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62화
한 대위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런 외지고 위험한 곳에 미국인이, 그것도 인질로 잡혀 있는 이 상황이.
과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작전은 엄연히 인질구출이 아닌 적의 섬멸.
갑작스레 찾아온 변수에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뭐 어차피 내 임무는 적의 섬멸이니까…….’
한 대위는 잠시 들었던 갈등을 접은 채 주변 상황을 가늠했다.
소총을 든 반군이 셋.
이대로 대책 없이 뛰어들었다간 인질들…… 아니 인질인지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저 미국인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다.
‘자칫 교전 과정에서 놈들이 인질들을 향해 총을 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스윽!
결국 그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인 작전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내 들고 있던 총을 등에 멘 그는 허벅지 부분에 장착하고 있던 나이프를 꺼내 들며 주변을 살폈다.
힐끗.
운 좋게도 바닥엔 깡통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놈들이 허기를 채우고 내던져 버렸던 것인 듯.
슬그머니 손을 뻗어 그걸 집어든 한 대위는 휙 하고 그걸 벽에 던졌다.
“ﭥﭔﮕﮗﮆ!”
소리에 놀란 반군들이 안에서 무어라 떠들어댔다.
탕!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총소리.
적아를 확인조차도 하지 않고 총부터 쏴대는 놈들의 태도에 한 대위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겁이 많은 거냐. 아니면 그만큼 용의주도한…….’
휙!
순간 갑자기 문 안쪽에서 총 하나가 튀어나오며 정확히 한 대위가 숨어 있던 방향을 겨눴다.
벽 사이에 누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한 대위가 총구를 걷어차려는 순간, 그곳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큭!”
한 대위는 복부에서 전해져 오는 물리적 충격을 참아내며 재빨리 나이프를 휘둘렀다.
퍼억!
외골격으로 인해 증폭된 힘이었던 터라 나이프는 거의 손잡이만 남을 정도로 반군의 목을 파고들었고, 놈은 앗 하는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휙!
이후 한 대위는 재빨리 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나이프를 던졌다.
목표는 인질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던 놈의 가슴.
가뜩이나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는 나이프에 외골격의 힘이 더해지다 보니 마치 두부를 가르듯 사내의 가슴을 파고든다.
투투투!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나머지 한 사내가 한 대위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탱탱탱!
하지만 잠시 휘청했던 한 대위는 즉시 놈을 덮쳤고, 곧 손을 뻗어 붙잡은 놈의 머리를 사정없이 비틀어 버렸다.
뚜둑!
“헉헉!”
짧은 사이 셋이나 되는 적을 맨손으로 제압한 한 대위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내 눈먼 총탄에 맞은 인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휙 하고 그들 쳐다보자 인질들이 일제히 움찔 하며 뒷걸음질을 친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한 대위는 안면을 보호하고 있던 고글과 방탄 마스크를 벗으며 그들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들.
아마도 그건 일반적이지 않은 그의 행색 때문인듯싶었다.
[난 대한민국 특수전사령부 소속 한훈 대위입니다.]
결국 한 대위는 자신의 정체를 먼저 밝혔다.
그제야 안심이 된 걸까, 인질들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여인이 털썩 주저앉으며 가슴에 성호를 긋는다.
[오! 신이시여!]
순간, 한 대위의 눈에 뜨인 것은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명찰이었다.
여느 회사를 출입할 때 쓰는, 그런 것.
의문이 증폭되는 순간, 그들 중 하나가 다시 말한다.
[우린 FOX TV의 기자들입니다. 전 사회부 수석 체드 로건이고요.]
그 말에 한 대위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사실인 듯, 벽 한편에 카메라를 비롯한 방송용 장비들이 줄줄이 놓여 있던 상태였다.
[잠시만.]
치직.
한 대위는 즉시 무전을 통해 지휘관에게 사실을 알렸다.
역시나 저쪽에서도 당황한 걸까, 한동안 무전에선 지휘관의 버벅 거리는 말만이 들려왔다.
[일, 일단 안전지대로 인계하도록.]
명령을 받은 한 대위는 다시 부하들에게 무전을 날렸다.
조금 후 우르르 몰려든 특전사들.
하나 같이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의 기자들은 절로 턱을 떨어트렸다.
[기자들이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문득 의문이 든 한 대위는 그들 중 대표 격으로 보이는 체드를 향해 물었다.
마침 자신의 가방을 챙기고 있던 그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대꾸한다.
[키르쿠크의 미군 기지를 찾아가던 중에 반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탓에 우릴 안내해주던 미군들은 몰살을 당한 채 우리만 잡혀 있던 상태였죠.]
[미군이 몰살당했다고요?]
[네, 4명이나…… 그것도 마치 처형당하듯이…….]
그 순간 한 대위의 뇌리엔 상황이 그려졌다.
매복 상황에서 이들을 발견하곤 갑작스레 튀어나온 반군들.
하지만 고작 4명의 전투 병력만으로 그들과 대항한다는 것은 무리.
결국 저들은 저항을 포기했을 것이고, 가뜩이나 약이 올라 있는 반군들은 그들을 살려두지 않았을 거다.
의아한 것은 왜 죽은 병력들의 본대에선 여태 지원을 오지 않았느냐는 건데, 그 의문은 체드라는 사내의 증언에 의해 풀렸다.
[워낙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던 터라 무전조차도 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게 언제죠?]
[대략 1시간쯤 전입니다.]
그 정도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죽은 미군의 본대에서 상황을 눈치채기는 이르다.
잘해야 지금쯤 연락 두절을 의심하여 지원 병력들을 보내고 있겠지.
[저…… 혹시 우릴 구하러 온 것이 아닌 겁니까?]
생각이 깊어질 무렵 체드라는 사내가 다시 물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한 대위는 이내 질문을 되돌렸다.
[미안하지만 아닙니다. 그런데 키르쿠크에는 왜 가려던 것이었습니까.]
[말했다시피 우린 기자들입니다. 최근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부의 허가를 받고 키르쿠크 지역을 취재하러 가던 길이었죠.]
[이 위험한 곳을요?]
한 대위로서는 미군 사령부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악에 받쳐 있는 반군들이 득실 거리는 이 지역에 기자들의 출입을 허락했다는 사실.
하긴, 포탄이 코앞에서 떨어지는 현장에도 기자들의 출입을 허락하는 저들이라면야 뭐…….
일견 이해는 간다만 그래도 그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왠지 쉽지가 않다.
[반군들이 당신들에게 뭘 원한 겁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진 한 대위는 다시 체드를 향해 물었다.
무슨 말을 들었던 걸까, 체드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우릴 하나씩 참수해서 서방에 경고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
한 대위는 그 말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앞으로 저들과의 교전에서 발생하는 희생에 대해 더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민간인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저렇듯 잔혹하게 살해할 수 있는 자들을 상대로 방아쇠 당기기를 주저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가 아니던가.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불현듯 말을 뱉어내는 체드의 표정에선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어색한 마음에 살짝 고개만 끄덕이던 차. 갑자기 무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전투 준비. 외곽 쪽에서 반군들이 몰려오고 있다.]
휙!
소식을 들은 한 대위는 즉시 총을 챙기고 옥상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경우.
안전지대로 가야 할 기자들이 일제히 촬영 장비를 챙기더니 그를 뒤따르기 시작한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당황한 한 대위는 그들을 만류했다.
하지만 기자들이란 자들이 그 말을 들을 리가 있을까.
결국 그들은 최대한 안전이 보장된 곳에 숨어 있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촬영을 고집했다.
치직!
결국 한 대위는 다시 상부에 사실을 알렸다.
한동안의 침묵은 아마도 본대와의 의견 조율로 인해 발생한 텀일 터.
이후 다시 들려온 무전에선 기자들을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라는 것이었다.
[장훈 중사. 이분들을 건너편 백화점 건물로 안내해 드리도록. 그곳이면 그나마 위험요소가 덜 할 테니까. 그리고 당신들.]
지휘부의 명령을 부하들에게 전달한 한 대위의 시선은 다시 기자들에게로 향했다.
마치 이후의 일은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라는 듯한 눈빛.
의미를 이해한 듯 체드라는 사내가 정신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설사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해도 그쪽을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한국군이 후퇴를 하게 되면 그때도 우리가 알아서 빠져나가겠습니다.]
[…….]
******
쾅!
“와우! 저 친구들 완전 전투 머신인데요?”
잠시 후, 백화점 옥상에서 촬영을 시작한 기자들의 입에선 연신 탄성이 뱉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저곳에선 중무장한 트럭과 장갑차를 고작 전투 병력들이 상대하고 있는 상황.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압도적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 형국이랄까.
쾅!
“맙소사!”
체드의 보조이자 수습 기자인 에이미는 한국군이 날린 미사일에 통째로 공중분해 되어 버린 반군 무장 장갑차량을 멍하니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닌 듯 연속해서 반군들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들.
더 놀라운 것은 저런 엄청난 화력의 미사일이 고작 소총에서 발사 되었다는 점인데, 아무리 수습에 불과한, 해서 군사 분야를 잘 모르는 그녀라 할지라도 영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저게 가능한 일인 건가요? 고작 보병들이 중무장한 세력과 대등한 싸움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지금 저들이 보여주고 있잖아.”
“…….”
우문에 현답이었다.
하긴, 눈앞에서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도 질문을 뱉어낸 그녀가 오히려 바보인 거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려는 차에 체드의 말이 다시 날아왔다.
“실은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야. 외골격 수트에 전신 방탄 수트. 게다가 미사일을 마구 쏴 재끼는 군인이라니. 이건 보병의 한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현장이잖아.”
그 말에 에이미는 다시 한국군들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눈에도 확실히 저들은 이제껏 그녀가 알고 있던 보병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직 한국군들 중엔 희생자가 없는 거죠?”
그녀는 문득 드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체드를 향해 물었다.
그 말에 돌아가던 카메라 렌즈에 눈을 가져간 체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카메라의 촬영 범위 안에선 아직까지 쓰러진 한국군은 안 찍혔어. 나 참, 이걸 믿어야 할지…… 내 장담하는데, 이 화면이 뉴스에 나가면 이 전장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질 거야.”
“…….”
*******
[지금 보고 계신 이 장면은 얼마 전 키르쿠크 외곽 지역에서 반군과 교전 중인 한국군 특수부대의 모습입니다.]
2007년 1월 25일.
TV에선 온종일 외신을 통한 특전사들의 전투장면이 전파를 탔다.
난생 처음 우리군인이 해외에서 벌이는 전투를 눈으로 지켜보게 된 상황.
우스운 것은 여론의 분위기였는데,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어도 그게 지난번처럼 그리 호들갑스럽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뭐랄까, 마치 우리의 전쟁 참여를 이젠 기정사실화한 느낌?
더 놀라운 것은 일부 단체들의 주장이었는데, 별다른 희생 없이 뛰어난 전투능력을 보이고 있는 특전사들의 상황을 강조하며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요구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소식에 의하면 이번 전투에서 우리 병력들의 희생은 거의 없다더군요. 이런 상황이면…….]
“쯧, 정작 대규모 파병이 이루어 졌다가 희생자들의 규모가 커지면 그땐 또 뭐라고 떠들어 대려고……. 그나저나 대체 저걸 누가 촬영한 겁니까?”
워낙 생생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던 터라 난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건 마치 기획 기사를 내듯 한국군의 전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던가.
마침 함께 뉴스를 지켜보고 있던 김영기 대표도 그 부분이 당황스러웠던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다.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특전사들이 단독 작전 중에 반군에게 억류 되어 있던 FOX TV 기자들을 구출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보시는 것이 그 결과입니다.”
듣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사실 이건 재우의 입장에선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거든.
아니나 다를까, 이후 내 사무실 전화기엔 하루 종일 불이 나다시피 했다.
“회장님,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께서 연락 좀 부탁드린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첫 시작이었다.
이후 사우디와 UAE. 그리고 전엔 그다지 교류가 없던 유럽의 여러 국가들까지.
나라는 달라도 하나같이 목적은 우리 군의 무장에 관한 궁금증을 표하는 것이었다.
‘하긴, 저 장면이야말로 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니까.’
누가 과연 병사들만으로 기갑전력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이나 했을까.
“흠…….”
그때, 불현듯 생뚱맞은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저게 바로 힌트일 수도 있다는.
재우가 정말로 전쟁의 페러다임을 바꿀 기회를 잡은 걸 수도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