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70화
-그건 또 무슨…….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우리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을 테니까요.]
마이클은 그 말에 침묵했다.
지나치게 격한 표현에 당황스러웠던 거겠지.
하지만 정말로 일이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면 사태는 심각했을 거다.
다른 걸 떠나서 일본의 보통 국가화 된다는 건 이 나라 국민들에겐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니까.
힘없는 정부야 처음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겠지만, 결국 이 나라 국민들의 원성에 못 이겨 대응에 나설 테고, 그건 곧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지름길이 되지 않았을까?
-뭐 그랬을 수도…… 하지만 그거야 이제 없던 일이 되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이후 다시 들려오는 마이클의 목소리에선 다분히 나를 다독이려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어차피 일본의 재무장 문제는 물 건너갔으니 미사일 하나 정도는 이해를 하고 넘어가라는 듯.
그런데 순간, 왠지 상황이 조금 생뚱맞다는 생각에 속에서 헛웃음이 뱉어졌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 나라의 대통령도 아닌 마당.
그럼에도 끝내 나를 설득하려 하고 있는 마이클의 태도도 그렇고.
이 문제를 끝내 짚고 넘어가려는 내 태도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도 하나를 허용하면 차후 둘을 허용하는 것도 가능해질 겁니다.]
하지만 여건이 그런 바에야 어쩔 수 없다.
자고로 협상이란 상대의 약점을 더 많이 틀어쥐고 있는 자가 유리한 법인데, 미국의 약점은 우리 정부보다 내가 더 많이 틀어쥐고 있으니까.
-흠…….
고민이 깊었던 듯 마이클은 긴 한숨을 뱉어 냈다.
이내 그는 슬그머니 자신의 직위를 강조하며 대화에서 빠져나가려 애쓴다.
-주지하셔야 할 것은 제게 아무리 그걸 강조해도 소용없다는 겁니다. 전 군인이지 정부 관료가 아니니까요.
[누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단장님만큼 정부에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존재도 흔치는 않죠.]
태연하게 뱉어 낸 대꾸에 마이클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뱉어 냈다.
곧 곁에 있는 누군가. 얼핏 부인으로 여겨지는 여인을 향해 양해의 말을 남기는가 싶더니 다시 내게 말을 잇는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왠지 의미심장한 투였던 터라 즉시 귀를 기울였다.
수화기 건너편에선 곧 드륵 하고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미처 예상치 못했던 말이 뒤따른다.
-어차피 로비에 넘어간 의원들의 요구를 아주 묵살하는 것은 힘듭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죠.
[뭐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해서 말인데, 사거리를 대폭 줄여 버리는 것은 어떨까 싶군요. 그게 그나마 한국의 부담을 줄여주지 않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의 말처럼 친일 행보가 뿌리 깊게 박힌 미국의 의원들을 포기시키는 것은 무리.
해서 일본의 초음속 대함 미사일 보유는 막지 못할 텐데, 그럼 차라리 사거리에 제한을 둠으로써 또 하나의 족쇄를 채워두는 것이 방법이기는 하지.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미안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걸 관철시킬만한 로비 능력이 없습니다. 아니, 설사 로비를 한다 해도 이미 일본의 뿌리 깊은 로비에 젖어 있는 의원들이 설득 될지도 의문이죠. 아마 그게 가능하려면 의원들을 단숨에 침묵시킬만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럴만한 인물이…….]
말을 내뱉던 차에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문득 그게 가능할 만한 존재가 떠올랐거든.
내 반응에서 뭔가를 눈치챈 걸까, 수화기 건너편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맞아요, 리암 회장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죠. 마침 그가 이달 말쯤, 한국을 방문한다는데, 한번 만나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리암 회장이 한국에 온다고요? 뭣 때문에요?]
-명목상으로는 새로 당선된 한국 대통령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 정부 대표로 참석을 한다더군요. 하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의 진정한 목적은 진 회장님이라는 설이 있습니다만.
[…….]
***
[오늘 오전 우리 정부는 일본의 초음속 대함 미사일 개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에 대한 일본 내각 측의 반응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며칠 후, 정부는 그동안 미뤄왔던 일본의 미사일 개발 사실에 대한 공식적인 논평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의 반응은 철저한 무시.
아마도 그건 아직까지 미국이 자신들을 아시아에서 한국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여긴다는 생각에서 나온 자신감인 듯한 느낌이었다.
“흠…….”
물론 그게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한국보다는 일본을 우대해 왔고, 또 전략적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 아니 회귀 전에나 통용되었던 것일 터다.
전과 달리 이제 한국은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위치에 올라 서 있으니까.
물론 오랜 시간을 전적으로 미국의 편에만 섰던 일본이 그렇다고 하루 사이에 팽 당하기야 하겠냐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제 한국이 일본보다는 미국과 좀 더 끈끈한 관계가 된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그동안 개발을 진행해 왔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이 개발에 성공했음을 알려왔습니다. 또한 차후 대중들을 상대로 공개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 했으며…….]
또다시 며칠 후, 결국 정부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일본을 향해 경고의 수단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끝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일본 내각.
그건 반신반의하는 것에서 나온 태도일 수도 있겠지만, 보다 정확히는 당황에 의한 침묵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빰빠빠빠!
그로부터 일주일 후, 대통령의 의지에 의해 결국 대구공항에선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의 공개 행사가 거행되었다.
워낙 파급력이 큰 무기의 개발소식이다 보니 내신은 물론 외신들까지 몰려든 상태.
게다가 러시아의 경우엔 아직 공개를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기에 명목상으론 우리가 세계 최초로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의 개발 사실을 공표하는 것.
관심의 척도가 지대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거다.
쉬이이익!
아직은 개량이 진행 되지 않은 탓에 미사일의 크기는 꽤 큰 편이었다.
덕분에 공중발사 테스트에 동원된 기체는 KF-02. 즉, 우리가 개발한 자체 전투기.
그렇다 해도 매달린 미사일의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과연 저걸 짊어지고 날아오를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정말 저 무거운 것을 매달고 날아오를 수는 있는 겁니까?”
우려되긴 마찬가지였던 듯 대통령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하지만 그건 KF-02. 아니 고스트 이글의 폭장량을 무시하는 처사.
난 단호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는 머쓱한 얼굴로 막 이륙을 준비 중인 전투기를 향해 다시 시선을 줬다.
“그나저나 5세대 기체의 개발은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불현듯 들려오는 질문에 다시 대통령을 쳐다봤다.
막상 보고 있자니 욕심이 생기기라도 한 듯.
웃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아마 늦어도 3년 후쯤이면 개발이 완료되지 싶습니다.”
“그렇게나 빨리요?”
“굳이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사실 5세대기로의 전환이라고 해 봐야 남은 과제는 내부 무장창의 완성과 그곳에서 안전하게 미사일을 사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뿐인데, 이미 어느 정도는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기체에 내부 무장창을 설치하려면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은 예상 밖으로 제법 뼈가 있는 지적을 했다.
정상적이라면 당연한 과정.
하지만 저 전투기의 개발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5세대를 목표로 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모르셨겠지만 저 고스트 이글의 동체엔 애초부터 내부 무장창이 설치될 공간을 비워둔 형태로 설계되어있습니다. 해서 차후 5세대 기체로 개량을 진행한다 해도 재설계 비중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뭐 기체 개량 없이 5세대기를 따로 만든다면 그냥 연료 공간으로 활용하면 그만이고요.”
“오오!”
대통령은 탄성을 뱉어 냈다.
순간 들려오는 것은 전투기가 엔진의 파워를 끌어올리는 소리.
곧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한 그것은 그 무거운 미사일을 매단 상태에서도 단숨에 하늘로 치솟았다.
“쯧, 이거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너무도 쉽게 이륙에 성공한 전투기의 모습에 대통령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사이 이륙하는 또 한 대의 KF-02.
그건 곧 공중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투입된 보조기체였다.
“저쪽 화면을 보시면 됩니다.”
2대의 전투기가 시야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 한 난 재빨리 활주로 한편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내 손이 신호였던 걸까, 순간 거대한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더니 방금 이륙했던 전투기의 모습이 비춰진다.
[발사 카운트 하겠습니다.]
안내방송에선 미사일이 발사준비 상태에 들어갔음을 알려왔다.
이내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퉁 하고 전투기에서 떨어져 내린 미사일.
이후 불과 1초 만에 점화된 그것은 어마어마한 연무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하늘 저편을 향해 날아갔다.
“무슨 속도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미사일을 보며 여기저기서 탄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건 본격적인 극초음속의 영역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한 상태에서의 속도.
이제 곧 마하 9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가 구현될 텐데, 미처 그걸 화면에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장내에 계신 내빈 여러분. 발사된 미사일은 이제 곧 남해에 있는 바지선에 충돌할 예정입니다.]
다시 들려온 안내방송에선 미사일이 곧 남해에 있는 목표에 도달할 예정임을 알려왔다.
발사된 지 불과 수 분.
사람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화면에 집중했고, 그 순간 화면에 보이던 바지선으로 무언가가 순식간에 충돌하며 지나친다.
쿵!
비록 탄두가 제거된 상태의 테스트였지만 바지선의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충돌에너지의 여파가 그만큼 컸던 상태.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수의 컨테이너들을 뚫고도 미사일의 궤적이 이어졌다는 건데, 그건 속도와 충돌에너지의 크기가 그만큼 엄청났음을 의미하는 거였다.
“허어…… 저 정도면 웬만한 함정들은 일격에 침몰 시킬 수 있겠군요.”
보고 있던 대통령은 연신 탄성을 발했다.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군사적 지식이 그리 많지 않은 인물.
난 애써 설명을 더 보탰다.
“만약 저기에 탄두가 장착되어있는 상태라면 항공모함도 격침하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설마요.”
대통령은 차마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대꾸했다.
답답했던 듯 곁에 있던 합참의장이 내 말에 힘을 보탠다.
“극초음속 미사일의 경우는 단순히 탄두의 화력에만 의존하는 다른 미사일들과는 다릅니다. 특히나 마하 9의 속도로 충돌하는 경우 그 운동에너지에 의해 파괴력이 어마어마하게 증폭 되죠. 하니 진 회장님의 말처럼 항모가 격침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
대통령은 그 말에 비로소 턱을 떨어트렸다.
이내 다시 화면을 주시하는 그의 표정에선 얼핏 후회다 싶은 표정이 그려진 상태.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불쑥 말을 뱉어 낸다.
“이거 괜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싶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장면을 일본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죄다 집중하고 있을 것 아닙니까. 이거 괜히 경계심만 높인 것은 아닐지 염려된다는 거죠.”
“…….”
난 그 말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럼 그것도 생각 안 하고 공개를 결심 했었다는 말인가.
왠지 앞으로는 그가 내세울 고집을 한 번쯤은 반대해야 할 것 같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파고든다.
“그나저나 중국이 저걸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하군요. 어차피 일본의 반응이야 굳이 상관하지 않는다 쳐도…….”
그 점은 사실 나도 궁금하다.
한참 1만 톤급 구축함의 보유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들에게 저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될 소식일 테니까.
그러고 보면 이번 공개 행사가 영 불리한 것만은 아닌 건가.
그들에게도 이건 분명한 경고가 되는 상황이니.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가뜩이나 최근 이어도 인근을 밥 먹듯 드나드는 놈들에게 분명한 경고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왜지? 전과 달리 부쩍 이어도를 침범하는 이유가…….’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미국이 그토록 밀어내기를 감행함에도 기어이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는 중국의 태도.
이건 뭔가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의 발악 같은 느낌이다.
“흠…….”
“왜 그럽니까?”
무심코 뱉어진 한숨에 대통령이 반응했다.
막상 짐작이 가는 바는 있으나 아직은 그걸 입에 담기 어려운 상황.
난 머쓱한 미소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