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1화
“수고 많으셨습니다.”
며칠간의 러시아 일정을 끝내고 도착한 인천 공항에선 안 대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긴장된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웃음을 뱉어낸다.
“제가 나온 것이 그렇게 의외입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공항에서 김 비서 외의 인물이 보이면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거든요. 그나저나 무슨 일이기에 안 하던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아, 실은. 보고드릴 것과 상의드릴 것이 좀 있어서요.”
안 대표는 슬쩍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사람들의 눈이 많은 자리는 피하고 싶다는 의미.
즉시 대기 중이던 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말씀하세요.”
올라가는 방음창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물었다.
지나치게 확실한 방음시설 때문인지 한순간 귀가 먹먹한 느낌이 든다.
“우선 놀라실 만한 소식이 하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좀 하시죠.”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듯했다.
슬쩍 눈매를 좁히고 쳐다보자 그가 말을 잇는다.
“국정원에서 흘러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우리 정부가 이라크로 공격헬기 1개 편대를 파병할 가능성이 크답니다.”
“포사를 이라크로 보낸다고요?”
“네, 단지 그뿐 아니라 특수 전 1개 대대도 추가 파병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어디로 말입니까?”
“키르쿠크요.”
키르쿠크는 이라크 내 최대 접전지역 중 하나였다.
이른바 수니파 삼각지역.
맙소사!
만약 그게 성립되면 우리 전투부대가 본격적으로 저항세력들과 교전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건데, 결국 올 것이 온 거지 싶다.
“언제 파병할 예정이랍니까?”
“아마 의회 승인을 통과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연말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정된다면 미 공수101사단과 합류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절로 긴 한숨이 내쉬어졌다.
이젠 원래의 흐름과는 완전히 다른 줄기를 타기 시작한 역사.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게 되었으니까.
물론 제1동맹 격상이 이라크 문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리라는 생각은 했어도 그게 이렇듯 빠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참, 그래선지 미국이 내년 초에 있을 영국에서의 회의를 연말로 앞당길 예정이랍니다.”
“…….”
“우리나라의 제1동맹 격상을 위한 회원국들의 동의를 하루라도 빨리 받아내겠다는 거죠.”
“사탕을 물리겠다는 의도군요.”
난 헛웃음을 뱉어내며 창밖을 쳐다봤다.
내 표정이 지나치게 굳어진 것을 의식해서일까, 안 대표가 넌지시 다른 소식을 전해 온다.
“연구소 김희원 박사의 말에 의하면 한국형 MESA 레이더의 개발이 끝났답니다.”
“그래요?”
그건 희소식임에는 확실했다.
한국형 MESA레이더의 개발이 끝났다는 건, 이제껏 지지부진하던 조기경보기의 제작이 곧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 것을 의미하니까.
물론 통제 시스템과 각종 센서들의 통합. 그리고 각종 운용환경에서의 테스트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어차피 시간상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언제쯤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갈 예정입니까?”
“기체는 이미 보잉으로부터 들어와서 KAI에서 개수 중인 상태니까 올 말쯤이면 1호기의 공중테스트에 돌입할 수 있지 싶습니다. 이후 대략 6개월 정도 운용상의 문제점이 없으면 나머지 기체들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고요.”
그럼 대략 내년 후반쯤이면 도입이 가능할 거다.
KF-02의 양산속도를 생각하면 얼추 링크시스템의 연동과 그에 따른 작전 효율성을 테스트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
“2년 후면 공군의 전력이 확 달라지겠군요.”
“네, 이후 5세대 기체들의 개발이 완료되면 미군의 도움 없이도 제공권은 확실하게 장악 할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 나라가 미국의 도움 없이도 항공 전력을 이용한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확보하게 되는 현실.
회귀 이후 꼬박 8년인 건가.
다른 때와는 달리 유독 이번만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이 더해진다.
쯧, 그래도 아직 안심할 일은 아닌 건가.
지상감시통제기.
대체 그건 언제쯤에나 도입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문제니까.
아니, 남은 게 그것만은 아니지.
공군이야 그렇다 치고, 해군은 이제 시작인데.
군수 지원함을 비롯하여 호위함과 상륙함. 그리고 고속정과…….
“떠그럴, 할 일 더럽게 많네.”
“네?”
무심코 튀어나온 혼잣말에 안 대표가 반응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자 그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전해드릴 소식이 또 있습니다.”
그 말에 묵묵히 쳐다봤다.
표정이 우스웠던 듯 안 대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말한다.
“오늘 전해드릴 소식 중에 심기 불편하게 할 것은 이제 더 이상은 없으니 안심하시죠.”
“그나마 다행이군요. 말씀해보세요.”
“다른 게 아니라, 미 국방부의 마이클 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마이클이요?”
“네, 조만간 한국으로 올 예정인데, 회장님 스케줄이 어떻게 되시냐고 묻더군요.”
“갑자기 그가 한국에는 왜 온다는 겁니까?”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미국과 제1 동맹국으로 이어지게 되면 군수 분야의 협력에도 많은 변화가 올 텐데, 그걸 미리 준비하자는 측면이랍니다.”
“…….”
“솔직히 대한민국의 방산 업체 하면 이제 재우가 대표격 아닙니까. 하니 미 방산 업체들과 재우와의 협력을 방대하게 확대하겠다는 거죠.”
그 부분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문제였다.
제1 동맹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보 분야나 정책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니까.
특히나 군의 연합작전이나 무기개발 분야에 있어선 아마 시간이 갈수록 협력 관계가 더 공고해질 거다.
“그럼 이 기회에 밀린 숙제나 좀 해야겠군요.”
“숙제요?”
“우리 군에 보급된 미국산 무기들에 대한 전반적인 개량문제 말입니다.”
“아!”
안 대표는 뒤늦게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무언가를 고민하나 싶은 표정을 짓더니 넌지시 말을 건넨다.
“죄송하지만 혹시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의아한 마음에 쳐다봤다.
차마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듯 머리를 긁적이던 안 대표는 답답함에 숨이 깔딱 넘어갈 때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회장님께서 지나치게 경계하시는 부분이라서 말을 꺼내기가 어렵군요.”
“뭔지는 몰라도 판단은 제가 할 테니 말씀이나 해보세요.”
“그게, 실은 얼마 전에 대학 동기들 모임 자리에서 야당의 이주환 의원을 만났습니다.”
“……이주환 의원이 안 대표님과 대학 동기였습니까?”
“제가 나이가 몇인데, 50대 중반의 이주환 의원과 동기겠습니까. 단지 제 동기 놈을 따라서 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저를 만나러 왔었던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왜요?”
막상 말은 내뱉었어도 목적이 뭔지는 이미 짐작이 갔다.
나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
아니나 다를까, 안 대표는 어색한 미소로 다시 말을 뱉어냈다.
“회장님과 자리를 좀 마련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몇 번이고 김 비서를 통해서 의중을 전달했는데, 회장님께서 영 감감 무소식이라면서…….”
“그랬겠죠. 내가 애써 답을 안 했으니까. 솔직히 아직 이 정권의 임기가 1년이 넘게 남은 상황인데 야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를 만나서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한번쯤 만나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왠지 안 대표답지 않은 태도였다.
더군다나 그는 한때나마 현 정권에서도 발을 담갔던 존재.
상황이 왠지 우습지 않은가.
“제가 대화를 좀 해봤는데, 확실히 기존 정치인들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습니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고, 정치계의 고질적인 문제점 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 해도 내가 이 상황에서 그를 만나게 되면 시선들이 고울 리가 없잖습니까.”
“틀린 말씀은 아닌데, 그렇다고 우리가 야당을 밀어주겠다는 의도를 가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
보아하니 안 대표는 이미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작 한 번뿐인 만남에서 그 정도로 끌렸다는 이주환이라는 인물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하긴, 나 역시도 경계심을 갖지 않았던 상태였다면 지금 안 대표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이전 일본이 야당을 통해 이 나라 정치계의 분열을 시도했을 때.
강력한 카리스마로 그걸 부숴 버리던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정한 차기 대통령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거든.
“혹시 청와대가 걱정이시면 그 점은 염려를 내려 좋으셔도 됩니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안 대표가 다시 말했다.
왠지 의미심장한 말투였던 터라 휙 하고 고개를 돌리자 그가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안 그래도 러시아에 계시는 동안 조기경보기 문제로 대통령님과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넌지시 운을 한번 띄워봤는데, 대통령님께선 별 상관 안 하시겠다는 눈치더군요.”
“그건 좀 의외로군요.”
“의외죠. 하지만 대통령님의 성향과 현재 정치권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는 갑니다.”
“…….”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인 이필용 말입니다. 대통령님과 각을 세우는 정도가 좀 지나치거든요. 솔직히 이젠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구분도 안가는 상황까지 왔으니 그건 말 다했죠.”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선 나도 이해가 안 갈 지경이었다.
정권의 지속을 위해선 앞으로 1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
그 와중에 정부와 여당이 등을 돌리는 건 차기 정권을 포기한다는 것과도 다름없는데, 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건지.
“흠…….”
물론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기는 하다.
현 여당의 대권주자인 이필용은 역사상 그만큼 대통령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은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니까.
청와대로선 당연히 그로는 정권유지가 불가능할 것을 예상했을 테고, 그로 인해 깊어진 갈등의 골을 이젠 해소할 길이 없어진 거지.
쯧,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들 이성을 잃은 것 아닌가?
당장 정권이 넘어가면 여당 입장에선 죽도 밥도 안 될 상황에서 이게 무슨.
“그 말씀은 대통령님께선 이미 정권유지를 포기한 상태라는 말입니까?”
“말이야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단지 내심으로 각오만 하고 있으신 거겠죠.”
“허어, 이것 참.”
“아무튼, 대통령님의 성향으로 보면, 회장님이 그렇듯 이주환 의원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조심스러워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입니다.”
난 한참을 고민해봤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일으킨 날갯짓에 의한 후폭풍이 아닐까 싶은.
만약 그렇다면 굳이 맞설 필요가 있을까.
“뭐 청와대에서 그걸 굳이 상관하지 않겠다면야. 그럼 안 대표님께서 적당한 날을 잡아보시죠.”
******
끼익!
며칠 후, 안 대표의 주도로 결국 이주환 의원과의 만남은 성사됐다.
도착한 약속장소엔 이미 이주환 의원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던 상태.
식당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벌써 30분 전부터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데, 아마도 그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기 위한 조치였을 거다.
자신은 권위주의에 쩌든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르다는.
“어서 오십시오.”
방문을 열자 그가 벌떡 일어서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애써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손을 내밀자 그가 외려 손사래를 처 보인다.
“늦기는요. 제가 일찍 도착한 것뿐입니다. 자, 일단 앉으시죠.”
끝내 예를 지키는 그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쳐다봤다.
가식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표정.
아니, 가식은커녕 절로 호감도가 상승할 정도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느껴지는 태도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저 정도의 인물이 왜 회귀 전에는 정치권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건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주환.’
난 잠시 애써 그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은 정부 관료를 상대로 한 청문회에서 그가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장면 뿐.
하지만 그때도 이런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인 것은 아니었건만.
대체 어느 시점에 그의 성향이 이렇듯 달라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원님께서 만나자는 제안을 피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몇 차례의 술잔이 돌 무렵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던졌다.
자고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선 나부터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거든.
이내 힐끗 쳐다본 그의 표정에선 불쾌함 따위는 엿보이지 않았는데, 그게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건지는 아직까지 알 수가 없다.
“그거야 당연하겠죠. 현 정권과 밀접한 군수업체의 대표가 야당 의원과 만나서 좋을 일이 뭐가 있다고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왜 이주환 의원께서 그렇게까지 저를 만나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일개 군수산업체의 대표일 뿐인 마당에.”
“이런, 스스로를 너무 낮추시는군요.”
이주환 의원은 묵직한 한방을 던졌다.
묵묵히 쳐다보자 그가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재우가, 아니 진현승 회장께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겸손하실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직히 말하죠. 전 재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아, 그렇다고 재우그룹이나 진 회장님에게 당장 저를 밀어 달라는 것은 아니니 그런 표정 지으실 것은 없습니다.”
“그럼 대체 뭘 도와달라는 겁니까.”
“재우의. 아니 진 회장님의 절대적인 중립. 그게 저를 도와주는 겁니다.”
‘이것 봐라? 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중립을 지켜달라고?’
의외의 말이었던 터라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낀 걸까, 비어 있던 내 잔에 가득 술을 따른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물론 그동안 진 회장님의 행보를 보면 중립을 지켜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변 환경 때문이라도 그게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주변 환경이라면 구체적으로 뭘 말하시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정치권을 말하는 거죠.”
“…….”
“앞서 말했듯, 진 회장님은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진 회장님을 과연 정치권에서 영영 접촉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