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8화
이라크 북동부 키르쿠크.
키르쿠크는 이라크 원유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충지다.
그 탓에 미군으로서는 그곳을 지키기 위해 많은 병력들을 투입했고, 혹시라도 공격 받는 경우엔 사활을 걸다시피 하며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탈린 원사님. 13시 정각에 한국에서 출발한 지원부대가 도착할 예정인 건 알고 계시죠?”
101 공수사단의 506보병 연대장 에녹 대령은 오늘따라 유독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곧 자신들을 대신하여 주둔할 25사단의 병력들을 맞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동맹국인 한국에서의 파병 병력들을 위한 거처와 임무 교대 준비까지.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걸 잊을 리가 있나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인데요. 한국에서 키르쿠크에 병력 파병을 결정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에녹 대령도 그 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동안엔 기껏 비 전투지역으로의 파병에 그쳤던 한국이 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런 큰 결정을 내린 것인지.
사실 여태까지는 늘 애매한 포지션으로 인해서 막상 파병을 하고도 눈치를 보던 것이 한국 아니었던가.
“뭐 정치인들 사이에서 헤게모니가 있었나 보죠. 그나저나 25사단만으로 이 지역을 관리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글쎄요, 비록 특수부대원들이라고는 하나 과연 그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탈린 원사는 미심쩍다는 듯한 태도로 대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군의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물론 병사 하나하나의 전투력을 본다면 나무랄 곳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저들이 지닌 장비들의 수준이 문제였다.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연신 우려하는 탈린 원사의 태도에 에녹이 반응했다.
무엇으로 한국군의 수준을 표현하면 제대로 전달이 될 수 있을까.
잠시 고민에 빠졌던 탈린 원사는 불현듯 떠오른 옛일을 거론했다.
“첫 파병 당시 2½톤 트럭을 타고 왔던 그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당황스럽습니다.”
“2 ½톤을요? 아니, 이런 급조폭발물이 난무하는 이라크에서 변변한 방호력도 갖추지 못한 수송 트럭을 타고 왔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당황스러웠다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당시 사령관께서도 한국군에 우리 방호 트럭을 제공했겠습니까.”
에녹은 그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뭣 때문인지 곧 고개를 갸웃해 보인 그는 텐트 밖에 서 있던 폴라베어를 손으로 가리키며 되묻는다.
“그럼 저 폴라베어는 뭡니까? 분명 저 전투차량은 한국에서 생산한 것이지 않습니까. 저런 엄청난 물건을 개발한 나라가 왜…….”
“한국에서 개발한 것은 맞죠. 문제는 한국이 우리처럼 군비에 여유가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에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할 물건을 만들고도 그걸 채 활용하지 못한다는 건 미국인의 개념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명제니까.
같은 생각을 한 듯 탈린 원사 역시도 마주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탈린 원사님. 방금 활주로에 한국에서 출발한 수송기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때, 보급 담당관 토마스 상사가 다급히 한국군의 도착 소식을 알려왔다.
이제부터가 진짜 바쁜 일과의 시작.
탈린과 에녹은 긴 한숨을 내쉬며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차량에 올랐다.
*******
“여! 한국 친구들이 도착한 모양이군.”
오전 내내 하는 일 없이 빈둥대던 마크 중사는 활주로에 내려서는 수송기들을 보며 반색을 했다.
그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한국군 전투 부대와의 조우.
말할 수 없는 이 흥분감은 사실 기대감 때문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이라고 하는 옳을 거다.
“자네 한국 특수부대에 대해서 들은 것 있어?”
마크 중사는 곁에서 함께 수송기의 도착을 지켜보던 메이어 하사를 향해 물었다.
솔직히 한국 같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파병된 특수부대원들이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할까 싶은 것이 그의 심정.
하지만 정작 메이어에게서 들려오는 대꾸는 예상 밖의 것이었다.
“주한 미군에 주둔 중인 제 친구 놈의 말에 의하면 개개인의 전투능력은 꽤 대단하다고 하던데요?”
“그래?”
마크 중사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메이어를 쳐다봤다.
뭣 때문인지 순간 흠칫 놀라는 메이어.
그의 시선을 따라 다시 활주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마크는 저도 몰래 눈을 부릅떴다.
“저, 저게 뭐야?”
그가 발견한 것은 이제 막 수송기에서 빠져나오는 중인 헬기의 동체였다.
덩치는 아파치를 능가할 정도.
특이하게도 이중반전 로터를 가진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공격헬기 1개 편대가 함께 파견 된다더니 그것인 모양인데요?”
메이어 하사는 말을 뱉어내곤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저도 몰래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 마크 중사.
그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위압감을 주는 공격헬기의 모습에 절로 턱을 떨어트렸다.
“맙소사! 저건 또 뭐죠?”
한참 앞서가던 메이어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다른 수송기를 향해 손짓했다.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가 있던 마크 중사는 즉시 그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곧 수송기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병력들을 발견했다.
“저, 저 친구들 대체 뭘 입고 온 거야?”
마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병력들의 무장수준이었다.
온갖 장구들을 장착한 전투 헬멧과 소총.
어디 그것뿐일까, 빛을 받자 주변 환경과 급격히 동화되어 가는 전투복은 물론 그 위에 착용한 전신 방탄 수트까지.
저건 마치 지구를 침략한 우주 군이 모함에서 우르르 내려오는 듯한 장면만 같았다.
끼익!
그때, 갑자기 활주로를 향해 차량 한 대가 달려오더니 멈춰 섰다.
이내 차에서 내려선 이는 부대의 보급과 물자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탈린 원사와 506보병 연대장 에녹 대령.
자신들이 낄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눈치챈 마크 중사는 재빨리 뒤를 돌았고, 메이어 역시 경기를 일으키듯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며 마크의 뒤를 따랐다.
“마크 중사님. 저거 보셨습니까? 한국 특수부대 무장 말입니다.”
“봤어. 빌어먹을, 하필이면 딱 그 순간에 꼰대들이 나타나서는…….”
마크는 불평을 토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끝내 사라지지 않는 호기심.
결국 힐끗 하고 다시 쳐다본 활주로엔 자신들과 같이 벙찐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두 지휘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저, 저게 대체 뭡니까?”
에녹 대령은 멍한 표정을 하며 탈린 원사를 향해 물었다.
당황한 것은 탈린 원사도 마찬가지.
한동안 입만 뻐끔 거리던 그는 읊조리듯 말을 뱉어낸다.
“아까 제가 했던 말은 취소해야겠군요.”
“취소고 뭐고 저 헬기 말입니다. 혹시 한국에서 개발했다는 그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난 또 공격헬기를 보낸다고 해서 설마 했더니 정말로 저걸 보낼 줄이야…….”
“원사님은 저 물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까?”
마치 저 헬기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탈린을 향해 에녹 대령이 되물었다.
슬쩍 고개를 끄덕인 탈린은 몽롱한 눈빛과 함께 대꾸한다.
“국방부의 친구를 통해서 소문은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아파치를 능가하는 성능을 지닌 공격헬기를 개발했다고. 작년쯤부터 배치를 시작했다더니 그걸 보낼 줄은 몰랐던 거죠.”
“아파치를 능가한다고요?”
에녹 대령은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하긴, 최강의 공격헬기라는 평가를 받는 아파치를 뛰어넘는 기체가 있다는 사실이 어디 믿기 쉬운 일일까.
사실 탈린 역시도 아직은 그 점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하지만 왜지?”
그 소문이 사실일 것 같은 이 기분 나쁜 예감은.
“뭐라고요?”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저 병력들이 착용하고 있는 것은 혹시 전신 방탄 수트인 겁니까?”
탈린은 퍼뜩 정신을 차린 채 이제 막 수송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병력들을 손짓했다.
그러고 보니 병력들의 무장 수준 역시도 일반적이지는 않은 상황.
에녹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수송기를 향해 다가갔다.
[506연대장님이십니까?]
한참 멍한 얼굴로 다가설 무렵 누군가 에녹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어깨 위 견장에 있는 계급장으로 봐선 부대의 지휘관인 듯한 느낌.
즉시 고개를 끄덕이자 상대가 척하고 손을 내민다.
[동명부대장 김웅렬 대령입니다.]
예상은 정확했다.
조금 의아한 것은 대대급 병력의 파병에 대령이 지휘관으로 왔다는 사실.
아마도 그건 미군 지휘관들과의 대화 창구에서 꿀리지 않게 만들겠다는 조치일 거다.
[반갑습니다.]
에녹은 마주 잡은 손을 흔들며 찬찬히 상대의 모습을 살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갖추고 있는 무장의 수준을.
아무리 봐도 저건…… 그들이 생각했던 한국군의 수준이 아니다.
[병력들의 숙영지는 제 부관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김 대령께선 저와 함께 가시죠.]
에녹은 잡념을 떨쳐 낸 채 한국군 지휘관을 통합지휘소로 안내했다.
여전히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
그는 결국 가던 걸음을 멈춘 채 한국군 지휘관을 향해 물었다.
[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
******
“이봐, 마크. 자네 한국군 친구들 무장 봤어?”
며칠 후, 막사를 향해 뛰어들어온 1중대의 에런 중사가 호들갑을 떨며 그를 깨웠다.
사흘간의 정찰에서 이제 막 돌아온 1중대 병력들로서는 처음 본 한국군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을 터.
마크는 잠결에도 그 모습이 웃겼던 듯 입매를 뒤틀며 말했다.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인데, 가서 괜히 촌 티 낼 생각은 하지도 마. 미군의 자존심을 구긴 건 나 하나로 족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에런 중사는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난 상황.
결국 마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고했다.
“자네가 애야? 거기 가서 총 한 번만 쏘게 해달라는 부탁은 왜 해?”
“궁금하니까. 자네도 봐서 알겠지만 그 K11인지 뭔지는 진짜 예술이더라니까?”
“그래서, 그들이 순순히 총기를 자네에게 건네줬어?”
“아니, 아주 정색을 하더군. 한국군은 자신의 총기를 절대로 남에게 맡기는 일은 없다면서.”
“아주 쪽을 제대로 팔았군.”
에런은 한심하다는 듯 마크를 나무랐다.
이내 무엇이 생각난 건지 곧 표정을 바꾸더니 다시 마크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자네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막 하품을 하던 마크는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순간 에런의 입에선 긴 한숨이 뱉어지더니 툭 하고 마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우리가 좆됐다는 소식.”
“밑도 끝도 없이 뭔 헛소리야?”
“이번 506연대의 거점 이동과정에서 자네 중대와 우리 중대가 후방지원을 담당한다는군. 그것만큼 좆된 상황이 또 있을까?”
그건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여태 미군의 희생은 대부분 후방지원 부대에게서 나왔으니까.
사실 그건 독특한 101사단의 교리 탓인데, 폭풍처럼 쓸어 버리는 선두 병력들에게 당한 반군들은 늘 재정비 끝에 후방 지원세력들을 노렸고, 그 영향으로 항상 지원부대들만 피를 봤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그 교리를 지킨다고?”
마크는 분에 찬 푸념을 뱉어냈다.
사실 그 정도면 교리 자체를 바꿔도 몇 번은 바꿨어야 옳은 것이 아니던가.
아직도 케케묵은 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윗대가리들의 태도가 그로선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이번엔 희망이 좀 있어.”
그때, 에런이 뜻 모를 말을 던졌다.
이 상황에서 희망이 될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여전히 찌푸려진 눈을 하고 쳐다보는 마크를 향해 에런이 다시 말을 잇는다.
“이번에 합류한 한국군 특수부대가 이번에 우리와 함께 후방을 지원한다더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