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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55화 (15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5화

마이클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두 사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마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저 입에서 기술유출이라는 말이 몇 번은 나왔을 터.

하지만 그는 끝내 그 말은 입에 담지 않은 채 휙 하고 내 눈을 직시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미국 방산 업체의 기술을 빼돌린 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난 애써 단어 선택에 고심하는 듯한 그를 대신하여 직설적으로 말을 뱉어냈다.

연신 한숨을 내쉬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하긴, 중국도 아니고 재우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죠. 그럼 이게 순전히 우연이라는 건데…… 이거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그렇다 해도 현실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정 찜찜하다면 증거를 하나 대드릴까요?]

[무슨 증거 말입니까.]

[우리가 미국의 개발계획을 훔친 것이 아니라는 증거 말입니다.]

[…….]

말은 안 했지만 듣기를 원하는 표정이었다.

슬쩍 헛웃음을 지어보인 난 즉시 군과 언론에 발표하기 위해 준비했던, 몇몇 파일을 열어 그에게 들이밀었다.

[아직 대외비는 아닌 터라 보셔도 상관없는 것들만을 추렸습니다.]

마이클은 그 말에 즉시 시선을 옮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던 그가 나를 휙 하고 쳐다본다.

[로터에 자동적층 성형 방식을 적용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직 보잉이나 시콜스키. 또 그 어느 미국 업체들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기술이죠. 그 외에도 우린 이미 공격헬기 개발과정을 통해서 많은 기술력을 확보했고, 그걸 개발 예정인 수송헬기에 적용할 생각이죠. 예를 들면 엔진부품의 복합소재 비율을 30%까지 끌어 올린다든가, 내마모성이 기존보다 20%는 증가한 기어박스의 부품 간 유격 조정 설계. 그리고 오토 유압 방식의 ABC(advancing Blade Concept)로터의 채용까지.]

[…….]

[여기서 한 가지만 묻죠. 만약 우리가 미국의 기술을 훔쳤다면, 아직 미국도 완성하지 못한 이 모든 것을 죄다 개발해 낸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마이클은 그제야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낸 눈치였다.

하긴, 자신들보다 앞선 기술력을 근거로 내세우는 마당에 기술유출은 무슨.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던 마이클은 결국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의 말을 뱉어냈다.

[잠시나마 불쾌한 상황을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그렇게 경험을 하고서도 제가 재우의 기술력을 간과했군요.]

[아니요, 이해는 합니다. 솔직히 저 같아도 이렇듯 내 생각과 완벽하게 닮아 있는 컨셉을 본다면 유출에 관한 의혹부터 제기할 테니까요.]

말을 뱉어내는 내내 뜨끔했다.

따지고 보면 컨샙 자체를 카피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 해도 여타 기술적인 부분은 우리 스스로 구축한 것이 사실이기에 꿀릴 것은 없다.

[어쨌건, 난 이 기획안을 군에 제출할 생각입니다. 하니 당장 단장님께서 그렇듯 자신하실 일은 아니라는 거죠.]

[흠…….]

이후 마이클은 이렇다 할 말 없이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뭣 때문일까, 이내 갑자기 표정을 밝힌 그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붙잡는다.

[제게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

[우리 공동 개발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즉, 보잉과 시콜스키. 그리고 재우가 합작을 하자는 겁니다.]

전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황당한 마음에 넌지시 그를 향해 물었다.

[제가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만약 공동개발이 가능해지면 한국 정부는 물론 재우로서도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가 있으니까요.]

[…….]

난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이익이라는 단어.

그게 튀어나온 순간 이미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가 예상 됐거든.

[향후 우리 정부의 도입 예상물량은 최소 3000대 이상입니다. 그걸 만약 공동개발하게 되면 한국 정부도 도입단가가 확 낮아지게 되죠. 그럼 애초 한국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수량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습니까.]

[…….]

[그리고 3000대의 수량이면 아무리 3개 회사가 공동개발을 한다 해도 이익이 가히 천문학 적일 겁니다.]

[그렇겠죠. 그런데 굳이 공동개발을 제안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차피 시간상의 문제일 뿐, 결국 미국도 개발이 가능한 기체인 마당에.]

나로선 그게 의문이었다.

개발 성공 가능성이 없다면 모를까, 어차피 종국엔 미국도 확보가 가능한 물건이 아니던가.

그때, 마이클이 눈을 빛내며 대꾸했다.

[그 시간이 문제입니다. 재우는 이미 기본적인 기술들을 죄다 확보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있기에 개발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지만 우린 족히 10년은 넘게 걸릴 거라는 거죠. 문제는 그렇듯 개발 기간이 오래 걸렸다간 또 예산문제가 발목을 잡을 거고, 그럼 코만치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코만치는 미군의 신형 공격헬기 개발 계획에서 잠시 세상에 알려졌던 기체를 뜻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20년 가까이 개발 기간이 소요되고, 무려 7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쏟아붓고 나서도 결국엔 폐지 된 사업.

그런데 그게 왜?

[솔직히 말하자면 난 차기 수송헬기 확보 프로젝트마저 코만치 꼴이 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난 그제야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한마디로 그는 지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그걸 위해서 성공 가능성이 큰 나와 손을 잡자는 거고.

하긴, 미국의 삽질이 어디 한두 가지였어야지.

그걸 내내 눈으로 지켜봤을 마이클로서는 답답함을 느끼기엔 충분했을 거다.

‘하지만 그거야 미래를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생각이지.’

코만치의 비운은 예산도 예산이지만 정치적 요소와 UAV의 등장으로 인한 효용성 의문이 강하게 작용되어 나온 결과이고, 디파이언트의 경우는 실제 개발이 거의 완료 단계까지 왔었다는 것을.

“흠…….”

그때 문득 뇌리를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다.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그러면 내가 굳이 저들과 공동개발을 진행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은.

막말로 우리가 먼저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이 그걸 수입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 아닌가.

그 마당에 내가 굳이 저들과 공동개발을 하여 이익을 나눌 이유가…….

[그 생각은 버리세요.]

그때, 마이클이 마치 내 속을 읽은 듯한 말을 뱉어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슬쩍 쳐다보자 그가 입매를 뒤틀며 다시 말을 잇는다.

[오해하셨나 본데, 예산과 개발계획 취소를 걱정하는 것은 나지 우리 정부가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 그대롭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는 관심이 없어요. 단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군수업체 하나를 살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점점 의문이 더해지는 말이었다.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탄식하듯 말을 쏟아낸다.

[보잉 말입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로지 보잉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보잉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라고요?]

[아시다시피 보잉은 지금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민항기 시장에서의 선전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사업체가 워낙 크다 보니 지속가능한 사업이 당장 필요한 현실이죠.]

[그래서 정부가 나섰다는 겁니까?]

[만약 보잉이 무너지면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니까요. 그 마당에 재우가 아무리 완벽한 기체를 만들어 낸다 한들 그걸 수입하겠습니까.]

[…….]

상황이 그러면 정말로 수출은 물 건너가게 되는 거다.

적어도 자국 업체를 살리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거든.

‘그럼 저 제안을 받는 것이 현명한 건가?’

단지 시간상의 문제일 뿐, 어차피 미국도 디파이언트라는 확실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앞서 끼어들어서 이익을 취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일단 우리 정부와 협의를 좀 해보죠.]

난 결국 긍정을 표했다.

순간 마이클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하더니 덥석 내 손을 붙잡았고, 난 그 타이밍을 노려 말을 뱉어냈다.

[그나저나 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

마이클은 그 말에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경험상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신으로서는 부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떠 올린 거겠지.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우리 군이 보유 중인 UH-60 말입니다. 그것에 대한 개량 권한을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우리 군이 아무리 신형 기동헬기를 도입한다고 해도 예산문제로 인해서 그걸 단숨에 전부 교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니 군은 분명 개량 사업을 추진할 것이고, 전 그 사업권을 가지고 싶다는 거죠.]

[하지만 UH-60의 라이선스 생산권한은 이미 대인항공에서…….]

[물론 그렇죠. 하지만 대인항공의 군수분야는 이미 만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해서 곧 저희가 인수를 시도할 예정입니다.]

[……대인항공을 인수한다고요?]

[우리나라의 항공 산업도 이젠 경쟁력 있는 체제로 가야 하니까요. 아! 참고로 개량 권한은 인수가 끝난 후에 처리해 주시는 것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미리 발표 되면 인수과정에서 버틸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

********

“미국과 공동개발을 하자고요?”

며칠 후, 난 합참 회의에서 마이클의 제안을 알렸다.

한동안은 다들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

개중 몇몇은 제법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를 던진다.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는 없는 겁니까?”

“어차피 우리가 가진 기술들이라고 해봐야 미국도 조만간엔 개발에 성공할 것들입니다. 아니, 엔진과 테일 로터의 동력전달 기술 부분에선 오히려 우리가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이죠.”

“그럼 양산 비용은요? 그건 확실하게 줄어드는 겁니까?”

김태익 합참의장은 예산문제를 우선시했다.

하긴, 한정된 예산을 굴려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할 군의 그게 가장 걸림돌이긴 하지.

난 자신하듯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결과 재우가 홀로 진행했을 경우 양산비용은 대당 대략 400억 정도. 그리고 공동개발에 의한 대량 생산 체제가 가능할 경우엔 절반이하까지 다운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야…….”

군 수뇌부들은 비용 절감이 확실하다는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수출시장에서 미국의 관여를 염두에 둔 일부 인물들은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을 떨치지 못하는 상태.

뭐 그것도 결국엔 재우를 생각해 주는 것이니만큼 고맙기는 하다만, 사실 그 점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확신하기에 다시 설득에 나섰다.

“수출시장의 개척은 재우가 홀로 나설 때 보다 오히려 수월해질 겁니다. 적어도 미국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어필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건 하청이 아니라 엄연한 공동개발인 터라 우리의 발언권 역시 강합니다.”

“흠…….”

“결정적으로, 만약 협력개발이 확정되면 얻어지는 이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아니 그걸 떠나서 KAI의 라인을 대폭 확장하는 결과까지 생길 수도 있죠.”

“생산라인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경우 연 인원 수만에 달하는 고용창출 효과가 유발 될 것을 확신합니다.”

순간 끝내 마음을 놓지 못하던 군 수뇌부들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고용창출.

그 단어에 꽂힌 거지.

가뜩이나 말이 많던 사업이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군으로서도 부담을 더는 것이니까.

결국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고, 종국엔 반대 의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통령님께 보고를 올리죠. 참, 진 회장께선 저 좀 잠깐 보시죠.”

회의를 끝마친 이동욱 장관은 돌아서는 나를 붙잡았다.

아까부터 내내 그늘졌던 그의 얼굴.

혹여 공동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하려나 싶어 걱정했건만 다행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번 사업과는 관련이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제가 물러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해서 진 회장께는 미리 소식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씀을…… 갑자기 왜요?”

나로선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선까지는 이제 고작 1년이 조금 넘게 남은 상황.

게다가 아직 정권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딱히 실책이 없는 국방부 장관이 물러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제가 자원했습니다.”

“…….”

“실은 최근에 받은 건강 검진 상에 이상소견이 나왔더군요. 해서 정밀 검사 결과…….”

“암입니까?”

막상 생각나는 것은 그것 외엔 없었다.

다른 질병들이야 솔직히 어지간해선 자리를 보존하며 치료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

틀린 추측은 아니었던 듯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네…… 췌장암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3기에 접어 들은 상태랍니다.”

순간 절망감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아는 바에 따르면 췌장암은 생존 가능성이 다른 암들에 비해서 유독 낮은 질병.

게다가 3기라면 사실상 손을 쓰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인 상황이거든.

차마 할 말이 없어 머뭇거리자 이동욱 장관이 멋쩍은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린다.

“어쩌겠습니까.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을. 해서 하는 말인데, 대통령님께선 차기 장관에 김태익 합참의장을 지명하실 생각이십니다. 하니, 앞으로도 곁에서 그 친구를 잘 좀 도와주십시오.”

이동욱 장관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돌아섰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왠지 오늘따라 세상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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