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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50화 (150/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0화

푸틴의 얼굴 근육이 꿈틀했다.

자존심이 상한 걸까.

그렇다 해도 이건 물러설 문제가 아니다.

그게 보장되지 않으면. 그리고 만약 역사가 예정대로 흘러가 버리면 나로선 하지 않느니만 못한 사업이 되어 버리니까.

[현물이라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요.]

다행히 푸틴의 입에선 긍정적인 말이 뱉어졌다.

이로써 한고비는 넘긴 셈.

긴장이 풀리는 어깨를 잠시 들썩이곤 말했다.

[그건 천천히 생각을 해 보죠.]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미 머릿속에선 보상의 실체가 스쳐 지나갔다.

막대한 러시아의 지하자원이 될 수도 있고, 군사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어디 러시아에서 얻어 올 것이 한두 가지인가.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은 피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다.

[쯧,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리나 했더니. 내가 이래서 진 회장과는 협상이라는 걸 하기가 껄끄러운 거요.]

분위기를 풀려는 듯 푸틴이 농담조로 말했다.

어이, 이건 그렇게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데.

당신이 앞으로 크림반도를 침략하게 되는 경우 실체로 닥쳐올 문제라고.

하긴, 또 모르지.

정말로 그 역사는 지워져 버릴지도.

[그나저나 일전에 내가 보낸 자료들은 검토해 봤습니까?]

묵묵히 다시 걸음을 옮기던 푸틴이 다시 의미 불명의 화두를 던졌다.

그동안 내게 보낸 자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터라 대뜸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곤 나를 쳐다본다.

[전에 나타샤를 통해 건넨 자료 말입니다. 미국 내 유대세력들에 관한.]

[아! 그거라면 검토했습니다만.]

[하면 대화가 조금은 편하겠군요.]

푸틴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제 연회장까지의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쯤.

이내 문고리를 붙잡은 그가 한껏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말한다.

[자료를 검토했다면 알겠지만 미국 내 보수 정치세력들이 양분되어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겠죠? 럼즈펠트를 비롯한 네오콘들과 리암 회장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 세력들 말이오.]

[네,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두 세력들은 우리 생각보다 서로 관계가 안 좋다는 점이오.]

난 푸틴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부른 자리에서 왜 갑자기 미국 내 정치세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때, 푸틴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얼마 전 리암이 나를 찾아왔소. 그것도 미국을 대표해서.]

[리암 회장이 러시아를 찾아왔다고요?]

[한 일주일쯤 됐을 겁니다. 아무튼, 그가 미국을 대표해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현재 미국 정치계에서 네오콘들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건 한국이나 러시아의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일 거요.]

[…….]

[진 회장도 겪어서 알겠지만 네오콘들이 원하는 건 그저 제 주머니 챙기는 것뿐이잖소. 그 영향에 여러 국가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사실이고. 하니, 그들이 미국 정치계에서 밀려난다면 우리로서는 좋은 것 아니오?]

그 점은 사실 역사와는 다른 흐름이었다.

미국 내 보수진영에서 네오콘이 힘을 잃어 가고 있는 이 현실.

그것도 유대인들의 세력에 의해서.

하지만 푸틴의 말과는 달리 난 그것이 미국의 근본적인 정책방향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본다.

어차피 유대집단 역시 자신들의 이익. 그리고 미국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 마당에야.

[글쎄요, 그게 한국과 러시아에게 이익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오콘들의 사욕이 대단한 것만큼은 사실이죠.]

실제 이라크 전쟁을 통해 네오콘들의 사업체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이라는 것이 정설이니까.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그렇듯 많은 음모론들이 창궐한 것도 실은 그에 영향을 받은 탓도 있다.

[그나저나 리암이 대통령님을 찾아온 진짜 이유가 뭡니까?]

질문을 뱉어낸 채 그를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푸틴은 단지 웃음만을 남기고 연회장으로 들어섰고, 이후 그 주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친 후였다.

[리암이 온 목적은 우릴 달래기 위함이었소.]

[…….]

워낙 무심히 뱉어진 말이었던 터라 처음엔 그저 멍하니 쳐다만 봤다.

한껏 입매를 뒤튼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한국을 본격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그룹에 편입시키는 것에 대한 우리의 반발을 무마하겠다는 의도였단 겁니다.]

[그래서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일단은 동의했소.]

[그냥 동의 했다는 말입니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조건이 없다면 말이 안 되지. 만약 미국이 한국을 통해서 러시아마저 견제하겠다고 나서면 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소.]

[…….]

그렇다 해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막말로 우리가 미국의 1급 동맹이 되면 코앞에 미국을 두는 것과도 같은 형국인데, 그걸 지켜질지 안 지켜질지도 모를 약속만 받고 넘어간다는 것이 말이 되나.

필시 더 그럴듯한 뒷거래가 오갔거나 러시아가 뭔가 약점이 잡힌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로선 딱히 반대할 입장도 아니고.]

[…….]

역시나 약점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게 뭘까?

궁금함에 당장 물어보고 싶지만 표정만 봐선 대답해 줄 분위기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후 국제 정세가 요동칠 텐데, 이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우리 러시아를 그 격류에 다시 휘말리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시시각각 변하는 내 표정을 보던 푸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 역시도 의미를 유추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자 그가 헛웃음을 뱉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눈친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요. 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리암 회장에게 직접 들으시오.]

[그건 또 무슨…….]

[리암이 그럽디다. 조만간 진 회장을 따로 만날 일이 있다고. 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그에게 직접 들으라는 말입니다. 내가 왜 침묵을 결심했는지, 내내 뒤편에 물러서 있던 그가 왜 미국 정치권의 전면에 나섰으며 미국은

왜 한국을 1급 동맹에 포함하려는 건지.]

[…….]

[자, 그럼 우리 그런 골 아픈 이야기는 던져 버리고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푸틴은 애매한 여운만을 남기고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머리 복잡하게 만든 것이 누군데.

내가 이래서…….

스윽.

속으로 불평을 하던 와중 갑자기 커다란 손 하나가 내게 서류뭉치를 들이밀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자 나를 향해 웃어 보이는 자는 카렐린.

험악한 얼굴로 내비치는 그로테스크한 미소에 놀라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 욕설이 튀어나왔다.

“시발 깜짝이야!”

[…….]

[아, 그게…….]

******

회의가 시작된 지도 1시간 째, 사업의 공동 진행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그사이 내가 들은 것이라고는 야말반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

이미 역사를 통해 지겹도록 숙지하고 있는 나로서는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정작 눈을 빛내며 열변을 토하는 푸틴으로 인해 턱을 앙다물며 참았다.

[야말반도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자, 그럼 이제 진 회장의 의중을 다시 묻겠소. 재우가 참여할 의향은 있습니까?]

[앞서 말했듯, 돌발상황에 대한 보증만 확실하게 해주신다면 당연히 참여할 예정입니다.]

난 잠시 몽롱했던 정신을 붙잡고 대답했다.

순간 푸틴은 곁에 서 있던 비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곧 건네받은 두꺼운 서류뭉치를 내게로 들이밀었다.

[참여 지분 규모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난 서류를 받으며 지나가듯 물었다.

원 역사에 의하면 야말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러시아 노바텍이 60%. 그리고 중국과 프랑스가 대략 20%씩의 지분구조를 가졌던 상황.

역사보다 빨라지긴 했어도 어차피 러시아는 프랑스와 중국과의 협력을 다시 고려할 테고.

만약 그걸 유지한 채 우리를 끼워 넣을 생각이라면 대략 한 업체당 10~15%의 지분을 허용할 가능성이 컸다.

사업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노바텍의 지분을 50% 아래로 끌어 내리기는 힘들 테니까.

[노바텍이 50%. 프랑스가 20%. 그리고 재우가 나머지 30%를 감당하는 걸로 합시다.]

[좋군요. 30%면…… 네?]

무심코 내뱉던 말을 집어삼켰다.

30%라니. 그 정도면 가히 2대 대주주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허용한다고?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중국은?

혹여 잘못 들은 건가 싶은 마음에 재빨리 쳐다봤지만, 푸틴은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지분율이 마음에 안 듭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 큰 프로젝트에 다른 국가들의 참여는 고려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예를 들면 중국과 일본 같은…… 그들이야말로 야말반도의 천연가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국가들 아닙니까.]

푸틴은 그 질문에 헛웃음을 뱉어냈다.

뭔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어차피 재우가 참여하는 입장이면 굳이 일본을 끌어들일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미국과의 약속 때문이오.]

[약속이요?]

[차후 그들이 한국을 러시아의 대응 카드로 쓰지 않는 것을 보증하는 대신 내게는 야말 프로젝트에 중국이 참여하는 것을 막아달라더군.]

[그래서, 그걸 동의 했다는 말입니까?]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까.]

[…….]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미국의 의도야 중국의 에너지 확보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임은 대충 이해가 간다만, 러시아는 또 왜 그에 동조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계륵 같은 존재라고는 해도 중국은 러시아로서도 끝내 떨쳐 낼 수는 없는 집단인 마당에.

[하지만 중국은…….]

[그 부분은 따지지 맙시다.]

넌지시 운을 띄우려는 순간 푸틴이 다급히 말을 막았다.

워낙 확고한 표정이었던 터라 다시 침묵하자 그가 빙긋이 웃으며 화제를 돌린다.

[그나저나, 야말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는 얼어붙은 북극해를 부수며 우송할 수단인데, 재우에서 그 부분도 맡아주면 어떻겠습니까.]

그건 쇄빙선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거였다.

천연가스 공동개발에 이어 쇄빙선까지 우리가 건조하는 조건이면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 째 들어오는 것.

난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푸틴은 만족스러운 듯 탁 하고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놨다.

[그럼 대충 큰 줄기는 잡은 것 같으니 나머지는 실무진들에게 맡깁시다.]

길어질 줄 알았던 회의는 그것으로 끝을 맺었다.

향후 막대한 이익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에너지 확보에 일조할 중요한 사업을 다루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허무할 정도의 과정과 결론.

늘 느끼는 것이지만, 푸틴과의 협상은 이렇듯 깔끔한 것이 특징이었고, 덕분에 피곤함이 덜하다.

[그나저나 축하합니다. 전투기 개발이 꽤 순조로웠다죠?]

이후 우리의 대화는 주로 군수분야를 주제로 이어졌다.

뭐 그렇다 해도 민감한 분야는 피해 가는 것이 관례.

그 탓에 대화의 한계가 오자 그가 갑자기 돌발적인 질문을 뱉어냈다.

[그런데 진 회장께서는 언제까지 혼자 지낼 생각입니까?]

[…….]

[이젠 나이가 40을 바라보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혼자라는 것이 영…… 나타샤의 말에 의하면 만나는 여자도 없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 말에 휙 하고 나타샤를 쳐다봤다.

순간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슬쩍 내 눈을 피하더니 딴청을 부리기 시작한다.

[정 한국에서 짝을 못 찾겠으면 러시아에서 찾아보는 것이 어떻소.]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왜요, 정말로 여자에게 아예 관심이 없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당장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쯧, 아쉽군요. 난 혹시라도 진 회장이 괜찮다면 내 딸을 소개시켜줄까 했는데. 나이 차가 많이 나기는 해도 진 회장 정도면 뭐…….]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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