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64화 (16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64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나대로. 또 그는 그대로 이 일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 건지를 알고 있기에 나온 결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호흡을 가다듬곤 넌지 말을 꺼냈다.

[우리에게도 전자전 포드 기술 정도는 있습니다. 물론 그게 미국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선 옅은 웃음과 함께 대꾸가 들려왔다.

그걸 알고서도 제안을 했다는 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의미.

설마, 하는 생각이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오려는 차,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진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전자전의 핵심은 방대한 신호 데이터죠. 해서 우린 그동안 축적했던 데이터를 한국과 공유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이 개발 중인 고고도 무인기에 신호 감청설비기술을 지원해 드리죠. 하면 앞으로 한국도 차후 독자적인 전자전의 시도도 가능할 겁니다.

그 정도면 사실상 어마어마한 양보를 한 거다.

무려 수십 년간 축적한 미국의 신호 데이터는 지금껏 어느 동맹에게도 공유를 해준 적도 없었고. 또 돈으로는 살 수도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지금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흠…….]

그리고 지금 난 그걸 지적할 생각이고.

[단장님께선 그렇게 겪으시고도 아직까지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군요.]

-…….

[물론 신호 데이터의 공유가 어마어마한 제안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걸 통해서 득을 보는 것은 우리 정부지 재우가 아닙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선 순간 끄응 하고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와 상의를 하는 걸까, 곧 저편이 조금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다시 마이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 내가 이래서 진 회장님과 협상이라는 걸 하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좋습니다, 재우의 이익 역시 확실하게 챙겨드리죠.

[…….]

-우리의 정찰 위성인 키홀 위성에서 사용된 렌즈의 제작기술을 제공해 드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말에 아주 잠깐이나마 귀를 의심했다.

지금 현재 미국이 운용 중인 키홀 위성이라면 KH-11을 의미할 터.

그것이 사용하는 렌즈라면 무려 0.15미터급 해상력을 가진 물건인데, 그 제작기술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겠다는 것과도 같거든.

여태 핵심 군사 기술의 유출을 극도로 꺼리던 미국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

난 즉시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진심입니까?]

-진 회장님도 저를 모르시기는 마찬가지군요. 제가 언제 허튼소리 하는 것 보셨습니까?

[…….]

난 한동안 다시 침묵을 유지했다.

애가 닳은 걸까, 수화기 건너편에선 조급함이 느껴지는 말이 들려온다.

-뭘 고민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신호 감청 데이터와 정찰 위성의 렌즈기술. 그리고 비핵 EMP 공동 개발이면 우리로선 줄 건 다 주는 형국인 마당에.

생각해보니 그 점을 잠시 잊고 있었다,

비핵 EMP의 공동 개발.

물론 나 역시 비핵 EMP 기술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미국의 기술 수준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

향후 영향 범위가 수십 킬로미터 급에 달하는 기술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 미국의 역사임을 생각하면 사실 공동 개발은 오히려 내가 제안해야 할 상황이었다.

‘분명 전신 방탄 수트는 논외로 하겠다고 했지. 그리고 외골격 공동 개발업체의 지분 60퍼센트를 보장한다고 했고.’

그 정도면 나로선 절대적인 이익인 셈인데…….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겁니까?]

난 스치는 의문을 굳이 숨기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건너편에선 긴 한숨이 뱉어진다.

-왜긴 왜겠습니까. 전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생긴 마당에 우리가 뒤처질 수는 없기 때문이죠. 이게 어떻게 들릴지는 몰라도 미군은 늘 최강으로 남아야만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고집입니다.

[…….]

-또한 외골격은 우리가 구상하던 무력의 완성이기도 하고요.

자칫 오만한 말로 들릴 수 있는 것이었다.

뒷말은 그렇다 치고 미군은 언제까지나 지구 최강의 무력을 가진 존재로 남아야 한다는 저 말은.

하지만 여태껏 세상이 그 기준으로 굴러왔던 것이 현실.

딱히 대꾸할 만한 말은 없다.

-아무튼, 그 정도 조건이면 우리로선…….

[그렇게 하죠.]

난 그의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대답을 뱉어냈다.

이건 어느 면으로 보나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니까.

게다가 외골격이 대량 생산에 의해 가격 하락이 발생하면 우리 육군도 도입 가능성이 열리는 것.

나로선 일거양득. 아니 일타 삼 피다.

정말로 육군에 도입이 가능해지면 전력상승은 물론 향후 진행될 해군력 강화 사업에서 육군의 입을 틀어막을 수단도 될 것이지 않던가.

-다행이군요.

마이클은 진심 어린 탄식을 뱉어냈다.

왠지 그 태도가 우스워 피식 소리를 뱉어내자 멋쩍은 말투가 들려온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껏 육군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아시기나 합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군요. 안 봤다면 모를까, 우리 특전사들의 작전능력은 미 육군이 제일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난 여전히 웃으며 대꾸했다.

뒤늦게 스쳐 간 것은 미국 방산 업체가 자신들의 기술을 순순히 내주겠느냐는 건데, 그 점은 마이클이 염려를 덜어줬다.

-국방부에서 배수의 진을 친 상태라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배수의 진이라니요?]

-만약 이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차후 그 업체를 영원히 국방부가 추진하는 사업에서 배제하겠다고 했거든요.

[…….]

-게다가 업체 측에 어마어마한 물질적 보상안을 제시해둔 상태입니다. 뭐 진 회장님을 돈으로 구워삶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우리 업체를 회유하는 수밖에요.

난 그 말에 미군의 확고한 의지와 가치관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세상은 아무리 미군이 방위산업체들의 로비에 휘둘리는 집단이라고 손가락질들을 하지만, 결국 결정적일 때만큼은 확고한 의지를 보이지 않던가.

그에 비한다면 우리 군의 일부 장성들은…….

-아! 그러고 보니 미처 이야기 드리지 않은 사실이 한 가지 더 있군요.

입맛을 다시는 사이 마이클이 말을 이었다.

역시나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수화기 저편에서 의미심장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애초 이건 재우와는 크게 상관없는 문제라서 전해드릴까를 좀 고심하기는 했는데, 어차피 차후 진 회장님께서도 아시게 될 문제니 미리 밝히는 겁니다.

[…….]

-실은, 이번에 통과된 예산엔 동맹군 전비 지원 예산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동맹군 전비 지원이요?]

-쉽게 말해서 향후 한국군의 추가 파병이 결정되면 필요한 전비를 우리가 지원하겠다는 거죠.

[…….]

아마도 그건 우리 정부를 향해 건네는 또 하나의 사탕인 듯싶었다.

한마디로 기왕 단 맛을 보여줄 거면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저지.

‘사실이라면 이거 꽤 흔들리겠는데?’

재처리 시설 허용과 SOFA의 개정.

그리고 물자와 전시작전권 환원까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전비마저 지원을 받는 상황이면 어느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다 해도 원하는 수준의 병력 지원은 힘들 겁니다. 우린 아직 휴전 중인 국가기에 대규모 병력이 빠져나가면 위험 부담이 크니까요.]

문제는 바로 그 점이었다.

아직 이 나라는 북한이라는 위협세력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 탓에 아무리 달콤한 사탕으로 유혹한다고 해도 그 점이 발목을 잡을 거라는 사실,

다행히 마이클도 그 부분은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수화기 저편에선 긴 한숨이 뱉어졌다.

-우리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해서 여러 가능성에 대해 문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떤…….]

-글쎄요,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병력이 빠져나가는 공백을 화력으로 커버하는 거겠죠.

[그 말은…… 또 무기를 지원하겠다는 겁니까?]

-현실적으로는 그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

-아마 협의가 된다면 전에 발표되었던 공여 물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군요.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ATACMS(다연장 전술 지대지미사일)의 대량 공여도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라니 말 다했죠.

난 순간 이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이전에 발표되었던 공여 물자의 수준도 보통이 아니었거늘.

그게 비교조차도 되지 않는 물자를 더 지원하겠다는 건 그만큼 저들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왠지 갑자기 차기 정권이 불쌍해 지기 시작했다.

막말로 저 정도 구애를 누가 쉽게 떨쳐낼 수가 있겠어.

-그나저나 막상 말을 하고 보니 재우와 아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군요.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마이클의 말이 이어졌다.

-그 동맹국에 지원되는 전비 말입니다. 만약 파병이 확정되면 그중 일부는 한국군 병력들의 무장지원에 쓰일 겁니다. 쉽게 말해서 향후 이라크에 추가 파병되는 한국군 전체에 우리가 무장지원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것도 지금 키르쿠크에 투입된 특전사 수준으로. 하니 재우로서는 또 한 번 기회를 잡은 셈이죠.]

[…….]

***

짝짝짝!

그로부터 한 달 후, 창원에 소재하고 있던 탈레스에선 본격적인 외골격 공동 개발 센터가 개소됐다.

그로 인해 재우 기술연구소의 인원 중 일부가 차출되었음은 물론 미국 방위사업체의 인력들도 입국했다.

[개발 방향을 보다 확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미국 측 공동 개발 추진 단장의 자격으로 입국한 마이클은 머무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제안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은 외골격을 이용한 무장의 확대.

그는 내가 40밀리 다연장 시스템을 구상했던 것처럼 외골격을 이용한 무장 증대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저 외골격을 좀 보강하여 거기에 기관포를 장착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체인 건을 장착한다던가.]

[…….]

[구동부의 성능만 좀 더 끌어 올리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어차피 외골격을 개발한 목적 자체가 일반 병사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지원화기를 들리기 위함이니만큼 굳이 안 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갈수록 가관이었다.

하지만 굳이 못할 것은 없지.

솔직히 40밀리 다연장 시스템을 무장시키는 거나, 그거나.

한데 만약 그게 현실화 되면 분대 자체가 정말로 하나의 기갑세력이 되는 건데, 왠지 이젠 슬슬 두려운 마음도 든다.

내가 과연 미래를 어디까지 바꾸게 될지.

그 영향은 어떤 식으로 세상에 미치게 될지.

[참, 이건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인데, 전신 방탄 수트의 수출 문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마이클은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무얼 우려하는지는 익히 짐작이 가는 상태.

아무리 장사꾼이라지만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전신 방탄 수트의 경우 미국을 제외하곤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거야말로 전략 물자 중의 전략 물자인데, 그 중요한 것을 외부에 함부로 돌릴 수는 없죠.]

[재우로선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는 일이 될 텐데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미국이라는 거대시장이 있으니까.]

그 말에 마이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내 눈앞에 있던 외골격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그는 슬그머니 질문을 이었다.

[하면 외골격 역시도…….]

[그게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난 웃으며 그를 쳐다봤다.

[우리로선 그럴 수밖에요. 솔직히 외골격 공동 개발사업 지분의 대부분을 진 회장님이 쥐고 있는 상태다 보니 수출을 결정한다 해도 만류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은, 행여 제가 수출을 결심하면 반대하시겠다는 말로 들리는 군요.]

[뭐 아무래도…….]

그는 굳어진 내 표정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난은 여기까지.

즉시 표정을 풀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외골격 역시 당분간은 미국과 우리만 도입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을 생각이니까요.]

[…….]

[어차피 그것 역시 미군의 도입 수량이 워낙 많아서 수익에 대한 걱정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내가 장사꾼이라지만 압도적인 육상 전력의 우위를 확보한 마당에 그걸 아무에게나 내어줄 수는 없죠.]

마이클은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그때 불현듯 미국의 현 상황이 머리에 떠오르며 나도 몰래 말이 튀어나왔다.

[그나저나 미 국방부에는 영향이 없겠습니까? 부동산 폭락 문제 말입니다.]

현재 미국은 예정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조증상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조만간엔 그 첫 신호탄이 터질 상황.

그 경우 군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난 지금 그게 걱정인 거다.

이렇듯 막대한 예산이 소모될 사업을 과연 미국이 지속할 수 있을까 싶은.

[왜 없겠습니까. 경제부처에선 계속해서 이러다가 대공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난리를 피우는 판국인데. 실은 그래서 더 서두르는 겁니다.]

[…….]

[만약 경제가 무너지면 이라크는 그야말로 태풍의 핵이 됩니다. 하니 하루라도 빨리 발을 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확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왜 미국이 그토록 한국의 추가 파병을 원하는지.

그리고 왜 파병 병력의 무장을 그토록 신경 쓰는지.

‘우리가 정말로 대규모 파병을 결정하면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 만약 정리가 빨리 끝나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부담을 더는 걸 테고. 그나저나 상황이 그렇다면 결국 이 사업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소리인 건가?’

차라리 다른 사업을 취소하면 했지, 이라크에서의 희생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을 건드릴 이유는 없으니까.

“흠…….”

***

2007년 3월.

빰빠빠바!

재우 중공업에선 K2전차에 이식될 파워팩의 개발 성공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예정보다 무려 1년을 앞당긴 결과.

사실 1500마력의 엔진 기술이야 이미 있는 것을 기초로 발전시킨 경우다 보니 굳이 시간을 잡아먹을 이유가 없었고, 변속기 역시 이전 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 터라 개발에 걸림돌은 없었다.

“이것 참…….뭐라 할 말이 없군요.”

심장을 이식 받은 XK2 시제 차량의 기동 모습을 지켜보던 정태민 현우그룹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전 내가 했던, 3년 안에 파워팩을 완성하겠다는 호언장담을 기억하는 걸까.

힐끗힐끗 나를 보며 짓는 표정이 우스울 정도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저걸 불과 2년 만에 성공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전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위는 안 합니다.”

웃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인 정 회장은 다시 기동시험 중인 XK2 전차를 보며 읊조린다.

“진 회장님이 제시하신 추가적인 개량과 운용검증은 대략 1년 정도 충분할 테고, 문제가 없다면 내후년쯤이면 양산이 시작될 수도 있겠군요.”

아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파워팩을 제외하면 거의 문제가 없던 물건이니까.

게다가 하루라도 빨리 전력증강을 요구하고 있는 현 육군 수뇌부들의 태도를 고려하면 아마 정부도 시간을 끌기는 힘들 거다.

‘그나저나 정말로 내후년에 양산이 시작되면 대체 몇 년을 앞당기는 거지? 원래 K2가 양산되는 것이 2014년경이었으니까……

“내후년이 아니라 내년에 바로 양산 결정이 날 수도 있습니다.”

속으로 셈을 하고 있는 와중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김해웅 해군참모총장이 끼어들었다.

아니, 이젠 합참의장이라고 불러야겠지.

최근 그는 김태익 총장의 장관 영전으로 인해 합참의장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는데, 역시나 그 부분은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무슨…….”

정 회장은 눈을 끔벅이며 합참의장을 쳐다봤다.

왠지 의미심장한 말투였던 터라 나 역시 시선을 주었고, 합참의장은 갑자기 우리 둘을 쳐다보며 생뚱맞은 말을 끄집어냈다.

“미군 공여 물자들 중 전차의 수만도 400대에 이른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만.”

대답은 정 회장이 뱉어낸 거였다.

순간 합참의장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말로는 비상시를 대비한 것이라지만 어디 그게 미국 정부의 진짜 의도겠습니까. 결국 우리보고 그걸 운용하라는 뜻이겠죠.”

“…….”

정 회장은 그 말에 즉시 나를 쳐다봤다.

시선을 무시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자 합참의장의 말이 이어졌다.

“정작 일이 그렇게 되면 여론에선 분명 신형 전차 개발사업에 딴지를 걸어올 겁니다. 미국 경제가 저렇듯 불안 불안한 마당에 우리라고 버티겠냐면서.”

“…….”

“쉽게 말해서 미군이 공여한 전차가 400대나 있는 마당에 굳이 신형 전차가 또 필요하겠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죠. 한데 저 XK2의 카탈로그상의 성능은 서방 전차들을 압도하는 수준입니다. 즉, 육군 수뇌부들로서는 미국이 공여하는 전차에 만족할 리가 없다는 소리죠.”

“그럴 수도 있죠.”

“하니 육군으로서는 양산을 서둘러서 잡음을 없애려 할 거라는 말인데, 솔직히 이번엔 나도 그 주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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