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7화
김태익 장관의 입에선 긴 한숨이 뱉어졌다.
이내 연구소 곳곳을 돌아보는 그의 눈빛에선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졌다.
“대체 이걸 언제부터 준비한 겁니까? 아니, 이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목적이 뭡니까.”
“이 연구실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것들을 보여드리는 목적은 이제 슬슬 활용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죠.”
“활용할 때가 되었다니. 이걸 군에 납품하겠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현재 우리나라 국방 예산이 얼마나 빠듯한데, 당장 그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난 헛웃음을 뱉으며 대꾸했다.
뼈를 맞은 느낌이었던 듯 김태익 장관을 비롯하여 군 수뇌부들 대부분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스치고, 난 그 타이밍에 선언하듯 말했다.
“이번에 파병되는 병력들의 수는 대략 16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원 병력들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 되겠지만 그들은 논외로 하고. 전 가장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특전사 병력들에게 이걸 전부 지급할 생각입니다.”
“재우가요? 아니 왜요?”
김태익 장관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솔직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 역시 수도 없이 해왔던 터.
그리고 결국 내린, 나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억지스러운 결론을 내린 상태다.
난 결국 장사꾼이라는.
결국 내 행동은 장사꾼다운 욕망을 분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빌어먹을, 그런데 왜 마음 한구석에선 계속 비웃음이 들려오지?
“일종의 홍보 효과죠.”
“…….”
“쉽게 말해서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우리의 기술력을 홍보하겠다는 겁니다. 막말로 이라크는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우리 병사들이 효율적인 워리어 플랫폼을 갖춘 채 전투에 임하게 되면 그로 인한 홍보 효과는 가히 돈으로는 따질 수가 없죠.”
“…….”
김 장관은 순간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의외인 것은 내 예상과는 달리 그게 경멸의 눈빛은 아니었다는 것.
우습게도 이내 그는 속에서 나를 비웃고 있는 목소리와 일치하는 말을 뱉어냈다.
“좀 서투르시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태익 장관은 되묻는 내 질문에 대꾸하지 않은 채 다시 연구실 내에 있던 장비들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다시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그거 압니까? 진 회장님은 늘 겉으로는 장사꾼인 척 해도 그 진정한 속내가 항상 드러난다는 것.”
“…….”
“막말로 재우가 어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손해 본 것이 한두 번 입니까. 정말로 장사꾼에 불과했다면 그렇게 못하죠.”
그 말을 듣자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뭔가 상황이 좀 우습게 돌아가는 기분.
애써 헛웃음을 지으려는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 정도 장비들을 160명이나 되는 병력들에게 지급하려면 대략 얼마나 예산이 필요한 겁니까?”
“글쎄요, 최소 300억 이상은 들어간다고 봐야죠. 한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군에서 비상금이라도 털어주시게요?”
“맘 같아선 그렇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폴라베어를 비롯한 K11의 지급. 그리고 40밀리 유도미사일까지 죄다 들려서 보내는 상황이라 비상 예산도 바닥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투자를 하겠다는 겁니다. 홍보를 위해 이만한 기회는 또 없으니까.”
“저기 잠시만…….”
곁에서 내내 나와 장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특전사령관이 대뜸 끼어들었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거지.
아니나 다를까, 눈이 동그래진 그는 손가락으로 마네킹을 가리키며 다시 묻는다.
“정말로 저걸 재우에서 자금을 투자해서 병력들에게 지급하겠다고요?”
“말했다시피 투자입니다. 솔직히 고작 300억 투자해서 수십 배가 넘을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놓치는 것이 바보 아닙니까?”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저 능동형 외골격도 지원하실 생각이시냐는 거죠.”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직은 ‘완성’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힘든 물건.
물론 테스트 상에선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긴 했지만, 그게 현장에서 먹힐지는 알 수 없는 문제거든.
특히나 저 외골격의 핵심인 구동 모터의 경우는 거의 시제품에 가까운 상태.
나로선 갈등이 될 수밖엔 없다.
스윽.
난 미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희원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놈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깨를 들썩여 보인다.
“시범 삼아 일부 수량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전장만큼 최고의 운용 검증현장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왠지 일리 있는 말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덥석 내 손을 붙잡으며 환하게 미소 짓는 특전사령관.
저걸 통해 상승할 병력들의 전투력을 상상하기라도 한 모양인데, 막상 저 미소를 보고 있자니 괜히 심기가 뒤틀린다.
“뭐 그렇게 하죠. 대신 20억만 내놓으십시오.”
“…….”
“능동형 외골격 수트 하나당 2억. 임무 분담을 감안한다 해도 최소 10여 개 정도는 보내야 할 테니 그 정도는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왜요, 그 돈도 아까우십니까?”
“그게 아니라, 방금 전엔 홍보 차원에서 투자하는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
아…….
시발 그러네.
******
빰빠바바밤!
그로부터 한 달 후.
성남 공항에선 우리 파병이 확정된 특전사 대대의 환송식이 거행되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VIP들은 죄다 참석을 한 상황.
워낙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터라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취재에 나선 것은 당연했다.
[여러분들의 무사 귀환을 간절한 마음으로…….]
대통령의 연설을 끝으로 병력들은 곧 수송기에 올랐다.
재우가 제공한 워리어 플랫폼을 갖춘 병력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래의 병사들을 보는 느낌.
그 탓인지 뉴스에서도 하루 종일 그 부분을 집중하여 다루었고, 각종 포탈에서도 그걸 주제로 토론이 끊이질 않았다.
-저기 저 로봇 같이 생긴 건 뭐지?
↳그러게, 난 잠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 다녀온 줄.
-재우 그룹 홍보팀에 의하면 능동형 외골격 수트라는데, 저게 근력을 대폭 증가시켜 준다더만.
-군대 좋아졌네. 우리나라가 대체 언제 이렇게까지 발전한 거야?
↳나라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재우가 발전한 거지. 저거 죄다 재우에서 무상 공여 한 것이라는데?
-나라가 발전했건 재우가 발전했건 그게 뭐가 중요해. 하필 파견 지역이 키르쿠크라는데, 전투가 아예 없는 지역이면 모를까, 누구 하나 죽기라도 하면 저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러게. 부디 아무 희생 없이 돌아와야 할 텐데.
기사에 딸린 댓글들은 주로 파병 병력들의 안전에 대한 것들이었다.
비록 최선을 다했어도 나 또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 역사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미군들의 희생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과 덕분에 파견지인 키르쿠크에도 역사처럼 미군의 조기 철수는 없었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그만큼 위험부담이 덜하다는 거지.
[여, 야는 본격적인 대권 주자 선정에 돌입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2006년 12월 5일.
정치권은 슬슬 대선을 위한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1년이나 남은 상황이었음에도 뭐가 그리 조급한지 TV만 틀면 차기 대권 주자들에 대한 논평과 향후 그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었다.
[이필용 의원은 오늘부터 여당 내 주류 세력들과의 회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여권에선 이필용 의원이 빠른 당내 경선을 주장하고 있었다.
점점 기울어져 가는 판세에 애가 닳은 거지.
그래도 꼴에 4선 의원이랍시고 당내에서의 신임은 있는 걸까.
그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여당 내에선 본격적인 이합집산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필용이 대권 후보로 굳어가는 분위기였다.
[야당은 이변이 없는 한은 이주환의원이 당내 대권 주자로 확정 될 분위기입니다. 이로써…….]
그와는 반대로 야당의 분위기는 오히려 차분했다.
회귀 전엔 워낙 정치엔 관심이 없었던 터라 이 시기의 야당 분위기가 원래는 어땠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상태.
하긴, 이주환의 등장으로 이젠 그 역사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으니 그걸 따지는 것도 조금은 우습다.
‘그나저나 이러면 정말로 미래가 바뀔지도 모르겠는데…….’
여론의 분위기도 그렇고.
현 여당의 침몰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기만 하고.
뭐 나로선 내심 이주환을 응원하고 있는 상황이라 딱히 상관은 없다만, 그래도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다.
똑똑!
“회장님. 이필용 의원님의 캠프에 보좌관이라는 찾아오셨습니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와중 김 비서가 뜬금없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무래도 또 나를 회유하기 위한 움직임인 듯한 느낌인데,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해두어야겠다는 마음에 결국 면담을 허용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막상 마주한 인물은 예상 밖의 거물이었다.
아니, 지금은 아니지만 향후 거물이 될 존재.
이름이 아마 한상우였지?
40대 초반 현 여당에 입당하여 내가 회귀 전까지 쭉 국회의원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최근 이필용 의원이 꽤나 전도가 유망한 인물을 당내로 영입했다더니 그게 바로 저 한상우였나 보다.
“처음 뵙겠습니다. 진현승입니다.”
“한상우입니다. 이번에 이필용 의원님의 캠프에 합류했죠.”
그의 눈빛에선 야심이 절로 엿보였다.
얼핏 이주환 의원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또 뭔가 다른.
뭐랄까, 이주환이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가는 인물이라면, 한상우는 마치 야망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거 진 회장님 뵙기가 마치 왕을 알현하기보다 어렵군요.”
“…….”
난 처음부터 도전적으로 나오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뒤늦게 떠오른 것은 회귀 전 그에 관해서 돌았던 소문.
달고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기회주의자의 표본이라는 평.
끼리끼리 논다더니 이필용의 수준에 딱 어울리지 싶다.
‘뭐…… 이로써 마음의 부담은 한결 덜해지는 건가?’
“그거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거겠죠.”
꿈틀.
주저하지 않고 뱉어낸 말에 한상우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40대 초반.
나와는 딱히 나이 차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떠오르며 이번엔 자연스레 다리가 꼬아진다.
힐끗.
순간 한상우가 내 흐트러진 자세를 고까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의도가 제대로 전달 된 거지.
아니나 다를까, 입술을 짓씹던 그가 불쾌함을 감추지 않은 채 말을 뱉어낸다.
“뭐 좋습니다. 어차피 저야 대표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온 것이니 그것만 하죠. 이필용 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길 차후 우리 당이 계속해서 정권을 잡고 난 이후의 일을 꼭 염두에 두시라고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뭔가 좀 달라졌나 싶었건만, 역시나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오로지 협박성 회유.
저렇게 창의력이 떨어져서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겠어?
곧바로 헛웃음을 지어 보이자 그가 발끈하며 말을 잇는다.
“참고 있자니 태도가 좀 지나치시군요. 대체 진 회장님의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경제는 결국 정치와 밀접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모르십니까?”
난 그 말에 무심코 턱을 쓸었다.
아침나절 채 정리하지 못한 까칠한 수염이 손을 자극하며 기분이 더 불쾌해진다.
“그럼 의원님의 그 오만함은 대체 뭘 근거로 하는 겁니까?”
“…….”
씹어내듯 뱉은 그 말에 한상우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더는 대화를 섞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가 진득한 경고를 날린다.
“우린 반드시 정권을 재창출 할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가장 먼저 재우가 피를 볼 겁니다. 누구보다 내가 앞서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흠…….”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 말이 겁나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확신하는 듯한 저 태도가.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라지만, 고작 초선에 불과한 존재의 힘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저 만용이.
“그러시던지.”
난 한껏 비웃음을 내뱉었다.
자존심이 상한 듯 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버럭 고함을 친다.
“이보세요, 진현승 회장!”
벌컥!
순간, 문이 열리더니 나타샤가 들어섰다.
손에 들린 것은 3단 접이식 곤봉.
돌발적인 상황에 놀란 한상우는 순식간에 안색이 파리해졌고, 난 즉시 그녀를 제지한 채 놈을 향해 말했다.
“이 방에서 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입니다. 보시다시피 다른 이의 언성이 높아지면 그걸 위험 신호로 감지하는 존재들이 꽤 많아서…… 특히나 저 친구는 지금 의원님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서 물불을 안 가릴 가능성이 크거든요.”
“…….”
“아무튼, 내 의중은 이것으로 충분히 전달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만 돌아가 주시죠.”
“…….”
그는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나타샤의 기세에 놀라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나를 스쳐 가려는 차.
난 기어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이필용 대표님께 이 말은 꼭 전해주시죠. 오늘 한상우 의원님을 제게 보내신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고.”
“무슨…….”
“솔직히 말하자면 전 사업가로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여당과 야당, 어느 한쪽에 딱히 마음을 두고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
“그런데 자꾸 저를 이런 식으로 자극하시면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무게 중심을 확 기울이는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