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75화
“전방 목표확보.”
페도로프 함장은 시야에 들어온 러시아 상선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명령을 전달 받은 휘하지휘관들은 즉시 무전을 들었고, 이후 헬기 갑판에서 대기 중이던 작전 헬기에까지 이르렀다.
“하필이면…….”
페도로프는 저편에 있던 상선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케냐로 수출 되던 T-72와 RPG가 잔뜩 실린 상선이 납치된 상황.
더한 문제는 하필 목록들 중 휴대용 대공미사일이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로서는 해적들이 아직 물품에 대한 자세한 목록파악을 못했기를 바라는 심정뿐이다.
‘만약 그걸 건드렸다면, 해적들의 근거지 전체를 지워버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막말로 그게 해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향후 저들은 단순한 해적이 아니게 되는 건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두두두두!
조금 후 이륙한 작전헬기는 곧바로 상선을 향해 날아갔다.
그게 신호였을까, 대기 중이던 AK-630이 즉시 방향을 틀어 상선을 조준한다.
“정말 이대로 협상 없이 구출을 시도하는 겁니까?”
“언제 러시아가 테러범들과 협상을 하는 것을 봤나?”
부함장 이바노프의 물음에 패도로프가 질책하는 투로 말을 뱉어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이번 작전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듯 그의 얼굴에는 내내 침통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그러다 해적 놈들이 인질들을 향해 발포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부함장은 다시금 우려스럽다는 말을 뱉어냈다.
예상과는 달리 날아오는 함장의 말투가 조금은 누그러져 있는 상태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야지. 그리고 그건 이제 저 헬기에 타고 있는 대테러부대원들의 몫이고.”
마치 기도하듯 읊조리는 함장의 말에 부함장은 다시 헬기를 향해 시선을 줬다.
어느덧 목표였던 상선의 바로 위에까지 접근해 있던 헬기.
투투투투!
예정대로 대기 중이던 AK-630이 저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위협 사격을 시작한다.
“시작하려는 모양이군요.”
망원경을 통해 상황을 주시하던 부함장은 헬기에서 떨어지는 로프를 보며 말했다.
말은 태연하게 했어도 긴장감이 파고든 걸까, 함장 역시 곧바로 망원경을 눈으로 가져간다.
타타탕!
그때, 갑자기 상선의 함교에서 튀어나온 몇몇 해적들이 헬기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헛!”
그 바람에 헬기는 급격한 회피기동을 실시. 막 하강을 시도하던 대테러 요원들이 그 영향을 받아 로프에 매달린 채 허우적댄다.
탕!
그때, 해적들 중 몇몇이 조준 사격을 가했다.
뒤이어 추락하는 몇몇 대테러 요원들.
“빌어먹을! 함교 근처를 조준 사격하라고 해.”
그 모습을 본 함장은 입술을 짓씹으며 부함장을 향해 명령했고, AK-630은 곧바로 상선을 향해 조준 사격을 실시한다.
펑펑펑!
AK-630의 화력에 놀란 해적들은 사격을 멈춘 채 숨을 곳을 찾기에 바빠졌다.
탕탕탕!
하지만 그사이 응사에 나선 헬기의 기관총으로 인해 일거에 제압.
기회를 포착한 대테러 대원들은 다시 하강을 시도한다.
탕탕탕!
이후 들려오는 총소리로 봐선 꽤나 저항이 거센 듯한 느낌이었다.
예상과 달리 진행되어 가는 작전의 흐름.
불길한 예감에 함장이 다시 망원경을 드는 순간, 갑자기 무전에서 당황스러운 소식이 전해져 온다.
치직!
-빌어먹을, 예트니가 쓰러졌다.
-교전 과정에서 인질 셋이 해적의 총에 맞았다.
“쯧. 고작 해적들 따위에게 이게 무슨…….”
확인된 대테러부대원들의 피해만 벌써 셋이었다.
거기에 인질들의 피해까지 발생한 상황이라면 이번 작전은 사실상 실패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로선 돌아올 상부의 추궁이 벌써부터 짜증스럽다.
“개 같은 해적 놈들.”
치직!
-기관실 클리어.
-후갑판 클리어.
-함교에 몰려 있던 해적들 확보했다. 죽은 여섯을 제외하고 살아있는 해적의 수는 총 12명이다.
이후 들려온 무전들은 작전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정보에 의하면 상선을 납치했던 해적의 수는 18명.
사살한 자들까지 포함하면 모든 인원을 확보했으니 사실상 끝이 난 것이 맞다.
“보트 띄워서 전부 끌고 오라고 해.”
함장은 분노에 찬 명령을 내렸다.
고작 20여 분.
그 짧은 시간에 애꿎은 대원 셋이 목숨을 잃어버린 이 빌어먹을 상황을 어떻게든 보상받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부우우웅!
그로부터 대략 두 시간 후.
페도로프 함장은 사로잡은 해적들이 고무보트에 오르는 것을 냉정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조금 전 하달된 본국에서의 명령은 저들을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 내버리라는 것.
마음 같아선 즉시 사살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서방의 눈을 의식하는 상부의 반대로 무산 되었다.
[살려주시오. 여기는 배 한 척도 지나가지 않는 곳이란 말입니다. 이런 곳에 우릴 버려 버리면 며칠 못가서 상어 밥이 될 겁니다.]
자신들의 운명을 예감한 해적들은 애원하며 매달렸다.
철컥!
그 순간 곁에 서 있던 부하의 총을 빼앗은 패도로프가 즉시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고, 기세에 놀란 해적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무보트에 몸을 실었다.
[야 이 개자식들아!]
해적들은 매정하게 자신들을 버리고 멀어져 가는 구축함을 향해 고함쳤다.
퍼퍼퍼퍽!
그 순간 날아드는 기관총탄.
이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고무보트에선 급격히 바람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저 미친 새끼들…….]
***
“셋이나 희생 됐다고?”
“인질들까지 포함하면 정확히 여섯입니다.”
소식을 들은 푸틴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알까, 저렇듯 무표정한 얼굴을 할 때의 그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쿠즈네초프 국방장관은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죠?”
“저 그것이…… 대테러 대원들의 경우엔 헬기에서 하강하는 사이 해적들이 쏜 총탄에 당한 모양입니다.”
나지막하게 뱉어진 푸틴의 질문에 쿠즈네초프가 재빨리 대꾸했다.
연신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푸틴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지 않았다는 거다.
“방탄조끼가 소용없었던 겁니까?”
“그렇다기보다는, 피탄 부위가 안 좋았던 거죠. 한 명은 턱을 관통당하면서 머리까지 피해를 입었고, 나머지 둘은 하필 낭심 부위를 관통 당하는 바람에…….”
“흠…….”
푸틴은 짜증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위험을 감지한 쿠즈네초프는 즉시 변명 아닌 변명을 뱉어내려 입을 열었지만, 그 순간 푸틴의 입에선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튀어 나왔다.
“한국의 상선도 납치를 당했다고 했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그럼 한국 측은 어떻게 대응한다고 합니까.”
“한국도 곧 구출 작전을 시행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지은 모양입니다. 뭐 사실 우리가 강경책으로 나가는 마당에 협상을 시도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 될 테니까요.”
“흠…….”
푸틴의 눈동자가 그 말에 반짝 빛을 발했다.
꽤나 공교로운 현실임을 인지한 듯, 그의 입에선 곧 깊은 한숨이 뱉어진다.
“한국이 구출 작전을 한다…….”
***
“와! 오늘 파도 장난 아닙니다.”
문무대왕함 소속 내기병 이대호 는 부쩍 요동이 심한 배의 상황에 넌덜머리를 냈다.
힐끗 쳐다본 선임은 그 와중에도 제법 중심을 잡고 버티고 있던 상태.
역시 짬은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에 탄성이 흘러나오려는 차, 막상 잘 서 있다 싶었던 선임의 입에서 웩 하는 소리와 함께 토사물이 쏟아진다.
“아…….”
빌어먹을. 저걸 누가 치우라고.
“괜찮으십니까?”
이대호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불평을 뒤로하고 선임을 향해 물었다.
그나마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걸까, 선임은 재빨리 주변에 있던 휴지로 제가 뱉어냈던 토사물을 닦아내며 딴청을 부린다.
“오우 시발, 수면하격실에 있는 우리가 이럴 정도면 함교는 지금쯤 죽어 나가겠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이대호 역시 함교가 걱정스러웠다.
고작 1도의 각도만 흔들려도 수면하격실과 함교의 흔들림의 차이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
아마 어지간히 파도에 길들여져 있던 간부들과 부사관들도 지금쯤이면 죄다 시체가 되어있을 거다.
“그나저나 대체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면서 이동을 하라는 겁니까?”
문득 드는 의문에 이대호가 선임을 향해 물었다.
이 상황에서도 숨겨놨던 부식을 꺼내려는 듯 바닥을 뜯어내고 있던 선임은 그 말에 불쑥 안색이 어두워진다.
“우리 상선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들에게 납치 되었단다. 그래서 우리가 구조 임무를 맡은 모양이야.”
“해적이요?”
“그래. 젠장, 학비나 좀 보탤까 싶어 기껏 앵카 박았더니 첫 시작부터 이게 웬 난리인지 원.”
이대호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 역시도 같은 목적으로 앵카를 박았던 처지였기에.
웃으며 선임을 향해 다가선 그는 함께 힘을 주며 바닥을 뜯어낸다.
“대체 여기에 뭘 숨겨 놓으신 겁니까?”
“뭐긴 뭐야 컵라면이지.”
“방금 그렇게 토하시고 컵라면을 드시겠다고요?”
“모르나 본데, 이럴 땐 오히려 더 먹어 줘야 하는 거야.”
“…….”
***
“무장확인.”
내기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선 UDT 대원들이 장비를 점검 중이었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작전이 시작되는 상황.
긴장감 때문인지 그토록 배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불편을 호소하는 이는 없었다.
“김영 중사. 안색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괜찮겠어?”
한율 대위는 다른 이들보다 유독 안색이 누렇게 뜬 김영을 향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오해였던 걸까, 김영 중사는 어림없다는 투로 대꾸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낯빛은 원래 이렇습니다. 어렸을 적 귤을 하도 처먹어서요.”
그게 농담임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을 거다.
덕분인지 조금은 분위기가 풀린 느낌.
그때, 김영 중사가 다시 너스레를 떨며 주변을 향해 말한다.
“그나저나 이 외골격이라는 것 생각보다 편한데요? 거치적거리는 느낌도 없고, 뭔가 탄탄하게 힘을 받쳐주는 기분입니다.”
“그러게. 시험 삼아 턱걸이를 시도해 봤는데, 마치 누가 아래에서 떠받쳐 주는 기분이었어.”
“어? 나도 그런 느낌 받았는데, 이것 좀 봐봐. 팔다리가 이렇듯 잔뜩 꺾이는 상황에서도 자연스레 그 각도를 따라오잖아.”
김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원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을 뱉어냈다.
그동안 다들 나름대로는 외골격에 대한 자체 테스트를 해 보고 있었던 듯.
웃으며 그걸 듣고 있던 한율 대위가 기어이 한마디를 보탠다.
“그거 원래는 이라크 파병 병력들에게 지급될 예정이었던 물건이 우리에게 온 거야.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족히 개당 이만 달러쯤은 된다는데, 사실이면 자네들 몸에 족히 대형차 한 대씩은 매달고 다니는 거라고.”
“이것 하나가 이만 달러나 된다고요?”
“못 믿겠지? 하긴, 나도 처음엔 재우가 이제 군을 상대로 제대로 사기를 치려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 한데 스펙을 자세히 들어보니 오히려 싼 편이라는 느낌이 들더군. 소재의 가격부터 시작해서 거의 극악에 가깝다는 가공법까지.”
한율 대위는 어깨를 으쓱 하며 대꾸했다.
당황스러웠던 걸까, 김영 중사의 시선이 슬그머니 자신의 몸을 향한다.
“빌어먹을 명품 수트를 걸치고 싸우러 가는 기분이네.”
“꼭 그게 아니라도 이미 자넨 명품 수트보다 더 비싼 것을 걸치고 있다는 것 몰라? 지금 착용하고 있는 그 전신 방탄 수트의 가격만도 어지간한 명품 의류 몇 벌 가격일 걸?”
“…….”
대원들은 이어지는 한율 대위의 말에 서로의 몸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들을 한 걸까.
이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말을 뱉어냈다.
“이게 아까워서라도 못 뒤지겠네.”
“어? 나도 그 생각 했어. 크크크.”
이후 그들 사이를 흐르던 긴장감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내 느껴지던 격한 흔들림도 조금은 잔잔해진 기분.
의아함에 저편을 쳐다보자 마침 지나가던 수병 하나가 그들을 향해 소리친다.
“지금 막 태풍의 영향권을 벗어나 소말리아 해역에 진입했답니다.”
힐끗.
순간 대원들 사이에선 다시 긴장감이 파고들었다.
피해 없이 인질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한 거다.
“총알엔 눈이 없다. 뭐 우리야 방탄 수트 덕분에 피해를 입는 일은 없겠지만, 인질들은 다르다는 소리지.”
한율 대위는 다시금 대원들이 숙지해야 할 점을 입에 올렸다.
몰랐다면 모를까, 하필 러시아가 작전 중 막대한 피해를 내버린 소식을 전해 들은 터라 부담감은 배가 된다.
“그럼 지시가 있을 때 까지 휴식을 취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