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2화
의외의 말이었던 터라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낀 걸까, 비어 있던 내 잔에 가득 술을 따른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물론 그동안 진 회장님의 행보를 보면 중립을 지켜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진 회장님은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진 회장님을 향해 정치권에서 손을 뻗어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당장 지금 저만 봐도 그건…….”
“…….”
“게다가 지금은 대선을 불과 1년 반밖에 남겨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 탓에 정부는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고, 여당은 여당대로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여당이 취할 최선의 선택은 진 회장님을 끌어들이는 걸 겁니다. 하니 저로선 중립을 요구할 수밖에요.”
그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하긴, 딱히 돌파구가 없는 여당의 입장에선 나를 방법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것에 응할 리가 있나.
아마 지금껏 조용한 이유는 저들도 막상 나를 끌어들이기엔 꺼림칙한 뭔가가 있기 때문일 거다.
정치권에 관여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내 성향을 알고 있다거나, 아니면…….
“이건 여담이지만, 사실 정치인들 사이에서 진 회장님은 다른 경제인들과는 다른 의미의 존재입니다.”
그때, 이주환 의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의미요?”
“까놓고 말하자면 언터처블이라는 소리죠.”
“…….”
“설마 전혀 체감하지 못하신 겁니까?”
“네, 솔직히.”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동안 워낙 일에만 몰두하시느라 정치인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으셨던 입장이니만큼. 하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이미 진 회장께선 어설픈 권력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위치에까지 올라서 있죠.”
“…….”
“왜요, 제가 과장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일례를 한 가지 들죠. 최근 정치권에서 금융위원회의 부실한 자본시장관리를 문제 삼은 적이 있습니다. 한데 우습게도 여야 할 것 없이 누구도 재우가 운용 중인 투자사에 대해선 언급하기를 꺼리더군요.”
“그거야 재우 투자의 운용 투명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난 즉시 반박했다.
순간 그가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다시 술잔을 권한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어디 국회의원들이라는 작자들이 옷이 희다고 해서 안 털어대는 것 보셨습니까? 또 털어서 먼지 안 나올 기업은 없고요.”
“…….”
“하지만 보시다시피 유독 재우에 대해서만은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죠. 난 그걸 일종의 무의식적 자기방어 현상이라고 봅니다만.”
“무의식적 자기방어 현상이요?”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것 없는 물건이나 사람을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현상. 아무리 내게 승산이 있어도 굳이 시비를 걸 엄두를 내지 못하는, 뭐 그런.”
“…….”
“솔직히 말하자면 의원들의 그런 태도가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진 회장이야 아랍권을 비롯해서 미국과 러시아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니만큼.”
“흠…….”
“게다가 최근 일어난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통해서 진 회장님이 이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을 직접 목도한 상황인데, 자기 몸 사리기 바쁜 의원들이 굳이 그런 인물을 건드려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니, 오히려 어떻게든 잘 보이려 하면 모를까.”
“허, 이거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군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워낙 앞뒤 없이 내달리기만 했던 터라 난 스스로가 남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했거든.
머쓱한 마음에 머리를 쓸어 넘기려는 차,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곧 여당 측에서 접촉을 해올 텐데, 그때 중립을 지켜달라는 겁니다. 그래야 저도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얼핏 과하다 싶은 자신감이었다.
막말로 그는 내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 자리는 따놓은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저게 오만하다는 생각보다는 당연하게 느껴지지?
황당함에 헛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결국 그게 제게 원하시는 전부라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단호하게 말하곤 술잔을 들이켰다.
당장 자신을 밀어 달라는 부탁이 아닌 마당이면 나로선 부담을 떨쳐내는 상황인데, 그걸 거부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술이 달게 느껴진다.
“러시아에 가셨던 일은 잘되셨다고요?”
“네, 좀 염려되는 부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장은 그런 편입니다.”
이후 우린 애써 주제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쉬울 리가 있나.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대화는 다시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외교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고, 술병이 비어갈수록 서로에게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을 것들은 피하겠다는 경계심마저 사라져 갔다.
“정말로 당대표를 이길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그건 이용재 의원을 두고 한 말이었다.
현 야당의 대표이자 원 역사대로라면 차기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인물.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던 듯 이주환 의원의 얼굴에 얼핏 당황스러움이 스친다.
“길고 짧은 것이야 대봐야 알겠죠. 하지만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 양반은 지나치게 사리사욕이…….”
그는 내뱉던 말을 주워 삼켰다.
아무리 정적이라곤 해도 타인 앞에서 제 식구를 비난하는 것은 삼가겠다는 거지.
굳이 말하지 않았어도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상황.
웃음으로 넘기곤 잔을 들자 그가 넌지시 술을 따르며 말한다.
“그거 압니까? 내가 그동안 대통령님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무슨…….”
“정부와 진 회장님의 그 끈끈한 협력 말입니다.”
“위험한 발언이시군요. 남들에겐 그게 정경유착이라고 오해를 살 수도 있을 부분입니다만.”
“뭘 주고받은 것이 있어야 정경유착이죠. 아니 그건 둘째치고, 재우가 여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손해 본 것이 얼만데 그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솔직히 이제 국민들도 알만한 건 다 압니다.”
하긴, 최근 재우가 관여한 국가적 문제들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와는 달리 미디어의 발달로 이젠 어지간한 일들에 대해선 숨길 수가 없게 된 세상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덕분에 가까운 군 장성들에게 밥 한 끼조차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현실은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와도 부디 그런 관계로 이어졌으면 하는 겁니다. 나라가 온전히 서려면 국방력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은 저도 충분히 인식하고는 있는데, 안타깝게도 전 그쪽 분야에 대해선 젬병이거든요.”
“그건 먼저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하실 말씀 아닙니까.”
난 은근슬쩍 뼈를 때렸다.
예상과 달리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그는 멀뚱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건 그러네요. 하지만 꿈을 크게 꿔서 나쁠 것 없잖습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안 되면…… 재우그룹에 자리 하나 부탁하죠. 뭐.”
아마 마지막 말은 농담이었을 거다.
솔직히 저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의원이 뭐가 아쉬워서 재우에 자리를 부탁할까.
그럼에도 굳이 저 말을 하는 이유는 나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우회적인 표현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게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냥 대통령이나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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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당 대표인 이필용 의원은 오늘 오전 정부의 독단적인 부동산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했으며…….]
2006년 7월.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상승으로 인한 정부와 여당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정부는 향후 수도권에 164만 호의 주택을 공급함으로써 집값 상승을 막겠다고 했지만 이미 타오르는 불꽃을 막기엔 역부족.
결국 국민들의 원성은 높아져만 갔고, 여당은 다시 한번 정부와 선 긋기에 나섰다.
“회장님 이필용 대표께서 면담을 요청하셨는데요.”
이주환 의원의 예언대로 정부 여당은 점점 실망감을 더해가는, 여당을 향한 민심을 붙잡기 위해 나를 끌어들이기에 몰두했다.
뭐 한마디로 재우의 이미지.
아니 진현승의 이미지를 끌어들여 정권 재창출을 시도해 보겠다는 거지.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기업가가 그에 동조할까.
난 단호하게 선을 그었고, 그 탓에 한때나마 이필용 의원으로부터 날 선 경고를 받기도 했다.
-자고로 사업가란 나중을 생각할 줄 알아야죠. 우리가 정권을 계승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쯧, 생각이 짧아도 저렇게까지 짧을까.
이 나라는 똥별들도 문제지만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도 문제다.
“헬기 준비됐습니다, 회장님.”
2006년 11월 8일.
오늘은 대한민국 최초의 3000톤급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이 드디어 SLBM 해상사출 시험을 하는 날이었다.
이미 시행된 지상 사출 시험은 합격점을 받은 상태.
덕분에 일정에 차질 없는 건조가 이어졌고, 만약 해상에서의 사출마저 성공한다면 조만간 군에 인도하는 것도 가능할 거다.
“오시는 동안 불편하시지는 않았습니까?”
도착한 재우조선에는 이용 대표를 비롯하여 김영기 대표와 진현철 그룹 부회장마저 미리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 그들뿐일까.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예정에 없던 대통령의 참석마저 결정 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아직까진 대통령의 헬기가 도착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부회장님. 저 좀 잠시 보시죠.”
VIP석으로 가던 와중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잠시 현철을 불러 세웠다.
내가 뭘 말하려는 것인지쯤은 이미 눈치를 챈 듯 그가 한숨을 내뱉으며 다가온다.
“동생아. 아니 회장님. 나 아직까지는 신혼이야. 그 점만 명심해 달라고.”
역시나 그의 눈치는 보통이 아니었다.
애써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이번 야말 프로젝트는 아무에게나 맡길 수가 없는 것임을 형님께서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나 아직 신혼이라고.”
연신 신혼임을 내세우는 그의 표정은 처절할 정도였다.
툭 하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다시 말했다.
“그럼 형수님도 같이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러시아에서 신혼을 연장해서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
미처 그런 제안을 받을 줄은 예상 못 한 표정이었다.
잠시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던 그는 입매를 뒤틀며 말한다.
“누굴 바보로 아나. 얌마, 캘리포니아 해변이라면 몰라도 그 추운 동네에서 신혼을 즐기기는 무슨…….”
한껏 목소리 톤을 올리던 현철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목소리를 죽였다.
곧 후우 하는 한숨을 짓는 폼이 그렇다 해서 끝내 거부하지는 않을 듯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말한다.
“그래서, 몇 년이나 있어야 하는 거야?”
“2년만 부탁합니다. 아시다시피 가스전 개발 사업은 초기 인프라 구축과정이 제일 중요한데, 그렇다 해서 연로하신 윤 부회장님을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양반 보냈다가 초상 치를 일 있어?”
“제 말이 그겁니다. 그렇다 해서 계열사 대표 중 하나를 보내자니 발생할 변수에 대한 대처가 쉽지 않을 것 같고, 결국 형님밖엔 없습니다.”
“가는 건 문제없는데, 그럼 재우 에너지는 어쩌려고?”
“전고체 배터리 사업은 이제부터 제가 맡겠습니다. 어차피 이젠 테슬라와의 연계도 시작할 타이밍이니까요.”
현철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뭐가 걸리는 것이 있는 건지 이내 인상을 찌푸린 그는 곧 진 회장을 거론한다.
“아버님이 걱정이네. 내가 없는 2년 동안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벌써 90을 바라보는 연세다 보니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할 터다.
하지만 그의 명이 다하는 것은 앞으로 최소 7년의 시간이 더 남아 있는 상태.
물론 역사의 타임라인이 하도 뒤죽박죽인 터라 그것도 이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 건강 상태로 봐선 그리 걱정할 문제는 아닐 거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상황 같으면 제가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상황이 그런 걸 어쩌겠어. 알았으니 네 형수에게 전화나 한번…… 어? 대통령님 오셨나 본데?”
말을 잇던 현철은 허공을 가리켰다.
두두두두!
그와 동시에 다가오는 대통령 전용 헬기.
우린 즉시 주기장을 향해 다가갔고, 막 헬기에서 내린 대통령은 웃으며 우릴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 임기에선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행사가 아닐까 싶어서 직접 찾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앞으로 그의 임기 내에 배치가 진행되거나 테스트가 시행될 사업은 없으니까.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가 탁하고 내 등을 두드리더니 상황과는 걸맞지 않은 말을 뱉어낸다.
“이주환 의원은 잘 만나보셨습니까?”
“…….”
“아! 오해하지 마세요. 진 회장께서 그를 만났다는 것을 왈가불가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난 단지…… 진 회장의 눈에 비친 그가 어떤 인물인지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말을 뱉어내는 그의 표정은 처량했다.
안 대표의 증언처럼 그는 이미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각오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긴, 아무리 1년이 넘게 남았다곤 해도 형세를 뒤집기 어려울 분위기이기는 하다.
당장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정부를 대놓고 저격하고 있는 마당에야.
‘그러고 보면 이필용 대표에 대해선 참 의외라는 말이지. 원 역사에서 대통령과 대립은커녕 그를 끝내 지키려고 노력했던 인물이 왜 지금은 그렇듯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걸까?’
정말로 이젠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것이 어렵다.
“저보고 중립을 지켜달라더군요.”
“…….”
대통령은 그 말에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내 지어지는 헛웃음 속에선 무수한 의미가 느껴진다.
아쉬움. 회한. 그리고 현실에 대한 원망.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런 인물이 여당이 아니라 야당에 속해 있다는 것이.”
역시나 그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오늘 같은 자리에서 계속할 대화의 주제는 아님을 느낀 걸까, 곧 표정을 밝히더니 저편에서 대기 중이던 안창호 함을 턱짓하며 말한다.
“갑시다. 또 하나의 역사가 쓰여 지는 오늘 같은 날에 기껏 정치 이야기로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