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60화
“이봐!”
당황한 마크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진 한국군들은 어느새 모습을 감췄고, 조금 후 그들이 침투한 건물 곳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맙소사! 적을 일일이 찾아서 섬멸하겠다는 건가?”
생각이 그에 미친 마크는 재빨리 제 동료들을 쳐다봤다.
마치 우리가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듯한 눈빛.
마음이 통한 건지 조금 후 그의 무전기에서 치칙 소리와 함께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도 지원한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량에서 그의 동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적들도 당황한 걸까, 다행히 그들을 노리고 날아오는 총탄은 없었고, 그 덕에 미군 병력들은 재빨리 산개하여 주변 건물들로 숨어들었다.
[각 분대가 의심지역을 하나씩 맡는다.]
지휘관의 명령이 끝남과 동시에 미군 역시도 본격적인 수색을 시작했다.
막상 정신을 차리자 달라진 그들의 움직임.
오랜 실전과 훈련으로 다져진 몸은 이래서 무시할 수가 없는 거다.
“진즉에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마크는 이제야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동료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아니 정확히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질책.
의아한 것은 한국군의 반응속도였는데, 막상 실전으로 다져진 자신들도 이렇듯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보여준 움직임은 실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치직!
[우측 붉은 페인트가 칠해진 문이 있는 건물은 우리 1조가 침투 중입니다.]
[대로 11시 방향 붉은 기와 건물은 2조가 침투 중입니다.]
그때, 한국군으로부터 그들의 현 위치를 알리는 무전이 하나씩 날아왔다.
자칫 일어날 수 있는 오인 사격을 막자는 의도일 터.
워낙 갑작스럽게 시작된 작전이었던 터라 그 점이 걱정이었건만, 다행히 한국군은 전투의 기본을 철저하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쾅!
잠시 후, 어느 패쇄된 상가 안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얼핏 한국군이 소지하고 있던 공중 폭발탄이 터진 것만 같은 소리.
아마 벽 뒤에 숨은 적을 노린 것 같은데, 들려오는 저항의 소리가 없는 것으로 봐선 일격에 끝장난 듯하다.
쾅!
또다시 들려오는 폭음 소리는 막 마크가 진입을 시도하는 건물에서 전해진 것이었다.
혹여 이곳도 한국군이 먼저 침투해 들어 간 걸까, 재빨리 무전을 날린 마크는 곧 저편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아연실색했다.
[귀금속 상가 2층. 클리어! 진입할 필요 없습니다.]
“동작 한번 끝내주게 빠르군. 대체 언제 여기까지 진입한 거야?”
마크는 속으로 탄성을 내뱉으며 다른 건물을 찾아 나섰다.
목표는 바로 옆 의류 상가 건물.
치직!
그때, 다시 무전이 울리며 어눌한 영어가 들려온다.
[의류 상가도 상황종료입니다. 진입할 필요 없습니다.]
순간 마크는 곁에 있던 메이어 하사를 쳐다봤다.
같은 느낌을 받은 걸까, 메이어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를 쳐다본다.
흠칫!
한참 주변을 살피던 와중 저편 건물에서 한국군 특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가장 눈에 뜨인 것은 역시 외골격 수트를 입고 있는 자.
어디서 노획을 해온 것인지 족히 수십 개의 RPG 발사기와 총기들을 줄줄이 엮어 짊어지고 있던 상태였다.
[……안 무겁습니까?]
마크는 무심코 말을 뱉어내곤 후회했다.
기껏 한다는 질문이 무겁지 않느냐는 따위의 것이라니.
아마 오늘은 자다가 이불을 몇 번은 걷어찰 거다.
[전혀.]
시발…….
거기서 대답까지 하면 내가 뭐가 되냐.
******
[클리어!]
작전이 시작 된지 대략 30분쯤 후, 결국 주변 대부분의 구역에서 상황종료 소식이 들려왔다.
그사이 색출한 반군들의 수는 대략 40여 명.
그에 비해 아군의 피해는 처음 저격에 의해 중상을 입은 미군 병력 한 명 뿐이었다.
부우웅!
다시 출발한 차량 안에서 마크는 몇 번이고 그사이 있었던 일들을 되뇌어 봤다.
마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기계들처럼 조직적으로 반군들을 진압해가는 한국군 특전사들의 모습.
이건 마치 미래의 군인들을 보는 느낌이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치직!
[본대에 있던 한국군 공격헬기가 지원을 오는 중이다. 우린 그들이 제2지점에서 또 숨어있을지 모르는 반군을 처리하는 동안 잠시 기동을 멈추고 작전 재편에 들어간다.]
한참 생각이 깊어질 무렵 무전을 통해 작전 지휘관인 케인 중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하늘에서 로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육중한 헬기 4대가 그들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이것 참…….”
마크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으며 날아가는 공격헬기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국군의 활약상을 눈으로 목격한 그로서는 더 이상 편견을 가질 수가 없다.
“대체 저건 또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 거냐…….”
******
[현지시각 어제 오후 5시경. 이라크에 파병됐던 동명부대가 반군과의 교전 사실을 알려왔습니다. 다행히 우리 군의 피해는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미군 병사 한 명이 아직 의식을…….]
아침부터 들려오는 이라크에서의 소식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파병과 동시에 발생한 교전이다 보니 관심의 척도가 깊은 것은 당연한 것.
다행히도 희생은 없었다지만, 예상대로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극렬해졌다.
[전투 부대의 파병에서 교전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이후 TV에선 다시 한번 파병의 정당성에 대한 토론이 불붙었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시간이 갈수록 파병반대 여론은 힘을 잃어 갔고, 때마침 미국은 엄청난 당근을 던짐으로써 여론의 판세를 뒤집어 놨다.
[미국은 오늘 SOFA 협정의 개정을 시사했습니다. 또한 한국 내에 미 육군 치장물자의 반입을 확대할 것이며 비상시 한국군이 통제 및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내어주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난 다른 걸 떠나서 치장물자의 관리 권한을 한국군에 내어주겠다는 소식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사실 말이 관리 권한이지, 그건 공여를 하겠다는 것과도 다름없거든.
무려 400대에 달하는 M1A2. 그리고 500대에 달하는 브래들리 장갑차는 물론 미 본토에 배치되어 있던 72대의 AH-64와 100여 대의 UH-60까지.
아마 돈으로 환산한다면 족히 수십억 달러는 훌쩍 넘을 금액일 거다.
‘저건 그냥 당근 정도가 아닌데? 설마 주한 미군 전투 병력을 일정 부분 빼내 갈 생각인 건가?’
어쩌면 그런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점 악화되어 가는 자국 내 반전여론으로 인해서 본토에서의 추가 파병은 눈치가 보일 터.
하면 당연히 그들이 눈을 돌릴 수 있는 곳은 해외 주둔 기지에서의 병력 이동일 테니까.
예상대로 얼마 후부터는 언론에서 주한미군 병력들의 일부 이라크 차출 문제가 조심스레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요즘 너무 자주 찾아뵙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확히는 2007년 1월에 마이클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아니 나를 찾아왔다고 해야겠지.
마침 미국의 의도가 궁금했던 터라 난 즉시 그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정말로 주한 미군을 차출할 생각입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웬 반대급부가 그리 큰 거죠?]
그는 넌지시 이어지는 내 질문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나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찻잔을 들며 말한다.
[맞아요, 솔직히 주한미군 병력을 차출하는 것에 대한 대가치고는 당근이 지나치게 크죠. 진 회장님 앞이니 하는 말입니다만, 사실 치장물자 관리 권한은 조만간 미국 정부가 추가 파병을 요구할 때를 염두에 두고 미리 건네는 사탕 중 하나입니다.]
[추가 파병이요?]
[그리 놀라실 일은 아닐 텐데요? 동명부대가 그런 대단한 활약상을 보이고 있는 마당이면 우리 정부로선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 아니겠습니까.]
실은 나도 그게 걱정이기는 했다.
가장 이상적인 전투를 몸소 보여준 우리 군의 모습에 미국이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한데 그게 이유라면 무게추가 좀 기울어지는 것 아닌가.
막말로 비상시에나 사용이 가능한 물자 정도로 대규모 파병을 보상한다는 것은 우리로선 외려 손해가 아니냐는 말이다.
[그래서, 또 다른 사탕은 뭡니까?]
난 가늘어진 눈으로 마이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얼핏 초탈한 미소가 스친다 싶더니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인다.
[역시 진 회장님 눈치는 보통이 아니라니까요, 맞습니다, 사실 그 정도로 추가 파병의 정당성을 얻기는 힘들죠. 해서 미국 정부는 청와대에 제안을 몇 가지 더 할 생각입니다.]
이후 그는 한참 뜸을 들였다.
설마 아니겠지.
뛰는 심장을 애써 다독이며 그를 쳐다보자 그가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한국군 자체 정찰 및, 통신 위성 확보 지원과 핵 재처리 시설의 허용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
안타깝게도…… 아니 이건 안타까워 할 문제가 아니지. 아무튼 당황스럽게도 내 예상은 정확했다.
턱 하고 막혀오는 숨을 간신히 내뿜고 쳐다보자 그가 다시 입매를 뒤틀며 말한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재처리 시설의 경우 철저한 감시와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야 당연하겠죠. 한데 재처리 시설 허용은 좀 의외군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겁니까?]
[글쎄요, 한국은 이제 제1 동맹국이라서?]
비록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속엔 핵심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제 한국은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사실 미국이 그동안 우리의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믿음의 부재가 컸던 탓인데, 이젠 그 의심을 무너트렸다는 의미다.
[청와대에선 뭐랍니까?]
난 청와대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
사실 그 문제는 이 나라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으니까.
한데 이게 웬걸.
갑자기 마이클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나를 쳐다본다.
[설마, 아직 청와대는 모르고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진 회장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최초의 한국인이죠.]
[아니 왜요?]
워낙 당황스러운 일이었던 터라 즉시 되물었다.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이었던 듯, 마이클은 한참을 입술만 짓씹다간 나지막하게 말을 뱉어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정부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요.]
[…….]
[진 회장님도 앞으로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쯤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니 우리로서도 새로 들어서는 정부와 대화를 하는 편이 낫다는 거죠. 아마 이게 온전히 논의되는 건 올 연말쯤. 즉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난 후가 될 겁니다.]
정권이 교체 될 것에 베팅을 한 것은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그거야 미국의 입장이니만큼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아니고.
난 이 나라가 드디어 재처리 시설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왠지 쉬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일본이 알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참, 당분간 이건 철저하게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사실 진회장님께 미리 알려 드리는 것도 나로선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마이클이 거듭 비밀 유지를 당부해왔다.
이 문제는 자칫 대선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을 부분.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나로선 당연히 비밀 유지는 필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죠.]
흔쾌히 뱉어낸 대답에 마이클이 웃어 보였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의문 하나.
지금까지의 대화가 그의 직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주제였다는 것이었다.
[흠흠.]
순간 내 눈빛을 읽은 마이클이 딴청을 부렸다.
역시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던 거지.
그게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 터라 단호하게 말했다.
[전신 방탄 수트는 물론 외골격 수트도 기술이전은 절대 안 됩니다.]
[…….]
******
결국 마이클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갔다.
그나마 그에게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외골격의 경우 차후 재논의 가능성을 열어 뒀다는 점.
사실 그 분야의 경우는 미국의 기술력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나 역시 당장은 어느쪽으로도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준 여지다.
‘만약 공동개발이 가능하여 대량 생산 체계가 확립된다면 단가의 하락을 위해서라도 옳은 선택일 수도 있기는 하지.’
특히나 앞으로 다가올 경제위기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고 보니 어느덧 그날이 다가오는 건가?’
미국이 한동안 휘청거리게 되는, 첫 신호탄이 쏘아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