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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49화 (14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49화

“바쁘신 분을 뵙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김태익 합참의장과의 만남은 이튿날 곧장 이루어졌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살이 부쩍 빠진 느낌.

역시나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꺼낸 첫마디도 몰려드는 각 군의 압박에 관한 것이었다.

“아주 지금 같으면 죽을 지경입니다. 육해공이 돌아가면서 요구들을 해 대는 판국이라서.”

난 달리 대꾸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야 고생이겠지만 내게는 외려 이게 기회니까.

솔직히 지금의 분위기만 같아선 표정관리를 하는 것이 꽤나 힘에 부칠 지경이다.

“국방부에선 일단 육군의 요구에 긍정적인 대답을 한 상태입니다. 정부 역시도 당장 어수선한 육군의 분위기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되도록 수용하겠다는 입장이고요.”

결국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나보다.

내색하지 않은 채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K1과 K2 모두를 교체할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교체할 상황이면 그렇게 해야죠.”

“도입 수량은요?”

“예비물자야 차후 확보하는 것으로 하고, 50만 정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다른 건 둘째 치고 도트사이트 정도는 장착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라서 비용이 확 상승했어요.”

역시나 예상한 수량이었다.

딱 예상했던 추가 옵션이기도 하고.

사실 그 정도도 지금의 정부로서는 예산의 부담이 꽤 클 것이기에 뭐라 다른 말은 못하겠다.

“공개입찰 방식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형식적이나마 그렇게는 해야죠. 정부가 투명성 재고를 위해 공개입찰 방식을 선언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그걸 스스로 어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달라질 것 있겠습니까? 어차피 S&U야 입찰에 참여도 못할

것이고, 다른 중소업체들로서도 기한을 맞추기가 힘들 마당에.”

그 말은 결국 우리가 개발한 소총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였다.

내색하지 않은 채 커피를 들이켜자 그가 넌지시 말을 잇는다.

“재우에선 이미 K1을 대체할 소총도 시제품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입찰에 문제는 없겠죠?”

“그렇습니다.”

“하면 문제 될 것은 없겠군요. 어차피 재우가 개발한 총기들이야 그 뿌리가 결국엔 하나고, 성능 역시 K11을 통해서 검증이 끝났으니까…….참, 그런데 S&U의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문지훈 상무가 얼마 전

형기를 마치고 풀려났다고 하더군요.”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습니까?”

딱히 감흥은 없었던 터라 태연히 대꾸했다.

솔직히 이제 와서 놈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재우는 이제 놈이 덤벼보기엔 지나치게 높은 위치로 올라와 있는 이 현실에서.

이해한다는 듯 웃어 보인 합참의장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나를 쳐다본다.

“또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 표정 같은데, 그냥 눈치 보지 마시고 하시죠.”

왠지 그런 느낌이었던 터라 되물었다.

문지훈의 이야기는 단지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나오는 에피타이저를 던진 느낌이었달까.

예상대로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말을 던진다.

“아직 소식 못 들으셨죠?”

“뭘 말씀이십니까?”

“중국 해군에서 최근 이어도 인근 해역에 자주 출몰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건 처음 듣는 것이었다.

의아한 건 그 정도 사안이면 뉴스에 나도 몇 번은 났을 일이었음에도 조용했다는 것.

어지간한 정보라면 죄다 끌어오는 그룹 내 미래 전략실에서도 그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뉴스에선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던데, 혹시 정부에서 뉴스를 차단한 겁니까?”

“차단했다기보다는 굳이 언론에 알릴 필요가 없었던 거죠.”

“왜요?”

“그게, 문제를 삼기엔 좀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되돌아갔거든요.”

“무슨 의도랍니까?”

“그야 나도 모르죠. 한데 우스운 것은 중국의 그런 움직임에 미국 정부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합참의장이 넌지시 말을 이었다.

왠지 심상치 않은 말투였던 터라 가만히 쳐다보자 그가 입술을 짓씹으며 다시 말한다.

“당분간 일본에 주둔 중인 미 해군 함정들로 이어도 인근 해역을 대상으로 한 경계를 강화하겠답니다.”

그건 어쩌면 중국의 진출을 경계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왜 뒤끝이 이렇게 찜찜하지?

단순히 그게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 뭔가 내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게 뭔지 영 모르겠어요.”

같은 생각을 한 듯 합참의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힐끗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왠지 나를 떠보는 듯한 기분.

난 그제야 나를 부른 그의 근본적인 목적이 뭔지 깨달았다.

“제가 아무리 미 국방부와 가깝긴 해도 그 부분에 대해선 들은 것이 없습니다.”

난 즉시 대꾸하곤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잠시 합참의장의 눈에서 실망의 빛이 스쳤지만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할까.

그나저나 왠지 궁금하다.

대체 정부가 합참의장에게까지 비밀로 할 정도로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 뭔지.

‘흠…….’

******

“야말반도의 가스전 개발에 재우를 끌어들이겠다는 겁니까?”

며칠 후, 야말반도 가스전 개발 사업에 관한 러시아 측의 제안을 정부에 전달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러시아와의 협력이다 보니 정부 측과의 협의는 당연한 것이기에.

그로 인해 한동안 청와대 역시 미 국무부와의 회의를 지속했고, 꼬박 보름쯤 후에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미 국무부 측에서 굳이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달해 왔습니다.”

비서실장을 통해서 전해진 소식은 긍정적이었다.

하긴, 지금은 러시아를 향한 미국의 제재가 없었던 시대니까.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쉽게 넘어간다 싶은 느낌인데, 최근 들어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좀 수상쩍다는 내 생각은 이로써 한층 더 심화되어 갔다.

뭐랄까, 대체로 역사와는 달리 좀 긍정적인 관계로 흐르는 느낌?

아니 단순히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끈끈하다 싶을 정도로.

“문제는 러시아가 미국과 척을 질 경우 자칫 일이 복잡해질 위험성이 있다는 건데, 그에 대한 대책은 있는 겁니까?”

비서실장은 우려의 말을 전했다.

물론 나 역시도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

다른 걸 떠나서 향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다시 재현된다면 그땐 문제가 커지거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야죠.”

하지만 이제 미래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그 일이 벌어질지 안 벌어질지는 모른다는 거지.

그건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확 바뀌어 버린 것에서나 여타 회귀 전과는 영 딴판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근거로 한 것인데, 꼭 그게 아니라도 난 지금의 러시아라면 그 일을 재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무게를 둔다.

지금 푸틴의 포지션을 보면 스스로 무덤을 팔 것 같지는 않거든.

“푸틴은 지금 러시아를 재건하는 것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미국과 척을 질 일을 만들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 아닙니까?”

비서실장은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 역시 쫄리는 것은 사실이기에 최소한의 조치쯤은 준비해서 가는 상황이고, 그 조치에 푸틴이 응하지 않을 경우는 사업 자체를 포기를 할 수도 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며칠 후, 정부와의 협의를 끝낸 난 예정된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짧은 일정이었던 터라 김 비서는 동행에서 제외된 상태.

내심 그게 못 마땅했던 듯 배웅하는 김 비서의 얼굴은 잔뜩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반대로 동행이 결정된 나타샤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나, 잘 갔다 옵니다. 그동안 사무실 잘 지키세요.”

김 비서를 향해 어눌한 인사말을 남긴 나타샤는 툭하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전 같았다면 발끈 했을 것이건만, 이젠 김 비서도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됐는지 그저 후우 하는 한숨만 내쉴 뿐이다.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약 9시간가량의 비행 후 도착한 모스크바 공항엔 알렉세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가 마련한 차에 오른 우린 삼엄한 경비 속에 곧장 대통령궁으로 향했고, 곧 우릴 기다리는 푸틴과 마주했다.

스윽.

푸틴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핏 보면 꼭 화가 나 있는 사람 같은 표정 같달까.

그사이 뭔가 기분 나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은 생각에 넌지시 손을 맞잡으려는데, 갑자기 그가 와락 나를 끌어당기며 등을 두드린다.

[이번에도 약속을 안 지키면 납치라도 할 생각이었소.]

비록 농담이었겠지만 내겐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물 이니까.

어색한 미소로 응수하자 그가 툭 하고 다시 내 등을 두드리며 연회장으로 이끈다.

[솔직히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동안 한국에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해서 투정을 부려본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짧은 대꾸 끝에 힐끗 그를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곁에서 보조를 맞추며 걷고 있는 경호원을.

어디선가 눈에 많이 익다 싶은 얼굴인데, 영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참, 이쪽은 며칠 전부터 내 경호를 맡은 알렉산드르 카렐린이라고 합니다. 진 회장께서도 카렐린에 대해선 잘 알고 계시죠?]

시선을 의식한 푸틴이 다급히 그를 내게 소개했다.

그제야 비로소 그에 대한 기억이 확 떠올랐고, 난 거의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알렉산드르 카렐린…….”

러시아의 전설이자 레슬링 국가대표였던 존재.

영장류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물.

맙소사!

그러고 보니 은퇴 후 푸틴의 경호원이 되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기회라는 듯 내민 카렐린 손은 솥뚜껑만 했다.

굳이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악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의아한 것은 나타샤의 반응이었는데, 그녀 역시도 카렐린과 마주한 것은 처음인 듯 호기심 넘치는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는 거다.

아니, 저건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뭐랄까…… 호승심?

[그나저나 진 회장은 역시 용기가 대단하군요.]

한차례의 인사 끝에 다시 걸음을 옮기던 푸틴은 내게 넌지시 말을 던졌다.

왠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던 터라 멈칫 하고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만약 우리와 미국의 관계가 틀어지면 어쩌려고 덥석 제안을 받겠다는 건지 궁금해서 한 말이오.]

그건 이 사안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우리 정부의 우려이자 내게 여전히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굳은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아직 그 제안을 받겠다고는 안 했습니다.]

[…….]

푸틴은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여기까지 와서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말했다.

[그래서 협약을 논의하기 전에 보증을 좀 서주셔야겠습니다.]

[보증?]

[네, 만약 사업을 시작한 상황에서 변수가 생겼을 경우. 예를 들면 방금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사업 지속이 어려워졌을 경우에 러시아는 그걸 어떻게 보상 할지에 대해서…….]

[…….]

푸틴은 황당하다는 투로 나를 쳐다봤다.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전 장사꾼입니다. 그리고 장사꾼은 투자를 함에 있어서 변수를 무척이나 싫어하죠. 한데 이 문제는 변수가 지나치게 많지 않습니까. 하니 그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쯤은 하고 넘어가야죠.]

[흠…….]

그는 한숨을 쉬곤 잠시 주변을 쳐다봤다.

자리를 비워 달라는 의미.

그 즉시 사람들이 우르르 물러났고, 복도에 남은 것은 나와 푸틴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식으로 보증을 서주면 좋겠소.]

다행히도 예상했던 대꾸가 들려왔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의미겠지.

하긴, 야말반도 개발에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어야지.

아무리 러시아가 지금 부흥기를 맞고 있다곤 해도 최하 수십조에 달할 자금을 홀로 감당하는 것은 무리니만큼 그로서도 일보 후퇴는 당연한 일일 거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투자한 지분과 위약금만큼의 현물을 보장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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