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45화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로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자력개발이 무산된 내 입장에선 조금 아쉬울 뿐이지.
하지만 상황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할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향후 대형수송헬기나 육군의 전술 헬기부분만큼은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인데, 어차피 그것도 예산이 문제고 결국 차기 정권에서나 기대를 해봐야 할 듯싶다.
‘그나저나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뭔가 심상치 않은데.’
제1동맹 승격은 물론, 이렇듯 많은 것을 양보하는 이유.
혹여 동북아시아의 군사정책 변화를 예고하는 건가.
이젠 일본이 아니라 우릴 지역 첨병으로 삼겠다는.
만약 그게 이유라면 향후 꽤 많은 부분에서 이 나라는 변화를 겪게 될 텐데, 이제부턴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곤란할 거다.
“찬성합니다.”
생각을 떨쳐낸 채 뱉어진 내 말에 대통령을 비롯한 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화색을 띄었다.
이로써 별다른 잡음 없이. 그리고 낮은 단가에 해상작전헬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 반응일 터.
하긴, 늘 예산과의 싸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정부와 군의 입장에선 그게 해결 된 것만도 천만 다행인 일일 거다.
‘그나저나 이거 회귀 전, 아파치 도입 당시와 상황이 비슷한 거 같은데.’
막상 저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도 미국의 대량 추가도입에 편승하여 대당 가격을 파격적으로 끌어 내릴 수 있었지 아마?
기억에 의하면 무장 포함 대당 가격을 500억 정도까지 낮췄던 것 같은데.
그 때문에 무려 대당 2500억에 도입한 일본이 꽤나 바보 취급을 받았었다.
‘뭐 사실 일본의 그 황당한 짓거리는 저들의 판단미스와 부패한 시스템에서 나온 결과지만.’
자국 방산 업체들의 생존.
그리고 기술습득이라는 명제아래 이루어진 삽질.
‘그러고 보니 일본의 상황이 갑자기 궁금해지네. 지금쯤이면 메덕스와 아베의 면담이 시작 되었을 텐데.’
생각의 가지는 그것으로 뻗어갔다.
일본의 사과를 약속하고 간 메덕스.
그가 대체 어떤 식으로 일본 내각을 설득할지.
*******
쾅!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보고 일방적으로 사과를 하고 매듭을 지으라니요.”
한국을 향한 조건 없는 사과 요구에 아베의 꼭지가 돌아갔다.
아무리 최근 한국과 미국이 밀월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곤 해도 일본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핵심 우방 중 하나.
그런 일본에게 조건 없는 사과를 하라는 것은 국가의 자존심을 버리라는 것과도 같았기에 도저히 들어줄 요구가 아니었다.
“지금 흥분할 사람은 오히려 저입니다만.”
하지만 메덕스의 반응은 차가웠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은 그가 저렇듯 태연한 것은 뭔가 믿고 있는 패가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
아니나 다를까, 헛웃음을 지어 보인 메덕스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든다.
“이 사진에 찍힌 인물들이 누군지 아시겠죠?”
아베는 무심코 사진을 받아들다간 깜짝 놀랐다.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인 것은 둘째 치고 장소와 상대가 문제였으니까.
최대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표정관리를 했지만, 메덕스의 웃음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 사진 속에서 아베 장관 대화중인 자는 북한 호위총국의 수장인 리연호라고 하더군요. 맞습니까?”
“그, 그렇기는 하지만, 이건 단순히 북한에 납치된 우리 국민들의 송환 문제를 두고…….”
“납치된 일본인들 문제를 왜 호위총국의 인물과 대화한다는 거죠?”
아베는 순간 실수였음을 속으로 인정했다.
차마 뒤이을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던 차 메덕스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백번을 양보해서 정말로 그들과 납치 문제를 대화했다고 치죠. 그런데 북한 호위총국의 인물들은 제재대상이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 그들이 어떻게 버젓이 일본에 들어와 있었던 거죠?”
쐐기를 박는 말이었다.
이건 그 어떤 변명으로도 해소가 되지 않는 문제.
아베의 낯빛은 푸르죽죽해져 갔고, 메덕스는 탁 하고 사진을 책상에 내던지며 말한다.
“뭔가 착각하고 있었나본데, 우리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은 이런 확실한 증거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확증이 나온 이상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죠. 솔직히 우리까지 국제사회에서 개망신을 당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 대체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아베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이전과는 달리 꼬랑지가 바싹 내려간 상태.
이제야 대화가 좀 수월해지겠다는 생각이 든 듯 메덕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앞서 말했듯 방법은 한 가지 뿐입니다. 일본이 조건 없는 사과와 함께 경제제재를 먼저 푸는 것.”
“제제를 풀려면 동시에…….”
“쯧, 지금 자존심을 내세울 때라고 생각합니까? 이쪽에서 먼저 풀어야 저쪽도 명분이 생길 것 아닙니까.”
모멸감을 느끼기 충분한 말이었다.
평소와 전혀 다른 메덕스의 태도도 마찬가지고.
이건 뭐랄까, 마치 2차 대전 종결 당시 항복문서에 사인을 강요당하는 느낌?
한데 그 와중, 메덕스의 입에선 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뱉어졌다.
“조만간 미국 정부는 한국을 제1 동맹국으로 격상할 예정입니다.”
“제1 동맹이라니요. 그건 우리도 아직…… 설마 이번 사건에 대한 보상 차원입니까?”
“우리가 왜 한국에 보상을 합니까. 그리고 고작 그런 문제로 동맹국 지위를 격상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럼 대체 왜요?”
“상황이 그만큼 달라졌으니까요. 그에 더해서 한국에게 바라는 미국 정부와 실권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졌기도 하고."
"상황이 달라졌다니요."
"그건 지금 장관과 대화 할 주제는 아니죠. 정 궁금하면 일본 정보부를 통해서 알아보세요. 중국이 지금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아무튼, 우리로선 더 이상 동아시아에서 동맹끼리의 계속된 분쟁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
“해서 미 정부는 일본이 내일이라도 한국을 향한 사과 담화를 발표하고 매듭지을 것을 정식으로 요구하는 바요.”
아베는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대체 중국이 뭘 어쨌는지는 몰라도 미국이 이젠 일본을 밀어내고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군사 및 경제 파트너로 확정한 느낌이었으니까.
하면 대체 그동안 일본이 한 노력은 뭐란 말인가.
아니, 근 10년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가.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행여 차후에라도 독도를 두고 도발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겁니다.”
가뜩이나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심은 그 한마디로 아예 굴을 팠다.
막말로 이 상황에서 그게 무리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
그럼에도 끝내 그걸 강조하는 것은 결국 한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우회적인 표현인데, 정말로 그것마저 막혀버린다면 정권 붕괴는 시간문제였다.
현 정권의 최대 지지 세력은 극우 주의자들.
그들에겐 숙원과도 같은 독도문제를 수면 밑으로 끌어 내리는 것을 곱게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까.
‘빌어먹을, 받아 처먹을 건 다 받아 처먹은 주제에. 아니, 돌아가는 꼴로 봐선 또 무얼 더 요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상 그걸 생각하자 억울함은 더했다.
미국은 분명 한국에게 양보한 만큼 일본에게 보상을 받아내려 할 텐데, 그게 또 어떤 방식으로 청구서가 날아올지 알 수 없지 않던가.
“명심할 것이 또 있습니다.”
그때, 메덕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뜨끔한 속내를 뒤로하고 쳐다보자 그가 한껏 진중한 표정으로 또 하나의 경고를 날린다.
“재우 그룹의 진현승. 우리가 그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한에는 절대로 건드릴 생각하지 마세요.”
“…….”
“러시아에서의 사건을 다시 재현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베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후 곧바로 든 생각은 미국이 대체 왜 그를? 하는 의문.
순간 메덕스가 다시 말한다.
“진현승은 현재 미국에겐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공식 적인 입장입니다. 비록 러시아와 우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성향은 있지만, 결국 미국의 이익에 득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니
명심하셔야 할 겁니다.”
메덕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현실감이 없는 말을 들은 느낌.
아베는 그를 배웅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자리만 지켰다.
********
모스크바.
“오랜만이야 나타샤.”
나타샤가 러시아 대통령 궁을 다시 방문한 것은 꼬박 2년 만이었다.
그사이 내내 한국에서 진현승의 곁을 지켰던 그녀는 최근 임시 복귀 명령을 받은 상태.
그녀를 제일 처음 맞은 것은 역시나 알렉세이 대외 정보국장이었다.
“요즘 부쩍 젊어지신 것 같네요.”
“그래 보이나? 뭐 러시아가 그만큼 젊어져 가고 있으니까.”
나타샤는 그 말이 왠지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가 젊어진다.
그건 필시 최근 급격히 상승하는 유가로 인해 부가 축적 되고 있는 러시아의 상황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사실 지금의 러시아를 보고 있노라면 전과는 달리 모든 면에서 활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나저나 대체 극초음속미사일 협력 개발은 언제나 끝나는 거야? 자네가 없으니 정보국이 영 엉망이잖아.”
“이미 개발은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어요. 단지 푸틴 각하의 명령 때문에 남아 있는 거지.”
나타샤는 그의 너스레에 헛웃음을 지었다.
힐끗 그녀의 표정을 살핀 알렉세이가 넌지시 그녀의 심중을 뜨는 말을 뱉어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각하의 의중을 잘 모르겠어. 대체 왜 굳이 시간을 끄시는지.”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러니까 그 생각이 대체 뭐냐고. 다른 걸 떠나서 이러다 자네가 한국에 정이라도 들게 될까 봐 나로선 걱정이 많다고.”
피식.
나타샤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뱉어냈다.
하지만 막상 그녀의 뇌리를 스친 것은 그동안 겪었던 한국에서의 생활.
스스로도 확실히 전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나저나 각하께선 저를 갑자기 왜 호출 하신 거죠?”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마침 그 말을 하려던 중이었던 듯, 알렉세이가 저편에 있던 문을 손짓하며 말한다.
“그건 각하께 직접 여쭤보게나. 지금 저 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시니까.”
그녀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걸음을 옮겼다.
곧 방문을 열고 짧은 경례와 함께 다가가자 마침 애견과 시간을 보내고 있던 푸틴이 푸근한 웃음으로 그녀를 맞는다.
“수고가 많았네.”
“러시아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푸틴은 그 말에 웃음을 내뱉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내 손짓으로 그녀에게 자리를 권한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그녀를 쳐다만 봤다.
“갑자기 저를 부르신 목적이…….”
부담스러운 시선을 못이긴 나타샤가 기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푸틴은 뜨거운 홍차를 입가에 가져갔고, 이후 쩝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무슨 상황 말씀이십니까?”
“일본과 한국의 경제 전쟁. 그리고 예상과 달리 일본이 한국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사태 말일세.”
“전 당연했다고 봅니다.”
나타샤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꾸했다.
의외였던 듯 푸틴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로 향한다.
“그게 왜 당연한 거지? 자네도 일본의 경제력과 저력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일본이 경제력에서 한국을 압도하는 것은 사실지만 저력까지 한국을 앞선다는 건 동의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한국엔 진현승이라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진현승 회장 하나로 인해서 이번 문제가 해결된 것이라는 뜻은 아니니까요. 전 단지 그로 인해서 한국이 손에 쥐게 된 패가 많아진 상황을 강조한 겁니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하네. 그가 재우그룹을 장악하고 난 이후, 한국의 군사력 수준은 물론 경제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니까. 솔직히 그가 만약 러시아 인이었다면 난 아마 그를 진즉에 제거해 버렸을 거야.”
푸틴은 한순간에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왠지 섬뜩한 그의 말에 나타샤가 마른 침을 삼켰고, 푸틴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만약 러시아인이었다면 내 자리를 충분히 위협할 만 하지 않은가. 그 마당에 내가 그를 가만히 둘 이유가 있었겠나?”
나타샤는 어색한 미소를 내비쳤다.
상관하지 않은 채 후룩 하고 다시 홍차를 입에 머금은 푸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가 대단하다는 건은 인정한다는 뜻일세.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당분간 자네가 그의 곁에 좀 더 머물러줘야겠어.”
“…….”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나타샤는 눈을 끔뻑였다.
반응을 예상한 듯 푸틴이 여전한 미소로 툭 하고 무언가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한다.
“러시아의 부흥에 그가 필요하거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말입니까?”
“그가 운용 중인 천문학적인 규모의 펀드도 그렇고, 또 여타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이 지속되어서 나쁠 것도 없고. 결정적으로 난 그와 천연가스 개발 문제를 다뤄볼 생각일세.”
“천연가스요?”
“야말반도의 천연가스 말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야말반도엔 전 세계 매장량의 30%에 달하는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어. 난 그 본격적인 개발에 있어서 한국을 끌어들일 생각일세.”
나타샤는 멍한 표정으로 푸틴을 쳐다봤다.
상황 자체가 놀랍기보다는 자신이 또 언제까지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할지 짐작조차도 가지 않기에.
그런데 이 감정은 뭘까.
당장 고국을 또 떠나야 한다는 불만보다는 왠지 기대감이 앞서는 것은.
“아무튼, 조만간 진현승과 그 문제를 의논해볼 생각일세. 그리고 만약 그게 현실화 되면 자네와 알렉세이 국장이 우리 측을 대변하여 한국에 머물러야 할 거야.”
“…….”
“뭐, 그에 더해서 당분간은 자네가 진현승의 안전을 책임져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타샤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곧 돌아선 그녀의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번진다.