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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72화 (17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72화

의도가 궁금했다.

다른 걸 떠나서 지금 그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던 상태니까.

상황이 이러면 난 기껏 준비했던 반대급부를 되삼켜야 하는데, 이게 대체 좋아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가 영 판단이 서질 않는다.

[왜요, 내가 아무런 조건도 없이 한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순간 그가 내 속내를 읽은 듯한 말을 뱉어 냈다.

수긍하듯 침묵하자 내 잔에 자신의 잔을 슬쩍 부딪쳐온다.

[일종의 선물이라고 해 두죠.]

[선물이요?]

그는 되묻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뒤이어 뱉어지는 그의 말은 조금은 생뚱맞다 싶은 것들이었다.

[진 회장께서도 알다시피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나’ 그러니까 리암 에리코라는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해서 사람들은 나를 두고 온갖 음모론을 내세우죠.]

[…….]

[아! 물론 음모론자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엔 내 입김이 지나치게 영향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난 단지 미국의 발전을 위해 보다 효율적인 수단으로 존재할 뿐이오.]

[그건 회장님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한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이 국가의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경계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왠지 궤변 같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대꾸했다.

순간 리암의 시선이 휙 하고 내게 꽂히더니 입매가 잔뜩 뒤틀린다.

[쯧, 그 말을 진 회장의 입에서 듣게 된다는 것이 좀 우습군요.]

[네?]

[모르는 척 하는 겁니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겁니까.]

[…….]

[진 회장 당신 역시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나와 같이 그림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내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겁니다.]

순간 나도 몰래 주변을 둘러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이해하겠다만, 자칫 남들이 듣기라도 하면 내가 꽤 곤란해질 상황이거든.

다행히 이쪽을 신경 쓰는 시선은 없던 상태.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그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왜요, 부정하고 싶습니까? 스스로의 위치를?]

[뭔가 오해하신 모양인데, 전 단지 기업인에 불과한…….]

[쯧, 끝내 의뭉을 떨고 싶으신 모양이군. 하면 한 가지만 물읍시다. 무슨 기업인이 정부보다 더 강한 외교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는 내 말을 자르며 툭 하고 불만의 말을 뱉어 냈다.

절로 입술이 앙다물어지는 순간.

그가 강렬한 눈빛과 함께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뭐 그 반응도 이해는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종의 반칙이니까. 진 회장도 이 나라 국민들에게 반칙적인 인물로 비쳐지는 것이 껄끄럽기는 하겠죠.]

[…….]

[한데 그건 알아두어야 할 거요. 아무리 스스로가 부정해도 결국 주변은 점점 진 회장을 그런 존재로 인정하게 될 거라는 사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도 그런 흐름에 의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정부 요인도 아닌 당신이 국가의 주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현실 말입니다.]

[흠…….]

[해서 난 무척이나 반갑고 기쁩니다. 다른 걸 떠나서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내가 허물없이 대화를 할 상대가 생겼으니까.]

그는 애써 묻어두고 있던 내 정체성의 본질을 거침없이 끄집어냈다.

이래서였을까, 그를 만나기가 꺼려졌던 이유가.

[아무튼, 일본의 미사일 문제는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겁니다. 비록 일본에서야 난리를 피우겠지만, 그거야 뭐…… 게다가 진 회장의 말처럼 핑곗거리도 확실하니 상관은 없겠죠.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의 반발 말입니다.]

그는 다시 태연한 표정으로 상황을 마무리 했다.

난 여전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하던 상태.

이후 어지러운 생각을 다잡은 것도 실은 리암의 입에서 푸틴이라는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진 회장은 푸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글쎄요, 대단히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것은 확실하죠.]

[그건 나도 동의합니다. 뭐랄까, 세상의 흐름을 보는 눈이 남다른 인물? 더불어 몸을 사릴 줄도 아는.]

[…….]

왠지 뒷말이 조금 의미심장하다 싶어 쳐다봤다.

슬쩍 미소를 내비친 그가 속삭이듯 말을 잇는다.

[지난번 러시아 행에서 그와 나 사이에 거래가 좀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좀 걱정스러웠는데, 예상외로 일이 쉽게 풀리더군요.]

난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구체적인 것까지는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듯 그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고,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엔 또 앞선 주제와는 별반 상관없는 말을 뱉어 냈다.

[참고로 난 러시아에서 그림자가 될만한 인물은 푸틴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뭐 엄밀히 따진다면 그는 그림자라기보다는 대놓고 독재자라고 해야겠지만, 그거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만 편해지면 그 뿐이지.]

[…….]

[그래서 말인데, 진 회장과 나. 그리고 푸틴, 이렇게 셋은 앞으로 조금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면 어떨까 싶더군요.]

[특별한 관계요?]

[그렇게 되면 사실 진 회장도 편해질 것 아니겠습니까? 굳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지 않아도 될 테고, 어지간한 문제는 우리 셋이서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

나로선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만약 그게 실행 되면 앞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될 테니까.

어디 두 나라 뿐일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

대체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지 이젠 가늠조차도 되지 않는다.

***

[미국 정부는 최근 불거진 일본의 초음속 미사일 개발 문제에 있어서…….]

며칠 후,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일본의 초음속 대함미사일 개발에 미국이 적극 개입했다.

나와의 약속대로 사거리 제한이라는 족쇄가 채워진 상태.

그 탓에 일본 내각은 한동안 쥐죽은 듯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주변국들의 반발 역시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일본 내각이 발칵 뒤집혔답니다. 쯧쯧, 차라리 가만히나 있었으면 차후 기회라도 엿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되면 재무장은 물 건너간 것 아니겠습니까?

양태용 국정원장은 부쩍 흥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워낙 무모한 면이 많았어야지.

솔직히 난 저들의 재무장 시도가 이것으로 끝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끼익!

그로부터 며칠 후, 난 다시 워리어플랫폼 연구소를 찾았다.

그동안 생산이 완료된 물량은 다행히 파병 병력들에게 지급이 시작된 상태.

해서 오늘의 방문 목적은 납품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위함은 아니고, 단지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일찍 왔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는 희원의 상태는 꽤 심각해 보였다.

한 일주일쯤은 잠을 못 잔 듯한 느낌.

얼핏 들려온 주변 연구원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로 꼬박 사흘간을 잠 한숨 안 잔 상태라고 한다.

“좀 쉬면서 하지?”

“응, 네가 보기에도 꼴이 영 말이 아니지?”

희원의 반응은 평소와 달리 온순했다.

비실비실 웃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 줄을 슬쩍 놔 버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

이러다 정말 친구 놈 하나 잡지 싶은 생각에 휴가라도 다녀오라는 말을 입에 올리려는 차, 놈이 덥석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거 알아? 내가 집에 가본 것이 언젠지 이제 아예 기억이 안 난다는 것.”

“…….”

“아니 집이 어디였는지도 모르겠고, 이젠 마누라 얼굴도 가물가물해.”

“…….”

“더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줄까? 나 어제…… 몽정도 했어.”

탁!

난 태연하게 놈의 손을 뿌리쳤다.

이내 잠시 주변을 둘러보곤 놈의 귓가에 가만히 속삭였다.

“고맙다. 네 말을 들으니 왠지 위로가 된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놈은 발끈하며 눈을 흘겼다.

상관하지 않은 채 연구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뒤늦게 따라붙으며 이제까지의 결과들을 읊어댔다.

“일단 무동력 외골격은 완성이 된 상태야. 뭐 그렇다 해도 당장 이라크 파병 병력들에게 보급을 시작하는 것은 무리고, 아마 생산속도를 감안하면 그나마 연말쯤엔 30퍼센트 정도의 병력들을 무장 시키는 것은 가능할 거다.”

무동력 외골격의 개발은 내가 따로 지시를 해 둔 과제 중 하나였다.

편제 상 동력형 외골격 수트의 보급률은 많아야 분대 당 하나.

아니, 지원화기 사수용까지 포함하면 둘에 불과한데, 난 가능하면 특전사만이라도 전투원 모두에게 전투능력 상승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네 말대로 복합소재의 비율을 높여서 최대한 경량화 한 상태야.”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눈앞의 물건이었다.

마치 척추뼈와 같은 모양의 강화 소재들로 구성된 중심 프레임.

그리고 얼핏 보면 허리띠라고 생각 될 정도로 얇은 허리 지지대와 그것에서 뻗어 나간 각 부위의 지지대들.

지금은 비록 도색 전이기에 티가 많이 나는 편이지만 만약 저것에 위장 도색을 하는 경우엔 아마 외골격을 착용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완벽하게 몸에 맞춰진 형태가 될 거다.

“근력 상승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거야?”

“무동력이라고는 해도 최대 90킬로그램까지 별 무리 없이 짊어지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야. 그걸 떠나서 구조적인 설계가 워낙 완벽해서 행동자유도가 거의 착용을 안 한 것과도 같은 수준이지.”

사실이라면 꽤 성공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내구성인데, 내 구상보다 훨씬 가늘어 보이는 지지대의 모습이 왠지 불안함을 준다.

“걱정 붙들어 매셔. 이미 극한의 테스트를 몇 번이나 해 본 상태니까. 더군다나 저 복합소재의 경우 잠수함 스크루의 적층 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 낸 물건이야. 쉽게 말해서 장갑차가 밟고 지나가도 쉽게 파손 되지 않는다는 소리지.”

“그럼 다행이고.”

난 슬쩍 마네킹이 착용하고 있던 무동력 외골격을 만지며 대꾸했다.

손에서 느껴지는 단단하고 매끈한 감촉.

혹시나 해서 힘껏 당겨봤지만 불필요한 유격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스윽.

뒤이어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이번에 개량을 진행한, 분대지원화기 장착용 외골격이었다.

기존의 스켈레톤 방식과는 달리 각 부위를 전체적으로 감싸는 스타일.

그건 무거운 공용화기를 다루는 임무의 특성. 그리고 위험에 쉽게 노출 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아마 이 정도면 한 차원 높은 방호능력도 기대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 헬멧도 개량이 끝났다.”

한참 미래지향적인 모습의 수트를 감상하고 있던 와중 희원이 또 하나의 소식을 전했다.

이라크에서의 실전을 통해 대두된 문제점들을 개선한 새로운 헬멧의 개발 소식.

안 그래도 그게 궁금했던 터라 고개를 돌리자 불쑥 특이하게 생긴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안면 보호대를 일체화 시킨 거야?”

“일체화는 아니고 탈착이 가능한 형태야.”

얼핏 보면 탈착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견고한 구조를 가졌다는 증거.

안타까운 것은 이것 역시 당장 보급은 어렵다는 건데, 아무래도 생산력을 높일 방법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그나저나 파병일이 언제라고?”

내게서 헬멧을 다시 건네받은 희원은 불현듯 파병 날짜에 관심을 보였다.

역사 이래로 고작 두 번째인 대규모 파병.

비록 말은 아끼고 있어도 놈도 필연적으로 피를 흘리게 될 병력들의 운명이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다음 달, 25일.”

“좀 빠듯한데? 그 안에 무동력 외골격이라도 최대한 뽑아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목표를 넘기는 건 힘들겠지?”

“나도 바라는 바이긴 한데, 쉽지는 않을 거다. 생산력의 한계는 그리 단숨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지나가듯 말하곤 놈의 등을 두드렸다.

때마침 점심시간도 다가온 상황.

함께 점심이라도 하자는 말을 꺼내려는 차에 놈이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던진다.

“참, 러시아에서 외골격에 욕심을 낸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수출은 물론 기술이전도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미국 때문에?”

“아니, 그것보다는 내 고집이라고 할 수 있지. 자칫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을 전략 물품을 쉽게 시장에 푸는 것은 좀 그렇잖아.”

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며 다시 놈의 등을 떠밀려는 순간 그가 휙 하고 몸을 돌리더니 불쑥 마네킹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럼 저 무동력 외골격은 어때? 어차피 수출을 경계하는 이유는 동력계통 기술 때문인데, 저건 애초부터 그게 배제된 물건이잖아. 그럼 차라리 저걸 수출하고 러시아에게 생색을 내는 편이 낫지 않겠어?”

“그러다 기술이전을 요구하면?”

“아! 그걸 생각 못했구나. 하긴, 러시아라면 그렇고도 남지. 쯧, 그럼 푸틴은 계속해서 침만 흘리고 있어야 하는 건데, 네 입장이 좀 난처하기는 하겠다.”

희원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왠지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쳐 간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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