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67화
[현지시각 오전 7시. 집계결과 압도적인 표 차로 이필용 대표를 누른 이주환 후보가 제 17대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습니다.]
2007년 12월 20일.
한동안 혼전 양상을 보이던 대선 결과는 결국 이주환 의원의 승리로 끝이 났다.
충 투표율은 65퍼센트.
그중 무려 64퍼센트의 표를 휩쓸어 간 이주환은 별다른 잡음 없이 당선인의 신분이 되었고, 정권을 이양받기 위한 작업은 지체 없이 이루어졌다.
[이주환 당선인은 오늘 대국민 발표를 통해 정치보복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습니다.]
놀라운 것은 정권의 이양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였다.
정말로 그게 지켜질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어쨌건 보복 정치로 이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일부 여론에선 한동안 그걸 다가오는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며 폄하했지만 난 왠지 그의 말이 단지 총선 겨냥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회장님, 시간 되시면 오늘 청와대로 좀 들어와 주셨으면 한다는 비서실장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임기를 불과 한 달 정도 남긴 현 대통령은 나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이유야 빤히 짐작이 가는 상황.
흔쾌히 응하고 도착한 청와대에는 예상대로 거나한 점심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진 회장.”
연신 수저를 놀리던 대통령은 지나가듯 말을 내뱉곤 웃어 보였다.
솔직히 고마운 것은 나였지.
웃음으로 대꾸하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안타깝지만 난 이제 당을 떠날 생각입니다. 당내 의견도 그렇고, 이젠 고향 마을에서 좀 편하게 쉬고 싶군요.”
그건 아마도 이필용과 그의 일파들의 견제에 의한 결과일 거다.
비록 퇴임하는 대통령이라지만 워낙 영향력이 막강했던 존재.
차후 정치권에 미칠 수 있는 그의 영향력을 잘라내 버리겠다는 의도인 느낌인데, 권력을 향한 이필용의 끝없는 욕심은 그야말로 두손 두발을 다 들어줄 정도다.
“좀 너무하는군요. 퇴임하는 대통령을 당적까지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죠. 당 내부의 의견이 그렇다는 데야. 참, 말이 나왔으니 하는 건데, 이필용 의원을 조심하세요. 얼핏 욕심만 많은 사람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 속엔 능구렁이가 백 마리쯤은 똬리를 틀고 있는 인물이니까.”
“명심하죠.”
쉽지 않은 조언이었을 거다.
아무리 미운 자라도 명색이 같은 당내 인물을 두고 하는 말이었음에야.
그런데 대답이 너무 쉽게 튀어나온 탓일까.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대통령이 갑자기 헛웃음을 지어 보인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로군요.”
“아, 그게 아니라…….”
당황스러운 마음에 즉시 대꾸했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던 그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으며 다시 말한다.
“하긴, 진 회장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에서 누굴 두려워 하겠습니까. 그래도 이필용 의원 일파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겁니다.”
이후 대통령과의 대화는 평범한 화제의 연속이었다.
미국발 위기에 대한 경제전망에서 비롯하여 그의 개인적인 취미에 대한 것까지.
이내 식사를 모두 마쳤을 무렵 그가 나지막하게 말을 뱉어 낸다.
“종종 내 사저에 들러줄 수 있겠습니까?”
“…….”
난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회한이 남는 듯한 눈빛.
그 모습에 문득 마음 한편이 허전해진다.
“그렇게 하죠.”
***
[임명장, 귀하를 국가전략자문회의 국방자문위원으로 위촉함.]
2008년 1월 20일.
공식적으로 임기를 시작한 이주환 대통령은 내게 전 정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문위원의 자리를 수여했다.
이로써 난 잡음 없이 청와대와의 교류를 이어 갈 수단이 생겼고, 그 결과 1월 내내 거의 청와대를 내 집 드나들 듯해야만 했다.
“현재 진행 중인 국방력 증강 사업의 현황이 어떻게 됩니까.”
국방 분야 현황 파악을 위해 모인 자리.
이주환 대통령은 유임된 김태익 장관을 향해 물었다.
짧은 헛기침을 내뱉은 김태익 장관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현재 진행 중인 국방 분야 사업 현황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공군의 경우 KF-01의 본격적인 생산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또한 KF-16의 개량 작업 역시 차질 없이 진행 중에 있으며 KF-02의 경우엔 현재까지 총 48기가 배치 완료된 상태입니다.”
“조기경보기는 어떻게 됐습니까?”
설명을 듣던 대통령은 질문을 이었다.
순간 김태익 장관의 시선이 힐끗 나를 향했고, 난 즉시 준비해 온 자료들을 대통령에게 건네며 말했다.
“올 6월쯤 1호기의 배치가 완료 될 겁니다. 이후 연말쯤 4기 모두 완편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고고도 무인기는요?”
“고고도 무인기 역시 올 말쯤엔 운용 테스트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고고도 무인기는 동시 제작을 진행 중에 있기에 4기가 한 번에 군에 인계될 겁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이주환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서류를 쳐다봤다.
이후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해군의 사업.
특히나 전임 대통령이 임기 말에 확정해 버린 이순신급 구축함의 추가 건조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순신 급을 12척까지 늘린다…… 게다가 만재배수량이 8500톤 급의 준 이지스함으로 간다?”
얼핏 들려온 말투로는 저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 반응인 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특히나 잔뜩 좁혀진 저 미간.
혹시 사업을 엎어 버리려는 걸까, 싶은 불길한 예감에 난 한동안 그를 빤히 쳐다봤다.
“흠, 이 정도 전력이 갖춰지면 그래도 해군이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닌 거겠죠?”
그때, 다행히도 그의 표정이 확 밝아지며 안도할 만한 말이 들려왔다.
마음을 졸인 것은 나 혼자였던 걸까. 주변은 이상하게도 차분한 분위기였고, 대통령은 곧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왜요, 내가 사업을 반려할까 봐 걱정 하셨습니까?”
“꼭 그렇다기보다는…….”
난 어색한 미소로 대꾸했다.
척 하고 서류를 내려놓은 그가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말한다.
“난 전임 대통령님께서 추진하신 국방개혁을 누구보다 응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내가 잘 차려놓은 밥상을 엎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역시나 내가 사람 하나만큼은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말로 정적이었던 존재를 응원한다는 것이 이 구질구질한 정치판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건 아마도 이주환이기에 가능했던 것일 터다.
“아무튼, 난 전 정권이 계획했던 국방 관련 사업을 대부분 계승할 생각입니다. 아니, 오히려 좀 확대를 했으면 어떨까 싶은데, 진 회장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확대를 하다니, 뭘 말입니까?”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선언에 놀라 즉시 김태익 장관을 쳐다봤다.
그들끼리는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걸까, 장관의 얼굴이 지나치게 평온해 보이는 느낌.
그때 웃음이 섞인 대통령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중기 국방계획안 말입니다. 이젠 그게 어느 정도 결과를 내고 있으니 새로운 계획안을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뭐 굳이 예를 들자면 차기 호위함 사업을 슬슬 시동을 건다던가.”
“하지만 우리 경제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할 줄 알고요.”
난 즉시 반문했다.
이미 그 점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듯 대통령이 웃으며 대꾸한다.
“나도 위기상황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국방력은 절대 머뭇거려서는 안 되는 분야죠. 게다가 당장 국방예산을 줄였다간 차후 다시 그걸 끌어올리기는 더 힘들 것이라는 점은 진 회장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얼핏 일리 있는 주장이다 싶었다.
자고로 예산이란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힘든 것이 현실.
그건 전임 대통령이 몸소 증명했던 문제가 아니던가.
“해서 난, 최소한 내년까지는 국방예산을 좀 더 확대하는 모험을 좀 해볼 생각입니다.”
대통령은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서류들을 내밀었다.
이미 사전 조사를 끝낸 듯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서류엔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의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K2전차 1차 양산을 비롯하여 세종대왕 급 구축함과 3000톤급 잠수함 건조 사업 등 여타 양산 관련 사업이 13개.
이순신 급 구축함과 K21 등 개발 지속 사업이 12개.
더불어 새로운 중기국방계획안의 설립과 관련된 내용까지.
“의회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야 당연하겠죠. 또한 그게 의회의 존립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 역시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할 일을 다 하려는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일이 왠지 우습게 돌아가는 기분인걸?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국방예산을 건드리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건만.
오히려 그 반대를 주장하는 대통령의 저 태도.
어쩌면 내가 걸었던 도박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성공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참, 며칠 전에 백악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대통령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던 차.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마주하자 그가 슥 하고 또 다른 서류뭉치를 들이민다.
“추가 파병을 고려해 달라더군요. 그 서류에 있는 조건을 담보로.”
나로선 이미 알고 있던 문제였다.
물론 이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들 역시.
굳이 티를 내지 않으려 서류를 살피고 있는 중, 대통령이 한숨을 내뱉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유혹적입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
“전비 지원은 물론 추가로 파병되는 특전사 병력들의 워리어플랫폼 지급. 그리고 일반 전투 병력들에게는 이미 공수되어있는 미군의 장비들을 활용할 수 있게 해 주겠답니다. 기갑차량들을 비롯해서 보병 전투차량까지. 한마디로 우린 병력들에게 소총과 탄약만 지급해서 보내라는 거죠.”
난 끝내 침묵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야 내가 끼어들 상황은 아니니까.
그때,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잇는다.
“한데 또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습니다. 어차피 국방개혁에 따라 향후 육군 병력의 수가 대폭 감축되는데, 이 기회에 그걸 대처할 수가 생긴 셈이니까요.”
“수가 생기다니요?”
무심코 되물었다.
순간 대통령의 시선이 차분해지더니 헛기침과 함께 말을 대신한다.
“미국에서 파병을 조건으로 추가로 제공하는 공여 물품들이 어마어마하거든요. 해서 그걸 우리 지상군 재편에 활용하겠다는 겁니다.”
“…….”
그 말에 다시 대통령을 쳐다봤다.
혹여 말에 오해가 있을까 싶었던 듯 그가 다급히 변명을 잇는다.
“아! 그렇다고 현재 진행 중인 육군의 사업들을 멈추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K2전차의 경우도 1차 양산분은 일단 그대로 밀고 가는 것으로 결정을 봤죠.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진행 중인 사업들은 그대로 진행을 하되, 미군 공여 물품들로 그동안 낙후되었던 장비들을 교체하고 그에 따라 군의 편제도 변화를 주자는 겁니다.”
진행 중인 사업이 지속된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이 뱉어졌다.
나로선 다른 무엇보다 그게 중요한 문제니까.
그나저나 미국의 공여 물품을 활용하여 현대화를 앞당긴다…… 왠지 썩 나쁜 생각 같지는 않아 보인다.
“K2의 양산을 그대로 간다면, 혹시 공여되는 전차들로 M48을 대체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아직 전방과 해병대에 깔려 있는 낙후된 기갑 장비들 일부를 미군이 공여할 에이브람스와 브래들리로 대처할 예정입니다. 뭐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부족분에 대해선 이후 대책을 다시 세울 예정이죠. 참, 그리고 이 기회에 군의 편제도 대폭 손을 볼 생각입니다.”
대답은 합참의장을 통해서 들려왔다.
시선을 그에게 돌리곤 재빨리 물었다.
“편제를 손보다니, 어떻게요.”
“일부 보병사단을 기계화 부대로 재편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7기동군단의 경우는 보다 현대화 하여 규모를 키울 예정이고요. 참고로 7기동군단 예하에는 신속대응사단도 구축할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회귀 전 행해졌던 우리 군의 편제개편이 떠올랐다.
오로지 북진을 목적으로 한 7기동군단의 전력 확대와 그에 따른 신속대응사단의 창설.
아무래도 그 역사가 재현될 모양인데, 문제는 지금껏 합참의장이 열거한 개념들을 죄다 실행할 예산이 대체 어디에서 나느냐는 점이다.
‘K2 양산이야 어차피 예산 집행이 이미 확정된 상태니 그렇다 치고, 기계화로의 편제 변화에 따른 그 많은 예산들은 대체 어떻게…….’
“그리고 특수전사령부 역시 변화를 겪을 겁니다. 편재에서 비롯해서 무장까지.”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합참의장의 말이 이어졌다.
순간 귀에 꽂힌 건 무장의 변화라는 말.
혹시나 싶어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맞아요, 특전사 병력들 모두에게 워리어플랫폼을 적용할 생각입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니, 다들 지금 제정신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
나도 몰래 눈이 커졌는지 합참의장이 웃으며 말한다.
“이해합니다. 특전사 전체를 그 정도로 무장시키려면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어야겠죠. 해서 그건 올해를 기점으로 향후 6년에 걸쳐 진행 할 예정입니다.”
그 경우 특전사 무장의 해결 가능성으로는 충분했다.
비록 수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해도 그걸 6년으로 나누면 부담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니까.
뭐 할부의 마법은 위대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일부 보병사단들을 기계화로 전향하는 것에 따른 예산확보다.
“설마…….”
순간 무언가가 뇌리에 스쳤다.
족히 수조 원. 아니 십 수조 원을 넘어갈 그 많은 돈이 생겨날 만한 구석은 딱 하나 뿐이라는 것.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눈을 부릅뜨며 대통령을 쳐다보자 그가 넌지시 미소를 내비친다.
“맞아요. 미국에서 우리의 대규모 추가 파병을 요구하며 내세운 조건 중 하나가 전비 지원인데, 그 액수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
“정확히는 총액 200억 달러. 하지만 정작 파병 병력들은 미군의 장비들을 활용하는 것이 예정 되어있는 마당이니 그 돈을 다 전비로 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해서 우린 그걸 우리 군 개편 작업에 활용하고, 또 일부는 특전사 병력들의 워리어플랫폼 지급에 활용할 생각입니다.”
“…….”
“아! 그러고 보니 공군 공정통제사들도 이번에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군요.”
길게 이어지는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은 대체 미국이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돈을? 하는 생각뿐.
그때, 대통령이 다시 의문의 말을 던졌다.
“놀라는 것은 이해합니다. 솔직히 이번엔 좀 과하다 싶은 지원이긴 하죠. 한데 내막을 알면 조금은 이해가 가실 겁니다.”
“…….”
“사실 우리에게 지원되는 전비지원금 중 절반은 미 정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다른 곳이라면, 어디에서 말입니까?”
“일본이요.”
“…….”
난 그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대통령이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잇는다.
”뭐 한마디로 그런 거죠. ‘일본은 어차피 병력도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니 닥치고 돈이나 내놔라.’ 그런 식으로 미국이 일본에게 뜯어낸 돈이 우리에게 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