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6화
[우리 정부는 한국형 헬기사업을 미국과의 공동개발로 진행할 것을 확정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석 달 후, 미국과 우리 정부는 수송헬기 사업의 공동개발에 합의했다.
예정대로 미국 측 개발사는 보잉과 시콜스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KAI가 업체로 선정 되었다.
“미 국방부에서 사업의 확대를 고려 중이랍니다.”
김 대표는 우리와의 공동개발로 사업 성공을 확신한 미국 정부가 JMR(통합 다목적 수직이착륙기 계획)의 확대를 고려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차피 디파이언트 자체가 JMR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던 만큼 그것과 연계하여 보다 다양한 기종을 확보하겠다는 것.
그로 인해 미 국방부의 JMR 개발계획은 총 6개 사업 분야로 보다 세분화 되었고, 우리와는 JML-LIGHT. 일명 경량급헬기 개발도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JML-LIGHT는 잘만 활용하면 향후 경 정찰 및 공격헬기 사업의 기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기대를 건 것도 실은 그 부분이었다.
만약 연계만 가능하다면 우린 LAH. 일명 소형 무장헬기 개발 사업에 있어서도 회귀 전과는 다른 플랫폼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사실 회귀 전 우리가 설계도를 사와 만들었던, 유로콥터사의 기체는 성능과 포지션이 좀 애매했던 터라 걱정이었는데, 이로써 그 부분에 대해선 한시름 놨다.
‘물론 민수용 전환을 고려하면 유로콥터사의 설계안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S-97레이더의 성능에는 비할 바가 아니니까.’
특히나 동축반전 로터의 그 강력한 안정성을 고려하면 더더욱.
뭐 민수용으로써 고속 기동이 필요한 조건은 아니지만, 그거야 테일 로터만 제거하면 그만이지 않던가.
[이라크 추가 파병이 의회를 정식으로 통과했습니다.]
2006년 10월.
오랜 진통 끝에 결국 의회는 이라크 추가 파병을 승인했다.
파병일은 11월 15일.
여론은 점점 파병 인력들의 안전과 그에 따른 무장 수준을 걱정하기에 이르렀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군은 결국 일부 비상 예산을 동원하여 최소한 안전에 직결된 무장만큼은 갖추자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합참에서 폴라베어의 생산 여유분이 있냐는 문의를 해왔습니다.”
군이 선택한 최우선 안전조치는 폴라베어의 투입이었다.
이미 중동에서 충분한 성능을 입증한 만큼 당연한 선택.
다행히 군이 요구하는 40대의 수량 정도는 확보가 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그 부분에서의 문제는 발생 하지 않을 듯했다.
“K11의 조기 투입도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연이은 김 비서의 보고에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월남전 이후 제대로 된 전투를 경험할지도 모를 병력들.
그들을 과연 고작 폴라베어 몇 대와 K11 정도의 무장 수준으로 보내야만 하는 건가 싶은.
‘우습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솔직히 그건 내가 아닌 국가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난 단지 사업가에 불과한 입장.
사업가다운 방향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 그걸 굳이 내가 염려할 필요는…….’
-애국자라서가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자의 숙명 같은 거겠지. 넌 아직 이해 못하겠지만, 내 나이가 되면 가끔은 그런 비이성적인 관념들이 생각에 끼어들 때가 있어.
한참 내적 갈등이 깊어지던 와중, 예전 진현필 회장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애써 억눌렀던 갈등이 다시 파고들며 고민의 깊이가 더해진다.
‘젠장, 어느새 나도 그 비이성적 관념에 사로잡힐 만큼의 나이가 된 건가?'
삐익!
“김 비서. 지금 합참의장님을 비롯하여 군 수뇌부들에게 연락 좀 넣어주세요.”
오랜 생각 끝에 난 결국 결심을 굳혔다.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을 깨트린 탓인지 왠지 마음이 후련하다.
‘억울하군. 내가 어설픈 애국심 따위에 무릎을 꿇다니…….아니,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사실 홍보 효과로는 이게 딱 적당한 기회니까.’
******
끼익!
며칠 후, 난 군 수뇌부들과의 약속 장소인 연구소로 향했다.
워낙 심상치 않았던 내 태도 때문이었던 듯 바쁜 와중에도 대부분의 수뇌부들은 요청에 응한 상태였고, 덕분에 연구소 주차장엔 별판을 단 차량들이 가득 자리를 차지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이젠 국방장관으로 영전한 김태익 합참의장은 차에서 내리자 대뜸 질문부터 던졌다.
어느덧 주요 VIP들은 다 도착한 느낌.
굳이 시간을 끌지 않고 이유를 밝혔다.
“파병 예정인 병력들의 무장에 대해 상의할 것이 좀 있습니다.”
“…….”
김태익 장관은 눈을 끔뻑이며 나를 다시 쳐다봤다.
상관하지 않은 채 연구소 입구를 향해 앞서 걷자 수뇌부들이 그 뒤를 우르르 따른다.
삐익!
연구소의 보안은 거의 핵 보관 시설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그 탓에 거쳐야 하는 문만 다섯 개.
이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3층에서도 추가적인 보안검열은 끊이지가 않았고, 덕분에 군 수뇌부들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져 갔다.
“대체 우릴 왜 이곳으로…….”
기잉!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늘의 최종 목적지의 문이 열렸다.
가장 처음 눈에 보인 것은 희원이의 모습.
미리 언질을 준 탓에 대기 중이던 그는 곧장 우릴 또 다른 보안 구역으로 안내했다.
“워리어 플랫폼 개발 센터?”
마지막으로 도착한 문 앞에선 김태익 장관은 낮은 목소리로 명패를 읽었다.
동시에 문이 열리고,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마네킹들과 그것들이 갖추고 있는 여러 장구들의 모습을 본 군 수뇌부들의 눈이 순식간에 화등잔만 해졌다.
“이, 이게 다 뭡니까?”
“몇 년 전, 재우는 개인화기 및 무장에 관한 연구센터를 설립했었던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동안 재우가 독자적으로 개발 중이던 워리어 플랫폼이죠.”
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마네킹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곧이어 머리에 씌워져 있던 방탄 헬멧을 툭툭 손으로 건드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것으로 향한다.
“이 방탄 헬멧은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해서 기존의 케블라 소재 헬멧에 비해 가볍고 방어력 또한 대폭 증가한 상태죠.”
그건 옵스코어 FAST 헬멧을 기초로 제작한 물건이었다.
기존과는 궤를 달리하는 디자인은 물론 여러 장치들마저 장착이 가능한 형태.
군 수뇌부들은 상황에 대한 의문을 내던진 채 하나씩 질문을 뱉어냈다.
“독특한 형태군요. 그런데 이 부분은 야간투시경을 부착하는 곳인가 보죠?”
“그렇습니다. 야간투시경은 물론 차음 헤드셋과 피아식별 IR 등 다양한 전투 장비를 부착할 수 있죠.”
수뇌부들의 눈은 점점 더 빛을 발했다.
그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욕심.
하긴, 이 정도로 전투에 특화된 방탄 헬멧을 보고도 욕심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난 웃으며 이번엔 마네킹이 입고 있던 전투복과 그 위에 장착 중인 전신 방탄복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 전투복은 메타 물질로 코팅을 한 상태입니다. 해서 주변 환경에 대한 색감동화율이 기존에 비해 스무 배 이상 향상되었습니다. 일종의 빛의 산란을 이용한 개념인데, 자세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죠.”
“…….”
수뇌부들은 그 말에 이리저리 군복을 살폈다.
이내 고개를 갸웃한 그들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뱉어냈다.
“그런데 이건 사막 위장용 패턴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애초 이건 첫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었던 당시 제작을 했던 물건이니까요.”
“이라크 파병 병력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었다는 소립니까? 아니 왜요?”
막상 그 질문을 듣자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막상 생각해보니 난 어설픈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라크 파병 병력들에게 이걸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으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파병 병력들을 염두에 두다니요.”
생각이 깊어질 무렵 김태익 장관이 끼어들었다.
뭐 그 문제야 조금 후에 다시 설명하는 걸로.
난 애써 그의 질문을 무시한 채 이번엔 전신 방탄 수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재우가 전에 개발한 방탄조끼와 하체 보호구입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엔 단지 금속 해면체로 제작된 플레이트를 케블라 소재의 아머에 삽입하는 형식이었고, 이건 아예 아머 자체가 또 하나의 방탄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오늘 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2025년.
정확히는 내가 회귀 직전에 개발이 90%쯤 완료 되었던 물건.
난 그걸 센터의 개설과 동시에 희원을 통해 지속된 연구를 계속했고, 불과 석 달 전쯤 완성이 된 상태다.
“…….”
김태익 장관은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마치 말로 하는 설명만으로는 무슨 변화가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예상했던 반응이었던 터라 희원을 쳐다보자 그가 곧 연구실 한편에 비치되어 있던 소총 하나를 내게 건넸다.
기잉!
내가 소총을 손에 쥠과 동시에 저편에선 표적이 하나 등장했다.
방금 전 내가 설명했던 전신 방탄 수트.
힐끗 군 수뇌부들을 향해 한걸음 물러나라는 눈빛을 보내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 등 뒤로 자리했다.
“이 탄은 미군이 주로 사용하는 철갑탄입니다.”
탕!
비록 차음 시설이 되어 있는 곳이었지만 실내에서 가해진 총격의 여파는 대단했다.
찡 하는, 귀가 먹먹한 현상.
하지만 군인은 군인이라는 건가.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핵심이 될 만한 의문 하나가 날아든다.
“방금 이상한 소리가 난 것 같은데요, 저만 들은 겁니까?”
“아니요, 저도 들었습니다. 꼭 총탄이 쇠를 때리는 소리 같은…….”
난 순간 탄성을 발했다.
그 미묘한 이질감을 눈치 채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다시 총을 희원에게 건네곤 의문을 제기했던 장성들을 향해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뭐가 말입니까?”
“쇳소리가 들렸다는 것 말입니다. 사실 저 아머는 ‘폴리에틸렌 글리콜’과 ‘나노비트 실리카’라는 특수소재가 합성되어 있습니다. 해서 급격한 물리력이 가해지는 경우 순간적으로 쇠처럼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죠. 아마 들으신 그 쇳소리는 바로 그 작용에 의한 반발 현상이었을 겁니다.”
“섬유가 쇠처럼 단단해진다고요?”
“섬유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삽입되어 있는 유동성 소재를 말하는 겁니다. 참고로 가해진 물리력이 소멸되면 경화 되었던 소재는 다시 유동성 물질로 되돌아오죠. 그것에 더해 금속 해면체로 된 플레이트 판마저 삽입한다면 아마 저 전신 방탄 수트를 뚫을 것은 대물 저격 총탄 밖에는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몰려드는 황당함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하긴, 지금 이곳은 2006년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온갖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장이니까.
실은 그래서 나도 그동안 이 연구실을 공개하기를 꺼렸던 것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새로 특수전 사령관으로 임명된 황기영 중장은 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른 변명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재우의 기술력이 그만큼 높다는 말로 핑계를 대려는 차에 대뜸 김태익 장관의 질문이 날아든다.
“그럼 이건 또 뭡니까?”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마네킹에 장착되어 있던 외골격 수트였다.
아직은 테스트 단계에 있는.
그 탓에 한쪽으로 미뤄두었던 것이었는데, 마치 의료용 보조기구 같은 모습이 그에겐 꽤나 기괴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아! 그건 능동형 외골격 수트입니다.”
“…….”
김태익 장관은 눈을 끔뻑이며 다시 나를 쳐다봤다.
슬쩍 다가가선 설명을 이었다.
“이건 병사들의 근력과 일정 조건하에서의 전투능력 향상을 위해 개발 중인 겁니다.”
“근력 향상이요?”
“그렇습니다. 그 막대기처럼 생긴, 팔과 다리를 지지하는 골격들이 구동부에서 전달되는 힘을 받아 근력의 향상을 가져오죠.”
그 말에 장관의 시선이 다시 외골격 수트로 향했다.
정확히는 구동부가 매달려 있는 메인 컨트롤 부분.
마치 특이한 장난감을 만지듯 손을 뻗는 그를 향해 말했다.
“바로 그 부분에 있는 구동 모터가 전기신호에 반응하여 움직임을 돕는 형태죠. 그로 인해서 이걸 장착한 병사들은 수백 킬로그램의 물건을 큰 힘 들이지 않고 옮기는 것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구동부에는 이번에 개발된 전고체 전지를 탑재한 상태입니다.”
“…….”
김태익 장관은 그 말에 즉시 나를 쳐다봤다.
이내 입술이 달싹 거리는가 싶더니 얼빠진 얼굴로 중얼 거린다.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기는 한 겁니까? 아니, 이게……. 현실이 맞기는 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