오르는 병력들을 향해 끝까지 안전을 강조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듯 대원들은 즉시 보트를 출발시켰고,
곧 어둠을 뚫고 삼영호를 향해 접근했다.
두두두두!
보트가 어둠을 뚫고 한참 삼영호를 향해 접근하고 있을 무렵, 저편에 있던 문무대왕함 함에서 삼영호를 향해 연신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러시아처럼 해적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에서 나온 작전.
날아간 예광탄들이 함교 근처를 때리며 튀는 불꽃이 상황과는 다르게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다.
탕탕!
순간 삼영호에 있던 해적들도 응사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총을 쏴대는 방향은 하늘에 떠 있던 링스 헬기.
그건 보트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동원한 또 다른 미끼였다.
다다다다다!
링스는 마치 해적의 총탄이 위협적이라는 듯 다시 방향을 틀었다.
이내 거리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해적들의 시선을 분산.
그 틈을 이용하여 속도를 높인 고무보트는 곧 삼영호에 바싹 접근했고, 이후 보트에서는 퉁, 하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철컥!
보트에서 쏘아 올린 갈고리들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배의 난간에 걸쳐졌다.
이제부터가 진짜 작전의 시작.
1조장 한율 대위가 선두에 나서며 대원들을 향해 말한다.
“그동안 받아온 훈련의 강도를 믿어라. 그게 힘들면…… 장비의 힘을 믿던지.”
그 말에 대원들의 입가에선 웃음이 번졌다.
긴장을 풀려는 걸까, 또 다른 줄을 붙잡은 채 2선에서 대기 중이던 김영 중사 역시 한마디를 보탠다.
“우리 내기 하는 건 어떻습니까. 누가 저 빌어먹을 높이를 먼저 올라가는지.”
한율 대위는 그 말에 눈을 흘겼다.
이내 휙 하고 먼저 스타트를 끊어 버리는 그의 모습에 김영 중사가 어이없다는 투로 웃으며 뒤따른다.
‘이것 봐라?’
오로지 팔의 힘만으로 줄을 기어오르던 한율 대위는 어느 순간 속으로 탄성을 뱉어냈다.
당기는 동작과 동시에 외골격이 몸을 지탱해 버리는 느낌.
아마도 그건 등판에 있던 메인 프레임에서 뻗어 나온 유압장치에 의한 지지역할 때문인 것 같은데, 상황이 이러면 예상보다는 힘의 소모가 덜 해질 느낌이다.
“이정도면 어지간한 고층 아파트도 기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같은 느낌을 받은 듯 뒤 따라오던 김영 중사가 속삭이듯 말을 뱉어냈다.
다행히 풍절음으로 인해 소리가 새나가지는 않는 상태.
한율 대위 역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오르고 있는 높이가 어지간한 아파트 정도는 될 거야. 아무튼, 조심들 하라고.”
이후 한율 대위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12명의 대원 전체가 그 높은 곳을 죄다 기어 올라가는 것에 걸린 시간은 기껏 수 분 남짓.
마지막 대원이 무사히 갑판에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시계를 쳐다본 한율 대위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내지었다.
“예정대로 우린 곧장 함교로 간다. 적의 총탄이 날아오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우린 그저 인질들의 안전에만 최선을 다하도록.”
짧은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대원들이 조를 나눠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금쯤이면 선미에서 접근했던 2조 원들은 기관실로 향하고 있을 터.
그들과 동시에 함교를 접수해야 하는 탓에 마음이 급해졌다.
“SIZJBiogo”
함교로 향하던 한율 대위와 대원들의 귀에 해적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공에서 계속 신경을 건드리는 링스 헬기로 인해 경계를 서던 자들일 터.
바싹 몸을 낮춘 한율 대위는 즉시 대원들을 향해 손짓했고, 신호를 받은 대원들은 즉시 벽에 몸을 붙이며 대기했다.
“내가 먼저 저들을 처리하고 함교의 분위기를 살핀다.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대기하도록.”
대원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걸까, 잠시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한율 대위는 갑자기 총을 등에 고정시킨 채 허벅지에 장착하고 있던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쉬익!
번개처럼 튀어 나간 한율 대위의 첫 목표는 뒤늦게 자신을 발견하고 총구를 돌리는 빼빼 마른 해적이었다.
스각!
그동안의 훈련으로 인해 저절로 반응한 손이 놈의 목을 향했고.
끄룩!
가뜩이나 잘 벼려진 나이프에 의해 성대가 잘려 나간 해적은 비명 소리조차도 내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퍽!
한율 대위는 재빨리 놈의 심장에 나이프를 꽂은 후 두 번째 목표를 향해 내달렸다.
거리는 기껏 수 미터.
특이한 것은 막상 한율 대위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해적의 상태였는데, 왠지 미성년자인 듯 보이는 놈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퍽!
한율은 나이프 대신 손으로 놈의 목을 가격했다.
썩은 집단 쓰러지듯 툭 하고 무너져 버린 아이.
잠시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이 스쳤지만 재빨리 고개를 털어낸 채 대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김영 중사는 여기서 주변을 감시한다. 혹시나 다시 깨어날 수도 있으니 이 아이도 감시 잘 하고.”
“맙소사! 이런 어린아이까지 해적질에 동원하는군요.”
“당황스러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해적은 해적이야. 그러니 감시 잘해.”
얼핏 냉정하다 싶은 말이었지만 그 말이 맞았다.
아무리 어려 보인다고는 하나 저 손에 들려 있는 총이 누군가를 해쳤을지 그걸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김영도 막상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던 터라 잠시 당황했을 뿐, 긴장을 늦출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스윽!
이후 함교로 향한 한율 대위는 슬며시 내부를 살폈다.
다행히 두 놈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소란은 없었던 상태.
그 때문인지 함교 내부에 있던 해적들은 죄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문무대왕함과 링스 헬기의 움직임만을 경계하고 있었다.
척!
이번엔 한율 대위도 총을 손에 잡았다.
함교 내에 있는 해적의 수는 총 8명.
대원들을 향해 놈들의 위치를 알리곤 하나씩 임무를 할당한다.
“내가 우측 창 쪽에 있는 놈을 맡는다. 이욱현 하사는 무전기를 들고 있는 놈을 처리하고…… 다행인 건 저 안에 있는 놈들 중 미성년자로 보이는 자는 없다는 거다. 하니,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있어서 주저함을 보일 필요는 없어.”
대원들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의 좌우측에 자리를 잡았다.
폭파 임무를 맡았던 대원이 문에 폭발물을 설치한 후 곧장 스위치를 누른다.
펑!
휙!
한율은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어가선 목표로 했던 놈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정확히 심장에 총을 맞은 해적은 찍소리도 뱉어내지 못한 채 쓰러졌고, 이후 뛰어들어온 다른 대원들에 의해 해적들이 하나씩 제압 되었다.
“클리어!”
8명이라고는 해도 정리는 순식간이었다.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인질들의 안위를 확인하려는 순간, 입에 재갈이 물린 인질들이 연신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읍읍!
위험 신호를 감지한 한율은 거의 본능 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어두웠던 좌측 내실 안쪽에서 휘둘러진 정글도.
깡!
천만다행인 것은 그게 하필 팔을 가로지르고 있던 외골격에 가로막혀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는 거다.
“…….”
예상과 다른 상황 전개에 해적이 부쩍 당황했다.
퍽!
재빨리 반격에 나선 한율은 놈의 복부를 걷어찼고, 거의 2미터쯤은 되어 보이는 놈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뒹군다.
“엇!”
그때, 쓰러졌던 놈이 느닷없이 등에 메고 있던 총을 들어 인질들을 겨눴다.
일촉즉발의 상황.
미처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도 없었던 듯 한율은 재빨리 몸을 날려 인질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투투투!
놈은 방아쇠를 당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가까운 곳에서 앞을 가로막은 터라 총탄의 대부분은 한율에게 틀어박힌 상태.
비록 전신 수트를 입고 있었다곤 해도 막대한 운동력에 의한 충격은 그의 몸을 맥없이 무너트렸다.
“팀장님!”
순간 대원 중 하나가 안타까움의 비명을 내뱉었다.
이내 다급히 해적에게 총을 쏘려는 순간.
쉬익!
갑자기 무너졌던 한율이 벌떡 일어서더니 해적을 향해 달려든다.
퍽!
놈의 심장엔 한율이 휘두른 단검이 틀어박혔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대원이 한숨을 내뱉으려는 차, 무엇 때문인지 한율이 다시 내실 방향으로 뛰어가며 말한다.
“내실이 생각보다 커. 아직 경계를 늦추지 마.”
대원들은 그 말을 듣자 재빨리 내실을 경계했다.
하지만 한율의 움직임이 한 발 더 빨랐던 상태.
투투투투!
잠시 후, 내실에선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온다.
“김영! 혹시 모르니 놈들이 숨을 만한 공간이 또 있는지 확인해.”
이익중 상사는 재빨리 김영에게 소리치곤 한율을 지원하려 했다.
끼익.
순간 내실의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유유히 걸어 나오는 한율.
그는 잔뜩 피를 머금은 단검을 손에 쥔 채 맥없이 무너진다.
“클리어”
털썩!
“팀장님!”
놀란 이익중 상사가 그를 부축했다.
이내 재빨리 그의 방탄 수트를 확인하려는 순간, 주저앉아 있던 한율이 손을 흔든다.
“호들갑 떨지 마세요. 내 몸에 구멍 난 곳은 없으니까.”
대원들은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고작 AK 총탄이 전신 방탄 수트를 뚫기는 힘들었겠지.
그런데 그때, 한율이 다시 푹 엎어지며 말한다.
“시발, 그런데 왠지 속은 기분이야.”
“…….”
“이거…… 생각보다 졸라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