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3화
[장내에 계신 귀빈 여러분. 그럼 지금부터 안창호 함의 K-SLBM의 해상 사출 검증 테스트를 실시하겠습니다.]
안내방송과 함께 장내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이미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춘 안창호 함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서 해상엔 고무보트 하나가 떠 있었고, 다시 이어진 안내방송을 통해 사람들은 곧 고무보트의 위치가 안창호 함이 잠수 중인 곳임을 파악했다.
[현재 운용평가를 진행 중인 안창호 함은 6문의 수직 발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발사에 앞서 직원은 안창호 함의 대략적인 스펙을 안내했다.
주로 중점을 둔 부분은 오늘 테스트와 연관된 수직 발사 시스템에 관한 것.
하지만 단순히 드러나는 부분 이상의 것을 듣기 원하는 듯한 대통령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난 즉시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 속삭이듯 설명을 이었다.
“우리가 개발한 수직 발사 시스템은 12톤에 달하는 무게를 수중에서 물 밖으로 사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12톤이요?”
“네, 미사일의 무게도 무게거니와 그걸 보호하는 캐니스터 캡슐의 무게도 만만치가 않거든요.”
“허어, 그 정도 무게를 대체 뭘로 밀어내는 거죠?”
“대개는 콜드런칭 방식을 사용하죠.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결국 콜드런칭 방식도 그 정도 무게를 밀어낼 압력을 만들기 위해선 고체 추진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잠수함 내부에서 고체 추진체를 사용한다고요?”
대통령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긴, 잠수함 내부에서 연소과정을 시행하기 위해선 극복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그나마 그 점을 이해하고 있는 대통령이 확실히 대단하기는 한 거다.
“놀라시는 건 이해합니다. 그 경우 발사기가 2500도가 넘는 온도를 견뎌야 하는 함은 물론 어마어마한 내부압력도 극복을 해야 하죠. 해서 우린 미국의 경우처럼 혼합가스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뭐가 다르죠?”
“일단 로켓 추진체를 연소시켜 압력을 얻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연소과정에서 만들어진 고압의 가스와 열기가 미사일의 캐니스터 캡슐과 발사기의 내부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최종과정에서 냉각제를 방출해 버립니다. 그럼 발사기의 내부온도가 급격히 하락해 버리죠.”
기나긴 설명에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걸 죄다 이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내 다시 고무보트가 떠 있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준 그는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이날이 꽤 그리워질 것 같군요.”
“…….”
“이제 물러나게 되면 이런 장관들을 다시는 못 볼 것 아닙니까.”
난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하곤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스윽 하고 내 등에 손을 댄 대통령이 넌지시 말을 잇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난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나 외에 어느 대통령이 임기 내에 이렇듯 지속적인 국방력의 증가를 눈으로 봤겠습니까.”
“그건…….”
난 내뱉던 말을 주워 삼켰다.
이 상황에서 뭔가 말을 꺼냈다간 괜히 분위기가 더 침울해 질 것 같아서.
그런데 그때, 다시 나를 쳐다본 대통령의 표정이 다시 단호함을 드러내더니 의외의 말을 꺼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정권이 넘어갈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
“해서 내 임기 안에 할 수 있는 것을 마저 하고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입니다.”
“그건 또 무슨…….”
뭔가 심상치 않은 말투였던 터라 즉시 그를 쳐다봤다.
힐끗 주변을 살핀 그는 이제 막 나오는 안내방송을 틈타 귓가에 속삭인다.
“한국형 헬기 사업 말입니다.”
한국형 헬기 사업이라 함은 회귀 전 우리 정부가 주도한 KHP 사업을 의미하는 거였다.
차후엔 소형 무장헬기(LAH)로까지 확장되는, 그야말로 대형 국책사업.
역사대로라면 2006년. 즉 올해 6월 시작 되었어야 하지만, 그동안 워낙 시작된 사업이 많아서 넘어가나 싶었더니.
결국 그 부분에 대한 역사는 재연 될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산이…….”
“어차피 탐색개발 기간을 고려하면 내 임기에 확보할 예산은 고작 수백억에 불과할 텐데, 내가 그걸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
회귀 전 KUH 사업의 결과물로 탄생한 수리온 역시 첫해에 들어간 예산이라고는 수백억에 불과 했으니까.
그렇다 해도 좀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빤히 쳐다보자 그가 농담조의 말을 던진다.
“왜요, 진 회장도 내가 똥을 거하게 싸고 간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아니 그 중요한 사업을 두고 대체 누가 그런 표현을 한 겁니까?”
“누군 누구겠습니까, 우리 당의 대표 이필용 의원이지.”
“그분이 대통령님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러기야 했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말이 내 귀로 들어온 거죠. 아무튼, 그 양반은 KHP 사업을 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디다.”
사실이라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상이었다.
노후 된 기동헬기를 대처하는 사업을 똥이라고 표현하다니.
그런 양반이 만약 여당의 대권후보가 된다면…….
‘젠장 아무리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확실히 이주환 의원이…….’
애꿎게도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이주환 의원이었다.
야당이고 여당이고 대표적인 대권주자들이 죄다 그렇듯 국방에 대해 무지하다면 나로선 당연히 이주환 같은 존재가 대통령이 되는 편이 나으니까.
물론 그 역시 스스로는 국방에 대해서 문외한이라고는 했지만, 최소한 들으려는 의지만큼은 있는 인물이지 않던가.
“그래서 결국 사업을 발표하실…….”
[카운트 시작하겠습니다.]
막 되물으려던 차에 안내방송이 다시 들려왔다.
이어진 카운트와 함께 고무보트가 있던 자리에서 튀어 올라오는 SLBM.
그건 곧 엄청난 화염을 내뿜더니 곧장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오오!”
대통령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솟아오르는 미사일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닌 상황.
곧 또 하나의 미사일이 수면 위로 튀어 올라와선 같은 궤적을 그리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제3. 제4의 미사일 역시도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엄청난 광경이군요.”
바다를 가득 메운 연무를 뚫고 하늘로 치솟는 미사일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뭐랄까, 꼭 상대방의 핵 공격에 초토화된 국가가 최후의 보루로 쏘아 올린 핵미사일들을 보는 느낌.
즉, 상호확증파괴의 최종 수단이 제 역할을 시도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다.
“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대통령의 입에선 잠시 후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한껏 내 귓가에 입을 가져가며 말한다.
“보고 있자니 공포심마저 드는 군요. 저기에 만약 재래식 탄두가 아니라 핵이 들어있었다고 가정하면 그야말로 종말의 시작 아니겠습니까.”
“저 정도 중량의 미사일에 탑재된 핵이라면. 그것도 6발 모두 맞았을 경우엔 어지간한 나라 하나가 지워지는 결과를 야기할 테니 종말의 시작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죠.”
난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하곤 그를 쳐다봤다.
뭣 때문일까, 대통령이 헛웃음을 뱉어내며 말한다.
“진 회장은 가끔 속내를 알 수가 없어요.”
“…….”
“난 저걸 보고 북한의 핵 개발 문제가 새삼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말인데, 진 회장의 말 속에는 꼭 핵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사실 욕심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 아닐까.
특히나 주변 상황이 이렇듯 복잡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야.
“그나저나 저 SLBM의 탄두 중량이 얼마나 되죠?”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그가 다시 질문을 뱉어냈다.
왜 그 질문이 안 나오나 했지.
난 깊게 숨을 한번 들이쉬곤 말했다.
“최대 탄두 중량은 4톤에 달합니다. 주지하셔야 할 점은 정작 화약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거죠.”
“그럼 뭐로 4톤을 다 채웠다는 겁니까?”
“중금속이죠.”
“중금속이요?”
“탄도미사일의 파괴력은 대부분 가속도에서 비롯된 충돌에너지에서 나옵니다. 하니 굳이 화약으로 탄두를 모두 채울 필요가 없거든요. 게다가 중금속의 경우 피격된 지역을 보다 방대하게 망가트리는 것이 가능하죠. 한마디로 저건 전술핵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가진 미사일이라는 겁니다.”
사실 전술핵에 버금간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다.
아무리 작은 전술핵이라도 핵은 핵인데, 고작 재래식 중금속 탄두에 비할까.
하지만 파괴력이 그만큼 대단한 것은 사실.
아마 대통령도 그 점은 이해하고 있을 거다.
뿌우우웅!
그때, 사출 시험을 마친 안창호 함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
고작 3000톤급에 불과한 잠수함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함의 위용에 사람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정식 취역은 언제로 예상하고 있습니까.”
대통령 역시 감회에 젖은 건 마찬가지인 듯 몽롱한 시선을 하며 물었다.
슬쩍 곁을 쳐다보자 재우조선 해양의 이용 대표가 대답을 대신한다.
“최종테스트가 끝나는 내년 2월쯤 취역할 예정입니다. 이후 8개월 후엔 2번함인 안무함과 3번함이 줄줄이 취역할 예정이고요.”
“오오! 그럼 오늘이 내 마지막 행사 참여는 아닌 거군요.”
“그때 특별한 일이 없으시다면 당연히 참석하셔야죠.”
대통령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이내 다시 안창호 함을 향해 시선을 준 그는 넋두리 하듯 말을 이었다.
“한데 4번함부터는 전고체 전지를 탑재한다고요?”
그 질문에 난 다시 이용 대표를 쳐다봤다.
마치 그 부분에 대해선 당신이 설명하라는 듯한 눈빛으로.
하지만 대통령을 상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듯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결국 내가 다시 대답했다.
“네, 그렇게 되면 작전 효율이 지금과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정도로 증가할 겁니다. 단지 전고체 전지만 탑재해서가 아니라 X형 방향타를 비롯하여 수소연료전지 기반 AIP. 그리고 메타 물질을 활용한 음향 타일과 자체 개발된 소나 체계까지. 그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은 물건이 될 테니까요.”
그 말에 대통령의 눈빛이 다시 몽롱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내 지그시 나를 쳐다보던 그가 웃으며 등을 두드린다.
“이 말을 하게 될 기회가 또 오게 될지 알 수 없어서 미리 합니다만,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진 회장.”
“네…… 저도 감사했습니다.”
******
[정부와 국방부는 오늘 오전, 한국형 헬기 개발 사업안을 발표했습니다.]
며칠 후, 대통령은 내게 언질했던 것처럼 헬기 개발 사업을 발표했다.
우습게도 그에 가장 극렬하게 반발한 것은 여당의 이필용 대표.
하지만 대통령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이필용 대표는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기에 나섰다.
[이용재 대표는 오늘 아침 정부의 한국형 헬기 개발 사업을 정면으로 반발했습니다. 이로써 여당과 야당 모두의 반대에 부딪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야당의 이용재 대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주장하고 나선 것은 헬기 개발 사업을 통해 군내 인사들과 업체가 모종의 유착이 있다는 의혹 제기.
이 나라에서 헬기를 자체 개발하는 것이 가능한 곳은 KAI뿐임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그건 나를 겨냥한 것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그냥 있는 것은 바보나 다름없다.
“이용재 대표께서는 근거 없는 모함을 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다못한 난 결국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반발했다.
오히려 내가 공식적인 청문회를 요구하기 까지.
하지만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내지른 이용재의 말은 정치권을 비롯한 여론의 폭풍 같은 질타를 받았고, 결국 아차 싶은 마음에 사과의 뜻을 전하긴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오늘 오전 이용재 대표가 여론과 당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전격적으로 야당의 대표직을 사임했습니다. 새로운 대표로는 이주환 의원이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
[이용재 의원은 오늘 대표직 사퇴가 대권 도전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그 탓에 여당에 이어 야당에도 태풍이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주환 의원이 결국엔 전면에 나서는군요. 그나저나 상황이 좀 애매하지 않습니까. 이건 어디가 여당이고 어디가 야당인지 영 구분이 가지 않게 되었으니 원.”
함께 뉴스를 지켜보던 KAI의 안 대표는 혀를 차며 내 혼잣말에 동조했다.
그건 당대표가 바뀐 이후 방향을 틀어 버린 야당의 정책들 때문이었는데, 다른 걸 떠나서 국방 분야만큼은 여당보다 더 현 정부와의 코드가 비슷하다 보니 나조차도 혼돈이 온다.
“그나저나 개발 방향은 잡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난 안 대표의 질문에 마침 보고 있던 노트북 화면을 그에게로 돌렸다.
한참을 화면 속 이미지 컷에 집중하던 안 대표는 눈을 끔뻑이며 되묻는다.
“이, 이게 뭡니까?”
“뭐긴 뭐겠습니까. 우리가 앞으로 개발할 한국형 기동헬기죠.”
“아니, 제 말은. 이 후방을 향해 달린 테일 로터는 뭐냐는 거죠.”
“그건 고속 기동을 가능하게 해줄 수단입니다. 그게 있음으로써 우리가 개발하는 헬기의 순항속도는 무려 시속 460킬로미터가 넘게 될 겁니다.”
“……헬기 순항속도가 460km에 달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