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74화
그 말에 퍼뜩 떠오른 것은 청해 부대였다.
2009년. 연합해군 사령부의 국제 해상안전을 위해 창설 되었었던.
하지만 지금은 2008년.
또 타임라인이 엉킨 모양인데, 어쨌건 청해 부대의 창설은 기어이 역사를 따를 모양이다.
“혹시, 따로 부대 창설까지 이루어진 겁니까?”
“그야 물론이죠.”
“혹시 부대 이름이…….”
“통일 신라의 장보고 대사가 해상무역을 위해 설치했던 청해진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해 보이는 합참의장.
잠시 들었던 생각을 떨쳐내곤 다시 물었다.
“언제 출발한 겁니까?”
“한 보름 정도 됐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당분간은 언론에 알리는 것을 자제하라고 하셔서 내일쯤에나 발표가 될 겁니다.”
아마도 그건 이라크 파병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 거다.
가뜩이나 대규모 파병을 진행하는 와중에 해군 구축함마저 머나먼 땅으로 파견을 간다는 소식을 그리 달가워 할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뭐 한마디로 일단 일을 치고 뒷수습을 하겠다는 건데, 그래 봐야 좋은 소리 못 듣는 것은 마찬가지일 거다.
“아! 내가 이 말을 전해드리는 이유는 파견된 구축함에 함께 탑승한 UDT 병력들에게 워리어플랫폼을 지급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더위를 식히려 물 잔을 들던 차에 합참의장의 말이 이어졌다.
회사 내에서 군이 추가로 워리어플랫폼을 주문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던 터.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머쓱한 미소와 함께 말한다.
“이라크 파병 병력들에게 지급될 것들 중 일부를 전용했습니다. 시간이 워낙 빠듯해서 추가로 발주를 할 여력이 없었거든요.”
“그럼 부족분은 다시 이라크로 보내야 하겠군요.”
“네, 그래서 지금 진 회장님께 부탁을 드리려는 겁니다. 수량 부족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병력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난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 잔을 들이켰다.
순간 떠오른 것은 외골격 수트.
해상 작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걸 설마 UDT에게 지급하지는 않았겠지, 싶은 염려였다.
“혹시…….”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즉시 되물었다.
다행히도 그건 아닌 듯 합참의장의 고개가 넌지시 가로저어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후의 말이 나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재우 연구소 김희원 박사의 말에 따르면 동력 구동 방식의 외골격 수트의 경우는 아직 해상에서의 작전 효용성을 검증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해서 UDT에게는 무동력 외골격을 지급한 상태입니다.”
“……뭘 지급해요?”
“무동력 외골격 말입니다. 그건 전기로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해상작전에도 무리가 없다고 하던데, 아닙니까?”
“…….”
***
[오늘 오전 10시 중국은 예고했던 열병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중국은 예고했던 열병식을 거행했다.
시위 성격임을 감안한 걸까, 규모만으로 본다면 가히 역대 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퍼레이드였다.
‘이 시기에 중국의 열병식을 TV로 보게 되다니.’
문득 그 점이 조금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중국의 열병식은 단편적인 소식으로만 전해졌던 것이 관례였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인지 중국 정부는 전과 달리 외신 기자들의 촬영을 적극 허용했고, 그 탓에 이렇듯 긴 시간을 우린 사무실에 앉아서 관람하고 있는 중이다.
“역시 핵미사일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군요.”
곁에서 함께 지켜보던 김영기 총괄실장은 가장 먼저 화면에 잡힌 ICBM을 보며 혀를 찼다.
뭐 중국이 자랑할 만한 무력수단 중에는 그게 최고였을 테니까.
웃음으로 대꾸하곤 다시 시선을 돌린 순간 돌연 화면에서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저거 외골격 아닙니까?”
난 화면을 손가락질 하며 김영기 실장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무심코 TV를 쳐다본 김 실장은 화들짝 놀라 TV를 향해 다가갔고, 곧 나를 향해 다시 돌아서선 입을 뻐끔거린다.
“외골격 맞습니다. 가만! 그런데 폴라베어는 또 왜 저기에…….”
그 말에 나 역시 TV를 향해 다가갔다.
눈에 들어온 것은 외골격을 장착한 병력들 뒤를 줄줄이 따르고 있던 전투차량들.
그건 김 실장의 말처럼 폴라베어를 무척이나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설마 기술이 유출된 것은 아니겠죠?”
당황한 김영기 실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직은 나로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
어느새 여유는 사라지고 긴장감이 마음을 파고든다.
띠이!
“연구소 김희원 박사에게 지금 즉시 본사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난 결국 열병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희원을 호출했다.
사태의 심각성쯤은 알고 있었는지 이후 본사로 들어서는 그의 손에는 온갖 자료들이 들려 있던 터였다.
“보안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다짜고짜 따지고 드는 내 태도에 희원이 발끈했다.
그럼에도 날 선 시선을 거두지 않자 그가 자료가 담긴 메모리를 노트북에 꽂으며 설명을 잇는다.
“장담하는데, 기술유출은 없어. 막말로 우리 시스템상 유출이 가당키나 해?”
“…….”
사실 나 역시 그건 불가능하다고 는 생각하고 있었다.
양자 알고리즘에 의해 보호받는 연구소의 모든 시스템들.
더불어 핵심 연구원들 대부분을 국정원은 물론 재우 시큐리티에서마저 감시 아닌 감시를 하고 있는 와중에 기술유출은 무슨.
게다가 연구원들이 받는 물질적 보상은 다른 업체들이 알면 눈이 돌아갈 정도다.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위험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는 거지.
“그럼 저건 외향만 카피한 물건에 불과하다는 건데, 왜 굳이 대놓고 우리 디자인을 카피한 거야?”
“뭐 중국이야 어차피 짝퉁 천국인 마당에 무기라고 다르겠어. 우리 디자인을 카피하면 그나마 무기수출 시장에서 먹힐 것을 염두에 둔 건지도 모르지.”
“성능 수준은?”
“ 수준이랄 것도 없어. 일단 이 부분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니까.”
희원이 지적한 것은 외골격을 장착하고 있는 병사들의 움직임이었다.
왜 처음엔 몰랐지?
자세히 보니 얼핏 움직임에서 어색함이 드러난다.
“보면 알겠지만 이 어색한 움직임은 신호처리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증거야. 이 상태면 전력상승은커녕 오히려 전투력만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거지. 저 무동력형도 마찬가지야. 제대로 된 프린팅 기술이 없다 보니 웬 이상한 소재로 대처한 모양인데, 저래서야 내구성을 장담할 수 없을 거야.”
“흠…….”
“그리고 전투차량도 마찬가지야. 여기 이 접합 부분을 봐봐. 이것 역시 방탄 소재 증착 기술이 없다는 증거인데, 난 사실 이게 제대로 된 방호력을 보일 수 있을지 극히 의심스러워.”
돌연 헛웃음이 뱉어졌다.
회귀 전, 온갖 미국산 무기들을 카피했던 저들의 역사가 떠올랐거든.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이후 놈들은 지속적으로 미국의 기술을 훔쳐 기술력의 한계를 좁혀 왔다는 것,
이젠 그게 우리를 상대로 시도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절로 짜증스러움이 몰려든다.
“앞으로 보다 철저하게 보안에 신경 써야 할 거야. 아니,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연구원들 전체를 점검해봐.”
“어느 정도 선까지?”
“본인은 물론 주변 인물들의 계좌추적까지…….”
“그렇게까지 해야 해? 계좌까지 까본 것이 알려지면 논란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도 알아. 해서 국정원에 부탁을 해 둘 예정이야. 그나마 국정원의 경우는 산업기술유출 의혹이라는 핑곗거리라도 만들 수 있으니까.”
“…….”
***
중국군 열병식의 헤프닝이 벌어진 것도 어느덧 보름 전.
희원은 그간 조사를 진행했던 연구원들에 대한 보고서를 올렸다.
대부분은 별 문제가 보이지 않는 상황.
딱하나 마음에 걸리는 인물이 있다면 최근 미사일 개발 센터에 영입된 김도현이라는 연구원이었는데, 하필 그가 최근 사귀고 있는 여자가 중국 유학생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신임 연구원이라면 접근 권한이 거의 없는 위치라서 별 상관은 없을 듯하기는 한데, 그래도 하필 여자 친구가 중국인이라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는군요.”
역사를 알고 있는 나로선 당연히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미인계를 통해서 목적을 이루었던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어야지.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크리스틴 팡 사건이었는데, 그녀 하나로 인해서 한때 미국 정치권이 발칵 뒤집어졌었다.
‘어디 그 사건 하나뿐일까, 미국 방위산업계도 중국의 미인계로 인해서 벌어진 사고가 한두 건이 아니지.’
그걸 염두에 둔다면 내 염려도 무리는 아닐 거다.
“국정원에 부탁해서 이 여자에 대해서 조사를 좀 진행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전략실 안 상무님을 통해서라도 최대한 정보를 좀 모아주세요.”
“중국 쪽 인물에 관해서라면 전략실 보다는 국정원을 활용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뭐 자칫 산업스파이 문제로 비화 될 수도 있는 문제니 국정원도 협조요청을 거부할 리는 없고요. 아무튼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죠.”
김영기 총괄 실장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꾸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헛!”
무엇 때문일까, 곧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의 입에서 갑자기 헛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
쳐다본 문 앞에선 김 실장과 나타샤가 서로 대치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동선이 꼬여 서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상황.
결국 한걸음 뒤로 물러선 김 실장이 붉어진 얼굴로 그녀에게 길을 양보한다.
“오랜만이네요.”
“네, 오랜만입니다.”
나타샤의 한국말은 꽤 유창했다.
나조차도 놀랄 정도.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김영기 실장이 다시 그녀를 향해 묻는다.
“한데, 회장님께 무슨 용무라도 있습니까?”
아마도 그건 경계심에서 나온 질문인 듯싶었다.
이 시간대에 그녀가 내 방을 찾을 이유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내 경호를 담당하고 있다곤 해도 그녀는 엄연히 러시아의 정보원.
군 최고 지휘관까지 지냈던 김 실장의 입장에선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경계심일 거다.
“네. 혹시 모르니 실장님도 같이 들으시죠.”
나타샤는 태연하게 대꾸하곤 내게로 걸어왔다.
다시 그녀를 뒤따라 들어온 김영기 실장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고, 그녀는 곧 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지금부터는 영어로 전달하겠습니다.]
[그 편이 편하다면야 뭐…….]
흔쾌히 대꾸하곤 그녀를 쳐다봤다.
순간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 쉬더니 툭 하고 다시 말을 뱉어 냈다.
[어제 러시아 상선 한 척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해적들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
김영기 실장과 난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눈빛만 보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느낌.
그게 우리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기에, 하는.
그때 나타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전엔 한국국적 상선 한 척도 납치되었습니다.]
[…….]
그 말에 김 실장과 난 다시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 상선도 납치되었다고요?]
이후 동시에 같은 말을 뱉어 낸 우린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몸을 일으켰고, 그 타이밍에 나타샤의 말이 이어졌다.
[네, 그래서 현재 러시아는 사고 해역으로 구축함을 파견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국 해군에서 파견한 구축함 역시도 그쪽으로 접근 중이고요. 문제는 납치된 한국 상선이 삼영호라는 겁니다. 재우 탈레스가 수입 중인 각종 특수 소재 원료를 잔뜩 싣고 오던.]
[이런 빌어먹을! 저는 일단 군에 사실 확인을 좀 해 보겠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 실장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자리를 벗어났다.
순간 진동하는 내 전화기.
발신자는 김해웅 합참의장이었다.
“네, 의장님. 안 그래도 방금 소식은 들었습니다.”
-벌써요? 혹시 상황실로 오실 예정이시라면 미리 전달해 두겠습니다.
“가야죠. 삼영호에는 재우 측 직원들도 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전화를 끊곤 즉시 일어섰다.
이내 수트를 챙기려는 차, 문득 러시아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러시아에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답니까?]
[러시아는 해적들과 협상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
어느 정도는 예측했던 답이었다.
회귀 전에도 러시아는 실제로 소말리아 해적들을 상대로 협상은커녕 철저한 응징을 했었지.
그게 지금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구출 작전은 언제 시작할 예정입니까?]
[아마 내일 새벽이 되지 싶은데,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난 그녀의 대꾸를 뒤로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러시아와 우리 상선이 동시에 납치되는. 역사에선 없었던 사건.
이제 두 나라의 대응책이 곧 세상에 알려지게 될 텐데, 조금은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러시아가 강경책으로 나서서 성공하게 되면 우리 역시 협상을 고집할 수는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