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69화
[좋은 아침입니다.]
다음 날 오전 출근길.
밖에서 경호를 위해 대기 중이던 나타샤의 인사에 절로 몸이 움찔했다.
평소와 다른 내 태도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해 보였고, 난 오늘따라 유독 심하게 파인 그녀의 상의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기 위해 한참이나 노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끝내 짧은 인사만을 남기곤 차에 올랐다.
회사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젯밤 꿈으로 인해 몇 번이고 머리를 털어내자 운전 중이던 양 비서가 넌지시 묻는다.
“무슨 안 좋으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밤새 잠을 못 주무신 얼굴인데요.”
“아니요, 신경 쓰지 말아요.”
지나가듯 대답을 뱉어 내곤 창밖을 쳐다봤다.
터져 나오는 헛웃음.
그건 결국 나 역시 인간이며 기본적인 욕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에서 오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에서 오는 반응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도착한 사무실에선 김 비서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왜지?
오늘따라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 역시도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별일 없죠?”
겉치레에 가까운 인사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섰다.
뭔가 따로 보고할 것이라도 있었던 걸까, 순간 그녀가 쪼르르 방으로 따라 들어선다.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저 다름이 아니라…… 오전에 여당 이용재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이용재라면 한때 현 대통령과 당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인물이었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 당시 대놓고 일본을 옹호하다가 결국엔 당대표직에서마저 물러났었던.
한데 그가 왜?
“무슨 용무랍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단지 회장님을 좀 뵙고 싶다는 말만 전해 달라더군요.”
그 말에 절로 눈썹이 올라갔다.
이젠 야당이 아니라 여당 의원이 된 그의 신분.
왠지 목적이 의심스럽다.
“당분간은 바빠서 힘들겠다고 하세요.”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김 비서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돌아섰다.
이내 방을 나서는 그녀를 대신하여 이번엔 김영기 총괄실장이 들어선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뉴스 못 보셨습니까?”
김 실장은 말을 뱉어 내기 무섭게 TV를 틀었다.
곧 채널을 맞춘 곳은 뉴스 프로그램.
패널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열띤 토론을 잇는 중이었다.
[일본의 공식적인 발표는 그저 허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1만 톤급 함정 건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대처라는 마당에 우리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오고 가는 패널들의 단편적인 대화 내용만으로는 내용파악이 힘들었다.
때문에 즉시 되묻자 김영기 실장이 한숨과 함께 설명을 잇는다.
“오늘 오전 8시쯤, 일본에서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각 방송사에서 의도를 두고 설왕설래 중이죠.”
“초음속 대함미사일이요?”
일본이 개발한다는 초음속 대함미사일이라면 ASM-3를 의미할 터였다.
램제트 엔진을 기반으로 한.
최고 속도는 마하3. 그리고 사거리가 200킬로미터에 이르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게 세상에 등장하는 시점은 앞으로 10년 이후.
그런데 저들이 현시점에서 그걸 개발하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 꽤 의외다.
‘위기감을 느낀 건가?’
어쩌면 그게 주된 이유이지 싶었다.
미친 듯이 발전해 가는 우리의 국방력.
게다가 중국 또한 역사보다 앞서 1만 톤급 방공구축함을 대량 건조하는 상황.
솔직히 일본의 입장에선 잠이 편하게 올 리가 없었을 거다.
“흠…….”
그렇다 해도 뒤끝이 찜찜하다.
공격무기의 개발이 막혀 있는 저들의 현실에서 대놓고 최신 공격무기의 개발을 천명하고 있는 이 현실이.
우리를 비롯한 주변국들의 반응이 격할 것이라는 사실쯤은 저들도 익히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저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혹여 간을 보겠다는 의도인 건가?
“아무래도 우리와 중국의 반응을 떠보려는 것 같지 않습니까?”
같은 생각을 한 듯 김영기 총괄실장의 말이 이어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김 실장과 내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 올렸다면 정답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양태용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역시 우리와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제 생각에도 현재 일본은 우리 반응을 떠보려는 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뭐 명목상으로는 최근 부쩍 기세를 올리고 있는 중국 해양세력에 대응한다는 거지만 진짜 목적은 우리의 이지스함 아니겠습니까?
양 원장의 말투는 꽤 무덤덤했다.
왠지 묘한 기분이 드는 순간.
사실이라면 우리로선 경계해야 할 일이 벌어진 건데, 왠지 정보부처의 수장답지 않게 지나치게 평온한 느낌이다.
“청와대에서도 뭔가 반응을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대통령님께서 미 국무부와 대화 중이기는 합니다만,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다니요?”
-정보에 의하면 현재 일본이 계획 중인 초음속 대함미사일의 사거리가 400킬로미터 급에 이른다더군요.
“400킬로미터요?”
그건 또 의외의 소식이었다.
아니, 역사를 거스르는 소식이라고 해야겠지.
일본이 ASM-3의 사거리를 400킬로미터 급으로 늘리는 것은 개발 이후에도 한참 후에나 결정이 났던 것인데, 이건 그 과정을 생략해 버리는 것이니까.
“…….”
한데 중요한 것은 역사의 뒤틀림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엄밀히 따져보면 일본은 잠재적인 적국으로 규정할 수 있는 집단.
역사와 영토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문제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그런 나라에서 사거리가 400킬로미터 급에 이르는 공격 수단을 갖추게 되는 것은 우리로선 충분히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요? 대통령께선 어쩌고 계신 겁니까?”
-대통령께선 당연히 언성을 높이시는 중이시죠. 솔직히 그 정도면 누가 봐도 방어가 아닌 공격 수단에 가까운 건데, 우리가 그걸 용납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흠…….”
사실 그건 용납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거다.
물론 세종대왕함이야 초음속 미사일에 대한 대처는 충분히 갖춰진 상태기에 피해를 볼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으니까.
게다가 국제무대에서 ‘허용’이라는 단어는 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명제다.
쉽게 말해서 한번 허용이 되면 두 번은 어렵지 않다는 거지.
만약 이번에 그냥 넘어가게 되면 향후 일본은 지속적으로 공격무기의 보유를 시도할 텐데, 그 길을 열어줄 수는 없지 않던가.
“미국의 반응은요?”
깊어지는 생각을 떨쳐내며 되물었다.
들려오는 것은 긴 한숨.
아무래도 뭔가 부정적인 대답을 듣기라도 한 모양이다.
-미국에선 일단 우리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결론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이라크 문제로 미국이 좀 복잡합니까. 게다가 이번엔 막대한 전비 지원까지 했으니 그 정도는 허용을 해 줄 가능성이 큰 상황인 것이 문제인 거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절로 헛웃음이 지어졌다.
어쩐지 지원금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싶더니 결국 그런 꼼수가 숨겨져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누군지는 몰라도 이쯤이면 일본 내각에서도 제법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존재가 있음을 의미하는 건데, 그게 누군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래서 말인데, 대통령님께선 일본에게 시위 성격으로 우리도 뭔가를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국정원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시위요?”
-네, 아무래도 분위기상 미국이 일본의 공격무기 보유를 막을 생각은 없어 보이거든요.
“그럴 수도 있죠. 미국은 일본을 얼마든지 컨트롤 가능한 국가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그거야 미국의 생각이고 막상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거죠. 아무튼, 대통령님께선 이 기회에 일본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자는 생각이십니다. 우리도 대응책은 있다는 것을.
“그 말은, 세종대왕함의 초음속 대함미사일 방어능력을 다시 시연이라도 해보이겠다는 겁니까?”
-그건 이미 일본도 알고 있는 마당에 별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럼 대체 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말입니다. 차라리 그걸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공개해서 절망감을 주자는 거죠. ‘너희가 개발한다는 미사일 따위는 우리 배를 침몰 시킬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것은 너희 배를 완전히 침묵 시킬 수 있다.’ 뭐 이런.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일이 우습게 돌아간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의 경우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주변국들의 반응을 염려하여 테스트를 배제했었던 것.
그런데 그걸 드러내겠다?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영 감이 오지 않는다.
-아무튼, 혹시라도 청와대에서 연락이 갈 수도 있으니 그리 알고 계십시오.
국정원장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곁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대충 내용을 짐작한 듯 때마침 김영기 총괄 실장이 넌지시 내게 의견을 제안한다.
“그러지 마시고 마이클과 통화를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본의 공격무기 보유는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가게 되면 일본은 분명 보통 국가화로의 전환을 가속하겠지.
그것만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스윽.
난 즉시 시계를 쳐다봤다.
비록 밤은 깊었겠지만 그래도 내 전화라면 받을 가능성이 있는 시간대.
즉시 통화를 시도하자 예상처럼 그가 푹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혹시 제가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니겠죠?]
-아직 침대에 들어가기 전이니 딱히 방해를 하신 것은 아닙니다만,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주신 겁니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내가 방해가 되기는 한 모양이었다.
얼핏 수화기 너머로 여인의 불평 섞인 콧소리가 들려왔거든.
그 나이에도 부부관계가 그렇듯 원활하다는 것에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일본에서 사거리 400킬로미터 급의 초음속 대함미사일 개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혹시 그 문제로 미국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는지 알고 싶군요.]
-…….
저편에선 침묵이 이어졌다.
긍정을 표하는 침묵임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상태.
잠시 한숨을 내뱉자 그가 한 박자 늦은 변명을 뱉어 낸다.
-그 문제라면 솔직히 미 정부에서는 반대 입장입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반대라면…… 다른 곳에선 찬성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의회가 문제죠. 일본의 로비에 넘어간 공화당과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일본의 헌법에도 반하는 문제 아닙니까.]
-그 점을 우리 정부라고 모르겠습니까. 한데 정부도 당장 경제 문제로 의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라서 마냥 의원들의 요구를 묵살할 수만도 없는 것이 안타까운 거죠.
[…….]
들리는 것만으로 봐선 왠지 미 정부는 일본의 공격 미사일 개발 수용을 염두에 둔 듯한 느낌이었다.
하긴, 지금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의회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기는 힘들겠지.
그나저나 의회에도 벌써 로비를 끝냈다?
그럼 그 100억 불이나 되는 전비지원금의 목적도 왠지 의심스럽다.
‘가만.’
그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하나 더 스쳐 지나갔다.
마침 마이클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다했다는 듯 전화를 끊으려던 상황.
다급히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설마 일본이 전비지원금을 핑계로 재무장을 용인 받으려는 것은 아니겠죠?]
사실 내 입장에서 그건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였다.
무려 100억 달러.
확실히 그 정도 규모라면 전비지원금으로 쾌척하기엔 지나치게 큰 금액이거든.
게다가 지금 미국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어쩌면 일본은 미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그리고 자신들의 특기인 돈으로 재무장의 길을 열려 하는 걸 수도 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지만 마이클의 반응은 격했다.
뭐 그렇다면야 천만다행이긴 하다만.
솔직히 우리가 굳이 파병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일본의 재무장 야욕을 꺾기 위함인 것도 있는데, 그게 무너지면 곤란하잖아.
그런데 그때, 저편에서 긴 한숨과 함께 다시 말이 들려온다.
-뭐 좋습니다. 진 회장님이니까 말하는 건데, 얼마 전에 일본의 재무장이 거론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그렇다곤 해도 결국 한국의 파병 결정으로 그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죠.
[…….]
-네, 그 반응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그만큼 코너에 몰려 있었음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얼마나 위험했던 발상이었던 것인지는 아십니까?]
난 한숨을 뱉어 내며 말했다.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마이클이 태연하게 대꾸한다.
-한국의 입장에선 위험했던 것이 사실이죠.
[아니 전 미국의 입장을 말하는 거였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